# 526
526화. 깃털
호양조의 몸집은 별로 크지 않아 한 장 정도였지만 꼬리의 털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멀리서 보면 커다란 공작으로 보일 정도였지만 이렇게 화려한 색깔의 깃털을 지닌 공작은 없을 것이다.
영수는 신이 나서 악양궁 금제를 벗어나자마자 새빨간 날개를 펄럭였다. 그 뒤를 방저가 쫓아가고 있었지만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호양조의 의식을 속일 수 없었겠지만 궁에서 그를 위해 제련해 준 기운을 숨기는 부적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외출을 즐기며 맑게 지저귀는 영수를 보며 방저도 미소 지었다. 그런데 평소대로 악양궁 주변을 백 리 정도 크게 돌고는 다시 돌아올 것이라 예상했던 호양조가 갑자가 삼십 리를 날아가고는 이상해졌다.
돌연 날갯짓을 멈춘 호양조의 지저귐이 날카롭게 변한 것이다.
뒤에서 따라가던 방저는 일순 당황해 상황을 파악하려 애를 썼지만 그 틈에 호양조가 두 날개를 펼쳐 맹렬히 화염을 일으키더니 돌연 방향을 바꿔 어디론가 날아가기 시작했다.
몇 번 빛이 반짝인다 싶었더니 어느새 거대한 불덩이로 변해 수백 장을 날아가 버린 것이다.
방저는 너무 놀라 넋을 잃었다. 그가 정신을 차리고 품에서 옥패를 꺼내 영력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새의 지저귐 같은 기괴한 소리를 내며 호양조를 소환하려고 했다.
하지만 멀리 날아가는 호양조는 귀환하라는 명에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상한 소리를 내며 고개도 돌리지 않고 하늘 너머로 점점 멀어져 갔다. 그 광경에 방저는 안색이 시퍼렇게 질렸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그가 생각을 정리하고는 일단 품에서 전음부를 꺼내 무어라 외쳐 악양궁 방향으로 던지고는 자신은 이를 악물고 호양조가 사라진 방향으로 날아갔다.
따라 잡을 수 있든 없든 이대로 제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는 중벌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그가 날아가는 동안 천악산맥의 다른 영수들도 난리가 났다.
산맥 아래 악양궁 저계 제자들은 죽을힘을 다해 독수리 형태의 영수를 묶은 밧줄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그들이 구슬땀을 흘리는 동안 영수들은 어딘가를 향해 날아가고 싶어 몸부림 쳤다.
산맥 어딘가의 깊은 동굴 안, 연두색 의복을 걸친 복면 수사가 녹색 빛이 반짝이는 거대한 손을 불러내 검은 거미를 붙들고 있었다. 이를 갈며 폭주하는 영수의 모습에 그는 의문이 가득한 얼굴을 했다.
남천봉에 위치한 악양궁 금제로 가득한 비밀 전각 속에서 보라색 장포를 입은 백발 노파가 엎드려 있는 호양조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녀가 재빨리 술법을 펼쳐 안정을 시켜 놓았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벌써 전각을 뛰쳐나가 어딘가로 날아가고 있을 것이다.
* * *
방저는 법력을 아낌없이 소모하며 날아갔지만 호양조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그가 잠시 숲속에 내려서 숨을 돌리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저계 요수들이 각종 굴이며 구덩이에서 나와 호양조와 같은 방향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날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요수의 물결을 이뤄 나아가고 있었다. 이것을 보자 방저는 더욱 불안해졌다.
그리고 수만 리 밖의 은밀한 산골짜기에서 한립은 가부좌를 하고 붉은 보호막으로 뒤덮인 예상초 뒤에 앉아 있었다. 이미 여섯 이파리가 펼쳐져 영기의 흐름이 굉장했다.
한립은 예상초가 아니라 숲속의 어느 지점을 응시하고 있었다.
금제 밖에는 벌써 가까이에 서식하던 수십 마리의 저계 요수들이 몰려들어 당장이라도 뛰어 들어와 예상초를 갉아먹고 싶어 난동을 부리는 중이었다.
그의 계산대로라면 지금 예상초는 칠급 요수를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일반적인 법보보다 빠른 호양조의 속도를 감안했을 때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할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얼마 후 한립의 안색이 조금 달라졌다. 그가 급히 수결을 맺으며 법결들을 날려대자 외부에 환영진이 발동되었다.
하얀 안개가 나타나 주변을 가렸는데 그 안에서 야수가 울부짖는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들려왔다.
커다란 빛덩이와 사람 머리통만 한 새빨간 불꽃이 각기 다른 방향에서 한립이 앉아 있는 산골짜기를 향해 날아들고 있었던 것이다.
“음?”
불덩이 속에서 조류형 영수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것은 추악한 생김새에 커다란 공처럼 생긴 요수였는데 노리끼리한 피부에 주름이 잔뜩 있었고 그 사이로 긴 꼬리가 자라난 것이 거대한 쥐 같기도 했다.
“저게 뭐지? 7급 정도로 산맥 바깥에서 날아오는 것 같은데.”
“토갑룡(土甲龍)이다. 무척 희귀한 요수지. 방어뿐만 아니라 천지의 보물을 탐색하는 데에도 능력이 뛰어나 유명하지.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 왔구나!”
한립이 의아해하자 대연 신군이 놀라며 답했다.
“그런 요수가 다 있습니까? 듣고 보니 낯이 익은 것 같기도 합니다.”
그가 요수의 정체를 파악하는 동안 두 요수는 벌써 앞 다투어 산골짜기의 하얀 안개 속으로 파고들었다. 목표는 당연히 아래쪽에 있는 예상초였다.
한립이 손바닥을 뒤집어 녹색 진법 원반을 꺼냈다. 그가 원반을 내려치자 영기의 빛이 크게 번지며 가장 바깥쪽 금제가 반짝였다. 그러자 놀랍게도 먼저 들어온 호양조만을 순식간에 가두고 노란빛 속의 토갑룡은 막아버렸다.
이에 토갑룡은 크게 흥분해서는 노란 기운을 키우더니 손발과 머리를 전부 몸통 안에 넣고 회백색의 갑옷을 입은 벌레처럼 금제로 돌진했다.
펑!
커다란 진동으로 가장 바깥 금제가 흔들거렸다. 하지만 시간을 끌기에 그 정도면 충분했다.
호양조는 금제 속으로 들어오자마자 날갯짓을 해 붉은 화염으로 안개를 거의 날려버렸다. 꽃이 만발한 숲이 제 모습을 드러내자 영수가 나무 아래 앉아 있는 한립과 붉은 산호 위의 기이한 향기를 뿜어내는 예상초를 한눈에 포착했다.
새는 아직 의식이 완전히 형성되지 않았지만 한립의 원영 중기 수행을 느끼고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나 매혹적인 예상초를 두고 감히 공격하지도 달아나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한립은 무표정하게 검은 부적을 날렸다. 검은 빛이 반짝이고 검붉은 귀신의 손톱이 나타나 호양조를 잡아채려 쇄도 했다.
호양조가 놀라 날개를 펄럭였고 서른 개의 주먹만 한 불덩이들이 그 안에서 분출되어 귀신 손톱을 공격했다.
퍼퍼퍼퍼펑!
연달아 폭음이 들리고 검은 빛과 붉은 화염이 교전했는데 뜻밖에도 거대 손은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
한립이 의외였던지 이채를 띠고는 수결을 맺어 등 뒤에 은빛 날개를 불러냈다.
꽈광!
그 자리에서 사라진 그는 은빛을 반짝이며 새의 머리 몇 장 위에서 나타났다. 서늘한 얼굴의 그는 두 손을 붙였다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굵은 금빛 뇌전 두 줄기가 나타나 폭발하더니 거대한 그물을 형성했다.
검은 귀신 손톱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던 호양조가 그대로 금빛 그물에 걸려든 것이다. 당황한 새는 몸을 털어댔고 붉은 깃털이 빠져 그물을 공격했다.
퍼퍼펑!
“잡아.”
한립이 손짓하며 외쳤다.
금빛 뇌전으로 엮은 그물은 미친 듯이 번쩍이며 그대로 수축해 난동을 부리는 호양조를 순식간에 단단히 옥죄었다. 호양조는 움직일 수 없자 처량하게 울부짖었다.
한립의 얼굴에 희색이 스친 순간 머리 위에서 갑자기 ‘쿵’ 하는 진동이 느껴졌다.
서둘러 고개를 들어보니 가장 바깥쪽 금제가 토갑룡의 공격에 박살나는 소리였다. 진법 깃발을 이용해 그 자리에서 만들어낸 금제는 칠급 요수를 오래 막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다시 원형을 회복한 토갑룡이 하얀 안개를 지나 그물에 갇힌 호양조와 한립을 지나쳤다.
그 초록빛이 번뜩이는 영민한 눈을 본 한립은 토갑룡의 머리가 상당히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토갑룡이 예상초를 발견하고 노란 기운을 크게 일으켰다.
“막아! 토둔술을 쓰니 일단 땅으로 들어가면 찾을 수 없다.”
“미리 준비해 둔 것이 있습니다.”
한립은 대연 신군의 경고에도 의외로 차분한 미소를 보였다. 토갑룡은 땅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예상초를 삼키려했다.
그때 예상초 곁에서 푹푹 하는 소리들이 연달아 들리고 12개의 투명한 한기가 아무런 낌새도 없이 날아들었다.
이미 한기가 지척에 이르러 토갑룡은 피하지 못하고 즉시 하얀 얼음조각으로 얼어붙었다. 땅에는 하얀 빛으로 반짝이며 열 마리의 작은 지네들이 입에 한기를 머금고 기어 다니고 있었다.
“육익상공을 깔아 놓은 줄도 모르고 괜한 걱정을 했구나.”
대연 신군은 토갑룡을 제압한 것에 기분이 좋은 듯했다. 토갑룡은 피부가 굉장히 두꺼웠지만 12마리 지네들이 쏘아 보낸 한기엔 꼼짝 못했다.
“만일을 대비해서 풀어 놓았는데 토갑룡이 결계를 깨고 쳐들어 올 줄은 몰랐습니다.”
한립이 대연 신군에게 간단히 설명하고는 몸을 날려 호양조를 향해 날아가 입을 열었다.
“아직 지능이 높지 않아도 인간의 말을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널 다치게 할 생각이 없으니 꼬리의 깃털을 스스로 떨어 트리거라. 내가 억지로 뽑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물 속의 호양조는 정말 한립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몸을 부르르 떨더니 놀란 눈초리로 날카롭게 지저귀었다.
이에 한립의 안색이 어두워지며 콧방귀를 뀌더니 한 손에 푸른 기운을 일으켰다. 그러자 새가 두려운 기색으로 즉시 꼬리를 털어 깃털 몇 개를 뽑아냈다.
푸른빛이 반짝이고 한립은 붉은 깃털들을 모두 모아들였다. 그는 미리 준비해둔 옥함에 깃털을 넣고는 저물대 안에 조심스럽게 넣어두었다.
일을 마친 그는 가볍게 호양조의 머리를 쓰다듬어 영기를 흘려보냈다. 영수가 잠에 빠져들게 만든 것이다. 그가 가볍게 웃으며 이번에는 얼음 속에 봉인된 토갑룡에게로 걸어갔다.
얼음 속에 갇혀서 한립을 바라보는 토갑룡의 눈에 공포가 어렸다. 곧 한립은 푸른 빛줄기로 변해 날아갔다.
* * *
일각이 지나, 금색 빛줄기가 번개처럼 나타나 골짜기에 도착했다. 금빛이 가시고 나니 악양궁의 비밀 전각에 있던 보라색 장포를 입은 노파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옆에는 방저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붙어 서 있었다.
이미 숲의 금제는 모두 사라졌고 꼬리 깃털이 조금 줄어든 호양조만이 엎어져 정신을 잃고 있었다.
호양조의 모습에 깜짝 놀란 노파는 얼른 새를 살펴보았지만 원기가 조금 상했을 뿐 다치지 않아 한시름 놓았다.
하지만 호양조의 드문드문한 꼬리로 눈이 갈 때마다 화가 치미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영조의 상태를 살펴보고 일단 깨우자꾸나.”
노파가 낮은 목소리로 분부하자 방저가 듣고는 신속히 법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도중에 악양궁 조종을 만나 함께 오지 않았다면 이렇게 빨리 이곳에 도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때 노파가 주변을 살피다 두 눈을 감았다. 의식을 퍼트려 이런 짓을 벌인 자를 찾아내려는 것이다. 노파는 안색이 달라져서는 방저에게 몇 마디 당부하고는 금색 빛줄기로 변해 급히 날아갔다.
* * *
잠시 후, 몇 백 리 밖의 허공에서 그녀가 산맥을 떠나려는 어떤 수사를 막아섰다.
“마목종의 마 수사 아니십니까. 가만히 앉아 수련에나 힘쓰시지 않고 우리 천악산맥까지 와서 뭐하시는 게요? 방금 요수들의 난동도 수사가 벌인 일입니까?”
노파가 의심스런 시선으로 상대를 노려보며 따졌다. 상대는 연두색 장포를 입은 복면 수사로 겉으로 드러난 두 눈이 금빛인 것이 무척 기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