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5
525화. 악양궁(岳陽宮)
“우리 황청관의 진법은 대가의 작품이라 밖에서 깨고 들어오기가 쉽지 않지. 그 자가 스스로 걸어 나갔다면 말이 되는 구나. 실종된 제자의 이름과 내력이 어찌 되느냐?”
늙은 여 도사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한립이라는 자로 화련 사질이 2년 전에 백로서원에서 데려온 산수입니다.”
“한립? 엽 가에 새로 들어온 장로의 이름도 똑같지 않더냐.”
“예. 저도 이름을 들고 놀랐지만 우연이 아니겠는지요. 원영기 수사와 연기기 수사가 무슨 연관이 있겠습니까.”
“우연? 이 세상에 그런 우연이 얼마나 된 다더냐. 하필 중요한 시점에 그 자가 실종되고 가문에 새로 들어온 장로와 이름이 같다니……. 우연인지 아닌지는 철저히 조사해봐야 알 것이야. 또한 화련을 불러들여 친히 그 아이를 데리고 온 과정을 묻겠다. 백로서원에서 파 놓은 함정일 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또한 연기전에는 속도를 늦추지 말고 3년 내로는 반드시 완성하라 일러야 할 것이다.”
늙은 여 도사가 무표정하게 명령을 내렸다.
“예, 사숙님!”
“존명!”
두 여인이 연달아 대답을 하고는 분부대로 누각을 나갔다. 늙은 여 도사는 둘이 누각을 떠나는 것을 보고서야 길게 탄식하며 눈을 감았다.
두 달 뒤, 익주의 가장 성대한 시장에서 어떤 젊은이가 영석 만 개를 주고 별 볼 일 없는 광석 하나를 사 갔다.
또 다섯 달 뒤에는 번군의 어느 교류회에서는 복면을 한 수사가 영석 십오만 개를 내놓고 화석목 세 조각을 낙찰 받아 사라졌고, 반 년 뒤에는 봉주 개륭부에 있는 명검종에서 도난 사건이 발생했다. 숨겨 놓았던 철각서의 뿔이 사라진 것이다.
여덟 달 뒤, 곡군의 제일가는 세가인 종평 세가에 추악한 얼굴의 원영 중기 거한이 갑자기 들이닥쳐 천년 영초 한 뿌리와 칠급 요수의 영단을 가지고 가문이 보유하고 있던 오광목을 거래하려 했다.
이에 종평 세가의 가주가 거래를 거절하자 가문의 원영기 장로 두 명과 싸움이 일어났다. 그런데 상대의 압도적인 실력에 원영기 장로 둘이 얼음덩이가 되고 말았다.
가주가 어쩔 수 없이 오광목을 내주자 추악한 거한은 미친 듯이 웃어대며 천년 영초와 요단을 던져주고 사라졌다. 종 씨 가문의 두 장로는 오랜 시간을 들여 얼음을 깨고 탈출했지만 원기를 크게 상하고 말았다.
아홉 달 뒤…….
겨우 1년 사이에 대진 남부 지역에는 빈번하게 청년과, 복면 수사, 추악한 얼굴의 거한이 번갈아 나타나며 곳곳에서 진귀한 재료들을 가져갔다.
그 중에서도 청년은 전문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이상한 재료를 사들였고 복면인은 경매회를 중심으로 영석을 무한정 풀어댔다.
추악한 거한만이 거침없이 각지의 세가들이나 작은 문파를 쳐들어가 영약과 요단 등으로 그들이 보유한 진귀한 보물들을 거래해 갔다. 당연히 그 중에는 규모가 있는 문파들도 있었는데 잘 숨겨 두었던 보물도 도둑맞고는 했다.
앞의 두 명은 그렇다고 치고 추악한 얼굴의 거한은 거래라는 명목으로 수도선 문파의 곳간을 털어가니 대진 수도계 남부가 소란스러워졌다.
보물을 잃은 문파들은 크게 분노해 제자들을 풀어 찾아 다녔고 강제로 거래를 한 이들도 열이 받아 뒤에서 지원을 했다.
* * *
롱주는 대진의 서쪽 경계에 위치한 커다란 주로 내부에 높고 험준한 산맥을 품고 있어 독기와 독충으로 이름을 날리는 곳이었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널따란 영토에 악양궁과 십대 마종인 마목종이 위치해 다른 세력이 함부로 관여하지 못하는 곳이었다.
현지의 작은 수도 세력들은 규모가 작아 그들에게 위협이 되지 못했고 오히려 각자 두 세력에 부어 비호를 받고는 했다. 그러니 롱주 전체가 두 종파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악양궁은 서천부 안의 천악산맥 중심의 남천봉이라는 거대한 봉우리에 위치해 수만 제자를 거느리고 있었고, 경비가 삼엄해 감히 이곳을 침입하는 수사는 없었다.
그럴 용기가 있다고 해도 남천봉 외부에 펼쳐진 열세 층의 거대한 결계를 뚫을 방법도 없었다.
그런 어느 날 악양궁 제자들이 어떤 산기슭을 지나는데 아무도 없던 산 정상에서 푸른빛이 반짝이며 청년이 나타났다. 푸른 장삼을 걸친 청년은 악양궁 제자들이 멀리 사라지는 것을 묵묵히 바라보는 중이었다.
“악양궁까지 건드리려는 것이냐. 잘 생각해 봐야 한다. 악양궁은 정도 십대 종문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곳이다.”
대연 신군이 전음을 보내왔다.
“저도 압니다. 그러나 삼염선의 재료들을 거의 다 모으지 않았습니까. 이제 호양조의 깃털과 적화교의 비늘만이 남았는데, 적화교는 이미 시장에서 소식을 얻었습니다. 대진 동쪽의 해변에 강력한 교룡이 나타나 해안가의 수사들을 잡아먹는다는 이야기였는데 마침 붉은 교룡이라더군요.
적화교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운을 시험해 봐야겠습니다. 그런데 호양조는 남부 전역을 돌아보아도 악양궁에서 기르고 있는 영조의 소식밖에는 얻지 못 했는데 어쩌겠습니까? 악양궁이 쉽게 건드릴 세력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지요.”
“그냥 직접 찾아가지 몰래 손을 쓸 것은 무엇이냐. 원영 중기의 수행으로 몇 가지 진귀한 보물을 내주며 부탁을 하면 상대가 체면을 보아서 들어줄지도 모르거늘.”
“농담 마십시오. 그것도 세력이 엇비슷할 때나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원영 중기 수사가 홀로 찾아 간다한들 원영 후기 수사들이 머물고 있는 악양궁에서 무슨 체면을 봐주겠습니까.
게다가 악양궁은 호양조를 두 마리나 키우고 있지만 대대로 전승되어 종문을 대표하는 영수가 되었는데 깃털을 뽑아 원기를 상하게 두지는 않겠지요. 또한 괜히 귀한 보물을 내놓았다가 상대가 딴 마음을 품을 수도 있습니다. 만일 원영 후기만 되었어도 선배님의 말씀대로 해보았을지 모르겠습니다.”
“일 리가 있는 말이구나. 하지만 이곳을 쏘다닌 지도 벌써 열흘이 넘었다. 호양조가 스스로 날아올 때까지 기다릴 셈이더냐?”
“함정을 팔 만한 적당한 장소를 물색 중입니다.”
“함정? 어디 어떤 계획인지 들어나 보자꾸나.”
한립이 웃자 대연 신군도 따라 웃었다.
“적당한 곳을 찾으면 자연히 아시게 될 겁니다. 다만 악양궁의 호양조가 두 마리인데 큰 것이 나을 지 작은 것이 나을 지…….”
한립은 산맥 곳곳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말해 무엇 하느냐? 큰 것은 팔급 요수라던데 단 시간에 해치울 능력이 되느냐?”
“그렇군요. 그나마 상고 영수들이 아직 완전히 의식을 형성하지 못해 화형이 불가능해 다행입니다. 그러면 작은 영수는 칠급 수준이라니 그것으로 해야겠습니다.”
“그래도 팔급 호양조의 깃털을 이용해 제련하면 삼염선의 위력은 더욱 강해질 것이 분명하다.”
“어쩔 수 없지요. 팔급 요수를 상대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감수해야할 위험이 너무 큽니다. 시간을 지체하다가 악양궁 수사들이 알아채면 천란 초원에서처럼 쫓기지 않겠습니까.”
한립이 고개를 저었다.
“하긴 그렇기는 하구나. 그래도 두 마리 모두 대부분 악양궁 내에 머물다가 가끔 백 리 정도를 돌다 들어간다던데 어찌 끌어낼 것이냐?”
“걱정 마십시오. 몽인술을 이용해 악양궁 제자에게 알아낸 바에 따르면 호양조는 규칙적으로 악양궁을 나서 활동을 한답니다. 두 영수를 함께 내보내면 관리하기 어려워 특별히 매달 정해진 일자에 따로 바람을 쐬게 하는 것이지요. 그때가 바로 기회입니다.”
“계획이 있다니 노부도 관여치 않으마. 허나 절대 이번에 열리는 교류회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야! 꼭두각시 제련에 아직 몇 가지 재료가 부족하단 말이다.”
대연 신군이 문득 교류회를 떠올리고 당부했다.
“십 년에 한 번 돌아오는 대진의 삼대 경매회를 어찌 놓치겠습니까. 이 일을 마치는 대로 바로 교류회에 참가하고 이후에는 대진 동부로 떠나 교룡을 찾아 봐야지요.”
“그나저나 그간 네게 노부가 크게 놀랐다. 이 정도 재료를 모으려면 적어도 3, 4년은 걸릴 것이라고 보았는데 벌써 이렇게 많이 구하다니! 음지와 양지에서 동시에 보물들을 공략하는 수법이 제법이야. 쯧쯧, 노부도 이런 결단력이 있어야 했거늘.”
“저도 안전한 방법으로 재료를 모으고 싶었지만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지요. 선배님의 혼백이 양혼목에 의해 버티고 있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처럼요.”
“나름 생각이 깊구나. 나도 네게 속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길어야 3, 4년 더 버티다가 원신이 흩어져 버리겠지. 허나 재료가 모이는 속도가 빠르니 윤회에 들기 전에 꼭두각시를 완성할 수도 있겠다.”
대연 신군이 쓴 웃음을 지었다.
“선배님이 저를 여러 번 도와주셨던 것을 마음 속 깊이 새겨두고 있습니다. 저도 도의를 모르는 자가 아니니 선배님이 염원을 이룰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도울 것입니다.”
“나도 다 나 살자고 도왔던 것이지. 네가 다른 이들의 손에 죽어버리면 나는 어찌 되겠느냐?”
대연 신군이 조금 감동했는지 사실대로 말했다. 한립이 웃으며 신형을 날려 푸른빛과 함께 사라졌다.
이틀 후, 한립은 또 다른 봉우리의 작은 골짜기에서 나타났다. 숲이 우거지고 그 아래로는 꽃들이 만발해 절경을 이루었다. 그는 허공에 떠서 지형을 살피고는 만족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이 정도면 인근에 악양궁 수사도 없겠고 진법을 펼치기도 적당하겠군.”
한립이 중얼중얼 거리다가 푸른 빛줄기로 변해 숲 속으로 하강했다. 그는 고민하지 않고 그 사이를 바삐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온갖 색깔의 진법 법기들을 일곱 벌 정도 꺼내 설치했지만 그 중에 적을 가두는 효과를 지닌 것은 두 개 뿐이었다. 나머지는 환술과 숲의 진짜 모습을 가리는 용도를 지니고 있었다.
대연 신군은 무엇을 하려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고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런데 결계를 친 한립이 바로 행동에 들어가지 않고 숲 중앙에 가부좌를 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 * *
3일 후 저녁. 눈을 감고 명상 중이던 한립이 드디어 눈을 떴다.
그는 고개를 들어 새까맣게 변한 하늘을 확인하고는 손바닥을 뒤집어 월광석을 꺼냈다. 그것을 허공에 던지자 우유빛깔 빛이 쏟아져 주변 숲이 대낮처럼 환해졌다.
조용히 몸을 일으킨 그는 수 천장 크기의 붉은 산호를 꺼내 수풀 속에 잘 내려놓고는 옥함을 꺼냈다.
그 안에는 13개의 이파리가 달린 영초가 들어 있었는데 그것은 그가 수없이 사용했던 예상초였다.
“이게 네가 준비한 것이냐?”
한립이 예상초를 산호에 심자 대연 신군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서금충에게 먹이로 주는 것은 보았지만 또 무슨 용도로 쓰일지 궁금했던 것이다.
“이 영초는 요수를 유혹하는 영초라는 뜻으로 유요초(誘妖草)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그러니 더는 말씀 드리지 않아도 아시겠지요.”
“유요초! 그렇다면.”
대연 신군이 바로 한립의 계획을 알아차렸다.
“예, 6일 후 작은 호양조를 풀어 놓는 날이 오면…… 하하하!”
* * *
방저는 악양궁의 축기 중기 수사였다. 이런 수행을 지닌 이는 악양궁에 팔 백 명은 넘었으니 보통은 눈에 뜨이지 않았다. 그러나 결단기 사숙과 사백들조차 그에게 예의를 다했고 함부로 대하는 법이 없었다.
사실 그와 같은 대우는 그가 맡고 있는 임무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호양조 중 작은 영수를 관리하는 수사였기 때문이다.
태생적으로 조류형 영수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을 타고 났기에 다른 이들은 그를 대신할 수 없었다. 영수를 돌보는 것은 거의 부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기에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었다.
영수의 수행이 결단 후기 수사와 맞먹으니 그런 영수를 관리하는 그를 어려워하는 것은 당연했다. 벌써 영수를 관리한지 30년 째 되었으니 아주 능숙했다.
유일하게 불편한 점은 무엇을 하든 영수와 하루 종일 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오늘처럼 바람을 쐬러 근방을 돌아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는 천악산맥의 십만 리는 악양궁의 통제 범위라 여겨 마음을 놓았다. 이렇게 방저는 아침 일찍 우리에서 날아오른 호양조를 멀리서 뒤따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