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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518화 (275/2,000)

# 518

518화. 두 개의 구슬

모래 바람 위를 한 바퀴 돈 불덩이는 그 안으로 들어와 노란 장포 거한의 손에 떨어졌다.

“이건……!”

거한이 한손으로 전음부를 받아 바로 의식을 불어넣었다. 곧 그의 안색이 어두워져서 손을 떨치자 전음부는 재가 되어 사라졌다.

“갑시다. 이제는 남정신사를 사용하기에도 늦었습니다. 풍진삼살(黃塵三煞)과 마풍칠자(魔風七子)가 옥화 부인이 부리는 강시 병사들에게 뚫렸답니다. 대량의 고계 강시들이 이곳을 향해 날아오고 있다니 지금 떠나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광사 상인이 냉랭히 설명하자 이번에는 천풍 진군도 깜짝 놀라 바로 그러겠다고 답했다. 이에 두 사람은 주저 없이 술법을 펼쳤다.

검은 모래들이 출렁이다 갑자기 높이 솟구쳐 하나로 뭉쳐져서는 하늘 멀리 사라졌다. 그러는 동안에도 거한과 추한 얼굴의 노인은 시종일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립이 거대한 유인원의 어깨에 앉아 그들이 멀리 달아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시간이 없었기에 만일 그들이 계속 덤벼들면 어쩔 수 없이 허천정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허천정이 통천령보라는 사실은 난성해 수사들이 아니면 아는 이가 극히 적었기에 누군가 쉽게 알아볼 가능성이 낮았기 때문이다.

“수사가 낙혼사까지 처리할 수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본 왕의 목숨을 구해주었으니 그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현엽왕은 노란 장포 거한과 노인이 모래 결계를 거두고 멀어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한 시름 놓았지만 바로 전신의 시화를 거둬들이지 않고 한립을 향해 손을 모아 인사했다.

한립은 만년 시왕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시왕의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보아하니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시화를 불러내 낙혼사를 막아낸 것이 원기를 크게 상하게 한 것이 틀림없었다.

한립은 담담히 노마를 쳐다보았다. 현엽왕은 한립의 실력을 보았기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한립이 타고 있는 거대 원숭이는 모래가 사라진 후에도 눈을 반쯤 감고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있었다. 마치 맛 좋은 음식을 먹고 여운을 즐기는 듯했다.

현엽왕이 한립을 향해 경계심을 드러내자, 한립과 의식이 연결되어 있는 영수가 그것을 감지했다.

제혼이 만년 시왕을 응시하며 마치 사람 같은 표정으로 입을 쩝쩝대기 시작한 것이다. 산해진미를 앞에 둔 배고픈 사람처럼!

그 시선을 받은 상고시대의 제왕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낙혼사를 가볍게 무력화시키는 것을 보았을 때부터 영수가 자신과도 상극이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던 그는 마음이 불안해 어쩔 줄을 몰랐다.

“저들이 먼저 공격했기에 나선 것이기는 하나 그래도 제가 수사의 목숨을 구하게 된 것은 사실이지요. 은혜를 갚으신다고 했는데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한립이 먼저 얼굴을 풀고 말했다. 그도 성인군자가 아닌데다 언제 살기가 발작할지 모르는 상황에 시왕과 둘 만 남았으니 어느 정도 살의가 생긴 것은 사실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금강조에서 느껴지던 강시의 기운과 비슷했고 노란 장포 거한이 그를 현엽왕이라고 부를 것을 듣고 어느 정도 상황도 파악한 후였다.

이 자가 바로 금원이 이르던 ‘현엽’이라는 제왕이었다. 이렇게 빨리 말로만 듣던 상대방을 마주치게 되다니 신기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연결을 이용해 봉인해제의 남은 시간을 계산해 보았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상대가 목숨을 보전할 몇 가지 비술을 숨겨놓았을 가능성과 자신의 풍뢰시와 빙염 등의 수법을 이미 들킨 상황을 고려했을 때 제혼과 함께라도 만년 시왕을 단시간 내에 처리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한립은 살기를 억누르긴 했지만 아무 대가도 없이 상대를 위험에서 구해줄 생각은 없었다.

“허허! 본 왕이 다른 건 몰라도 영석과 재료는 어느 정도 모아 두었습니다. 괜찮으시면 같이 거처로 돌아가시지요. 수사가 만족할 만큼 준비하겠습니다.”

“그렇게 까지 할 것은 없을 것 같고, 그 구슬이 괜찮아 보입니다.”

“이것 말씀입니까?”

한립의 말에 현엽왕이 조금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자신을 호시탐탐 노려보는 거대 원숭이를 보며 억지로 미소를 짓고는 입을 벌렸다.

금색 구슬이 입 안에서 분출되었고 한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천시주라 하는데 저와 같은 시왕이 천시결을 수련하여야 만들어 낼 수 있는 본명법보와 비슷한 물건입니다. 제 예상대로라면 방첨산 쌍마도 이것을 노렸을 겁니다. 허나 이 구슬은 제게는 크게 쓸모가 없으니 수사가 필요하시다면 가져가시지요!”

눈빛이 흔들리던 현엽왕은 돌연 웃음을 지으며 한립을 향해 구슬을 날렸다.

의외였지만 한립은 날아오는 구슬을 향해 손을 쥐었다. 그러자 공중에서 거대한 푸른 손이 나타나 금색 구슬을 잡아챘다.

한립은 푸른빛에 감싸인 구슬을 자세히 관찰했다. 다른 것을 대신 준 것도 아니고 정말 진짜 구슬이었다. 사실 상대가 거절해 다른 것을 얻어낼 심산으로 말했는데 너무 쉽게 넘겨주니 의심되었다.

너무 많은 생각이 밀려들어 한립은 잠시 말을 잃었다.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솔직히 말씀 드리면 그 천시주는 천시대법을 익힐 때 하나 더 얻게 된 것입니다. 본 왕이 수행을 쌓는데 꼭 필요한 천시주는 당연히 묘실에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의 표정을 본 현엽왕이 난색을 표하며 해명했다.

“그랬군요! 그럼 저도 사양하지 않고 받아 두겠습니다. ……수사를 찾으러 누군가 오고 있으니 저는 이만.”

고개를 끄덕인 한립이 무언가 더 물어보려다 갑자기 고개를 들어 무언가를 보고는 인사를 했다.

이에 노마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한립의 몸에 푸른빛이 반짝이더니 빛줄기로 변해 하늘을 갈랐다. 노마는 한립이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며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잠시 후 정말 무덤 쪽에서 귀곡성이 들리고 녹색 구름이 몰려들었다. 현엽왕이 그것을 보고 희색을 드러냈다. 이제 광사 상인이든 누구든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한립은 짧은 시간도 허비하지 않고 번개처럼 달아났다. 현엽왕에게서든,  노란 장포의 거한에게서든 봉인이 풀리기 전에 멀리 달아나야만 했다.

그는 다시 법력이 봉인 당하기 전에 이리 저리 방향을 바꿔가며 단숨에 만 리를 날아 산맥을 벗어나버렸다.

그제야 한시름을 놓은 한립이 다시 방향을 정하고 법기를 타고 날아갔다.

* * *

이틀 후, 한립은 아무도 없는 작은 산에 내려섰다. 그는 몇 가지 법기를 꺼내 간단한 동굴을 파냈고 즉시 진법 법기들을 꺼내 동굴 입구를 숨겼다.

한립이 동굴 속의 밀실로 들어가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여기서 명왕결 수련을 하겠다는 것이냐?”

참다못한 대연 신군이 못 마땅하게 물어왔다.

“왜 그러십니까?”

“영맥도 없는 이런 곳에서 네 수련 속도로 명왕결을 익히다가는 노부는 이미 이 세상에 없겠구나!”

“화내실 필요 없습니다. 오는 길에 살펴보니 명왕결 1성은 수련하는데 영기가 크게 필요치 않더군요. 아마 1년 정도면 익힐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2성은 대량의 영기가 필요하기에 반드시 영맥이 흐르는 곳에서 수련해야 할 듯한데……. 그렇지 않으면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살기의 발작을 막으려면 최소한 명왕결을 2성까지는 익혀야 하고요.”

한립이 가볍게 웃었다.

“하지만 대진의 영맥이 흐르는 곳이 아무리 많다고 한들 주인이 없는 자리가 없더군요. 아무리 빨리 법력을 회복하고 싶어도 몇몇 자질구레한 영맥 밖에는 찾지 못할 것입니다. 거대 종파에 잠입해 몰래 수련하는 것이 최선이겠지요.”

“말투로 보아 이미 계획이 있구나!”

한립의 설명에 대연 신군도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예, 목표로 하는 종파가 하나 있습니다. 심지어 일부러 신분을 위조할 필요도 없는 곳이고요.”

“오?  그런 곳이 있다고.”

“풍 씨 가문 비밀 동굴에서 가져온 문서들을 기억하십니까?  그 안에는 몇몇 기밀 사항이 적혀 있었는데, 풍 가의 가주가 제자들을 위해 퇴로를 준비해 두었더군요. 남주의 부유한 상인 가문이라는 다른 신분 말입니다.

몰래 가짜 상인을 앞세워 열댓 개의 상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풍 씨 가문은 전멸을 당했어도 그 상인 가문은 아직 건재합니다. 그들의 비호를 받는다면 남주에 있는 문파의 문하에 들어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요.

아마 2, 3 년 정도면 살기를 제거해 대부분의 원기를 되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안심하고 도처를 돌며 원하시는 재료를 구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거 좋은 생각이로구나. 그런데 왜 여기에서 이러고 있는 것이냐?  1성을 우선 익히려고?”

“그래야 할 듯합니다. 아무래도 수련을 해봐야 얼마나 익히기 어려운지 혹은 수련에 문제는 없는지 체감할 수 있을 테니까요. 또한 다른 이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금강조를 제련해 주인으로 인식케 하고, 교류회에서 얻은 요단으로 비침을 제련해 사용할 생각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를 처리하는 것이고요.”

한립은 탄식하며 손바닥을 뒤집었고 하얀 구슬과 금색 구슬이 나타났다. 방금 얻은 천시주와 구선궁 제자의 수중에서 가져온 설정주였다.

“설정주는 보기 드문 얼음 속성 보물이고 아직 주인을 인식하지 않아 일정시간 배양을 하면 자라극화의 위력을 더욱 높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천시주의 경우 원영 중기의 수사까지 목숨을 걸고 노릴 정도라면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요. 선배님께서는 어찌 사용하면 되는 지 아십니까?”

“사수(邪修)들이 익히는 공법과 연관된 물건이라 노부도 아는 바가 많이 않다만 시주는 유명한 편이지. 육체를 단련하는 공법을 익히는 수사에게 묘약과도 다름없어서 복용하면 서서히 체질 변화를 시켜 수련 속도를 비약적으로 빠르게 만들어 준다.

시왕이나 요수와 같은 단단한 육체를 만들 수도 있겠지. 게다가 이 구술은 시주 중에서도 천시주라 불리는 것이니 더욱 효험이 있지 않겠느냐.”

대연 신군이 기억을 더듬어 일러 주었다.

“복용을 한단 말입니까. 마치 법보처럼 몸속에서 제련을 하는 방식입니까?”

“물론 그냥 삼켜서야 되겠느냐. 시주들은 강력한 시독(尸毒)을 품고 있어 먼저 영약으로 독성을 제거해야 한다. 그 영약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들이 상당히 진귀한 편이지만 내 기억대로라면 네가 전부 지니고 있는 것들이다.

명왕결도 대부분이 육체를 단련하는 술법이니 그 구슬이 수련에 큰 도움을 줄지도 모르겠다. 바로 영약 제조 방법을 옥간에 적어 줄 테니 살펴 보거라.”

이번에는 대연 신군이 먼저 나서서 한립을 도왔다. 하루 빨리 그가 살기를 제거해야 그가 필요한 재료를 모으러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선배님의 도움을 좀 받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죽통 속에서 옥간이 튀어 나왔고 한립은 그것을 잡아 바로 의식을 불어 넣었다. 그러나 곧 대연 신군이 이상하다는 듯 물어왔다.

“근데 모란 초원에서 달아나 지금까지 뭐 잊고 있는 것 없느냐?”

“잊고 있는 것이라면…….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한립은 바로 옥간에서 의식을 회수했다.

“설마 통천령보라는 그 작은 솥에 가둬놓은 물건을 잊어버린 것이냐?”

“선배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천란성수의 화신입니까?”

“그래, 그것 말이다. 잊었나 해서 물었다.”

“잊다니요, 그럴 리가요. 어떻게든 처리하고 싶지만 법력을 회복해야 솥 자체를 몸 밖으로 꺼낼 수 있어서 말입니다. 게다가 이전에 솥이 스스로 열려 요수의 화신을 가둔 것도 제가 의도한 바가 아니었고요. 다만……. 의식을 이용해 요수와 대화를 나누어 보려고 시도는 해보았습니다.”

“대화를 해보니 어떻더냐?”

“강림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제대로 의식을 형성하지 못했더군요. 대화가 불가능했습니다.”

“그야 이상한 일도 아니지. 그러나 상계 영수의 분신이니 의식을 형성하는데 몇 년 걸리지 않을 게다. 그때 가서 다시 시도를 해봐도 늦지 않아.”

“그럼 일단은 기다려 봐야겠습니다. 그보다 천란 성녀의 솥도 허천정에 갇힌 것이 안타깝습니다. 솥에서 분출한 모래의 위력이 대단하던데요. 모양으로 보아 허천정을 모방해 만들어낸 보물 같기도 하고요.”

“그 솥은 한눈에 보기에도 적을 사살하기 위한 보물로는 보이지 않더구나. 칠염선이야 말로 공격에 최적화된 보물이니 재료를 수집해 노부가 알려준 대로 제련하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텐데, 그 까짓것 아쉬워 할 필요 없다.”

한립의 아깝다는 얼굴에 내연 신군이 냉소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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