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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515화 (272/2,000)

# 515

515화. 비밀동굴

“어떻습니까?  현엽 노마의 화신들이 신호를 보내기 전에 처리해야합니다.”

두 인영 중 하나가 높고 가는 목소리로 다른 한 명에게 전음을 보냈다.

“현엽왕의 화신들은 추혼화신(抽魂化身)의 비술을 이용해 수하인 통령(統領) 몇 명을 강제로 꼭두각시로 만든 것 아닙니까. 지능이 떨어져서 수행이 원영 초기라 해도 동급 수사에 미치지 못하지요. 우리가 힘을 합치면 처리하는 것은 큰일이 아닙니다. 이런 때에 노마가 묘실을 나와 홀로 행동하다니 하늘이 돕는 것 같습니다.”

또 다른 누군가가 음침하게 말했다.

“천풍 형 말씀이 맞습니다. 누군가를 추적하고 있어 화신들만 따로 내보낸 것 아닐까요. 게다가 갑자기 목표를 잃어버린 듯합니다.”

“누가 알겠습니까?  누구든 우리 계획에만 방해가 되지 않으면 됩니다. 현엽왕은 묘실을 떠나 수행이 크게 줄었을 테니 지금이 기회입니다. 묘실에서는 거의 원영 후기에 버금가는 능력을 발휘하니까요.”

“현엽 노마는 수사가 미리 두 세가에 연락을 취했다는 것을 꿈에도 모르겠지요. 두 세가가 배후 종문에 지원을 받아 노마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지녔어도 이번에는 어쩌지 못할 겁니다. 요행이 달아난다고 해도 우리가 묘실 밖에 매복해 있을 테니까요.”

가느다란 목소리가 간교하게 웃어댔다.

“우리가 근 십 년을 계획한 결과 아닙니까. 현엽 노마만 제거하면 그가 총애하는 ‘옥화 부인’이나 막 시왕이 된 아들 녀석은 우리의 적수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때가 되면 노마가 오랜 세월 수집한 보물들과 무덤 속에 잠들어 있는 수천의 강시 병사들은 우리 셋이 나누어 가질 수 있을 겁니다. 듣기로는 노마의 천시지체가 거의 완성 단계라던데 수련에 꼭 필요한 천시주(天尸珠) 역시 무덤 어딘가에 숨겨 두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는 시왕의 육체를 지니지 못했지만 그것으로 몸을 단련하면 거의 불사의 몸을 제련할 수 있다지요.”

천풍 형이라 불린 자가 탐욕을 드러냈다.

“허허, 노부는 육체를 단련하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무덤 속 수 천 강시 병사들이면 됩니다. 그것들을 차지하면 무동산(無洞山)에 저만의 세력을 떨칠 있을 테니까요.”

날카롭고 높은 목소리가 가볍게 웃었다.

“도은 수사께서 그리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수사의 시령대법(尸靈大法)이면 강시들을 제 몸처럼 부리실 수 있겠지요.”

천풍은 상대의 대답에 굉장히 기뻐하는 것 같았다.

“그럼 시간도 다 되었으니 노마 뒤를 쫓고 있는 광사 형을 믿고, 우리는 화신을 처리합시다.”

날카로운 목소리의 주인이 주변을 배회하는 녹색 인영을 가리켰다.

“노마도 설릉산맥을 나섰을 시각이니 그러는 것이 좋겠습니다.”

천풍이 잠시 시간을 따져보고는 동의했다. 분노에 차서 으르렁 대던 녹색 인영들이 뒤에서 엄청난 영기의 파동을 느끼고 놀라 뒤를 돌았다.

대량의 마기의 구름과 하얀 돌풍이 그들을 덮치는 중이었다.

* * *

한립은 폭포 뒤에 숨겨진 석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석문의 오른쪽 아래에 뚫린 작은 구멍을 주시했다. 그는 저물대를 스쳐 은빛의 열쇠를 꺼내 그 구멍에 집어넣었다.

화악.

절반뿐이던 열쇠가 구멍에 들어가며 나머지 절반이 생겨났다. 한립은 미소 지으며 손가락을 뻗어 푸른 기운을 던져 넣었다.

쿠쿵.

곧 석문이 진동하며 열리더니 동굴로 이어졌다. 한립은 의식으로 전방을 살피며 천천히 걸어갔다.

십여 장을 가니 전송진 하나가 눈에 들어왔는데 주변의 오목하게 파인 부분 여덟 곳이 텅 비어 있었다.

아마 아무 것도 모르고 이곳을 침입한 적이라면 전송진의 오목하게 파인 부분에 모두 영석을 채워 넣어 어디로 통하는지 알아보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전송진은 저절로 훼손되게 만들어져 있었다.

이곳을 설계한 이는 머리가 비상한 자가 틀림없었다.

한립이 전송진으로 다가가 소매를 털어 다섯 개의 저계 영석을 꺼내 정해진 위치에 두고 법결을 날렸다. 그러자 전송진에서 진동이 일었다.

그는 몸을 날려 중간에 섰고 잠시 후, 하얀 빛과 함께 사라졌다.

전송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았기에 강력한 의식을 지닌 한립은 두통이나 어지러움도 느끼지 않고 낯선 대청으로 빠져나왔다.

쭉 둘러보니 대청 내부가 한눈에 들어왔다.

스무 장 크기의 대청은 아주 정결했고 전부 온석을 깎아 만든 듯 새하얗게 보였다. 그 안에는 녹색 나무 책장 2개와 3개의 은색 상자가 전부였다.

‘이게 풍 가의 비밀동굴이라고? ’

상당히 적은 양에 한립은 조금 의외였다.

나무 책장들은 어떤 신기한 목재로 만든 것인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멀쩡했고 은은하게 나무 향기를 풍겼다.

책장 중 하나에는 법기 들이 놓여 있었는데 중계 법기를 위주로 서른 개 정도였다. 또 다른 책장에는 다양한 색들의 옥간들이 백 권은 넘게 놓여 있었다.

한립이 책장과 은색 상자를 번갈아 보다 바로 옥간이 있는 책장으로 다가갔다. 그는 하나씩 옥간을 들어 재빨리 내용을 살폈다.

강력한 의식으로 한 식경 만에 수많은 옥간을 한번 씩 살폈지만 불가 공법은 없었다.

‘설마 풍침이 거짓말을…….’

한립은 고개를 저었다. 상대의 동의를 얻어 몽인을 펼쳤었기에 상대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한립은 나머지 은색 상자들을 쳐다보다 하나씩 상자들을 열어젖혔다.

첫 번째 상자에는 중계 영석이 한 가득 차있었다. 수백 개는 넘어 보였다. 그 다음 상자에는 희귀한 재료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러나 한립은 그가 찾는 것이 없자 얼굴이 어두워졌다.

마지막 상자를 열었을 때 그는 각양각색의 부적들을 확인하고 크게 실망했다. 그러나 의식으로 내용물을 확인하다가 표정이 달라졌다.

쉭!

부적 아래로 손을 뻗은 그는 반 촌 크기의 붉은 목갑을 꺼내 들었다. 노란 부적으로 봉해져 있는 목갑 표면에는 불의 내용이 새겨져 있었다.

한립이 평범한 봉인 부적을 찢어 내고 목갑을 열어보았다. 목갑을 열자마자 일곱 빛깔의 영기의 광채가 터져 나왔고 그 안에는 우유빛깔의 손톱만한 구슬이 담겨 있었다.

“사리자(舍利子)!”

한립이 희색을 드러냈다. 목갑 안에는 사리자 외에도 불문 법기 두 개와 노란 옥간이 들어 있었다.

“복호공(伏虎功), 전륜경(轉輪經), 명왕결(明王決)…….”

한립이 신속히 옥간을 들어 안에 적힌 공법의 이름을 훑었다. 관연 전부 불문 법결들이었다.

“명왕결은 들어보았다. 금강호법들이 전문적으로 익히던 희귀한 공법인데 수련하기 극히 어렵다지. 풍 가의 선조가 이런 것을 지니고 있었다니 신기한 일이로구나. 일단 내게 보여 보거라. 살기를 해결할 수 있을지 살펴볼 터이니!”

‘명왕결’이라는 소리를 들은 대연 신군이 놀라 입을 열었다.

한립은 무척 기뻤다. 풍 가 선조가 어찌 이런 공법들을 얻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살기만 해결할 수 있으면 된다.

그는 즉시 옥간을 등 뒤의 죽통 속으로 던져주었다.

대연 신군이 옥간 안의 공법을 연구하는 동안 한립은 비밀 동굴 안의 물건들을 골라 저물대로 옮겼다.

전부다 가져가면 좋겠지만 저물대도 담을 수 있는 양의 한계가 있었기에 영석을 제외한 것들은 가려내야 했다.

물론 몇 가지 법보는 전부 챙겼고 재료와 부적들은 쓸 만한 것들만 골라냈다. 법기의 경우는 특별한 기능이 있는 두세 개를 제외하면 건들지 않았다.

일을 마친 한립이 쌓여 있는 옥간들을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흥미로운 공법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고 드디어 대연 신군이 입을 열었다.

“명왕결이 참으로 기이하구나! 불문 공법이 이리 패도적 이라니 거의 마공과 비슷할 지경이야.”

“마공과 비슷하다면 살기는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까?”

한립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리 조급해 할 것 없다. 이 공법으로 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허나 명왕결은 살기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살기를 제련해 이용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수련 방법이 조금 위험하니 다른 불문 공법을 찾고자 한다면 알아서 해라.”

대연 신군은 알아낸 바를 말해주고는 죽통 밖으로 옥간을 내던졌다.

“살기를 이용하게 해준다면 깊이 수련을 했다가 나중에 상고마계로 승천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까?”

한립이 옥간을 받고는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래도 명왕결이 불문 호법들이 수련하던 공법인데 그러기야 하겠느냐. 마공을 익히는 것과 살기를 제련해 이용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살기를 보조적으로 운용해 적을 공격하는 데만 쓰는 것이지.

이렇게 하면 살기의 흉악한 성질을 남기면서도 악영향은 해소할 수 있다. 쯧쯧! 불가에 이런 인재가 있었다니. 마공을 응용해 불가의 공법을 만든 재주가 대단하구나. 대연결 보다도 한 차원 높은 공법이라 볼 수도 있겠다.”

대연 신군이 탄복한 듯 중얼거렸다. 한립이 그 말을 듣고 의아해 하며 다시 옥간에 의식을 주입했다가 깜짝 놀라 빠져 나왔다.

“법결이 너무 익숙합니다. 마치 어디에서 본 것 같은데…….”

“어디서 말이냐?”

“아, 생각났습니다. 요족공법과 비슷합니다.”

침묵하던 한립이 무언가를 생각해 내고는 저물대를 스쳐 손바닥만 한 구리 조각을 꺼냈다. 벌써 잊고 지낸지 오래인 범성진편이었다.

한립은 다시 구리 조각에 새겨진 요족 문자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역시 명왕결과 요족문자로 적힌 공법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비록 명왕결이 훨씬 법결의 수준이 낮았지만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한립은 어리둥절해졌다.

“그건 무엇이냐?”

대연 신군은 한립이 꺼낸 구리 조각을 보며 궁금해 했다.

“직접 살펴보시지요. 저는 자질이 부족해 확실히 결론을 내리기 어렵겠습니다.”

잠시 머뭇거리던 한립이 한숨을 내쉬며 구리 조각을 등 뒤의 던져주었다.

“이것은 요족의 문자인데. 그렇다는 것은…….”

대연 신군이 무어라 중얼중얼 거리더니 말이 없어졌다. 이번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대연 신군이 확실한 답을 내려주었다.

“불문 공법인 명왕결은 이 요족 공법을 개량해서 만든 것 같다. 아마 나머지 구리 조각에 적힌 기초 부분을 응용한 것이겠지”

“그랬군요. 하지만 명왕결의 흐름이 구리 조각의 공법과 이어지지 않습니다. 또 다른 구리 조각이 있는 것일까요?”

“눈썰미가 있구나! 네 말대로 이 요족 공법은 본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을 게다. 기초를 다루는 조각, 형태 변형을 다루는 조각, 마지막으로 술법을 펼치는 법을 다룬 조각. 네가 지닌 것은 마지막 부분이 적혀 있는 조각이다.

정말 특이한 형식이야. 흥미롭구나! 게다가 삼두육비(三頭六譬)의 술법은 이전에 고마가 썼던 능력과 비슷해 보이는데?  상고시대에 최초로 상고마계와 접촉한 것이 인류가 아니라 요족이라던 소리가 거짓이 아니었어.”

대연 신군은 낮게 웃으며 새로운 발견에 즐거워했다.

“그렇다면 이 공법은 고마가 요족에게 전수해 준 것을 다시 불문 수사가 개량했다는 뜻이겠군요. 한 가지 공법이 이런 복잡한 유래를 지닌 것도 독특합니다. 허나 오귀쇄신대법이 언제까지 살기를 봉인해 줄 수 있을지 모르니 머뭇거릴 여유가 없습니다. 일단 이 명왕결을 수련하면서 다른 방법이 있는지 알아봐야겠습니다.”

한립이 생각을 정리하고는 결정을 내렸다.

“다른 공법을 찾다 시간을 허비하면 더 위험해 질 수도 있다. 게다가 다른 이들이 명왕결을 익히기는 어려워도 너처럼 짙은 살기를 지닌 수사에게는 쉬울 수도 있다.”

“정말 그렇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런데 원래는 금강사리가 있어야 수련할 수 있을 듯 한데 그냥 수련을 시작해도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금강사리라면 방금 얻은 것이 있지 않더냐?  네게 천운이 따라주는 게지. 그렇지 않고서는 노부도 명왕결을 수련하라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네 영수가 금강조에서 시화를 빨아들이는 대로 바로 제련을 시작하거라. 노부가 법결을 알려 줄 테니 본명법보처럼 제련하는 게야. 예전에 사리자라는 것에 흥미가 생겨 불문 종파에 십여 년간 숨어들어 연구해낸 법결이니 걱정할 것 없다.”

“그렇다면 안심입니다. 기왕 결정을 내렸으니 바로 떠나지요. 산맥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기분이 이상한 것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어서 영맥이 흐르는 다른 곳을 찾아 제련에 들어가야겠어요.”

한립이 대연 신군의 말을 되뇌고는 말했다. 그는 대청을 돌아보아 빠트린 것은 없는지 확인하고는 다시 전송진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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