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9
509화. 삼왕회(蔘王會)
한립은 몇 개월간 그녀를 통해 대진 수도계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을 마친 상태였다. 그는 연기기 수사가 복용할 만한 단약이 꽤 있었음에도 지금 상황에서는 쉽게 누군가에게 줄 수 없었다.
보물을 차지하려고 살인을 마다하지 않는 자들이 대진 수도계에 차고 넘쳤고 그런 일이 천남보다 더 자주 벌어지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며칠 전 조몽용이 사문으로부터 소식을 전해 듣고 놀라 그를 찾아 왔다. 연기기 8성에 이르는 적수가 있는데 해결할 문제가 있다고 해 이야기를 듣고 나서주기로 한 것이다.
그는 이 일을 대신 처리해주고 떠날 생각이었다.
눈앞의 두 사내는 법기가 휘황찬란하기는 했지만 겨우 연기기 8성과 10성이었다. 그러니 그들이 눈에 찰 리가 없었다. 세 여인이 놀라는 동안 그는 차분히 일어나 정자를 나섰다.
“제가 조 수사를 대신해 대결에 임하려는데 두 분 중에서 누가 저와 실력을 겨루어 보실 생각이십니까? 어쨌든 혼전을 벌일 수는 없는 일 아닌지요.”
한립의 말이 끝나자 허공에서 두 사내가 모습을 드러내며 땅으로 내려왔다.
“내가 같이 와서 다행이지. 오 사제 홀로 왔다면 곤욕을 치를 뻔했구만. 수사는 얼굴이 낯선데 수행은 쓸 만합니다. 제가 나설 것이니 붙어봅시다.”
작은 눈을 가진 중년인이 한 손에 목판 비슷한 법기를 들고 대답했다. 또 다른 한 명은 삼십 대의 거한으로 냉랭히 한립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가 바로 오효우인 듯 했다.
“마옥림! 서령종 집법제자인 당신이 개인 간의 결투에 이리 마음대로 참전해도 되는 것입니까?”
나이가 많은 사저가 안색이 변해 따져 물었다.
“로 선자께서 모르시는 모양인데 저와 오 사제는 남이 아닙니다. 인척끼리 서로 돕는다는 데 무슨 문제가 있는지요?”
중년인이 무표정하게 대꾸했다. 그 말에 로 사저도 할 말을 잃고 초조한 기색을 드러냈고 조몽용도 안색이 어두워져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럼 바로 시작할까요? 대결을 마치고 따로 할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고개를 들어 태양을 보고 시간을 가늠한 한립이 애매한 얼굴로 앞으로 나섰다.
중년인은 냉소하며 손에 들고 있던 목판 모양의 법기를 거두고 저물대에서 담황색의 작은 작살을 꺼내들었다.
두 수사가 대결을 시작하려고 하자 다른 이들은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연기기 수사들 중 높은 수행에 속하는 수사들의 대결이라 다들 흥분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그러나 한립은 그저 뒷짐을 지고 상대를 기다렸다.
마옥림은 한립의 평온한 태도에 내심 괘씸한 마음이 들었는지 즉시 작은 작살을 들고 주술을 외기 시작하더니 법결을 날렸다.
잠시 후, 작은 작살이 부들부들 떨리며 영기의 빛을 내뿜더니 노란빛으로 변해 한립을 향해 날아왔다.
한립은 무표정하게 이렇다 할 법기도 꺼내지 않고 한 손을 들었다. 그러자 열댓 개의 부적이 빠져나와 주먹만 한 불덩이들로 변하더니 노란빛을 맞이했다.
마옥림은 그것을 보고 속으로 냉소했다.
그의 법기인 황풍차(黃風叉)는 사문에서 받은 중계 법기로 저런 작은 불덩이는 순식간에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괜히 불덩이들에 부딪쳐 법기를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 수결을 맺어 얼른 노란빛이 불덩이를 빙 돌아 상대를 공격하게 했다.
이에 한립이 미소 지으며 허공을 가리켰다. 그러자 불덩이들이 하나로 뭉쳐 타오르더니 불 구렁이로 변해 유연하게 몸을 틀었다. 순식간에 작살을 따라잡아 휘감은 것이다.
당황한 마옥림은 전신의 영력을 방출해 작살이 벗어날 수 있도록 힘을 썼다.
하지만 노란빛을 내뿜던 법기가 불 구렁이가 휘감고 조르자 금세 어두워지며 심지어 낮게 ‘웅웅’ 거리기 시작했다.
“잠시 만요! 수사의 법력이 이리 강하시니 제가 진 것으로 하겠습니다.”
중년인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자신의 법보라도 살리려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 말을 듣고 한립은 빙긋 웃고는 다시 허공을 가리켰다.
펑!
그의 손짓에 불 구렁이는 작살을 풀어주고는 폭발해 작은 불꽃으로 흩어졌다.
한립이 단숨에 상대를 쓰러트리자 세 여인은 놀라며 기뻐했다. 그러나 거한 오효우는 좋지 않은 안색으로 자신의 사형을 향해 입을 열었다.
“마 사형, 이게 어떻게…….”
“오 사제, 상대의 실력을 보지 못 했는가? 내가 황풍차까지 사용했는데도 적수가 되지 못했네. 자네의 조카의 운이 여기까지인 게지.”
마옥림이 반박할 여지를 주지 않고 그를 나무랐다. 그는 법기를 회수해 살펴보고는 별다른 이상이 없자 겨우 한숨을 돌렸다.
오효우는 사형의 말에 불만이 많았으나 어쩔 수 없었다. 연기기 10성인 사형이 어쩌지 못하는 자를 자신이라고 어쩌겠는가?
이렇게 서령종 수사 둘은 씩씩대며 법기를 타고 산을 내려갔다.
그들이 사라지고 조몽용 등 세 여인은 한립을 둘러싸고 방금 무슨 법술을 펼친 것이냐고 물었고 한립은 대충 적당한 저계 법술을 응용한 것이라 둘러댔다.
하지만 이어 여인들이 수련 상의 어려움에 대해 묻는 것에는 진심을 다해 답해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날이 저물자 세 여인도 차마 더 머물지 못하고 물러갔다. 그리고 그들이 날이 밝아 다시 초가집을 찾았을 때는 한립은 떠나고 이별을 고하는 서신만 남아 있었다.
* * *
천 리 밖에서 한립이 법기를 타고 천천히 날아가며 대연 신군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먼저 강릉부로 가서 풍 가의 비밀 동굴을 찾겠다고?”
“오귀쇄신대법이 언제 효력을 다할지 모르니 불가 공법을 찾아 살기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안심하고 법력을 회복할 수 없을 테니까요.”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거라. 겨우 작은 가문의 불제자가 어찌 살기를 해결할 만한 고계 공법을 지니고 있겠느냐.”
대연 신군이 한립의 계획에 찬물을 끼얹었다.
“압니다. 하지만 풍 가의 밀실이 가장 접근하기 쉽지 않습니까. 고계 공법을 얻을 수 있다면 좋고 아니면 불종거(佛宗据)라도 찾아가 봐야겠지요. 지금의 수행으로는 쉽지 않은 여정이 될 겁니다.”
“네 수행이 낮아진 뒤로 모든 일이 어렵게 되었지. 원영 중기 수사였다면 불가의 대머리들도 네 체면을 보아 협조해 주었을 지도 모르지 않느냐.”
대연 신군이 콧방귀를 뀌어대자 한립은 그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불종거는 무척 배타적인 불교 종문으로 그가 원영 중기의 수행으로 찾아간다고 해도 고계 공법을 쉽게 내놓을 리 없었다.
유일한 방법은 불종거에 잠입해 고계 공법 중 하나를 훔치는 것이었는데 머리를 밀고 중이 되어야지만 가능한 일이라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 * *
관녕부는 료주의 서쪽 끝에 위치한 지역으로 오원부와 보통 먼 것이 아니었다. 한립은 장장 보름을 날아가서야 겨우 관녕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며칠을 더 날아가자 이제 범인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고 풍경도 황량해져갔다.
그는 준운진(隼雲鎭)이라는 곳에 이르러 법기에서 내려 흙길을 따라 걸어갔다.
다른 지역보다 훨씬 초라해 보이는 이곳은 면적이 협소해서 종횡으로 교차하는 서너 골목이 다였고 건물들도 대부분 진흙이나 목재로 지어진 것뿐이었다.
한립은 미간을 좁히며 작은 마을의 흙길을 따라 연신 주위를 살폈다.
그는 추운 날씨에 얇은 옷을 걸치고 다녔지만 그의 곁을 지나는 범인들 중 그 누구도 놀라는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때 한립의 앞쪽으로 하얀 장포를 입은 두 명의 수사가 걸어오고 있었다.
꽤 젊어 보이는 두 사람은 영기의 파동으로 짐작해보아 연기기 7, 8성 정도의 수도자들이었다. 그들은 한립을 보고 놀랐는지 다가오다 말고 걸음을 멈추었다.
키가 크고 마른 청년이 공손히 예를 취하며 물었다.
“선배님의 존함을 알 수 있겠습니까? 삼왕회(蔘王會)에 참가하러 오셨는지요?”
“삼왕회? 그런 것을 모르겠고 인근에 영초가 많다하여 들른 길이었다.”
“아, 그러셨군요. 어쩐지 이미 교류회가 시작되었는데 이제야 오셨나 했습니다. 만일 삼왕회에 참석하시려면 설릉산으로 가시면 됩니다.”
“이번 교류회는 저희 관녕 삼 가(家)가 주최하는 것으로 다양한 영약이 거래되는 것은 물론이고, 수백 년 된 영약 열 댓 개와 천년 된 야생 삼왕 한 뿌리가 경매에 붙여질 예정입니다.
이미 교류회가 진행되고 있으나 마지막 경매회는 아직 시작 전이니 선배님께서 영약을 찾으신다면 황산을 뒤지시는 것보다 이편이 훨씬 수월하실 겁니다. 또한 산수들과 다른 종파의 수사들이 사적으로 거래해도 저희는 따로 비용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옆에 있던 키 작은 청년이 한립을 교류회로 이끌려는 듯 열심히 설명했다. 한립은 축기기 수행에 지니고 있는 저물대며 영수대가 여럿이라 한 눈에 보기에도 좋은 손님이었다.
“세 가문이라면 공, 조, 동 가(家)를 말하는 것이더냐.”
한립이 눈을 빛내며 조금 의외라는 듯 물었다.
“예, 저희가 바로 공 가의 제자들입니다. 혹시 소문을 듣고 찾아오시는 선배님들이 있을까 하여 모시기 위해 기다리다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마른 청년이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이곳은 이미 공 가가 관리하고 있나보군? 범인들이 수도자를 보고도 어려워하지 않던데.”
“맞습니다. 이미 5, 6년 전부터 저희 세 가문이 공동으로 이곳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거주하는 이들도 전부 저희들의 방계 혈족들이고요. 그러니 수도자를 어려워할 이유가 없지요.”
“그래? 그럼 문제로구나.”
“예? 선배님 무슨 다른 볼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저희에게 말씀을 해주시면 돕겠습니다.”
이번에는 키가 작은 청년이 물었다.
“아니다. 이왕 교류회가 있다니 한번 들려보자꾸나.”
한립이 생각을 마치고 차분히 말했다.
“그럼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두 수사가 말을 마치고 원반 형태의 법기를 꺼내 허공에 던지자 한립이 한 눈에 보기에도 빛이 남다른 비검을 던져 그들 앞에 섰다.
“상계 비검이 아닌지요? 큰 종문에서 경험을 쌓기 위해 나오신 분인가 봅니다.”
키 크고 마른 청년이 한립의 비검을 보고는 놀라 소리쳤고, 키 작은 청년도 부럽다는 얼굴을 했다.
“사문의 규정상 경험을 쌓는 동안은 사문을 밝혀서는 안 되니 더 이상 묻지 말게.”
한립의 말에 두 수사는 그가 큰 종파의 제자가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세 수사는 법기를 타고 작은 마을을 지나 남쪽으로 날아갔다.
* * *
설릉산이라 불리는 곳은 작은 마을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아 곧 산봉우리들이 보였다. 그러나 그곳은 산이라기보다는 산맥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욱 적합해 보였다.
만 리가 넘는 산맥은 료주에서 손꼽히는 커다란 산맥으로 들어가면 요마나 괴신 괴물이 출현한다고 해서 범인은 물론이고 저계 수도자들도 가끔 실종되는 곳이었다.
실종된 수사들의 벗이나 가족, 사문의 수사들이 무리를 이루어 수색하기도 했으나 산맥에서는 전혀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종종 사람들이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다.
다행히 산맥을 지나는 모든 이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고, 대부분 현지의 저계 수사들이 사라진 것이라 각 문파에서는 제자들이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단속했다.
그 뒤로 실종되는 일이 현저하게 줄어들었고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는 이들의 발걸음도 끊기게 되었다.
관녕 삼대세가가 주최하는 삼왕회도 당연히 산맥 깊숙한 곳이 아닌 가장 바깥의 높다란 봉우리에서 진행되었다.
한립은 허공에서 화려한 다층의 전각을 보고 눈을 빛냈다. 그곳은 한눈에 보기에도 새로 지은 태가 나는 곳이었다.
“선배님 이곳입니다. 축기기 수사께서는 개인 방을, 결단기 이상의 선배님들께는 개인 누각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머무시는 동안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키 큰 청년이 아래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한립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별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의식을 퍼트려 은밀히 살펴보고는 미간을 좁혔다.
누각 안에 원영기 수사가 있었던 것이다. 그 자가 풍악이 죽기 전에 말한 그 공 노괴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상대의 몸에서 희미하게 시체의 기운이 감지되었다. 아주 미세하고 교묘하게 숨겨져 있었지만 한립의 의식은 상대를 초월했기에 발견할 수 있었다.
설마 마도나 사파의 공법을 익힌 것인가?
기억대로라면 공 가는 유가 문파로 꽤 명성이 있는 천성종 문하에 있었다. 지금까지도 어느 정도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 원영기 수사가 공 가의 노괴이든 아니면 그저 교류를 하는 인물이든 문제가 있는 것은 틀림없었다.
한립은 두 수사를 따라 장원 입구로 향했고 대문 안에서 푸른 장포를 입은 수사 네 명이 마중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