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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508화 (265/2,000)
  • # 508

    508화. 조몽용

    이틀이 지나자 둘째 아가씨가 하녀를 보내 한립을 청했다.

    한립은 당연히 거절하지 않았고 드디어 선상의 어떤 커다란 방 안에서 둘째 아가씨라는 인물을 만날 수 있었다.

    그녀가 손을 저어 다른 하인들을 물린 후 그를 향해 미소 지었다.

    “한 형께서도 도가 문중 분이시겠지요?  저는 조몽용이라 하옵고 현옥도(玄玉道) 문하의 제자입니다. 한 형께서는 어느 문중의 분이신지요?”

    여인이 지극히 예의 바른 태도로 물어왔다.

    그녀가 보기에 한립은 체내에 마기나 불가의 기운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유가의 호연지기도 보이지 않았으니 도가 사람이라고 유추한 것이다.

    “현옥도?”

    한립이 미간을 좁히며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그런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십대 정도 문파와 십대 마도 종파를 제외하면 대진의 다른 문파는 아는 바가 적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본 문은 료주의 작은 문파라 한 수사께서 모르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아닙니다. 저는 일개 산수인지라 대진 수도계에 아직 익숙하지 않으니 너무 개의치 말아 주십시오.”

    한립이 포권을 취하며 미안한 내색을 했다.

    “아, 그러셨군요. 저도 사문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리 젊은 나이에 수행이 깊으시니 축하드릴 일입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기연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경지에 이르기 어려웠겠지요.”

    한립은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여인이 한립의 대답을 듣고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어쩌다가 얼음 속에 봉인되어 계셨던 것입니까?  강적이라도 만나신 건가요?”

    “그렇지요. 구해주신 은혜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한립이 쓴웃음을 지으며 자세히 설명하고 싶지 않음을 내비추었다.

    “별일 아닙니다. 어차피 제가 구하지 않았어도 시간이 지나 얼음이 녹으면 빠져나오셨을 것입니다. 다만 그렇게 얼음 속에서 떠다니시면 범인들이 크게 놀라니 제가 쓸데없이 참견을 한 것이지요.

    게다가 저희 같은 작은 문파의 수사들과 산수들은 본래 서로서로 도움을 주 고 받으며 살아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인의 진지한 얼굴을 보며 한립은 조금 의아해했지만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한 형께서는 회복은 잘 되어가고 계십니까. 괜찮으시다면 저희 선박에 며칠 더 모실 수 있을까요?  소녀 수련 상에 수사의 지도를 얻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저도 한 동안은 별 다른 일이 없으니 며칠 더 머물겠습니다. 지도라 하면 너무 거창하고 서로 경험과 깨달음을 교류하는 것이라면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한립은 잠시 생각하다가 단번에 그녀의 제안을 받아 들였다.

    조몽용은 크게 기뻐했다. 자질이 부족해 사문을 일찍 떠나 깊은 지도를 받지 못했던 터라 자신보다 수행이 높은 한립이 지도해주겠다고 하니 기쁘지 않을 까닭이 없었다.

    약속 시간을 정하고 여인과 잠시 한담을 나누다 한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녀석아, 어째서 며칠 더 머물겠다고 한 것이야?  어서 영맥이 흐르는 곳을 찾아 수행을 회복할 것이지.”

    대연 신군이 그가 방에 돌아오자마자 참지 못하고 따져 물었다.

    “당연히 영맥이 있는 곳을 찾아가야겠지요. 하지만 그런 곳은 대진의 크고 작은 문파들이 이미 차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대진의 수도자들이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듯하니 이런 수행으로 함부로 나다니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목숨을 부지할 방편을 마련하기도 전에 길가에서 죽어나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한립이 조용히 대답했다.

    “그 말은…….”

    “지니고 있는 단약과 몇몇 영안의 보물들이면 1년 내로 다시 축기기 수행까지 끌어 올릴 수 있을 겁니다. 그때 다시 살기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 나선다 해도 늦지 않습니다.

    저 여인이 비록 다른 속셈이 있는 것 같기는 하나 수행이 얕고 악의는 없는 것 같으니 일단 대진 수도계를 이해할 시간을 갖고 움직일까 합니다. 어차피 이미 대진에 도착했으니 1, 2년 지체한다고 해도 별 차이는 없을 테니까요.”

    “마음대로 하거라. 허나 내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으니 걱정이구나. 어쨌든 재료들을 수집하는데 적잖은 시간이 걸리니 말이야.”

    대연 신군은 걱정스러운 듯 했다.

    “걱정 마십시오. 살기를 해결하는 즉시, 원하시는 재료를 찾는데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문파의 힘을 빌려 수집하는 것이겠지요.”

    “어찌 문파의 힘을 빌린다는 것이냐?  이곳이 천남도 아니고 너도 한 장로로 행세할 수 없는데 말이다. 큰 문파는 너를 거들떠도 보지 않을 것이고 작은 문파는 귀한 재료를 찾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야.”

    “구체적인 것은 상황을 보면서 생각하시지요. 제가 찾아다니지 않아도 제 발로 굴러 들어올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는 대연신군과의 이야기를 마치고 저물대에서 진법 깃발들을 꺼내 간단한 금제를 설치했다. 그리고 침상에 올라간 뒤 가부좌를 하고 단약을 복용했다.

    * * *

    료주 오원부에 있는 신안성 서쪽의 어느 작은 산을 푸른 도포를 걸친 여인 두 명이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

    하얀 빛이 반짝이는 발끝으로 땅을 스칠 때마다 몇 장 씩 앞으로 이동했는데 장포가 길고 동작이 작아서 멀리서 보면 저공비행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로 사저, 정말 사부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을까요?  우리가 조 사매를 돕는다 해도 서령종 그 자를 상대할 수 있을지 걱정이에요. 연기기 8성에다 서령종 장문의 신임을 한 몸에 받는 자라던데.

    우리는 6성과 7성에 불과하니 상대가 동급의 누군가를 데려오면 우리는 적수가 되지 않을 거예요. 우리가 패하면 조 사매는 그 자가 개입하는 것을 막을 수 없을 텐데……. 그가 그 사람을 구해내면 관부에 죄를 짓는 것이니 조 사매 부친에게 화가 미칠 것이 아닙니까.”

    열 일고여덟 살쯤 돼 보이는 여인이 조금 더 연배가 있는 여인에게 말했다. 우리 수도 종문은 본래 관부의 일에 함부로 끼어 들어서는 안 되잖아! 조 사매는 우리 현옥도의 기명제자일 뿐이고 사부님은 기초적인 법술 몇 개를 전수하셨을 뿐이니 나서지 않으시는 것도 당연하지.

    어쨌든 관부도 몇몇 저계 산수들을 모시며 수도자와 관련된 일을 처리하니까. 이번에는 서령종 그 자가 조 사매와 본 문의 관계를 알고 친히 우리 현옥도로 찾아 왔으니 좌시할 수 없게 되었지만 말야.

    사부님께서 기명제자일 뿐이라는 이유를 들어 조 사매를 벌해달라는 요청을 거절하시고 우리 둘을 불러 그가 조 사매를 몰아붙일 거라고 알려주셨잖아. 우리와 조 사매가 친한 것을 아시고 돕게 하신 거지. 그렇지 않으셨으면 영조를 이용해 소식을 전달해도 되셨을 텐데 굳이 우리 두 사람이 다녀오게 하셨겠어. 서 사저 등은 수행은 높아도 조 사매과 별 다른 친분이 없으니 도우려 하지 않았을 거야. 그러니 사부님도 최선을 다하신 거지. 서령종과 우리 현옥도도 어느 정도 교분이 있는데 장배가 나서서 조 사매의 편을 드시기 어려우실 거 아니야.”

    온화하게 생긴 여인이 탄식했다.

    “조 현위가 우리 도관(道觀) 근처에서 일할 때는 사람이 퍽 좋아보였단 말이에요. 사부님께도 항상 공경을 다했는데 이런 일에 휘말려 피해를 보게 하는 건 너무 하다고 생각해요.”

    어린 쪽이 참지 못하겠다는 듯 불퉁거렸다.

    “다 제 운인 것이지. 죄인을 놓친다고 해도 현위가 직접 책임자가 아니니 기껏해야 관직을 잃는 정도에서 끝날 것이야. 죽을죄는 아니라는 거지. 그나저나 조 사매도 운치가 있네. 그 소식을 듣고도 이런 곳에서 우리와 만나자고 하다니 말이야. 설마 이미 대책을 마련한 걸까?”

    “조금만 있으면 산 정상에 오를 테니 직접 물어보면 되죠.”

    “사매 말이 맞네.”

    이렇게 두 여인이 더욱 걸음을 재촉해 잠시 후 산 정상에 도착했다. 산 정상의 공터에는 새로 지은 듯한 초가집이 있었는데 돌로 만든 정자에 사내와 여인이 탁자를 사이데 두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여인이 도착하자 사내가 먼저 말을 멈추고는 고개를 돌렸다.

    “조 수사, 기다리던 분들이 오셨나 봅니다.”

    사내가 미소 지으며 일어나자 소녀가 고개를 돌려 여인들을 확인하고는 희색이 만연해 얼른 몸을 일으켰다.

    “사저들께서 와주셨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사매 기분이 괜찮아 보이는 걸?  어, 어느새 수행이 1성이 늘어난 거야?  축하해!”

    나이가 많은 여인이 방긋 웃으며 걸어오다 조 사매의 수행을 확인하고는 조금 놀란 듯 했다.

    “며칠 전에 간신히 그렇게 되었어요. 사저들에 비하면 아직 멀었어요.”

    “조 사매, 이분은 어느 종파의 수사이신데 이리 수행이 높으셔?  거의 10성은 되시는 것 같은데?”

    어린 사저가 신기하다는 듯 사내를 살피다 놀라 소리쳤다. 그 말에 나이 많은 사저도 고개를 돌려 서둘러 그를 바라보았다.

    “저는 한립이라 합니다. 일개 산수로 조 소저 가문의 식객으로 머물고 있습니다.”

    “그러셨군요! 어쩐지 사매가 너무 차분하다 했더니 한 형이 계셔서 그랬습니다. 이렇게 되면 오효우라도 어쩌지 못 하겠어요.”

    나이 많은 사저가 희색을 드러냈다.

    “사저들 일단 앉아서 이야기해요. 한 형께서는 비록 산수이시나 경험이 풍부해서 제가 수행을 하는데 큰 도움을 주셨답니다.”

    조몽용이 두 여인을 정자로 안내하고는 미소를 띠고 말했다.

    “아, 그렇다면 저희도 많은 지도를 부탁…….”

    여인들이 자리에 앉아 대화를 이어가려는데 돌연 산 아래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그 자인가 봅니다.”

    “어찌 이곳을 알고?  이렇게 빠르다니!”

    두 명의 여인이 놀라 동시에 일어났다.

    “사저들 놀라지 마세요. 며칠 전 오 수사가 찾아 왔기에 한 형의 동의를 얻어 오늘 이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것입니다.”

    “우리도 서둘러 온다고 온 것인데. 한 발 늦은 셈이네.”

    나이 많은 사저가 놀랐지만 한립을 보고 한편으로 안심했다. 연기기 10성 수사가 있으니 8성 수사의 도전을 두려워 할 것이 무엇인가?

    이때 산 정상을 향해 하얀빛이 날아들었고 희미하게 두 사람이 나란히 날아  오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행법기?  저런 법기를 지니다니. 다른 한 명은 또 누구지?”

    어린 사저 쪽이 놀라 중얼거렸다. 조몽용과 다른 여인도 서로 시선을 마주치며 걱정스런 기색을 드러냈다.

    비슷한 등급의 다른 법기에 비해 비행법기는 희소한 편이었다. 저계 비행법기의 가격이 일반적인 중계 법기 이상이니 저계 수도자들은 그만한 영석을 지니고 있을 리가 없었다.

    비행법기를 지니고 있다면 대부분 사문에서 내려준 물건일 것이다.

    두 사내가 흉흉한 기세로 나타났으나 한립은 그들을 한 번 쳐다보고는 별 다른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이미 조몽용의 도움을 받아 얼음덩이를 벗어난 지 8, 9개월 째였다.

    부상이 생각보다 그리 심한 것은 아니었던지 단약을 먹으며 요양을 하자 겨우 반 년 만에 축기기 수행을 되찾았다. 비록 원기가 심하게 상했고 기운을 완전히 차린 것은 아니었지만 수도계에서 목숨을 보전할 만큼은 회복한 것이다.

    물론 조몽용의 수행으로 그의 변화를 눈치 챌 수는 없었다.

    그녀는 그가 머무는 동안 자주 찾아와 수련 상의 어려움이나 곤란한 점에 대해 질문을 했다.

    원영 중기의 수행을 지닌 한립이 연기기 수사의 깨달음에 대해 지도를 해주는 것은 너무 간단한 일이었다. 그녀에게 몇 마디만 던져 주어도 그녀에겐 큰 도움이 되었다.

    조몽용은 기뻐하며 그에게 더욱 공경을 다했고 놀랍게도 그 짧은 사이 연기기 3성에서 4성으로 진보한 후에는 거의 제자의 예를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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