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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505화 (262/2,000)

# 505

505화. 은색 누에

“상대가 나뉘어 움직인다. 네 녀석의 잔머리가 통하는 모양이구나?  저 성수라는 것은 단지 분신이 강림한 것이 틀림없으니 크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래도 신속히 천란 성수를 죽이지 못하면 나머지 대선사 둘이 돌아와 퇴로까지 막힌다는 것을 잊지 말거라. 게다가 천란 성녀라는 아이도 쉽게 볼 상대는 아닌 듯 하고.”

대연 신군이 오랜만에 관심어린 조언을 해주었다.

“계획한 바가 있습니다. 여인이 아닌 성수만 없애는 것이니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한립이 의식을 이용해 따라오는 천란 성녀를 살피고는 신중히 답했다.

“그럼 어디 구경이나 해보자꾸나.”

한립은 거의 시간이 다 되었다고 느끼고 맹렬히 몸을 돌려 영수대를 스쳤다. 그러자 수천 마리의 금색 서금충들이 솟아올라 하늘에 금빛 무리를 형성했다.

웽웽웽!

그리고 수십 개의 금빛 찬란한 비검들이 그의 소매에서 빠져 나와 법결을 맞고는 수백 개의 검빛으로 변해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합쳐져라.”

그가 수결을 맺으며 중얼거리자 검빛들이 진동하며 하늘로 솟구쳤다가 순식간에 일곱 장 길이의 거대한 금색 검으로 변했다. 한립이 다시 입을 벌려 주먹 크기의 보라색 화염을 분사했고 날아오른 화염은 불새로 변해 거검으로 날아들었다.

푸확.

보라색 불새가 폭발하며 거검이 순식간에 보라색 화염에 둘러싸였다. 무수히 많은 뇌전이 번쩍이며 보라색 화염을 타고 흐르는 모습은 놀라울 정도였다.

한립이 미간을 좁히며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푸른 기운을 분출해 검으로 날렸다. 그러자 거검의 표면에서 번쩍이던 금빛 뇌전이 순식간에 종적을 감추었다.

그 모습에 한립이 만족하며 금색 거검을 조종해 구름 너머로 날려 보냈다. 그때 하늘 끝에서 빛이 번쩍이며 뒤쫓아 오던 천란 성녀가 나타났다.

한립이 동공을 수축하며 소매를 털자 한쪽에서는 푸른 비검들과 남색 방패가 날아올라 그의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그는 두 손을 뒤집어 한 손에는 추마골에서 얻은 보라색 고대 거울을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강령부를 꺼내 들었다. 잠시 봉인을 풀었으니 강령부를 사용하면 이전보다는 수행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조용히 그 자리에 서서 상대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소머리에 교룡의 몸을 한 성수는 보기에는 수행이 높아 보이지 않았지만 둔술의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모습을 드러내고 한립의 백여 장 앞에 멈추기까지 몇 호흡이 걸리지 않았다.

천란 성수는 외양이 특이한 것을 제외하면 위력이 세 보이지 않았지만 그 위에 앉아 있는 천란 성녀는 유달리 눈길을 끌었다. 절세의 미모뿐만 아니라 깊이 있는 수행까지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다.

성녀도 이제 한립을 살필 수 있었는데 그의 젊고 평범한 외모에 놀라는 한편 허공의 거대한 서금충 무리를 알아보고는 기쁨이 교차했다.

“당신은…….”

천란 성녀가 머뭇거리다 말문을 뗐다. 그러나 한립은 봉인해제가 풀리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기에 그녀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영충 무리를 향해 손짓을 했다.

웽!

서금충 무리가 즉시 상대를 향해 달려들었고 동시에 그의 앞을 맴돌던 푸른 비검들도 즉시 검 그림자를 만들어내며 성녀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 그녀는 알아채지 못했지만 하늘 높은 곳에서부터 먹구름 하나가 조용히 하강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죽고 싶은 게냐!”

성녀는 그가 자신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공격을 감행하자 분노에 휩싸였다.

그녀는 바로 한 손을 들어 청록색 팔찌를 쏘아 보냈다. 팔찌는 앞으로 나아가며 점점 커지더니 거의 허리에 둘러도 될 만한 고리로 변해 검 그림자를 맞이했다. 그리고 그녀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영수대 하나를 풀어 허공으로 집어 던졌다.

영수대에서는 금빛이 반짝이더니 십여 개의 커다란 금색 꽃봉오리 같은 것이 피어올랐다. 바로 성체가 된 금색 서금충들이었다.

성녀가 방출한 옥팔찌의 위력이 상당한지 푸른 비검들의 그림자는 그것과 접촉하자 전부 고리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한립은 비검들의 움직임이 둔해 진 것을 느끼고 가슴이 서늘해졌다.

게다가 십여 마리의 서금충 성체들도 한립의 서금충 무리로 뛰어들어 마구 갉아먹으며 우위를 보였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한립은 그의 서금충들이 수적으로는 우세했지만 상대의 서금충에게 상처 하나 입히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색이 어두워진 한립은 즉시 강령부를 자신의 몸에 내리쳤고 동시에 핏빛 교룡의 그림자가 나타나 그의 몸에 깃들었다.

그의 몸에 핏빛 비늘이 돋기 시작하더니 머리 위로 교룡의 뿔이 자라나 반교반인의 몸이 되었다. 놀라운 기세가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왔다.

“무슨 공법을 쓴 것이냐!”

성녀는 멀리서 그것을 보고 놀라기는 했지만 전혀 두려운 기색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녀가 입을 벌려 손수건 형태의 법보를 내뿜자 천이 그녀의 몸을 선회하며 몇 장 길이로 커지더니 수직으로 꼿꼿하게 피어올랐다.

거대한 손수건 위에는 은색 누에가 수놓아져 있었다.

그것을 본 한립이 멈칫하며 상대가 꺼낸 보물의 능력을 유추하려는데 거대한 손수건에 수놓아진 은색 누에가 영기를 방출하며 살아 있는 생물처럼 입을 벌렸다.

쉬쉬쉭!

은빛이 뿜어져 나와 아주 세밀한 은실로 변하더니 한립을 향해 쇄도했다. 둘 사이의 백여 장 거리가 순식간에 은실로 빽빽하게 채워지고 있었다.

한립은 주저 없이 남색 방패를 펼쳤다. 방패가 즉시 커다란 보호막을 형성해 그를 온전히 휘감는 순간, 그가 입으로 내뿜은 보라색 화염이 보호막을 빠져 나가 폭발했다. 동시에 괴이한 보라색 한기가 높은 얼음벽을 만들며 우뚝 솟아났다.

거대한 울림이 들리고 은색 실들이 얼음벽을 파고들었다. 그 위로 벌집처럼 세밀한 구멍들이 숭숭 뚫려 겉으로 보기에는 당장이라도 얼음벽이 망가질 것만 같았다.

한립이 조용히 한 손을 들어 올려 법결을 날렸다.

얼음벽 위로 보랏빛이 끝없이 흐르며 놀라운 한기를 내뿜으니 구멍들이 사라지고 난동을 부리던 은색 실들까지 두꺼운 보라색 얼음으로 덮어버렸다.

그뿐 아니라 한기가 어느덧 보라색 빙염으로 변해 은색 실을 타고 손수건 쪽으로 뻗어나갔다. 그 모습은 마치 무수히 많은 보라색 뱀이 달려드는 것처럼 보였다.

성녀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대체 무슨 공법이기에 이리 대단하단 말인가!’

그녀는 놀랐지만 재빨리 수결을 맺어 허공에 뜬 손수건을 가리켰고 은색 누에는 다시 입을 벌려 작렬하는 하얀 화염을 분출했다. 화염이 은색 실을 타고 보라색 화염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얼음과 불의 속성을 지닌 두 개의 화염이 은색 실 중간에서 부딪쳐 교전했다. 보라색과 하얀색의 빛이 이리저리 힘겨루기를 하였지만 잠시 후 보라색 빙염이 명백히 우위를 점해 점점 하얀 화염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러자 천란 성녀가 고대의 언어로 무어라 중얼거리니 천란 성수가 대답을 하듯 포효하며 푸른 화염을 입에서 뿜어 하얀 화염에 힘을 실어주었다.

푸른색과 흰색이 섞인 화염이 놀랍게도 일시적으로 보라색 빙염의 공세를 막아 버렸다.

그 기세를 몰아 성녀가 이번에는 한 손을 뻗어 팔각형의 철로 만든 영패를 허공에 던졌다. 철패는 허공에서 거대한 팔괘도로 변해 붉은 화염을 만들어 냈고 맹렬하게 타오르는 화염은 그대로 한립에게로 부딪쳤다.

그러나 한립은 입 꼬리를 말아 올렸을 뿐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잠시 후 그의 등 뒤에서 천둥소리가 들리고 은색 날개가 펼쳐졌다.

팔괘도가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본 그의 신형이 미세하게 흔들리더니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진 것이다.

“뇌둔술!”

천란 성녀는 한립이 사라진 것을 보더니 표정이 한층 신중해졌다. 그녀가 괴상한 수결을 맺어 법결을 날리니 발아래의 천란 성수가 입을 벌려 새하얀 안개를 방출해냈고 그녀와 성수 모두 수십 장 너비의 거대한 운해 속으로 사라졌다.

꽈광!

천둥소리가 난 직후, 운해의 외곽에 등장한 한립은 의문의 눈빛을 띠고 있었다. 그의 의식으로도 하얀 안개 속 성녀의 위치를 감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서늘한 표정으로 보라색 고대 거울을 가슴 앞에 띄우고는 두 손으로 거울을 움켜쥐고 전신의 영력을 주입했다. 그러자 보라색 빛기둥이 거울에서 용솟음쳐 순식간에 안개를 찢고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보라색 빛기둥이 지나는 곳마다 하얀 안개가 출렁이며 대부분의 기운이 흩어졌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안개 속에서 푸른 염화가 나타나 보라색 빛기둥을 막아섰다. 한립이 서둘러 살피니 천란 성수가 안개 속에 홀로 숨어 푸른 요화를 내뿜고 있었지만 천란 성녀는 어디로 갔는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것을 본 한립은 무척 기뻤다. 안 그래도 여인과 요수를 떼어놓을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었는데 상대가 먼저 성수를 버리고 달아나니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한립은 주저하지 않고 허공에 숨겨 놓았던 거검을 움직였다.

쇄액!

거검이 번개처럼 떨어져내려 하얀 안개를 가르고 순식간에 성수의 머리 위에 닿았다. 거검의 표면에는 보라색 화염과 금빛 뇌전이 쉼 없이 번뜩이고 있었다.

천란 성수는 도망갈 틈도 없이 그대로 머리부터 꼬리까지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순간 기뻐하던 한립의 얼굴이 굳어갔다.

천란 성수의 몸체가 뜻밖에 하얀 안개로 흩어져 사라진 것이다. 그가 죽인 것은 환영에 불과했던 것이다. 급박한 상황에 서두르다가 상대의 꾐에 넘어가고 말았다.

‘이런!’

한립이 긴장하며 바로 몸을 빼내려는데 돌연 푸른 기운이 그의 몸을 덮쳐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동시에 허공에서 맑은 목소리로 주술을 외는 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그가 황급히 고개를 들자 천란 성녀가 수십 장 위에서 이마에 이상한 문양을 드리운 채 주술을 외우고 있었는데 그 옆에는 아주 익숙한 모양의 작은 솥이 떠 있었다.

그 솥 안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와 반경 서른 장 내의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허천정!”

너무 놀라 한립의 안색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는 재빨리 자신이 갖고 있는 허천정을 살펴보았지만 그대로였다.

‘이게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설마 이 세상에 허천정 같은 보물이 더 있다고? ’

한립이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머리 위의 작은 솥은 점점 거대해져 서너 장 크기의 거대한 솥으로 변해 있었다. 솥에서는 강력한 빛이 터져 나왔고 푸른 모래들이 끝없이 쏟아져 나와 한립을 덮치려 했다.

그것을 확인한 한립은 더 고민할 것도 없이 등 뒤의 은색 날개를 펼쳐 푸른빛이 퍼진 공간을 벗어나기로 했다.

하지만 하얀 안개 속에서 천둥소리가 들리고 무형의 파동이 그를 스치자 은색 날개가 은빛을 깜빡이다가 뇌둔술의 효력을 상실했다.

‘이건 또 뭐야!’

한립이 경악해하며 안개 속을 주시했는데 잠시 후 안개 속에서 천란 성수가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푸른 모래 덩어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한립은 어쩔 수 없이 남색 방패를 이용해 뚫고 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모래 구름과 남색 보호막이 닿자마자 푸른빛이 크게 일며 모래알들이 크기를 키우더니 매섭게 떨어져 내렸다.

쿠콰콰쾅!

남색 방패가 아무리 신묘한 능력을 지녔어도 연달아 부딪히는 거대한 힘에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모래 구름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두 개로 갈라져 교룡의 형상을 하더니 보호막을 휘감고 양쪽에서 한립을 향해 날카로운 이를 드러냈다.

한립 역시 머뭇거리지 않고 입을 벌려 작은 솥을 분출했고 그가 솥을 가리키자 남색 빙염이 그 안에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그가 통보결 제1성을 수련한 허천정이었다.

아직 솥의 극히 일부의 위력만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가 한 손으로 솥의 뚜껑을 가볍게 스치니 푸른 기운이 말려 올라와 순식간에 전신을 휘감았다. 또 양 팔을 좌우로 떨치자 두 마리 모래 교룡을 향해 열댓 개의 푸른 검기들이 매섭게 교차해 날아갔다.

푸푸푸푹!

교룡의 머리에 열댓 개의 구멍이 뚫렸지만 그 뿐이었다.

긴장한 한립이 몸을 움직여 달아나려 했지만 몸이 천근만근이라도 되는 듯 도저히 움직일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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