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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504화 (261/2,000)

# 504

504화. 유인

수면 위를 따라 탐색하던 중, 전방에 협소한 강줄기가 나타났다. 저 멀리 강 속에서 희미하게 핏빛이 번뜩이더니 순식간에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외지인이 무언가를 감지하고 비술을 펼쳐 달아납니다. 벌써 수백 리 밖으로 달아나다니. 의식이 너무 강해 잡기가 만만치 않겠습니다. 다른 선사들은 속도가 느리니 저희 셋이 먼저 가서 그 자의 행로를 막아야겠습니다.”

성녀가 과감하게 결단을 내리며 말했다.

다른 두 선사도 당연히 반대할 이유가 없었기에 뒤늦게 쫓아오고 있는 선사 무리에게 전음부를 보내고는 전속력으로 둔술을 펼쳐 날아가기 시작했다.

거리가 멀어 아무도 외지인을 의식으로 포착할 수는 없었으나 성수의 기이한 신통력을 이용해 한립의 꽁무니를 놓치지 않고 따라갈 수 있었다.

그렇게 꼬박 하루 동안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졌다. 한립이 혈영둔을 이용해 천리 밖으로 달아나면 세 돌올인 선사들은 다시 그의 위치를 파악해 추격을 계속했다.

연달아 세 번이나 봉인을 풀어버렸지만 여전히 추격해오는 자들을 떨쳐버리지 못하자 한립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선배님, 돌올인들이 천리 밖에서도 몇 번이고 저를 찾아내고 있습니다. 세상에 대연결보다 더욱 대단한 의식을 강화하는 비술이 있는 걸까요?”

한립이 창백한 얼굴로 물었다.

연달에 세 번이나 봉인을 풀고 혈영둔을 수도 없이 쓴 한립의 몸은 지금 매우 위험한 상태였다.

몇 번이나 고계 비술을 이용해 발작을 억누르고 아까운 만년영유를 열 방울 넘게 마셔 정혈의 손실을 부분적으로 보조하지 않았다면 진작에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2, 3백 년의 법력을 잃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것도 그가 다량의 단약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지 다른 수사였다면 아예 경지가 낮아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 원영 후기 수사들에게 추격을 당하고 있다니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상대가 어떤 방법으로 자신을 뒤쫓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더 이상 혈영둔도 함부로 쓰기 어려웠다.

이대로 가다가는 그들을 따돌리기 전에 자신이 끝장날 판이었다.

“노부의 대연결은 감히 수도계 제일이라고 자신한다만 노부보다 자질이 뛰어난 수사가 어디 한둘이겠느냐?  더 대단한 공법이 있다 한들 이상한 일은 아니지. 허나 이번에 저들이 너를 천리 밖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아닌 다른 것이 너를 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아니라면, 요수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뒤따르는 요수의 모습이 어쩐지 익숙하지 않더냐?  돌올인들이 천란의 성수라 부르는 요수의 모양 그대로였다. 아마 천란 성전의 늙은이들이 네가 상계 선사들을 여럿 죽이자 상계에서 소환해낸 것이겠지.”

“천란 성수요?  저도 당연히 그 요수를 눈여겨보았으나 법력의 파동이 그다지 강하지 않았습니다. 7급 수준이었는데 모란인들이 성조라 부르던 것과 너무 차이가 나는 것 아닙니까?”

한립은 미간을 좁히며 의구심을 드러냈다.

“너희와 모란인들과의 전쟁에 대해서는 들었다. 당시 모란인들이 소환한 성조는 아마 일종의 그림자를 투영하는 소환 방식이겠지. 상계 영수를 보물의 힘을 빌려 인계에 환형을 만들어 내는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뒤따르는 저 요수는 확실히 실체를 지니고 있지. 그렇다면 천란성수는 고마의 마화와 비슷한 능력을 지니고 있을 게야. 그러니 우습게 볼 게 아니란 말이다. 저게 바로 진정한 분신의 소환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만일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인계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러나 몇 번이나 강림을 했었지만 무엇이 두려운 지 항상 몸을 사리는 통에 평범한 수도자들은 제대로 알지도 보지도 못했지.”

대연 신군이 나직하게 설명했다.

“인계에 저런 존재가 있었다니 금시초문입니다. 저게 요수든 무슨 성수든 간에 어서 추격을 피할 방법을 찾아 내야합니다. 일단 봉인해제가 풀리면 큰일이니까요.”

그들이 더욱 가까이 온 것을 확인한 한립은 초조한 기색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상계의 기이한 요수가 수도 없이 많은데 어떤 수법으로 너를 뒤쫓는지 어떻게 알겠느냐. 내 보기에 네가 기운을 숨기는 솜씨는 이미 완벽에 가까우니 저 요수를 죽이지 않고서는 방법이 없을 듯하구나. 다만 임시로 너를 가사(假死) 상태로 만드는 비술을 전수해 줄 수도 있다. 그럼 전신의 기운이 완전히 사라져 죽은 것과 비슷한 상태가 되지만 이 방법이 통할 지는 확신할 수 없다. 저 요수가 네 기운을 쫓아 추격하는 것인지도 확실하지 않으니 말이다.”

한립은 대연 신군의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다가 돌연 매섭게 말했다.

“저 요수를 죽여야겠습니다.”

“어려울 텐데?  그 옆에 돌올인 대선사가 둘이나 있고, 얼굴을 가린 여인은 원영 중기라지만 천란 성녀인 게 분명하다. 아마 대선사에 버금가는 신통력을 지니고 있을 테지.”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서는 위기를 타개할 방법이 없습니다. 두 번째 원영을 포기하고서라도 싸움에 임한다면 승산이 없지는 않을 겁니다.”

“주인님, 그리 마음을 정하셨다면 저도 돕겠습니다.”

그때 은월이 돌연 입을 열었다.

“부상은 어떠하느냐?  기령의 몸으로 적을 유인하라고 하면 버틸 수 있겠느냐?”

한립이 잠시 주저하다가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었다.

“저는 주인님의 본명법보에 깃든 기령입니다. 중상을 입었어도 비검이 망가지지 않는 한 불사에 가깝지요. 그러니 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기껏해야 이후 법보에 깃들어 몇 년 깊은 잠을 자고 나면 괜찮아 질 것입니다.”

“그래, 지금 상황이 좋지 않으니 아무래도 네가 수고를 해줘야겠구나.”

한립이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는 탄식하듯 말했다.

이후 그는 대연 신군에게 가사 상태에 빠지게 만드는 법결을 물어 속으로 한참 되뇌고는 즉시 자신의 두개골을 문질렀다.

검은 빛이 번뜩이며 두 번째 원영이 그의 머리 위로 솟아 입에서 새까만 깃발을 뱉어냈다. 원영은 깃발을 손에 쥐고 뛰어 올라 흘러나온 새까만 구름 속으로 들어갔는데 백여 장 상공이 검은 구름으로 뒤덮여 마기가 자욱했다.

“이것을 가져가거라. 천란 성녀가 성수를 데리고 너를 추격하면 이 검을 이용해 죽여야 한다.”

한립이 음산한 얼굴로 한 손을 들어 핏빛 나는 작은 검을 마기의 구름 속에 던져 넣었다. 바로 혈마검이었다.

마기의 구름 사이로 날카로운 소리가 울리며 엄청난 기세로 날아갔다.

한립은 어두운 얼굴로 멀어지는 마기의 구름을 바라보다가 작은 병을 꺼냈다. 병을 기울여 영기가 가득한 우윳빛 액체를 한 방을 머금은 그는 더욱 빠른 속도로 먼 곳을 향해 날아갔다.

* * *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착각이 아니라면 그 자의 원영이 홀로 달아나고 있습니다.”

뒤따르던 보라색 머리 여인이 미간을 좁혔다.

“보통 원영이 빠져 나오면 육신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법입니다. 그런데 저 자는 여전히 둔술을 펼치고 있으니 삼시원신술과 비슷한 비술을 익히고 있는 걸까요.”

청년도 고개를 저으며 의혹을 드러냈다.

“화신을 만들어낸 것이라면 우리를 속일 수 없었겠지요. 완전한 원영이 따로 움직이고 있으니 계 선사의 육혼분원술처럼 원영을 분리하는 술법은 아닐 겁니다. 설마 말로만 듣던 두 번째 원영이라도 지니고 있는 것인지…….”

보라색 머리 여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성녀의 안색도 안 좋기는 마찬가지였다.

“성수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감지할 수 없습니까?”

청년이 고개를 돌려 성녀에게 물었다.

“안 됩니다. 성수는 지금 분신의 한 줄기만이 강림한 것이라 완전히 이지를 되찾으려면 백년이 넘는 수련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겨우 7급 요수의 수준이니 다른 신통력을 펼칠 리가 없지요.”

“그렇다면 성가시게 되었습니다. 만일 원영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할 수 없다면 이대로 달아나게 놔두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일단 원영을 쫓아가고 나머지 선사들께서 성수와 그 자를 뒤쫓는 것이 어떨까요?  제 능력이라면 원영을 제거하는데 얼마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청년이 생각 끝에 제안했다.

“그럴 수밖에 없겠군요. 아, 따로 달아나는 원영이 상대의 주 원영일 지도 모르니 완전히 멸하셔서는 안 됩니다. 서금충의 배양 방법을 알아내야지요.”

“당연하지요. 알아서 하겠습니다.”

성녀도 계획에 찬성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청년은 한립의 두 번째 원영을, 천란 성녀와 여인은 한립을 쫓게 되었다. 한립은 달아나면서도 점점 가까워지는 두 수도자를 감지했다.

“이제 대여섯 리 남았구나. 은월, 너도 움직이거라.”

한립이 대략 계산을 해보고는 소매를 털자 작은 은색 늑대가 허공에서 빙글 굴러 나와 또 한 명의 한립으로 변했다.

그것을 보고 한립은 쓴웃음이 절로 나왔지만 시간이 없는지라 따로 무어라 말하지는 않고 영수대 하나와 엄지손톱만 한 푸른 구슬을 상대에게 넘겼다.

“너는 지금 기령의 몸으로 육체가 없기에 다른 법보를 부리기 어려울 것이다. 서금충과 뇌주를 가져가 다른 이들은 관여치 말고 오직 요수를 죽이거나 중상을 입히면 된다.”

“안심하세요, 주인님. 천란 성수가 저를 쫓아온다면 절대 손쉽게 빠져나가지는 못하게 할 것입니다.”

은월이 한립의 모습으로 답하며 두 가지 물건을 잘 챙겨 은빛줄기로 변해 날아갔다.

한립은 멀리 사라지는 은월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탄식했다. 은월은 한립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기운까지 똑같이 바꾸었기 때문이다.

“선배님이 보시기에 은월의 환술이 상대의 이목을 속일 수 있을 거라 보십니까?  제가 보기엔 가까이 보지 않고는 십중팔구 알아채지 못할 것 같은데요.”

“보아하니 네 기령의 내력이 평범하지 않구나. 네가 아니라 노부도 제대로 꿰뚫어 볼 수가 없어. 뒤따르는 두 녀석과 성수가 잔망만 떨지 않으면 단시간 내에는 눈치 채지 못할 것이다.”

대연 신군은 한립에게 모호한 답을 내놓았다. 한립은 잠시 생각하더니 갑자기 방향을 틀어 은월과 반대 방향으로 서둘러 날아가기 시작했다.

한립은 몰랐지만 그가 은월에게 서금충 일부를 건넨 것이 공교롭게도 기막힌 유인책이 되었다.

상대가 갑자기 둘로 변해 달아나니 수십 리 밖에서 쫓던 보라색 머리 여인과 천란 성녀는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요?  기운이며 영기의 세기까지 똑같다니! 정말 만만치 않은 자입니다.”

보라색 머리 여인이 흘러내린 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리며 혀를 찼다.

“너무 멀어 의식으로는 상대의 진짜 수행을 알 수 없으니 성수의 도움을 받아야겠습니다.”

천란 성녀도 머리가 아프기는 마찬가지였다. 이후 그녀가 고어로 천란 성수에게 무어라 중얼거리자 성수의 몸에서 푸른빛이 번뜩이며 점점 머리의 뿔이 투명해 지더니 수정처럼 변해갔다.

하지만 잠시 후, 울부짖는 소리를 통해 성수와 소통한 성녀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상대가 우리가 서금충의 기운으로 추격한다는 것을 알았는지 양쪽 모두 서금충을 지니고 달아나고 있어요. 이렇게 되면 성수도 분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둘 다 놓쳐서는 안 된다는 뜻이로군요.”

“괜찮습니다. 그럼 각자 한 명씩 쫓으시지요. 상대의 전략을 알았으니 협조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그 말씀도 맞지만 상대의 수행이 원영 중기라도 신통력이 상당해 거의 원영 후기 선사와 맞먹는다 합니다. 그러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허나 지금은 부상을 입었으니 그렇게까지 날뛰지는 못하겠지요. 그럼 제가 저쪽을 쫓겠습니다. 그가 괴상한 둔술만 쓰지 않는다면 잠시 후면 곧 합류 할 수 있겠죠.”

보라색 머리 여인이 조금 걱정이 되는지 몇 마디 당부했다.

“손 수사, 안심하세요. 상대의 핏빛 둔술이 아무리 괴이해도 그것을 펼치는 대가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연달아 둔술을 사용했으니 남은 여력이 없을 겁니다. 게다가 일족의 보물인 성정(聖鼎)까지 지니고 있는데 제게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럼 제가 먼저 가보겠습니다.”

여인이 가볍게 웃으며 보라색 빛줄기로 변해 ‘한립’을 향해 날아갔다. 천란 성녀도 또 다른 한립을 바라보며 단호한 눈빛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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