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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501화 (258/2,000)

# 501

501화. 거대 박쥐

안색이 달라진 한립은 푸른 기운이 완전히 오염되기 전에 입김을 불어 작은 병 안으로 넣고 봉해버렸다.

“휴우…….”

헛고생을 한 것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쓰다 남은 고독을 얻었으니 어느 정도 수확이 있었던 것이다. 십절독은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공 가가 이런 독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들으니 평범한 가문은 아닌 것 같았다.

그가 조심스레 독을 저물대 속으로 넣으려는데 무언가 감지되어 의식 한 줄기를 홍랑부 쪽으로 보냈다. 풍악이 마차 안에서 주먹만 한 구슬을 들고 가부좌를 하고 있었다.

검은 기운이 손바닥을 통해 구슬로 스며들고 있었고 그 앞에는 약병이 무수히 쌓여 있었다. 한립은 고개를 저으며 의식을 회수했다.

그의 주의를 끈 구슬은 이보였다.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은 독기를 흡입해 구슬은 한계에 이르렀다. 풍악이 겨우 열흘 만에 고독을 해독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헛된 생각에 불과했다.

한립은 눈을 감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 * *

이후 며칠간은 아주 평화로웠다. 보잘 것 없는 저계 요수 철제 두 마리가 부락민 사이로 뛰어들어 돌올인 선사 몇 명의 전리품이 되어 주었다.

한립과 풍악 그리고 또 한명의 돌올인 선사만이 시종일관 마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풍악이야 중독이 되었으니 그렇다 치지만 한립은 다른 선사에게 일순 흥미가 생겼다. 그래서 잠시 관찰을 해보았지만 이십대 후반의 축기기 청년일 뿐, 별 다른 점은 없었다.

풍악은 연달아 고독을 해독하는데 실패하자 분노가 불안으로 그리고 다시 절망으로 변하고 있었다. 새까맣던 머리가 다 하얗게 세고 있었다.

젊은 나이에 속수무책으로 죽게 생겼는데 그 괴로움을 누가 알겠는가.

오히려 청년이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이 더욱 놀라웠다. 계산을 해보니 한 가문의 유일한 직계 후손인 청년의 수명은 2, 3일 밖에 남지 않았다.

그 동안 한립은 대연 신군이 알려준 잠시 봉인을 해제할 수 있는 비술의 구결을 완전히 익혔다. 이제 신분이 발각되어 원영기 수사들의 협공을 받아도 달아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날이 저물자 수백 명의 돌올인 부락민들이 수백 장에 이르는 큰 강가에 자리를 잡았다. 식수를 보충하고 휴식을 취하기 위함이었다.

한립은 근처에서 물 흐르는 소리를 듣고 갑자기 마음이 동해 마차에서 내렸다.

“선사 대인, 시키실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영산이라는 소녀가 막 말린 고기로 배를 채우려다가 한립이 나오는 것을 보고 고기를 뒤로 숨겼다. 그녀는 붉어진 얼굴로 얼른 예를 취했다.

“아니다. 마차 안에 오래 앉아 있었더니 답답하여 바람이나 쐬려는 것이다.”

한립이 소녀의 보드라운 뺨과 뒤로 숨긴 고기를 보며 온화하게 답했다.

“그러면…… 소녀가 물이라도 한 잔 떠다 드릴까요?”

“그래. 일찍이 속세의 음식은 끊었지만 가끔 맑은 물 한잔은 괜찮겠지.”

한립은 멀리 흐르는 거대한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말에 소녀가 안심하고 물주머니를 가지고 강으로 달려갔다.

강가에서 몇몇이 불을 피워 소나 양 고기를 굽는 중이었다. 한립이 소녀의 가느다란 뒷모습을 보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자기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잠시 후 소녀가 한 손에는 물주머니를 다른 손에는 구운 고기 한 덩이를 들고 한립에게 돌아왔다. 그녀가 조금 민망한 기색으로 그것들을 건넸다.

“선사 대인, 고기 맛이 나쁘지 않은데 맛을 보시겠습니까?”

“그래. 이게 얼마만인지 모르겠구나.”

한립이 피식 웃으며 거절하지 않고 고기를 받아 한 입 물었다. 정말 맛이 나쁘지 않았다. 소녀가 그것을 보고 웃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개령의식에 참가하려고 가는 길일 테지. 그동안 마차 옆을 지키느라 수고했으니 손을 줘 보거라. 어떠한지 봐주마.”

“감사드립니다.”

영산이 그 말에 놀라더니 기쁨을 드러내며 팔을 뻗었다.

한립은 소녀의 손목을 짚으며 약간의 영기를 운용했다. 만일 축기기 수준으로 수행이 떨어지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접촉해서 영근 자질을 알아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한 선사님 제 자질이 어떠한가요?  제가 선사가 될 수 있을까요?”

소녀는 조금 마음이 급한지 한껏 기대감을 드러냈다.

“나쁘지 않구나. 선사가 되는 것은 문제가 없겠다. 그리고 날 만난 것도 인연이니 이것을 가져다가 개령의식 전에 먹거라.”

한립이 손바닥을 뒤집어 우윳빛의 작은 병을 넘겨주었다.

“이것은…….”

소녀가 병을 받으며 의아해했다.

“진귀한 영약은 아니지만 자질을 약간이나마 개선해줄 것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소녀가 정말 좋아하며 깊이 허리를 숙였다.

“일어나거라. 앞으로 갈 길이 머니 알아서 잘 하고. 그렇지, 저 강은 남부 지역을 흐르르 천수강의 지류가 맞더냐?”

한립이 소녀에게서 시선을 떼고 갑자기 큰 강에 대해 물었다.

“예, 천수강의 지류로 백리 정도를 더 가면 진정한 천수강의 주류를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소녀가 조심스럽게 병을 품에 넣고는 즐겁게 답했다. 한립은 말이 없었지만 속으로 천수강과 관련된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기억대로라면 천수강은 무척 길어서 천란 초원의 가장 긴 강으로 명성이 높았고 대진의 경계 내에 있는 순강과 연결되어 있었다.

한립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어서 너희 족장에게 가서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고 알리거라. 그저 지나가는 것인지, 이곳으로 오는 것인지 알 수 없구나.”

그가 어두운 얼굴로 소녀에게 분부했다. 영산은 놀라서 연달아 고개를 끄덕이고는 영로를 향해 쏜살 같이 달려갔다.

잠시 후 강가에 소란이 일더니 다들 마차 쪽으로 달려 돌아왔다.

대부분이 아직 마차 쪽으로 숨지도 못했는데 하늘 먼 곳에서 초록빛이 반짝였다. 거기에 음울한 울음소리가 더해져 녹색의 거대한 박쥐가 점점 다가오는 것인 보였다.

그 흉악하고 무서운 생김새에 범인들은 심장이 다 철렁할 정도였다.

몇몇 돌올인 신사들이 분분히 마차에서 내려 심각한 얼굴로 다가오는 거대 박쥐를 지켜보았다.

한립은 박쥐가 아니라 그 위에 타고 있는 수도자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아직 멀리 있었지만 남색 빛이 일렁이는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여덟 수사는 반절이 사내 나머지 반절이 여인이었는데 금포에 옥으로 만든 허리띠를 맨 사내들이나, 하얀 장포를 걸치고 금색 허리띠를 맨 여인들이나 전부 돌올인들이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앞에 있는 두 명의 결단기 수도자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전부 축기기 수도자였다. 잠시 후 거대 박쥐가 돌올인 무리 위에 도착해 날개를 펄럭이며 멈추었다.

그 바람에 돌풍이 불어 마차 중 몇 개가 뒤집어졌고, 가죽이며 물건을 실은 상자들이 엎어지고 깨져 난리가 났다. 물론 범인들도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누가 우두머리인가?  나서거라.”

거대 박쥐 위의 사내가 무리를 훑고는 돌올인 언어로 냉랭히 외쳤다. 결단기 수사 중 하나였다. 그 옆에는 스무 살 정도의 백의 여인이 서 있었는데 얼굴은 고운 편이었지만 표정이 얼음장 같았다.

영로가 가슴이 덜컹 내려앉으면서도 무리를 빠져 나와 허리를 굽혔다.

“너 같은 범인이 아니라 선사를 말하는 것이다.”

사내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거대 박쥐가 돌연 한쪽 날개를 펄럭이자 노인은 연달아 뒤로 밀리다가 거의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주저앉았다.

지켜보던 돌올인 선사들도 가슴이 서늘해졌다. 이때 모두의 이목이 한립에게로 집중되었다.

수도계에서 우두머리는 곧 수행이 높은 사람을 뜻했다. 이에 한립은 속으로 울적해 했다. 그러나 곧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아직 풍악과 또 다른 돌올인 수도자가 마차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물론 풍악이야 곧 죽게 생겼으니 고계 수사들 두려워할게 무엇인가?  그러나 다른 한 명은 겨우 축기기 수행으로 마차에 버티고 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저 자들이 찾는 것이 설마…….’

“선배님들께서 무슨 연유로 이곳까지 오셨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무엇이든 분부만 내려주시면 저희가 돕겠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한립이 앞으로 나서 정중히 물었다. 그러나 사내는 서늘하게 그를 보더니 삿갓을 보고 명했다.

“나랑 이야기를 하려면 그 삿갓부터 벗거라.”

한립은 그 말에 더욱 심기가 불편해졌다. 하지만 이전에 돌올인 선사들과 싸울 때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 그는 즉시 삿갓을 벗었다. 그러자 평범한 얼굴이 드러났다.

거대 박쥐 위의 수도자들이 전부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심지어 영력이 감지되는 것이 그가 무슨 비술을 사용해 다른 얼굴로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피는 듯했다.

“진짜 얼굴입니다. 그 배신자는 아닌 듯 하군요.”

잠시 후 중년 사내가 옆에 서 있던 백의 여인에게 말했다.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돌올인 수도자들을 훑었다.

이때 사내가 한립에게 말했다.

“선사들은 전부 나오라고 하거라. 찾는 인물이 있는데 이 속에 숨어 있는 듯하다. 그 자만 찾으면 너희는 보내주지.”

사내가 말을 하며 낮게 전음을 보내니 거대 박쥐 위의 여섯 축기기 남녀가 뛰어내려 풍악과 또 다른 돌올인 선사가 숨어 있는 마차를 향해 날아갔다.

두 마차는 고요했고 지켜보는 이들은 놀라 헛바람을 들이켰다. 특히 홍랑부 족장과 또 다른 부락의 족장의 안색이 유달리 창백해졌다.

한립은 미간을 좁힐 뿐 달리 어떤 말도 하지는 않았다.

그때 거대 박쥐에 탄 사내가 마차에서 아무런 기척도 없자 냉소하며 손바닥을 뒤집어 주먹만 한 불덩이 몇 개를 마차에 던졌다. 그러자 마차 안에서 드디어 말소리가 들려왔다.

“고 통령(統領)! 천란 초원까지 달아났는데 굳이 쫓아와 죽이려 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동시에 마차가 부서지며 하얀 냉기가 튀어나가 불덩이를 맞추고 함께 소멸했다. 스물 일고여덟 살 정도의 용맹스럽게 생긴 청년이 한 손에 새하얀 수정 구슬을 들고 나타난 것이다.

거대 박쥐 위 수도자들이 그를 알아보고 희색을 드러냈다.

“강검영, 과연 설정주(雪晶珠)는 네 손에 있었구나! 궁주께서 북한산(北寒山) 북현 노인에게 가져다주라 이르신 것을 가지고 달아나?  얌전히 같이 돌아가겠다면 혼백은 남겨주마.”

사내가 웃음기를 지우고 악랄히 외쳤다. 동시에 여섯 축기기 수사들이 신형을 번뜩이며 용맹한 인상의 청년 양쪽을 막아섰다.

“나더러 북현 노인에게 가라니 그 자의 제물이 되라는 말 아니요! 내가 얼음 속성 영근을 지니고 있으니 현빙 요괴가 구슬을 만드는데 쓸모가 있어서 보낸 것을 모를 줄 아시오! 거기에 제 발로 찾아가는 것이야 말로 미친 짓 아니겠소?”

“그렇다 한들 어쩌란 말이냐?  지금의 네 수행은 궁중의 각종 영약을 복용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너는 이미 백골이 되어 세상을 떠났을 것이야! 게다가 궁에서 아내를 맞아 아이까지 낳았으니 감사한 줄 알아야지.”

가만히 있던 결단기 여인이 차갑게 일갈했다.

“헛소리 마시오. 얼음 속성 이영근(異靈根)을 지닌 나는 어느 수도 가문에서라도 데려다가 제자로 삼았을 것이오. 게다가 아내를 맞아 자식을 낳은 것이 무슨 상관이오?”

청년이 냉소하며 주저 없이 손에 들고 있던 새하얀 수정에 영기를 주입해 하얀 기운으로 냉기의 보호막을 형성했다.

“그런 역심을 품고 있었으니 처자식도 불구하고 달아났겠지. 겨우 설정주로 우리 전부를 당해낼 성 싶더냐?”

여인이 무표정하게 말하고 한 손을 들어 올리자 여섯 축기기 제자들이 붉은 깃발을 하나씩 꺼내 내던졌다. 깃발들은 붉은 화염을 일으키며 하나로 융합되었다.

그리 크지 않은 불 구름이 나타나 내리누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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