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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500화 (257/2,000)
  • # 500

    500화. 풍 씨 가문의 비밀 동굴

    “공 씨 가문은 풍 가와 적대적인가 봅니다?”

    “예. 공 가, 장 가, 금 가, 그리고 저희 풍 가가 관저부의 사 대 수선세가(修仙世家)라 할 수 있습니다. 본래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는데 몇 년 간 저희의 세가 약해지자 공가가 다른 가문들과 손을 잡고 손을 쓴 것입니다.”

    풍악이 말을 하며 독기를 드러냈다.

    세가의 장손인 그가 이종족의 초원에서 부질없이 죽게 생겼으니 나머지 세 가문에 대한 한이 깊을 만했다.

    “수사가 대답을 해주었으니 이제 호원단 이야기로 돌아가지요. 저도 대략 열 개 정도 밖에는 지니지 못했으니 수사의 수명도 열흘 정도 남은 것입니다. 하지만 각각이 영석 수천 개는 주어야 살 수 있는 것들인데 정말 거래하시겠습니까?”

    “영석 수천 개요?”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에 풍악이 기함을 했다. 호원단 한 알 가격이 최상급 법기와 맞먹었다.

    “사겠습니다.”

    하지만 풍악은 주저하는 기색 없이 이를 악물고 답했다.

    “지금 영석 수 만개라도 지니고 계십니까?”

    “지금은 없지만 풍 가의 밀굴(密窟) 열쇠를 담보로 맡기겠습니다.”

    풍악은 목에서 은백색 열쇠를 풀어 주저 없이 내주었다.

    “풍 가의 밀굴이라면?”

    “저희 가문이 천 년간 사용한 비밀 동굴을 열 수 있는 유일한 법기입니다. 풍 가에 변고가 생기자 가문 장배께서 직계 장손인 제게 맡기신 거지요.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그 안에 소장된 물건들이 영석 수만 개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열쇠를 담보로 맡기겠다라……. 이것이 진짜 밀굴의 열쇠인지 어찌 확인할 수 있습니까?  게다가 이것을 남의 손에 줘버리다니 풍 가를 다시 일으킬 생각은 없는 것입니까?”

    “다시 일으키기기는 어찌 다시 일으킨다 말입니까?  저를 제외하면 달아난 이들은 노복이거나 몇몇 방계 제자 몇명이 다입니다. 유일한 직계 제자인 제가 죽으면 풍 씨 일족은 끝이라는 소리지요.

    그러면 결국 풍 가의 밀굴은 공 씨 가문 놈들의 수중에 떨어질 것 아닙니까?  그럴 바에야 수명을 늘리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입니다. 만일 열흘 내로 고독을 해독할 방법을 찾지 못하다면 그 열쇠는 수사에게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한 형이 찾으시는 불가 종문의 공법도 아마 그 안에 있을 겁니다.”

    풍악의 결연한 대답에 한립이 침묵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열쇠와 영단을 교환하는 것으로 하지요. 하지만 그 전에 제가 수사의 의식을 통해 열쇠와 불가 공법에 관한 이야기가 사실인지 확인하게 협조를 해주셔야 합니다.”

    “추혼술을 펼치겠단 말입니까?  그것은 원영기 수사나 가능한 일 아닙니까?”

    풍악이 안색이 조금 파리해졌다.

    “강제로 의식을 뒤지는 것은 당연히 원영기 수사 이상의 깨달음이 필요하겠지만 수사의 동의를 얻어 몇 가지 사실을 알아내는 정도라면 저라도 가능합니다.”

    한립의 말에 풍악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세가의 직계 제자로서 어찌 추혼술의 두려움을 모르겠는가.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결코 응하지 않았겠지만 새까맣게 변한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던 그가 어쩔 수 없이 수락했다.

    “협조하겠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밀굴과 불가 공법에 대한 것만 탐색해야지 다른 것을 알아내려 한다면 저도 가만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야 당연하지요. 다른 사정은 관심도 없습니다. 그럼 이곳은 너무 눈에 띄니 자리를 옮기시지요.”

    한립이 미소를 띠고 소매를 터니 푸른빛이 청년을 감쌌고 곧 청년이 풀썩 쓰러지며 푸른 기운에 둘둘 말려 떠올랐다.

    비록 수행은 축기기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법력을 운용하는 방식은 일반적인 축기기 수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이때 두 번째 원영이 변한 검은 구름도 근처 숲에서 돌아와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기는 여전히 못 세 개와 매의 눈을 한 노인의 원신을 붙들고 놀고 있었다.

    “남겨두어야 쓸모없으니 없애거라.”

    한립이 노인의 원신을 힐끗 보며 말했다.

    두 번째 원영은 말귀를 알아듣고 옹알거리며 웃더니 작은 손에서 검은 불길을 만들어 원신을 없애버렸다. 이에 한립도 손가락을 튕겨 노인의 육신을 재로 만들어 버렸다.

    이제 풍침이란 노인은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진 것이다. 이후 땅에 떨어진 저물대와 새빨간 검을 손짓으로 빨아드렸다.

    다른 흔적을 말끔하게 지운 한립이 풍악을 데리고 법기에 올라타 하늘을 갈랐다. 수행이 봉인을 당했으니 조심 또 조심해야 했다.

    생각만 해도 우울한 일이었다.

    그의 의식은 여전히 원영 후기 수사들보다 강했지만 지금은 드러낼 수 없었다. 만일 돌올인 대선사나 특수한 의식 공법을 익힌 선사를 마주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당시 초원에서 서금충을 풀어 놓아 발각 당했을 때도 그가 방심한 탓도 있었지만 의식을 멀리 퍼트려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요수를 추격하던 원영 중기 선사의 둔술이 너무 빨라 거의 원영 후기의 수도자와 비슷했다는 것도 한 몫을 했다. 20리를 순식간에 돌파해버리니 서금충을 회수할 시간이 아예 없었던 것이다.

    이 거대한 천란 초원에서 하필 둔술이 빠른 원영 중기의 돌올인 선사와 마주치다니 그럴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또한 서로가 상대에 대해 조금만 알았더라면 싸움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날을 생각하면 한립은 그저 헛웃음이 날 뿐이었다.

    한립은 허공에서 탄식하며 다시 원래 있던 돌무지로 돌아왔다.

    * * *

    하루가 지나 한립은 주둔지로 돌아갔다. 이틀 전보다 천막들은 눈에 띄게 줄어들어 있었고 몇몇 부락들도 준비를 마치고 출발을 하려는 참이었다.

    창로부 천막이 있던 곳으로 걸어가자 영로 등이 미리 준비를 해놓고 한립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보자마자 영로가 크게 기뻐하며 그를 마차로 모셨고 무리가 바로 출발했다. 한립은 마차에 오르자마자 가부좌를 하고 두 눈을 감았다.

    그런데 마차가 출발하고 얼마 되지 않아 주변이 부쩍 소란스러워졌다. 그가 눈을 뜨고 천을 들어 올리니 주변에 못 보던 무리가 보였다.

    아무래도 그가 없는 동안 창로부 영로가 다른 부락의 족장들과 함께 이동할 것을 제안한 모양이었다.

    다들 수도자를 한 명씩 모시고는 있었는데 워낙 약소한 부락인지라 다들 수행이 별 볼일 없었다. 한립은 수행을 봉인당해 축기 중기에 불과한데도 이들 무리 속에서는 가장 높은 수행을 지닌 수도자가 되고 말았다.

    턱을 쓰다듬던 한립은 쓴웃음을 지었다.

    돌올인 무리에 끼어 초원을 지나는데 도움을 받을까 했는데 오히려 짐만 늘어난 기분이었다.

    그때 홍랑부 무리가 서둘러 다가왔고 한립이 그 중 한 마차를 주시하며 막 의식을 회수하려했다. 그런데 아주 미세한 의식이 무리를 스쳐 지나갔다.

    만일 한립의 의식이 상대를 완전히 초월하지 않았다면 절대 알아채지 못할 희미한 느낌이었다. 한립은 안색이 변해 급히 기운을 숨겼다.

    과연 희미한 의식은 무리 전체를 훑은 후 바로 수도자들이 있는 마차들을 천천히 돌다가 아무 수확 없이 돌아갔다.

    한립이 음산한 눈으로 주둔지를 바라보았다.

    같은 시각, 주둔지 중앙의 청석(靑石)으로 지은 누각 2층에는 세 명의 돌올인이 있었다. 그 중 노쇠해 보이는 노인이 갑자기 눈을 부릅떴다.

    “선배님 무언가를 발견하신 겁니까?”

    노인 옆에는 사내 하나와 여인 하나가 서 있었는데 중년 거한이 안색이 변해 물어왔다.

    “걱정 말거라. 그 외부인은 아니니. 어떤 선사 하나가 극독에 당해 거의 죽어가고 있는데 아직 살아 있는 것이 신기하구나.”

    노쇠한 노인은 중년인에게 불만스런 눈길을 보냈다.

    “사숙님, 려 형도 걱정되어 물은 것이니 너무 그러지 마세요. 사숙께서는 그 외부인을 두려워하지 않으시겠지만 수많은 부락민들과 저계 수사들이 싸움에 말려든다면 어찌 될지 저도 걱정입니다.”

    궁장 차림의 여인이 서둘러 미소를 지으며 거한을 위해 나섰다.

    “노부의 체면을 살려 줄 것 없다. 상대가 아무리 부상을 입었다고 해도 내가 어찌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 자가 어떻게 서금충을 그렇게 많이 길러냈는지는 반드시 알아내야 하니 다른 주둔지에도 노부와 같이 상계 선사가 머물고 있을 것이다.

    때가 되면 천라지망을 펼치고 개령의식이 끝나면 성녀님과 대선사 두 분이 성물을 이용해 성수(聖獸)의 분신을 소환 할 게야. 그럼 엄청난 속도로 그 자를 수색할 수 있겠지.”

    “그렇군요. 어쩐지 명을 내리신 선사들께서 이후 따로 재촉하시지 않는다 했습니다.”

    궁장 여인이 한 시름을 놓았다.

    “너희가 꾀를 부리는 것을 누가 모르겠느냐. 하지만 너희를 탓할 것도 아니지. 중상을 입었다지만 우리도 상대할 수 없는 적을 너희가 어찌 하겠느냐. 대선사가 없는 상황에서라면 나라도 그를 붙잡아 둘 수 없을 게다. 너희는 그냥 이런 사실을 알아 두고 겉으로는 열심히 명을 수행하는 척하면 된다.”

    “예! 선배님!”

    “예, 사숙님!”

    노인의 말에 중년 거한과 궁장 여인이 기뻐하며 답했다. 사실 꾀를 부리는 것이 걸릴까봐 조마조마 했는데 눈앞의 선배가 이렇게 말해주니 마음이 놓였다.

    “그러면 방금 발견하신 수사는 이상한 점은 없으셨습니까?  제가 바로 조사해 볼까요?”

    거한이 노인을 향해 물었다.

    “그 자는…….”

    노인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수염을 쓸어내렸다.

    “됐다. 귀한 영약을 먹은 데다 몸에 독을 막아주는 보물을 지녀 지금까지 버티는 것이니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게다가 제 아무리 버틴다한들 곧 죽을 것이다. 다만 낮은 수행에 어울리지 않게 보물을 지닌 것이 배경이 있는 인물인 듯하다. 그러니 내 구역에서 죽게 해 화를 부르지 말고 차라리 멀리 가게 내버려 두거라.”

    “예, 선배님 말씀에 무조건 따르겠습니다.”

    거한이 노인의 비위를 맞추려 최선을 다했지만 노인은 신경쓰지 않고 다시 다른 방향을 힐끔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노인은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주둔지를 벗어난 무리에 탄 수도자에게 위압적인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워낙 순식간이었고 두 번째로 살필 때는 전혀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가능성은 아직 열려 있었다. 첫째 자신이 착각을 했다는 것, 둘째 그 수사의 의식이 자신의 것을 훨씬 초월한다는 것. 바로 그 수사가 외부인 수도자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둘 중 무엇이라도 언급할 이유는 없었다. 착각이라면 완배들 면전에서 체면을 조금 상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정말 그 자라면 정말 큰일이 나고 만다.

    중년 거한과 궁장 여인 앞에서는 정말 외부인 수사를 잡고 싶어 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은 달랐다. 그는 이전에 그와 싸웠던 여러 선사들 중 하나였기 때문에 상대가 얼마나 강력한 신통력을 지니고 있으며 전투에 능한지 알고 있었다.

    그 날 죽어나간 수사들은 보라색 화염에 휩싸여 원영까지 갇혔고 참혹한 최후를 맞이했다. 아무리 부상을 당했어도 노인 혼자 상대했다가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됐다, 어차피 인근에 다른 원영기 선사도 없는데. 괜히 이상한 추측을 해서 일을 벌이지 말자.’

    어차피 얼마 지나지 않아 대선사들과 성녀가 나설 것이다.

    한립은 십여 리를 이동하고 의식이 따라붙지 않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겨우 안심을 했다. 조금 마음을 놓기는 했지만 여전히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기운을 최대한 숨기는데 집중했다.

    그는 그제야 어제 얻은 풍침이란 노인의 저물대를 꺼내 살폈다. 잡동사니가 가득한 가운데 한립은 작은 병 하나를 들어 냄새를 맡아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다시 다른 병을 들고는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그러다 특별해 보이지 않는 녹색 옥병을 연 한립이 내용물을 판별하려는데  병 안에서 보라색 기운이 한줄기 피어올랐다. 그는 곧장 입을 벌려 푸른 기운을 분출해 순식간에 보라색 기운을 휘감아버렸다.

    하지만 찰나의 순간 푸른 기운이 안에서부터 새까맣게 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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