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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498화 (255/2,000)

# 498

498화. 주둔지

곧 마차 안은 조용해졌고 청년들이 거대한 망치로 얼음덩이를 부수고 원취 세 마리를 해체하는 소리만 들려왔다.

가장 진귀한 여섯 개의 발톱과 열 개의 꼬리 깃털은 전부 한립에게로 돌아왔다. 남은 부위는 두 부락이 나눠 가졌는데 한 선사는 창로부에서 청한 선사였기에 당연히 창로부의 몫이 많았다.

발 씨 거한은 많은 몫을 받지 못했지만 요수에게 아무도 다치지 않고 뜻밖의 수확도 얻었기에 기뻐했다.

홍랑부의 마차 중 하나에서 남색 장포 청년은 삿갓이 불편한지 쓰고 있던 것을 벗어던졌다. 그러자 희고 깨끗한 얼굴이 드러났다. 입술이 조금 얇은 것을 제외하면 정말 영준한 생김새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목을 더듬어 금색의 사슬 목걸이를 꺼내자 은백색 열쇠가 걸려 있었다. 은색 열쇠에는 금색으로 풍 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청년의 눈빛에 흥분과 고통 그리고 절망이 스쳐갔다. 길게 한숨을 쉰 청년은 다시 열쇠를 품에 잘 넣어두고 방금 소모한 영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원취 잔해를 거둔 무리는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누구도 함부로 떠들어대지 않았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조금 전 전투를 보고 다들 크게 놀란 것이다. 특히 영근이 있다고 판명이 난 젊은이들은 가슴이 뜨거워졌다.

아무 일도 없이 이틀이 지나고 정오가 되자, 마차에서 구결을 수련하던 한립은 저 멀리에 그들이 말하던 주둔지가 있음을 감지했다.

고계 선사들이 지키고 있을까봐 의식으로 전부를 살피지는 못했지만 영기의 파동이 혼잡한 것이 많은 저계 수도자들이 섞여 있는 것 같았다.

다시 이십 리를 가서 두 무리의 부락민들이 휘파람을 불어댔다. 한립도 소매를 털며 마차 차창에 드리운 천을 치우고 먼 곳을 바라보았다.

평원지대에 검은 점들이 나타났다.

남색이 일렁이는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서너 장 높이의 벽은 돌덩이 같은 것을 섞어 만들어 놓았고, 그 안에는 돌올족이 좋아하는 천막과 몇몇 조잡한 목제 건물들이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몇몇 건물은 거대한 청석을 쌓아 만들었는데 그 안에는 한 두 명의 특이한 복장을 한 수도자가 들어가 있었다.

주둔지를 살피던 한립은 담벼락 밖의 몇몇 거대한 돌기둥으로 시선을 옮겼다. 한 사람이 겨우 껴안을만 한 두께의 기둥들은 높이가 스무 장이 넘었다.

그것은 주둔지를 지키는 대형 진법인 듯했고 날아다니는 수도자가 없는 것으로 보아 비행을 금지하는 효과도 있는 것 같았다.

한립은 흥미를 잃고 다시 차양을 내렸다.

일각이 지나 한립이 속한 무리도 주둔지 입구로 들어갔다. 아무도 지키는 사람이 없었기에 출입이 자유로웠던 것이다.

영로는 거한과 상의를 하고는 따로 어딘가로 향했다.

한립은 마차 안에만 있었지만 주변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충분했다. 어차피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부락들은 전부 멀리 떨어진 약소 부락들이었고 대형 부락들은 성전 근처에 있어 이곳까지 올 일도 없었다.

그래서 몇몇 천막을 제외하면 다른 천막들은 초라했다. 겨우 구석에 빈자리를 찾은 창로부 부락민들도 천막을 치기 시작했다.

한립이 차분히 마차에서 내려 냉랭히 그들을 살폈다. 그때 영로가 조금 주저하다 그에게 다가왔다.

“이곳은 워낙 혼란스러워서 한 선사님께서 휴식을 취하시기에 어려울 듯합니다. 근처에 선사님들을 위한 휴식처가 있는데 일단 그곳에서 이틀을 머무시고 정비가 되는 대로 다시 출발함이 어떨지요?”

“그래, 알았다. 이틀 후에 여기서 다시 보자꾸나.”

한립이 노인의 공손한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몸을 돌려 걸어갔다. 그가 가는 방향은 당연히 가장 높은 건축물인 2층짜리 거대 석전이었다.

그곳에는 수도자들이 쉼 없이 드나들고 있어 노인이 말한 휴식처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잠시 걸어가다 보니 석전 앞이었다. 그러나 한립은 괴물 동상이 세워진 문을 보며 석전을 무심하게 지나쳤다. 비록 들킬 걱정은 없었지만 돌올인 수도자들 중에 원영기 선사라도 나타나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다.

주둔지를 잠시 떠나 있다가 이틀 뒤에 다시 돌아오는 것이 상책이었다. 한립이 차분하게 주둔지를 벗어나 품에서 작은 검을 꺼내 타고 날아올랐다.

대여섯 리를 날아 눈에 띄지 않는 돌무지에서 멈춘 그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는 가부좌를 하고 의식을 집중해 방원 스무 장 내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서야 거대한 돌덩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푸른 검기가 돌을 깎아내더니 두 장 가량의 굴을 팠다.

한립은 그 안에 들어가 가부좌를 하고 몇몇 진법 법기를 꺼내 날려 보냈다. 순식간에 밖에서 석굴이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주인님, 무슨 일인가요?”

한립과 의식이 연결되어 있는 은월이 바로 그의 이상을 감지했다.

“누군가 다가온다. 결단기 한 명, 축기기 한 명인데 십리 밖에 멈춰있어. 그중 축기기 수도자는 기운이 익숙한 것이 풍악인 듯 하구나.”

한립이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제가 기령의 모습으로 살펴보고 올까요?”

“됐다. 너도 아직 부상이 낫지 않은데다 나도 축기기 수준의 수행 밖에 되지 않으니 일을 벌여 좋을 것이 없겠지. 어느 방향으로 향하는 지만 확인하면 된다.”

그렇게 한립은 두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 기다렸다. 그런데 반 시진이 지나고 그가 눈을 떴다.

“대연 선배님, 제 몸의 살기는 몇 가지 극소수의 비수로만 제거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중에 불문(佛門) 종파의 공법이 대다수라는 것이 사실입니까?”

“그래. 불가 종파의 공법을 제외하면 유가나 도가에도 몇 가지가 있기는 하지만 불가 종문의 공법보다는 효과가 떨어질 것이야.”

대연 신군의 나른한 대답이 들려왔다.

“그렇다면 불문 공법을 사용할 때 일곱 가지 빛깔의 영기의 색을 낸다는 것이 맞습니까?”

“그래! 어찌 그런 것을 발견하기라도 한 것이냐?”

“그렇다면…… 저자가 아무래도 쓸모가 있겠습니다.”

한립은 바로 박차고 일어나더니 푸른 빛줄기로 변해 어딘가로 날아갔다. 그는 금세 십리를 날아 어느 초원지대의 작은 숲으로 향했다.

그 속에  장 정도 너비의 공터가 있었는데 두 수도자는 그곳에 있었다.

남색 장포 청년은 등에 검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지만 그는 전신에 일곱 빛깔의 보호막을 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매처럼 날카로운 눈을 지닌 보라색 장포의 노인이었는데 붉은 비검을 이용해 일곱 빛깔의 보호막을 내리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한립이 갑자기 나타나자 노인은 놀라 수밖에 없었다.

화들짝 놀란 노인이 의식으로 한립의 수행이 겨우 축기기 인 것을 확인하고는 경계심을 풀었다. 도리어 당장 그를 죽여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그는 검은 빛을 번뜩이며 못처럼 생긴 법기를 3개나 날렸는데 속도가 매우 빨랐다.

한립은 냉소하며 자신의 정수를 매만졌고 검은 안개가 푹하고 뚫고 나와 순식간에 수척 크기의 청록색 거대한 손으로 변해 날아갔다.

노인은 부지불식간에 못 세 개를 거대 손에 잡히고 못과 연결되어 있는 의식이 끊기고 말았다.

“……헛!”

그 모습에 노인은 혼비백산해 청년을 공격 중이던 비검을 소환해 몸을 보호하려 했다. 하지만 어두운 녹색의 거대 손은 도중에 그대로 사라졌다가 노인 머리 위에서 갑자기 나타나 주먹을 휘둘렀다.

퍽!

“으악!”

보라색 장포의 노인은 단말마를 남기고 쓰러졌다. 녹색 주먹은 꼭 쥐고 있던 손가락을 펴 노인의 시체 속에서 계란만 한 청록색 빛덩이를 찾아냈다.

그리고 거대 손은 다시 한립에게 돌아와 녹색 갓난아이의 모습으로 변해 한립의 어깨에 앉았다. 갓난아이는 한 손에 새까만 못 세 개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청록색 빛덩이를 만지며 즐거워했다.

한립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돌올인들이 포위할 때 마지막으로 목숨을 구할 수단으로 두 번째 원영을 남겨 놓았었다. 그런데 오늘 시험 삼아 공격해보니 위력이 그의 예상 밖이었다.

두 번째 원영에게 익히게 했던 현음대법 속 통현변화지공을 써보았더니 순식간에 결단기 수사를 잡은 것이다. 보아하니 두 번째라도 원영은 원영이었다.

한립은 바닥에 내려서서 천천히 일곱 빛깔의 보호막으로 걸어갔다. 그 옆에는 붉은 비검이 주인의 통제를 잃고 바닥에 떨어져 미약한 빛을 내고 있었다.

한립은 비검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일곱 보호막으로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보호막은 은은한 남색 옥패에서 뻗어 나온 것이었다.

바로 그가 은월에게 보여주었던 ‘저중풍’이라 적힌 옥패였다.

“선배님 이것이 불가 종문에서 제련한 법기가 맞는지요?”

“재료와 제련 수법으로 보아 불가의 보물까지는 아니라도 불가 고승의 손길이 느껴지는 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최상급 법기가 결단기 수사의 법보를 이리 오랫동안 견딜 리 없겠지. 보아하니 풍 가와 불가가 무슨 인연이 있기는 한가 보구나.”

대연 신군은 이제 한립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담담히 설명해 주었다. 한립이 바로 희색을 드러냈다. 이번에도 이 자를 도와야 할 이유가 생긴 것이다.

그가 보호막에 손을 얹어 희미한 남색의 화염을 일으켰다. 지금의 수행으로는 많은 양을 사용할 수 없었기에 이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곱 빛깔의 보호막이 극한의 냉기를 견딜 수 있을리 없었다.

펑!

보호막이 붕괴되고 한립은 남색 장포 청년에게 다가가 검붉은 피로 오염된 등을 확인했다. 기운이 아주 미약하고 거의 죽어가고 있었으나 아직 숨은 붙어 있었다.

한립은 즉시 법결을 그의 몸에 날리고 입을 벌려 푸른 기운을 뿜어냈다. 그리고 소매를 펄럭여 엎어져 있던 청년을 돌아 눕혔다.

자세히 그의 상태를 살피던 한립은 안색이 나빠졌다.

그는 풍악이 맞았으나 얼굴이 새까맣게 변하고 입술이 보랏빛을 띤 것이 극독에 공격당한 듯했다. 이런 극독에 당했다면 당장 죽었어야 하는데 살아 있는 것이 신기했다.

그는 의식으로 상대의 전신을 훑으며 남색이 일렁이는 눈동자로 다시 몸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그의 목에서 열쇠 하나를 찾아냈다.

사슬에 묶여 걸려 있던 은백색 열쇠는 하얀 빛을 내며 끊임없이 남색 장포 청년의 심장을 향해 몰려드는 독 기운을 밀어내고 있었다.

고민하던 한립이 그의 손목 한쪽을 들어 푸른 영기를 불어 넣자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잠시 밀려나던 독기가 거꾸로 그의 영기를 타고 넘어오려는 기미를 보인 것이다.

놀란 그가 당장 청년의 몸으로 불어 넣었던 영기와의 연계를 끊어버렸다.

“고독(苦毒)…….”

한립이 놀라 손을 털어내고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십절독 중 고독이라니 괜히 시간 낭비를 했구나. 이 자는 절대 구할 수 없겠다.”

“완전한 해독은 불가능해도 잠시 정신을 차리게 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다만 필요한 영약의 수량이 상당할 텐데, 그만한 가치가 있는 자일지는 모르겠습니다.”

말을 마친 한립이 다시 몸을 곧게 폈다.

“주인님, 잠시만 깨워서 확인해보시고 결정을 내리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번엔 은월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대진 불가 종문과의 관계를 물어보지 않고 이대로 죽게 놔두면 마음이 답답할 것 같으니 말이다.”

한립이 탄식하듯 말하고는 저물대를 스쳐 하얀 병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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