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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496화 (253/2,000)

# 496

496화. 서금충 요시(妖尸)

궁장 여인은 잠시 침묵하다 탄식하듯 입을 열었다.

“려 형과 알고 지낸지도 한참 되었으니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조금 일찍 도착해 장배에게 그 수도자에 대해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자가 원영기 수도자인 것도 중상을 입은 것도 전부 맞습니다.

그런데 그 자를 공격했던 무리를 이끈 것이 대선사라는 것을 아십니까?  대선사께서 직접 나서서 겨우 그 자에게 부상을 입힐 수 있었습니다.”

“대선사께서 직접요?”

중년 사내는 크게 놀랐다.

“게다가 듣기로는 그 수도자는 여러 상계 선사들에게 포위를 당해 공격당하던 중 대선사가 은밀히 암습해 겨우 부상을 입힌 거랍니다. 그 전에 이미 상계 선사 세 명이 죽임을 당했고요.

얼마나 신통력이 대단하고 악독한지 부상을 당한 이들이 무수하답니다. 중상을 입은 후에도 여전히 비술을 사용해 대선사 면전에서 달아나 버렸다니 십중팔구는 대선사와 동계의 수도자가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아무리 부상을 입었다 해도 겨우 우리 같은 결단기 수도자들에게 잡혀 주겠냐는 말입니다. 독룡환 두 병을 위해 저는 목숨을 바칠 생각은 없습니다.

그리고 제 생각이지만 상계 선사들이 우리에게 그 자를 찾으라고 명한 것은 우리를 버리는 패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출발 전에 모두에게 인혼술을 걸어두지 않았습니까?  말은 우리가 위험에 처했을 때 찾아내기 위함이라지만 우리가 죽더라도 그를 찾아내기 위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궁장 여인은 어두운 얼굴로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상세히 설명했다.

“그런 일이……. 이제 어찌 하면 좋다는 말입니까!”

사내도 여인의 말을 듣고 놀라고 화가 난 듯 했다.

“간단합니다. 이미 샅샅이 뒤졌으니 더 이상 찾아볼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다른 선사들이 그 자를 찾아내었다는 소식이 들릴 때까지 기다리지요. 어차피 개령일이 되면 모든 선사들은 성전에 예를 올려야 하니 자연히 우리도 불러들이겠지요.”

“수 선사의 말대로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독룡환이 아무리 좋아도 목숨보다 좋겠습니까.”

“그렇다면 일단 이쪽 성전 주둔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실까요?  며칠 내로 적잖은 부락들이 도착할 테니 먼저 원하는 물건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지 않습니까. 이렇게 며칠을 보내다가 사방을 찾아다니는 척 하면 될 겁니다.”

궁장 여인이 가볍게 미소 지었다.

* * *

바람도 통하지 않는 밀실 안, 청석으로 만든 돌 탁자를 주변으로 열댓 개의 진법 깃발이 모여 간단한 결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돌 탁자에는 진법 원반과 비슷한 청록색 둥근 사발이 놓여 있었는데 신형이 모호해진 갓난아이가 그 안에 앉아 주변의 기운을 흡수하며 어떤 공법을 수련하고 있었다.

또한 밀실 사방에는 흰머리가 성성한 노인들이 청록색 진법 깃발을 들고 가부좌를 하고 있었는데, 깃발 끝에서 전부 녹색 안개를 뿜어내 천천히 대접에 스며들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인들의 낯빛이 변하자 녹색 안개 속의 갓난아이는 신형이 조금 더 뚜렷해져 갔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시지요.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며칠만 있으면 계 사제 스스로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감사드립니다.”

밀실 서북쪽에 앉아 있던 붉은 머리 노인이 깃발을 회수하며 다른 노인들에게 포권을 했다.

“혼 형, 저희가 계 선사와 알고 지낸 지가 얼마인데 당연히 이 정도 도움은 주어야지요.”

세 노인이 진법 법기를 거두더니 수염 없는 하얀 얼굴의 노인이 서둘러 답했다.

“어찌 되었든 이번에 도움을 받은 것은 저와 사제가 꼭 기억하겠습니다.”

먼저 몸을 일으킨 노인이 아직도 사발 안에서 정좌를 하고 있는 원영을 보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

“허허, 그러실 것까지야.”

또 다른 노인이 미소 지었다.

“그런데 저희가 밀실에 있는 동안 외부인 수도자를 찾았는지 모르겠군요. 세상에 만 마리가 넘는 서금충을 부리는 자가 있다니 믿기지 않습니다. 서금충을 부화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두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원영기급 선사가 세 명이나 당하다니요.”

붉은 머리 노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 말에 다른 노인들도 모두 두려운 기색이 어렸다.

“그 자는 서금충 외에도 보라색 화염과 금빛 뇌전을 부려 화염에 공격당하면 둘에 하나는 죽은 목숨이고, 금빛 뇌전은 선사의 원영을 가둘 수 있더군요. 그것을 본 선사들이 더욱 조심했음에도 두 명이나 더 당했습니다.”

하얀 얼굴의 노인이 탄식했다.

“그 뿐입니까?  그 수도자가 부리는 법보 역시 위력이 상당해서 금색과 푸른색의 비검을 일흔 개정도 지니고 있더군요. 얼마나 날카로운 지 다른 선사들의 보물이 한 순간에 잘려나갔습니다.

더욱 기이한 것은 그의 등에 달린 날개 형태의 법보로 천둥 속성의 둔술을 펼칠 수 있게 해주더군요. 혼 형께서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당시 예닐곱 명의 동급 선사들이 상대를 포위했지만 상황이 아주 다급했습니다.

나중에 다행히 대선사께서 와주셔서 대오행금선수를 불시에 일격을 날려 상대에게 중상을 입히셨지요. 허나 상대는 부상을 당하고도 핏빛으로 변해 포위를 뚫고 사라졌습니다. 대선사께서 이르시기를 수백 리 내로는 상대의 종적을 찾을 수 없다고 하시더군요.”

약간 살집이 있는 노인이 기억을 살려 이야기를 했다.

“외부 선사가 그렇게 강하다면 설마 대진의 거대 종파의 최상급 수사인 것은 아닐까요?  그럼 계 사제가 육혼분원술을 익히고도 이리 된 것이 이해가 됩니다.”

붉은 머리 노인이 그 말을 듣고 난색을 표했다.

“계 형, 안심하십시오. 대오행금선수의 위력을 아시지 않습니까?  달아났다고는 해도 원기를 크게 상했을 테니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마침 성녀께서 인근 천란 성전에서 개령의식을 주관하신다니 상대의 괴이한 수법에 대해 대진 수사들이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상대의 정체를 알아내면 그가 아무리 대진의 큰 종문 출신이라고 해도 돌올인 상계 선사를 그리 많이 죽인 자를 대선사들께서 가만두실 리 없습니다. 또한 상대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서금충을 키워냈는지도 알아내야지요.”

하얀 얼굴의 노인이 매섭게 말했다.

“그러기를 바래야지요. 그 자의 서금충들이 아직 성체가 아니라는 점이 그나마 다행입니다. 만일 만 마리가 넘는 서금충들이 모두 성체였다면 아무리 대선사 네 분이 모이셔도 상대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붉은 머리 노인이 중얼거리자 서로 눈치를 살피며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성체인 서금충의 위력을 돌올인 선사들만큼 잘 아는 이들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녹색 안개 속에서 가부좌를 하고 있던 원영이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부여잡고 뒹굴기 시작한 것이다. 무척 고통스러운 듯 신형이 어두워져갔다.

“이런, 어서 도와줍시다.”

붉은 머리 노인이 소리치자 나머지 노인들도 서둘러 깃발을 발동해 다시 네 줄기의 녹색 안개를 밀실 중앙으로 몰아넣었다.

그러자 짙은 안개가 원영을 감싸고 그의 몸의 기운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비명 소리가 작아지고 다시 원영이 가부좌를 했을 때 끊어질 듯 말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이리…… 도와주시니…… 가,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제…… 괜찮아졌으니 공법을 거두셔도…… 됩니다.”

그 소리에 노인들도 한 시름을 돌렸다. 사실 이렇게 오랜 시간 공법을 펼쳤으니 원기가 상하는 것은 당연했다.

“계 형, 방금은 어찌 된 것입니까?  안정을 찾았던 원영이 다시 붕괴하려 하다니 상황이 위급했습니다.”

“다, 다시 이런 일은…… 없을 겁니다. 방금…… 원신과 연결되어 있던 서금충이…… 멸살을 당해서. 의, 의식에 영향을…… 받은 듯합니다.”

원영이 이를 악물었다.

“서금충이 멸살을 당해?  어찌 그런 일이! 서금충 성체는 거의 불멸의 존재가 아닌가?”

붉은 머리의 노인이 화들짝 놀라 물었다.

“이상한 일도 아니지요. 계 형이 직접 영충을 부리고 있다면 불가능하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단단한 신체를 훼손할 수는 없어도 마도 비술을 이용해 혼백을 공격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상대는 마도 수사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전에 싸울 때 보이던 능력들은 마도 공법이 아니던데요?”

마른 노인의 말에 밀실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 * *

같은 시각, 한립은 마차에 앉아 길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반나절 동안 쉼 없이 비술을 펼쳐 결국 성체인 서금충의 원신을 몸에서 뽑아내 음라번에 흡수시킨 것이다. 그동안 창로부 부락민들은 한 번도 그를 성가시게 하지 않았다.

그가 한 손을 펼쳐 검은 기운을 잡자 그 안에서 깃발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두 번째 원영은 새까만 기운의 깃발이 아닌 금빛의 거대한 비충을 들고 있었다.

한립이 작은 깃발을 만지작거리다가 금색 영충을 향해 흔들었다.

영충은 흉악한 송곳니 한 쌍이 삐져나와 험상궂은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한립의 서금충보다 몇 배는 거대했다. 하지만 이미 혼백이 빠져나가 생기가 없었다.

그가 음라번을 펼치자 주먹만 한 녹색의 빛덩이가 빠져나와 한립 몸 앞을 떠다녔다.

그것은 성체 서금충과 똑같이 생긴 그림자로 크기가 훨씬 작고 새까만 전신에 두 눈은 핏빛을 머금고 있었다.

“가라.”

한립이 손가락을 뻗자 서금충의 원신이 새까만 빛줄기로 변해 본래 몸으로 되돌아갔다.

거대한 금색 서금충의 몸에서 핏빛이 일어나더니 양 날개가 떨리며 두 번째 원영 주위를 미친 듯이 날아다녔다.

“예상대로야. 서금충을 강시처럼 제련할 수 있을 줄 알았지. 자유자재로 부리려면 한동안 마기로 제련해야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됐어!”

그가 의식을 통해 작은 깃발을 크게 키우니 금색 서금충이 허공을 선회해 깃발 안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깃발을 작게 만들자 그것을 보던 두 번째 원영은 웃으며 음라번을 입에 넣더니 검은 기운으로 변해 한립의 머릿속으로 사라졌다.

그때 그가 돌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수행은 봉인 당했다지만 강력한 의식은 그대로였다. 몇몇 돌올인 선사들이 그가 속해 있는 무리를 지나 날아가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지난 열흘 동안 이삼일 간격으로 돌올인 수도자가 지나다녔지만 흡사 어딘가로 급히 가야 하는 것처럼 사라졌다. 이에 그가 신분을 숨기려고 준비해두었던 것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물론 한립으로서야 좋은 일이었다. 그때 바깥에서 영로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정신 바짝 차려라! 이틀 후면 성전이 지정한 주둔지에 도착한다. 그럼 안심하고 쉴 수 있을 것이야!”

“성전의 주둔지?”

한립은 그의 말을 되뇌며 조용히 구결 수련에 들어갔다.

다시 반나절이 지나 인근에 다른 부락의 무리가 나타났다. 규모가 별로 크지는 않았으나 확실히 창로부 무리보다는 많았다. 두 무리는 가는 방향이 같다보니 한 시진 후에는 한곳에 모이게 되었다.

그러자 각 부락의 족장들이 나섰다. 상대는 홍랑부(紅狼部)라 불리는 작은 부락으로 영로와는 오래 알고 지낸 사이였다.

“영 형, 선사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마차에 계신 겁니까?”

홍랑부 족장은 구레나룻가 수북한 거한으로 영로의 무리를 살피더니 호기심을 드러냈다.

“귀부의 선사 역시 마차 속에 계시지 않습니까. 홍랑부에서는 선사를 몇 명이나 모시고 가는 길인지 모르겠습니다.”

“몇 명이요?  당연히 한 분 뿐입니다. 천금을 들여 겨우 선사 한분이 잠시 머물러 주시기로 하였지요. 어찌 귀 부에는 선사가 두 분입니까?”

거한이 노인을 보며 미소 지었다. 오래 알고 지내는 사이다 보니 농이 오간 것이다.

“저희도 한 분만 모시고 있습니다. 길을 가는 동안에만 저희를 보호해 주기로 하셨지요.”

영로가 탄식하며 거한과 쓴웃음을 지었다. 서로의 사정을 왜 모르겠는가.

“어찌 되었든 선사께서 계시다니 다행입니다. 그럼 주둔지에서 정비를 하고 앞으로는 다른 부락들과 함께 이동하면 어떻겠습니까?”

노인이 눈을 굴리며 제안했다.

“그건 천천히 생각해 봅시다. 이전에도 작은 부락들이 같이 움직이다가 그 중 몇몇이 지닌 귀한 보물 때문에 사단이 난 적이 있어서요.”

“발 형도 걱정이 많으십니다. 저희 같은 규모의 부락에서 엄청난 보물을 진상하는 그런 일이 흔하겠습니까?”

“하긴 그렇기는 합니다. 그때 가서 다시 상의하시지요.”

족장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무리 속의 부락민들도 서로 교류하고 있었다. 특히 두 무리 속의 몇몇 젊은 여인들을 사이에 두고 청년들이 몰려들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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