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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490화 (247/2,000)
  • # 490

    490화. 소용돌이 탐사

    마기가 폭발하면 낙운종은 바로 끝장이었지만 마종과 정도맹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구국맹이야 멀리 있으니 표면적으로는 큰 피해를 보지 않겠지만 천남 대부분의 영기가 소실되거나 오염되는 일인데 어찌 아무 상관이 없겠는가.

    하지만 이런 때에도 한립은 마음을 가라앉혔다.

    “우리 셋은 이런 사실을 발견하고 엄청난 재난을 피해갈 방법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런데 경전에 봉인결계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더군요. 이 일은 대진 수도계와 연관이 있습니다.”

    위무애가 지양 상인 쪽을 힐끗 보았다.

    “대진이요?”

    “봉인결계에 대한 경전을 어디에서 찾았는지 아십니까?”

    뜻밖에도 지양 상인이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지양 상인의 뜻은…….”

    한립이 언뜻 짐작이 가는 바가 있어 표정이 묘해졌다.

    “상고시대의 봉인 진법에 관한 자료는 뜻밖에도 본 문의 오래된 서가에 숨겨진 비밀 경전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태진문의 근원에 대해 조사해봤는데 뜻밖에도 대진 수도계의 삼대 도가 문파 중 하나인 진극문의 분파였더군요. 게다가 이곳 천남으로 옮긴 이유가 놀랍게도 이 상고시대의 봉인결계를 지키기 위해서였답니다.”

    도사가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귀 문이 대진 출신의 문파였다고요.”

    “예. 하지만 옛날이야기일 뿐입니다. 세월이 흘러 우리 태진문은 몇몇 특수 공법을 제외하면 그쪽의 법결과 전승을 잇지 않은 지 오래니까요. 아마 본 문에 숨겨져 있던 상고 경전을 찾아내지 못했다면 영원히 모르고 지나갔을 테지요.”

    지양 상인이 탄식했다.

    “지양 수사, 경전에 봉인결계에 대해 무어라고 적혀 있었습니까?  이번 재난을 해결할 방법을 찾으신 겝니까?”

    “봉인결계에 대해서는……. 태진문이 영원히 짊어져야할 일이라고 적혀 있을 뿐 나머지 정보는 모호했습니다. 그나마 경전에 대략적이 설명이 있고 저희 세 수사가 진법대가들을 모아 연구한 끝에 결계를 보수할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지요.”

    “그 방법에는 많은 고계 수사들이 필요하지만 누군가 마기 깊숙이 들어가 진법 원반을 정해진 장소에 두고 와야 합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 한 수사를 찾은 이유입니다. 벽사신뢰를 지닌 한 수사만이 마기가 흡수돼 마화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있으니까요.”

    지양 상인의 말에 위무애가 침착하게 보충해 설명했다. 그 말을 들은 한립은 슬쩍 미간을 좁혔다.

    “이미 오래 전부터 해결 방안을 연구해 오신 듯한데. 제가 낙운종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어떻게 마기 깊숙한 곳에 진법 원반을 가져다 놓을 심산이셨습니까?”

    한립의 질문에 위무애와 지양 상인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사실 이전에 다른 계획이 있었습니다. 각 세력에서 퇴마 능력이 뛰어난 보물들을 모아 관련 공법을 익힌 수사를 내보내기로 했었지요.

    하지만 마기가 워낙 강력해서 성공할 가능성이 반도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벽사신뢰는 다르지요. 전문적으로 마기를 억제하는데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 벽사신뢰라면 쉽게 일이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지양 상인이 미소 지었다.

    “그랬군요. 나쁘지 않은 방법이기는 합니다.”

    “천남 전체의 안위와 관련된 일이니 당연히 나서야겠지만 제안을 수락하기 전에 무변해 마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확인을 해봐도 될까요?  전 불가능한 일에는 도전하지 않는 편이라 서요.”

    “당연합니다. 안 그래도 합환 노마가 소용돌이 속 마기의 변화를 감시하는 중이니 지금 가서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하루라도 빨리 마기를 다시 봉인하는 것이 좋지요.”

    한립의 말에 지양 상인이 곧바로 동의했고 위무애도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반응에 한립도 약간 마음을 놓았다. 보아하니 무언가를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이렇게 세 수사가 지양 상인의 거처를 떠나 소용돌이가 있는 거대한 영기의 원천으로 향했다.

    영귀도를 나서자마자 세 빛줄기가 서쪽으로 날아갔고, 대략 백리 정도를 가니 드디어 희뿌옇게 빛나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색찬란한 빛이 허공에서 선회하며 거대한 깔때기 모양처럼 보였다.

    한립이 그것을 보고 이채를 띠었다. 하얀 빛이든 오색찬란한 빛이든 정순한 영기를 엄청나게 함유하고 있어서 최상급의 영맥도 그것들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소용돌이로군요.”

    “바로 그렇습니다. 합환 노마는 저 암초에 있으니 일단 합류하시지요.”

    지양 상인이 어떤 방향을 짚으며 말했다.

    한립이 의식으로 훑어보니 과연 검은 장포를 걸친 거한이 십리 정도 떨어진 암석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바로 합환 노마였다.

    그는 한립의 의식이 훑는 것을 느끼고 눈을 번쩍 뜨더니 이쪽으로 서늘한 시선을 던져왔다.

    돌연 그의 신형이 흔들거리더니 허공에 떠올랐고 동시에 한립 등도 속도를 높여 날아갔다.

    “합환 수사! 한 수사가 왔습니다. 봉인결계 복구까지 머지않았어요.”

    “한 수사가 나서준다면야……. 벽사신뢰와 같은 신공이라면 반드시 성공할 겁니다.”

    합환은 전혀 웃지 않고 담담히 한립을 바라보았다. 뜻밖에도 상당히 냉담한 반응이었다. 처음에는 멈칫하던 한립도 어찌된 일인지 생각해보고는 피식 웃고 말았다.

    벽사신뢰는 마공과는 상극이었는데 상고마공을 수련하는 마수들에게는 엄청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러니 마도의 제1수사로서 어찌 기분이 좋겠는가. 지양 상인이 그에게 유달리 예의바르게 대해주는 것도 그를 끌어 들여 마도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한립이 몰래 고개를 저으며 그런 속내를 떠올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지금 그의 수행에 합환 노마가 살의를 드러낸다 해도 목숨을 보전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위무애가 한립이 우선 마기를 살펴보고자 한다는 이야기를 전하자 합환 노마는 눈썹을 끌어올렸지만 반대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세 수사의 안내를 받으며 한립은 날아가기 시작했다. 빛덩이로 다가가자 소위 소용돌이라 불리는 곳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머지않은 해수면 위에 직경이 3, 4백 장에 이르는 거대한 동굴이 뚫려 있었고, 소용돌이 때문에 그 중심으로는 물 한 방울도 들어가지 못했다. 그 안에서 정순한 하얀 영기가 솟구쳐 태양 빛을 받아 대량의 안개처럼 근처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숨을 들이마시자 조금 습한 바다의 정순한 영기를 가득 들이마실 수 있었다. 좀 더 가까이에서 소용돌이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 한립이 푸른빛을 번뜩이며 중심부 허공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흡입력이 몸을 무겁게 짓눌렀고 몸이 찢겨 나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놀란 한립은 바로 푸른 보호막을 둘렀고 그의 높은 수행 덕에 한 장 정도를 추락하다 멈춰 설 수 있었다. 그때서야 안심한 그가 남색 빛이 일렁이는 눈동자로 아래를 살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원영 후기 수사들은 안색이 달라졌다.

    “지양 형, 지난 번 귀 문의 원영 중기 마 장로는 법보 없이 버텨내긴 했으나 순식간에 십여 장을 추락하고서야 균형을 잡지 않았던가요?”

    위무애가 고개를 돌려 지양 상인을 향해 말했다.

    “그랬지요. 소용돌이 중심부는 흡입력이 강력한 곳이라 우리도 미리 대비하지 않고는 몸을 가누지 못하니까요.”

    도사도 조금 놀란 기색이었다.

    “이전에도 한 수사의 공법이 특이하다고만 여겼는데 원영 중기에 이른 후에 보니 법력이 동급 수사에 비해 깊고 맑은 것이 확연하게 느껴집니다. 어떤 법결을 주 공법으로 익히는지 궁금해지는군요.”

    위무애가 혀를 차며 조금 부럽다는 듯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비록 몇몇 최상급 공법들이 법력을 상승시켜주기는 하지만 한 수사는 어떤 종류의 법결을 익히는지.”

    지양 상인도 확실히 결론내리기 어려웠다. 옆에 있던 합환 노마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얼굴빛이 더욱 어두워졌다.

    이때 한립이 푸른빛을 번뜩이며 돌아왔다.

    “소용돌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영기가 듣던 대로 대단합니다. 그런데 해수면 위에서도 이렇게 흡입력이 강한데 안으로 들어가면 다른 위협은 없는지요?”

    “영기 때문에 의식으로는 탐색이 불가능합니다. 마기를 관찰하려면 직접 내려가야만 하는데 압력이 못 견딜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보물 몇 가지를 준비하는 것이 좋겠지요. 게다가 소용돌이 속에 작은 소용돌이들이 간혹 있어 휩쓸리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시지요. 빈도와 함께 다녀옵시다.”

    지양 상인이 생각을 하다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지양 상인과 같이 다녀온다면 저야 좋지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한립이 기뻐하며 약간이나마 남아 있던 우려를 씻어냈다. 이렇게 한립과 지양 상인이 빛줄기로 변해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갔다.

    동시에 해수면 위에는 위무애와 합환 노마만 남았는데 그 둘은 묵묵히 중심부를 지켜볼 뿐이었다.

    “위 형, 저 낙운종의 한 수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게 무슨 뜻입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합환 노마가 먼저 입을 열자 위무애에 가볍게 웃으며 다시 되물었다.

    “아시면서 그러십니다. 설마 수사께서는 걱정도 안 되십니까?  저렇게 어린 나이에 이미 원영 중기의 수행을 얻고, 각종 신통력도 적지 않으니 원영 후기 수사가 되면 천남에 우리가 나설 자리가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제 생각은 합환 형과는 조금 다릅니다.”

    위무애가 그를 훑으며 웃는 듯 마는 듯 묘한 얼굴을 했다.

    “어디 얼마나 다른지 들어봅시다. 저 녀석이 원영 후기에 이르러도 제압할 자신이라도 있는 겁니까?”

    “제압이요?  왜 제압을 해야 합니까. 노부는 3대 수사 중 나이가 가장 많아 기껏해야 백여 년이면 세상을 뜹니다. 아무리 한 수사라도 백년 내로 또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요. 만일 그렇다고 해도 그가 천남을 종횡무진 할 실력자가 되는 것과 노부가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합환 노마의 음울한 물음에 위무애가 담담히 답했다.

    “심혈을 기울여 쌓아온 세력을 저 자에게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만일 제가 협공을 제안한다면 할 마음이 전혀 없으십니까?”

    합환 노마가 눈을 가늘게 뜨고 상대를 살폈다.

    “그런 것에는 관심 없습니다. 게다가 이제 와서 움직이는 것은 너무 늦었습니다. 저 자가 원영 초기일 때 그런 제안을 해왔다면 노부도 마음이 움직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원영 후기 못지않은 신통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 동급 수사와 원한을 맺어 본 문에 화를 불러오는 짓은 할 생각이 없습니다. 합환 수사, 우리와 같은 경지의 수사를 완전히 멸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 잊지 마십시오. 그리 만반의 준비를 하고도 고마를 놓치지 않았습니까?

    괜히 허튼 짓을 해서 상대의 적의를 불러일으키지 않는 것이 나을 겁니다. 또한 정말 저 자가 천남을 통일할 기회를 얻는다 해도 그게 얼마나 갈 듯 싶습니까?  그 옛날 천남 전체를 힘으로 억누르던 화신기 수사의 최후를 벌써 잊으신 겁니까.”

    위무애가 냉소하며 말을 마치자 합환 노마도 조금 주춤하는 표정이었다.

    * * *

    같은 시각, 한립과 지양 상인은 이미 소용돌이 속 수천 장 아래에 있었다.  영기의 엄청난 압력 때문에 순식간에 아래로 하강할 수는 없었지만 천천히 내려가는 것은 가능했다

    한립은 방패를 발동해 남색 보호막을 펼쳤고 동시에 서른 개가 넘는 비검들이 그림자를 만들어 그 주위를 맴돌았다.

    지양 상인 역시 하얀 기운이 아른거리는 비검을 발동해 전신을 층층이 영기로 감고 있었다.

    한립은 의식을 이용해 아래쪽을 훑어보려 했지만 겨우 십여 장 아래로 내려갔을 뿐이다.

    그나마 명청령안을 쓰면 3, 40장까지는 파악할 수 있었지만 죄다 뿌연 영기로 가득했다. 하지만 시시때때로 나타나는 소규모 소용돌이를 피할 수 있어 위험한 위기는 피할 수 있었다.

    그가 매번 소규모 영기의 소용돌이를 미리 파악하고 돌아가자 지양 상인은 신기하게 생각하면서도 그를 끌어들인 것이 정말 잘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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