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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487화 (244/2,000)

# 487

487화. 지양 상인의 요청

금제에 이르러 열화 노괴 등 세 사형제가 법결을 날리자 금제에 통로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통로를 통해 신선 같은 풍모의 중년 수사가 나타났다. 바로 지양 상인이었다.

다들 나아가 인사를 건네려는데 지양 상인이 그들을 훑더니 한립을 발견하고 희색을 드러냈다.

“하하하! 한 수사 여기 계셨군요. 빈도가 귀종을 방문했다 소식을 듣고 급히 오는 길입니다.”

“저를 찾아 오셨다고요?”

“그렇지요! 급히 계국을 지나다 한 수사의 소식을 듣고 들린 것입니다.”

“옛 이야기를 나누자고 오신 것은 아니실 테고…….”

“이야기가 깁니다. 다른 수사분들께서는 양해를 구합니다. 한 수사와 따로 이야기를 좀 해도 괜찮을까요?”

지양이 한숨을 내쉬더니 다른 원영기 수사들에게 온화하게 양해를 구했다.

“급한 일이 있으신 것 같은데 그러세요. 저희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열화 노인이 마른 웃음소리를 내며 답했다.

천남 삼대 수사 중 하나인 지양 상인의 말에 금 노괴 같은 고고한 성품의 노인도 불만을 드러내지 않는데 열화 수사가 밉보일 짓을 할 리 없었다.

그는 곧 다른 수사들과 함께 아래쪽으로 날아갔다.

정 사형과 려락도 서로 시선을 교환했지만 이미 한립의 실력을 직접 확인한 터라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한립은 나머지 수사들이 땅으로 내려가고 나서야 고개를 들어 상대를 바라보았다.

“이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중요한 용건이라니 궁금합니다.”

“일단 추마골에서 고마 하나를 처리해 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고마의 두 혼백이 육체에 깃들어 천남 전체가 고통 받을 뻔 했습니다.”

지약 상인이 팔을 흔들어 방음벽을 치고는 웃으며 말했다.

“고마의 주혼이 어찌 되었는지 묻고 싶으신 겝니까?”

“역시 혜안이 있으십니다. 그것도 제가 묻고 싶은 일들 중 하나이긴 합니다.”

“안심하십시오. 제가 공간균열에서 살아 돌아온 것은 큰 운이 따른 것이고 고마의 주혼은 그 자리에서 죽어 사라졌습니다.”

“그렇다면 빈도도 안심입니다. 주혼이 죽은 것을 분혼도 감지하였을 테니 이곳에서 고생한 만큼 다시 돌아오지는 않겠지요.”

“그런데 고마의 분혼이 정말 그리 대단합니까?  원영 후기의 수사들이 셋이나 모여도 없앨 수 없을 만큼 말입니다.”

한립도 그간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수사께서는 아직도 추마골에서 보았던 고마의 실력만을 기억하실 테지요?”

지양이 바로 답하지 않고 반문했다.

“한 수사는 아직 모르겠지만 고마와의 일전에서 그것은 삼두육비의 신통력을 보였습니다! 수행이 거의 곱절 이상으로 증폭되었고 거의 화신기 수사와 비슷해졌지요. 만일 미리 금제를 펼쳐두고 저희 외에도 열댓 명의 원영 중기 수사들이 함께 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저를 포함한 세 명의 원영 후기 수사들이 원기를 크게 소모하며 연달아 비술을 펼친 끝에 단번에 고마의 머리와 몇 개의 팔을 잘라내자 그대로 달아나 버리더군요.”

“그렇게나 흉포했다니! 지양 수사께서 주혼과의 합체를 우려 하실 만합니다. 만일 고마의 위력이 조금만 더 강했다면 큰 혼란을 불러올 뻔 했습니다.”

고마의 소식에 한립도 가슴이 서늘해졌다.

“대진 쪽으로 간 것 같으니 이제 대진 수사들의 문제가 되었지요.”

돌연 지양 상인이 빙그레 웃었다. 아무래도 지양 상인은 대진에 대한 인상이 그리 좋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 여기까지 오신 다른 이유는 무엇입니까?”

“주혼에 관한 것은 온 김에 알아본 것이었고 한 수사에게 다른 중요한 볼 일이 있어 왔습니다. 그 전에 수사가 원영 중기에 오른 것을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인연이 따라 주었을 뿐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위 수사가 한 사형이 금뢰죽으로 만든 법보를 지니고 있어 전설 속의 벽사신뢰를 다룰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을 들었습니다. 사실인지요?”

숙연해진 지양의 얼굴에 한립이 순간 침묵했다. 무슨 의도로 묻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그가 벽사신뢰를 다룬 것은 비밀도 아니니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예, 금뢰죽 법보를 몇 개 지니고 있습니다. 하실 말씀이 있다면 바로 하시지요. 제가 빙빙 돌아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한 수사가 벽사신뢰를 다룬다면 제가 찾으려던 조건에 부합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곳에서 말씀 드리기 어렵지만 천남 수도계와 관련된 일이라는 것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에 무변해에 출현한 거대한 소용돌이와 연관된 일이기도 하고요.”

지양은 한립이 벽사신뢰를 지녔다고 인정하자 크게 기뻐했다.

“사정은 모르겠지만 벽사신뢰를 이용할 일이 있으시군요.”

한립이 눈썹을 끌어올렸다. 상대가 말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이든 좋은 소식은 아닌 듯 했다.

“다른 급한 볼 일이 있어 운몽산을 지나던 길이었으니 오래 머물지는 못하겠습니다. 수사께서 빠른 시일 내로 칠령도에 들려주신다면 저와 위무애 수사 그리고 합환 노마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때 상세한 사정을 말씀드리지요.”

지양 상인이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는 금 노괴 등을 힐끗 보며 제안했다.

“칠령도라면 소용돌이 주변에 나타난 일곱 개의 섬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소용돌이 사방을 둘러싼 영맥이 흐르는 섬이지요. 저희 셋은 그 중의 세 개의 섬에서 기거하고 있었습니다.”

지양이 길게 탄식하며 난감한 얼굴을 했다. 그의 말투로 보아 칠령도에 숨겨진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삼대 수사의 실력은 물론이고 그들이 대표하는 세력을 생각했을 때 단번에 지양 상인의 요청을 거절하는 것은 부적절한 행동이었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칠령도에 가는 것은 탐탁지 않았다.

그가 어쩔 수 없이 주저하는 기색을 내보였다.

“안심하세요, 한 수사. 절대 악의가 있거나 수사의 능력을 벗어나는 위험한 일은 아닙니다. 그저 벽사신뢰의 도움을 받기 위함이에요. 게다가 지금 빈도가 요청하지 않아도 반년 후, 천남 전역의 원영 중기 수사들에게 칠령도로 와달라는 서한이 갈 겁니다.

지금 도움을 주신다면 다음번에는 오지 않아도 됩니다.”

“이렇게 까지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 정말 중요한 일인 듯합니다. 그럼 제가 3개월 후에 칠령도로 찾아가겠습니다.”

곰곰이 생각을 하던 한립이 결국 제안을 수락했다.

“3개월이요……. 긴박한 일인데 조금 일찍 와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안될 것입니다. 낙운종으로 돌아가 중요하게 처리해야할 일들이 있어 바로 떠나기가 어렵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3개월 후로 하지요. 그럼 칠령도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지양이 머뭇거리다 답하고는 덧붙였다.

“사실 이번에 칠령도로 오면 뜻밖의 수확을 건질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귀 종에게 좋은 일이 될 수도 있고요.”

그는 말을 마치자 방음벽을 거두고 멀리 떨어져 있는 금 노괴 등 다른 수사들에게 몇 마디 하고는 다시 하얀 빛줄기로 변해 백교원을 떠났다.

* * *

“정말 비무를 꼭 하셔야 겠습니까?  수사도 이길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을 아실 텐데요.”

한립이 백교원의 여러 산봉우리 중 하나에서 상대를 향해 물었다. 아래에는 다른 수사들이 그들을 올려다보는 중이었다.

“노부가 고검문 대장로인데 문 중의 이익을 아무 명분 없이 내줄 수는 없지요. 서열과 운몽산 자원의 배분은 큰 연관이 있으니까요. 게다가 겨우 원영을 응결한지 30년 밖에 안 된 수사가 이렇게 엄청난 명성을 지니게 된 연유도 궁금하던 차입니다. 만일 이번 비무에서 노부가 진다면 정식으로 우리 고검문의 세력이 낙운종 아래인 것을 인정하지요.”

상대편에 구불구불한 머리의 노인이 진지하게 답했다.

“알겠습니다. 금 형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따르지요.”

한립이 담담히 웃고는 손을 들어 올리자 주먹만 한 남색 불꽃이 나타났다.

금 노괴도 말없이 입을 벌려 세 줄기 금빛을 분출했다. 그것은 뜻밖에도 똑같이 생긴 세 자루의 검이었다. 처음에는 몇 촌에 불과하던 검들이 금빛을 내며 주인의 주변을 돌더니 돌연 한 자에 달하는 길이로 길어졌다.

한립이 상대의 비검을 살피며 남색 불덩이를 던지자 남색 불덩이가 터지며 화염 속에서 반 자 크기의 불새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가라.”

한립이 상대를 가리키며 명령하자 남색 불새가 두 날개를 펴고 빛줄기로 변했다. 금 노괴는 어두워진 얼굴로 내심 분노했다.

감히 법보조차 꺼내지 않고 겨우 불새로 공격을 가하다니 자신을 얕보는 처사가 아니겠는가!

그는 오히려 크게 웃음을 터트리고 열손가락을 움직여 법결을 날려댔다. 단번에 가장 강력한 검결로 승부를 내고자 함이었다.

머리 위의 세 자루 금빛이 울부짖으며 공중에서 홀연히 사라졌고 대신 금빛 실이 금 노괴 앞에 나타났다. 비록 무척 가늘었지만 족히 몇 장은 될 만큼 기다란 실이었다.

금빛이 반짝이더니 실들이 하나씩 나타났고 눈 깜짝할 사이에 그 수가 무려 백 개를 넘어 눈이 부실 정도였다.

‘화검위사(化劍爲絲)!’

한립의 눈에 한기가 스쳤다. 검수 한 명이 만들어내기에는 놀라운 양의 검사였다. 고검문 대장로라 더니 역시 한 수가 있었다.

이때 다른 수사들도 구경을 하다가 대부분 놀라는 눈치였다.

“춘사참을 쓰려는가 봅니다.”

“이제 막 비무를 시작했는데 이런 절초를…….”

“한 수사가 방심하고 있으니 한 방 먹을지도 모르겠군요.”

백교원의 열화 노괴 등 일행 3명이 중얼거렸다.

금 노괴와 같이 온 중년 수사는 희색을 드러냈고 려락은 안색이 달라졌으나 낙운종의 정 사형과 명형 수사는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그때 허공의 금 노괴가 고함을 치며 연달아 검사 속으로 법결을 날렸다. 그러자 빛이 거세지며 실들이 거대한 그물을 형성해 날아오던 남색 새를 덮쳤다.

족히 열 장은 될 그물과 반자 크기의 불사의 대결은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았다. 하지만 불새가 금빛 그물 속으로 들어간 후 벌어진 일에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쾅!

남색 불새가 금빛 그물과 마주친 순간 폭발하며 남색 화염이 일어났는데 무수히 많은 금실들이 그것을 베려고 했지만 화염을 둘러싼 영기의 파동에 접근하지도 못했다.

춘사참의 위력을 알고 있는 수사들은 매우 놀랐다. 금 노괴도 그것을 보고 열이 받아 바로 검결을 북돋았다. 금실의 빛이 번뜩이며 두꺼워지더니 남색 빛을 파고들어 연꽃에 닿았다.

그 순간, 연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파앗.

남색 한기가 연꽃잎에서 발산되어 스무 장을 퍼져나갔다. 금 노괴는 뜻밖에도 자신의 비검과 연결이 끊어진 것을 느끼고 서둘러 의식을 집중했다.

그러나 구불구불한 머리의 노인은 안색이 매우 어두워졌다.

연꽃이 사라진 자리에 거대한 남색 얼음이 나타났는데 그 안에 금빛 비검 세 자루가 봉인되어 꼼짝을 못하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에 금 노괴가 저물대를 스쳐 하얀 옥패를 불러냈다. 하지만 옥패를 발동하기도 전에 뒤에서 천동소리가 울렸다.

“……!”

기겁한 노인이 생각할 틈도 없이 사선 방향으로 쏘아져 나갔는데 무언가가 그의 보호막을 가볍게 뚫고 들어와 달아나려는 그의 오른쪽 어깨를 잡았다.  남색 화염이 둘러진 손바닥이 몸에 닿는 순간 몸의 절반이 서늘해지며 감각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금 수사! 여기까지만 하지요?”

“이런 실력이라면 노부도 패배를 인정하겠소.”

단번에 제압당한 금 노괴의 표정이 좋을 리 없었지만 그는 바로 패배를 선언했다.

“금 형이 봐주신 덕분입니다.”

한립이 미소 지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그대로 손을 거두었다. 그가 두드릴 때 어깨가 일순 뜨거워지며 몸이 즉시 회복되는 것이 느껴졌다.

금 노괴가 서둘러 뒤를 돌아보니 어느 샌가 한립의 등 뒤에 은색 날개가 생겨나 뇌전이 번뜩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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