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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485화 (242/2,000)

# 485

485화. 건곤탑(乾坤塔)

세 사람은 잠시 종파 내의 잡다한 일을 이야기하다 정 노인과 려락이 먼저 일어났다. 한립이 그 둘을 금제 밖으로 배웅하고 거처로 돌아왔다.

“주인님, 다시 경정을 얻었으니 두 개를 더 제련해서 대경검진을 펼치면 되겠습니다.”

은월이 소리 없이 나타나 배시시 웃었다.

“그리 쉽게 일이 풀리겠느냐. 청죽봉운검은 몇 벌로 된 법보이다. 이 정도 경정으로 다시 12개 비검을 제련할 수도 없으니 억지로 대경검진을 펼친다고 해도 적을 가둬 죽이기 어려울 게야. 잃어버린 비검들은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

한립의 얼굴이 아까와 달리 어두웠다.

“하지만 비검들이 고마의 수중에 있는 걸요. 주인님의 수행이 크게 늘었지만 아직은 고마의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네가 말하지 않아도 안다. 확신이 서기 전에는 경거망동하지 않을 것이야. 허천정을 열거나 칠염선 제련을 마치면 다시 고마를 찾든가 하자꾸나.”

“노부가 연구 중인 꼭두각시는 왜 빼놓느냐. 고마가 대단하기는 하지만 네가 재료를 모아 이 꼭두각시만 완성하면 충분한 도움이 될 게다.”

갑자기 대연 신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한립이 꼭두각시를 언급하지 않은 것에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한립이 입 꼬리를 올렸다.

“선배님께서 심혈을 기울여 제련 중인 꼭두각시인데 당연하지요. 더욱이 필요한 재료들이 하나같이 진귀하기 이를 데 없으니 더욱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제련법과 완성된 꼭두각시의 위력에 대해 입을 닫으시니 제가 어떻게 큰 희망을 두겠습니까?”

“재료를 다 모으기 전까지 절대 알려주지 않을 테니, 날 꾈 생각 말거라. 내가 이야기 줄 수 있는 것은 만일 꼭두각시 제련이 성공만 한다면 노부의 전성기에 못지않을 것이다.”

“선배님의 전성기라면…….”

“안 믿기느냐?”

대연 신군의 목소리가 갑자기 차가워지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건 아니지만 아직 제련하지 않은 꼭두각시의 위력은 선배님의 추측에 불과하지 않은지요?”

한립 담담히 답했다.

“흐하하, 그 말이 맞다. 하지만 노부의 영민함에 어찌 잘못된 추측을 할까. 안심하거라.”

한립이 미소 지으며 더는 대연 신군을 상대하지 않고 밀실로 걸어갔다.

내일 초청을 받아 백교원에 다녀와야겠지만 마지막 남은 한 줄기 건람빙염은 한 시라도 빨리 제련해 버리는 게 나았다. 그 후에는 새로 원영기 급 상고 꼭두각시 제련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한립이 허리춤에 새로 생긴 저물대를 쓸어내리며 밀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튿날 아침, 한립은 정 사형, 려락과 만나 백교원으로 향했다.

같은 산맥에 위치해 있었기에 낙운산에서 출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백교원 종문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한립이 저계 제자의 신분으로 이곳 검술대회에 참가했던 것을 떠올리면 정말 우스운 일이었다. 그들이 금제 인근에 도착하자 대기하고 있던 결단기 수사 셋이 날아왔다.

“선배님들을 뵙습니다. 저희가 사숙님의 명을 받아 안내를 맡게 되었습니다.”

가장 앞서 오던 노인이 예를 취했고 다른 두 명도 뒤따라 예를 취했다.

“예는 그만하면 되었으니 안내를 해주게.”

정 사형이 담담히 웃으며 온화하게 말했다.

한립은 마중 나온 노인의 얼굴을 보고 기분이 묘해졌다. 공교롭게도 그는 예전에 검술대회를 주관했던 부 노인이었던 것이다. 수도자의 뛰어난 기억력으로 그도 한립을 알아보았을 텐데 전혀 이상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세 명의 결단기 수사의 안내를 받아 한립 일행은 백교원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광장이 아니라 바로 산등성이의 거대한 공간이었다. 그 중간에 언뜻 보면 석탑처럼 보이는 백 장 높이의 누각이 위치했다.

그리고 그 뒤로 솟아오른 절벽에는 빼곡하게 작은 구멍이 뚫려 있어서 백교원 제자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마치 벌집에서 일을 하는 꿀벌들 같았다.

세 수사는 그를 누각이 아니라 절벽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데려갔다.

“이 산 지하에 최상급 불의 연못인 지폐화지가 위치해 있네. 법기를 제련하는 데 적은 노력으로 큰 성과를 얻을 수 있고 불 속성 공법을 익히는 수사들에게는 아주 좋은 곳이네. 그래서 제련실도 많고 많은 고계 제자들이 이곳에 거처를 마련하지.”

정 사형이 백교원에 대해 잘 아는지 날아가며 한립에게 소개해주었다. 그 말에 한립은 흥미를 보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순식간에 천여 장을 상승한 이들은 거대한 동굴의 입구에 도착했다. 한 눈에 보아도 저계 제자들은 출입이 금지된 곳이었다.

“정 형! 려 수사! 노부가 기다린 지 오래입니다. 이쪽은 한 수사겠군요. 과연 젊은 나이에 역량이…… 엇, 한 수사께서 벌써 원영 중기에 이르신 겝니까?”

셋이 막 동굴에 내려서자 붉은 머리에 새까만 피부를 지닌 노인이 나타나 그들을 반겼다. 그러면서 한립을 훑어보다가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른 것이다.

그 옆에 서 있던 사나운 인상을 지닌 노인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사제가 중기에 이른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풍 형이 앞으로 잘 지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정 사형이 웃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지도를 하다니요. 정 형, 농담도 잘 하십니다.”

두 백교원 장로가 평정을 되찾고 서로 마주 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제가 조금 빨리 중기에 이르기는 했지만 아직 수행이 불안정합니다. 앞으로 수련 상에 어려움이 있으면 두 분께 도움을 청하겠습니다.”

한립이 포권을 하며 예의바르게 말했다.

원영기 노인 둘이 그 모습을 보며 상당히 좋은 인상을 받았다.

그들은 곧 안으로 안내되었고 부 노인 등 결단기 수사들은 밖에서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열화 사형께서도 같이 마중 나오려 했으나 여러 가지 준비를 하느라 시간을 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쪼글쪼글한 피부의 노인이 말했다.

“저와 려 사제가 정 형 등과 알고 지낸지도 수백 년 째입니다. 굳이 그리 예를 차리실 것 없어요. 다만 어떤 법보인데 이렇게 성대한 의식을 주최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들어가며 려락이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대단한 것은 아니고 저희 사형제들이 3개월을 들여 건곤탑 법보를 하나 더 제련해 냈습니다.”

“건곤탑이라면 백교원의 3대 보물 중 하나가 아닌지요. 근 천 년간 새로운 법보를 제련했다는 소식이 없었던 것으로 압니다.”

미소 짓고 있던 정 사형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래서 이번에 여러 수사들을 초대한 겁니다. 하지만 건곤탑이 저희 백교원에는 보물이라도 다른 두 종파들이 보기에는 별 것 아니겠지요.

고검문은 당연하고 정 형은 추마골에서 보기 드문 보물들을 찾아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 수사도 이렇게 빨리 중기에 들지 않았습니까?  역시 추마골에서 어떤 기연이라도 얻은 것이 아닙니까.”

풍 노인이 웃으며 슬쩍 상대의 반응을 살폈다.

“보물이요?  풍 형이 무언가 잘못 알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한 사제의 일은 자세히 모르나 저는 추마골에서 보물 두 개를 건지기는 했지만 아주 평범한 위력을 지녔을 뿐입니다. 어찌 건곤탑 같은 보물에 비하겠어요.”

은발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저도 고보를 건지기는커녕 추마골에서 꽤 많은 보물들을 잃었습니다. 운이 좋아 수행에 진전이 있지 않았다면 헛걸음을 한 셈이 될 뻔 했지요.”

“한 수사처럼 수행에 진전이 있을 수 있다면 지닌 모든 보물을 내놓겠습니다.”

풍 노인이 쓴웃음을 지었다.

꽃들이 만발한 화원을 지난 이들은 기이할 정도로 거대한 대청 안으로 안내되었다. 족히 백 장은 되는 넓이에 사면에는 금빛이 찬란한 이름 모를 수정들이 박혀 있어 대청을 환하게 밝혔다.

“자, 모두 앉으시지요. 열화 사형은 일을 마치는 대로 오실 것입니다. 고검문의 수사분들 역시 곧 도착할 것이고요.”

풍 노인이 예의 바르게 모두에게 자리를 권했다.

“이번에 고검문 금 노괴가 생사관(生死關)을 마쳐 이번 의식에 참여 한다던데 사실입니까?”

려락이 앉자마자 질문을 던졌다.

“그러합니다. 금 수사가 열화 사형에게 직접 전음부를 보냈더군요. 그렇지만…….”

“그렇지만 무엇입니까?”

려락과 은발 노인은 그의 화술에 시선을 집중했지만 한립은 대청을 둘러보며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렇지만 금 수사가 오는 이유는 아마 한 수사를 뵙고 싶어서가 아니겠습니까. 지금의 한 수사는 삼대 수사 다음으로 손에 꼽히는 인물이니, 전투에서는 천도맹 제1일라 해도 손색이 없겠지요. 게다가 이제는 원영 중기에 이르지 않았습니까.”

정 노인이 한립을 보며 비밀스럽게 이야기했다.

“그 말씀은 금 노괴가 한 사제의 실력을 시험해 볼 심산이기라도 하다는 것입니까?  그리 오래 폐관 수련을 하고도 성질은 그대로 인가 봅니다.”

정 노인이 미간을 좁히며 다소 불쾌하다는 티를 냈다.

“그건 저희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만 한 수사의 능력으로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게다가 저희 사형제들도 한 사제의 신통력이 궁금한 것은 사실입니다.”

백교원 정 노인이 숨김없이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이번 회합으로 운몽산의 서열 순위가 바뀔 수도 있겠군요.”

려락이 눈을 빛내며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백교원은 저희 같은 늙은이들이 전부라 서열에 영향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고검문 금 수사가 온다는 것은 한 수사의 실력을 살피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계국 제1의 문파의 대장로가 직접 나설 리가요.”

풍 노인은 미소 지었다.

“초청장에는 그런 사정을 미리 언급하지 않으신 게 서운합니다.”

정 사형이 인상을 찌푸리며 무어라 하려는데 려락이 먼저 냉랭히 말했다.

“려 수사 오해십니다……. 방금 오간 이야기는 전부 추측일 뿐 이번 회합은 세 종파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입니다. 어쨌든 지난 회합이 벌써 백 년도 더 되지 않았습니까?  낙운종에는 한 수사께서 새로 들어오셨고 고검문에는 명형 수사가 계시니 안면을 익혀두는 것이 두루두루 좋겠지요.”

풍 노인이 손을 저으며 분위기를 풀었다. 그러는 동안 한립은 시종일관 담담히 미소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입구 밖에서 전음부가 붉은 빛으로 날아와 풍 노인의 수중에 떨어졌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풍 노인이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고검문 수사분들을 모셔 오겠습니다. 정 사제 이곳을 부탁하네.”

풍 노인이 미안하다는 듯 말하고는 서둘러 밖으로 향했다. 이에 정 사형과 려락이 시선을 마주치며 표정이 진지해졌다.

잠시 후, 대청 입구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풍 노인이 세 명의 수사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사내 둘에 여인 하나였다.

선두에 있는 이는 구불구불한 머리를 한 건장한 노인이었다. 머리가 하얗게 셌지만 혈색이 좋고 번뜩이는 눈빛을 지녀 한 마리 야수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더욱 주의를 끄는 점은 그의 좌우로 늘어진 거대한 손바닥이 보통 사람보다 배는 크다는 것이었다.

노인의 뒤로 평범한 중년인 수사와 단정한 용모의 여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한립은 단번에 흉흉한 눈빛의 노인이 금 노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노인만 원영 중기의 수행을 지녔고 거의 최고봉에 이른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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