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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484화 (241/2,000)

# 484

484화. 초청

잠시 생각을 하던 모패령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공자께서 제게 혹시 분부하실 일이 있으신지요?  만일 그렇다면 분명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녀의 말에 한립은 조금 의외였던지 잠시 멈칫 하다가 더는 말을 돌리지 않았다.

“처음에 너를 시첩으로 받아들일 때 했던 약조를 기억하느냐?”

“기억합니다. 공자께서 제게 30년 간 수련할 시간을 주시고 그 동안에는 원음을 간직할 수 있게 해주시겠다고 약조하셨었습니다.”

모패령의 얼굴이 조금 상기 되자 더욱 화사하게 빛났다.

“대충 약조한 시일이 다 되어 가는 구나! 결단을 앞두고 너를 난처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니 걱정할 것은 없다. 하지만 그 전에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한립은 그녀가 무언가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여전히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무슨 뜻이십니까, 공자?”

“난 네가 결단에 성공하면 본래 수련하던 공법을 버리고 전봉배원공을 수련하길 원한다.”

“전봉배원공이요?”

“여인이 익혀야 하는 아주 보기 드문 쌍수공법이다. 이 공업을 능숙하게 익힌 여인과 처음으로 잠자리를 하게 되면 남녀 모두 수행에 도움을 받을 수 있지. 법력이 느는 것은 차치하고 가장 중요한 효과는 수련의 고비를 넘기게 해준다.

미리 말해두지만 공법은 여인이 수련하지만 사내가 얻는 보상이 더욱 크다. 그래서 결단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주고 보상을 해주려는 것이다.

이미 내 수행이 원영 중기에 이르렀기에 원영 후기가 되는데 이 방법을 사용하려면 상대의 수행도 결단 후기는 되어야 한다.

공법을 바꾸는 것을 수락하면 결단 후에도 수련에 도움이 되는 단약을 계속 제공해주마. 그럼 고된 수련을 백 년은 덜할 수 있겠지.

물론 네가 이것을 부당한 요구라고 생각한다면 절대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이번 결단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의식 속의 금제를 풀어 자유롭게 해주겠다.”

한립은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그의 계획을 들려주었다. 이를 들은 모패령은 마음이 복잡한 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고민에 빠졌다.

“전봉배원공을 수련하는 여인은 순결을 유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일이 허사가 되지. 그러니 네가 결단 후기에 이르기 전까지는 시침을 들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또한 만일 너의 도움으로 원영 후기에 이른다면 이 자리에서 미리 약조하마. 이후 전력을 다해 네가 원영을 응결하는 것을 도울 것이다. 원영 후기 수사의 도움이 있다면 원영 응결도 요원한 일은 아닐 테지.”

한립이 모패령을 응시했다.

거짓말이 아니라 원영 후기에 이르면 다시 8급 요수의 반요초를 찾으러 가는 것도 가능했다. 그러면 원영 응결에 큰 효과가 있는 구곡영삼으로 영약을 제련할 수 있을 것이다.

모패령이 고개를 숙이고 심사숙고하다가 다시 한립을 바라보았다.

“공자, 그 공법을 수행하면 수련 속도가 특별히 느려지거나 다른 제약은 없는지요?”

“없다. 위력은 최상급 공법에 못하겠지만 오히려 수련 속도는 일반적이 공법보다 빠르지. 다른 후환은 없지만 다른 수사와 싸울 때 약간 부족함을 느낄 수는 있을 것이다.”

한립은 전혀 주저하지 않고 답해주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공자의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제 자질은 제가 잘 압니다. 공자의 도움이 없다면 결단도 성공하기 어렵겠지요. 게다가 원영기라니 더욱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기쁘구나. 나와 보낸 시간이 있으니 내가 어떤 성품인지는 네가 잘 알 것이다. 비록 네 신분은 시첩이지만 너를 박하게 대할 마음은 없다. 영약을 보낼 것이니 안심하고 돌아가 결단 준비에만 최선을 다 하거라.”

“감사합니다. 이번 생은 공자를 따르는 것으로 은혜를 갚겠습니다.”

모패령이 다시 예를 취하며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그녀는 지금 진심이었다.

한립처럼 삼대 수사에 맞먹는 실력을 지니고 시첩에게 조차 잘 대해주는 수사는 천남 전체를 찾아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미 한립에게 받은 은혜가 적지 않으니 오래 고민하지 않고 그의 제안을 수락한 것이다. 한립도 그녀의 말투가 한결 친밀해져 있음을 알아차렸다.

이어 반나절 동안 수련에 필요한 지도를 해주자 모패령은 눈도 깜박이지 않고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그녀는 적잖은 수확을 얻고 다시 거처가 있는 봉우리로 돌아갔다.

은월이 그녀를 동부 밖으로 배웅하고 돌아왔을 때 한립은 의자에 앉아서 옥간을 읽고 있었다. 바로 칠염선의 제련법이 적힌 옥간이었다.

“주인님 정말 저 여인을 결단 후기까지 이르게 도와주실 생각이세요?”

은월이 조용히 한립 옆에 섰다.

“왜 이상하더냐?”

“주인님의 신분에 그냥 결단기 여수사를 시첩으로 얻으면 될 것 같아서요.”

“몇 년간 살펴보니 성품도 나쁘지 않아 키워볼만 하다고 여긴 것이다. 수행의 고비를 넘기기 위한 것도 있지만 힘이 될 조력자를 키우는 것이지.

앞으로 오래 폐관 수련에 들어가면 낙운종 장로로서 가까운 관계에 있는 수사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완이는 종문의 일에는 관심이 없지만 모패령은 다르다. 그녀가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면 야심을 펼칠 곳이 필요하겠지. 그때 낙운종을 맡기면 좋지 않겠느냐.”

한립은 냉정히 말하다가 잠시 멈추고는 덧붙였다.

“더 중요한 것은 전봉배원공이 반드시 여인이 진심으로 협조해야 한다는 데 있다. 어느 결단기 수사가 오랜 세월 수련해온 자신의 공법을 선뜻 버리겠느냐. 축기기 때부터 도움을 받아 결단에 이르고 이후 원영기에 오를 기회까지 생긴다면 불만이 없을 테지.”

한립이 말을 마치자 손에서 빛이 반짝이며 옥간이 사라졌다.

“그런 계획이신 줄도 모르고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은월이 고개를 갸웃하며 활짝 웃었다.

“앞으로 네가 바빠질 게다. 원영 중기에 이르렀으니 얼마간 폐관에 들어가 남은 건람빙염의 제련을 마치고 허천정을 열 방법을 연구해 봐야겠다. 그 동안 거처의 일은 네가 맡아야겠구나.”

“건람빙염을 거의 다 제련하셨다니 축하드릴 일입니다.”

은월이 기뻐하는 모습이 무척 매혹적이었다.

“그래 드디어 허천정을 여는데 한 걸음 다가갔구나. 다음으로 무엇을 해야 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난 조금 피곤해서 일찍 쉬어야겠다. 다른 일은 내일 다시 처리하자꾸나.”

담담히 말을 마친 한립이 일어나 침실로 걸어갔다.

밤새 정좌를 하고 명상을 하던 그가 눈을 뜨자마자 은월이 정 사형과 려락이 찾아 왔음을 고했다.

한립은 가볍게 세수를 하고 직접 문 앞까지 마중을 나갔다. 대청에 자리를 잡자 노인이 미안한 기색으로 먼저 입을 열었다.

“겨우 하루 밖에 쉬지 못했는데 사제를 성가시게 하는 것 같구만. 허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어쩔 수 없이 왔네.”

“수도를 하는 사람들은 약간의 휴식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절대 성가시지 않습니다.”

한립이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했다.

“그리 말해주니 안심이네. 사실 어제 사제가 가자마자 고검문과 백교원에서 몇몇 수사들이 초청장을 보내왔지 뭔가. 사제가 낙운종에 들어온 지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는데 다른 종파의 수사들과 인사를 나눌 기회가 없었지. 마침 백교원에서 좋은 법보를 제련하는데 성공해 주인을 인식하는 의식을 개최한다고 하니 그 자리에서 만나기로 하였네.”

“백교원은 법보 제련에 상당히 명성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모두를 초청해 의식까지 치르는 것을 보면 평범한 법보는 아니겠습니다.”

“초청장에는 적혀 있지 않았지만 피로 주인을 각인시킬 수사가 백교원의 새로운 결단기 제자라고 하더군. 백 년이 되지 않아 결단을 할 만큼 자질이 아주 뛰어난 수사라 기대를 한 몸에 받는다는군.”

려락이 손바닥을 뒤집어 금색의 초청장을 건네자 한립이 웃으며 초청장을 받았다.

“그렇게 짧은 시간에 결단을 하다니 놀랍습니다. 저도 궁금하니 사형들과 함께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허허, 사제가 가준다니 다행이구만. 듣기로 고검문 대장로 금무환이 막 생사관(生死關)을 마치고 출관했다고 하네. 거의 7, 80년 동안 폐관수련을 한 셈인데 들어가기 전에 원영 중기였으니 얼마나 발전했을지 궁금하군.”

정 사형은 한립이 이번 화합에 가겠다고 해 기분이 좋았는지 연신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러나 한립은 노인의 안색을 살피고는 미간을 좁혔다.

“정 사형, 의식을 통해 살피니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보입니다. 추마골에서 수명을 연장할 만한 단약은 찾으셨습니까?”

“추마골에서도 보물 비슷한 것은 찾았지만 영약은 아니었네. 아마 십여 년 내로 좌화(坐化)할 가능성이 높겠지. 수도자로서 더 높은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생로병사도 결국에는 윤회의 일부가 아니겠나. 그저 사제들에게 낙운종을 부탁할 뿐이네.”

노인의 이미 다가올 죽음을 직감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듯했다.

한립은 내심 탄식했다. 영묘원의 잔해에서 수많은 영약을 얻었지만 수명을 연장시켜주는 영약은 없었다.

“몇 년 내로 어떤 기회가 올지 모르니 너무 낙담하지 마시지요.”

한립이 위로의 말을 건넸으나 노인은 담담이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이미 큰 미련은 버린 듯 했다.

이어 한립이 손바닥을 뒤집어 하얀 옥간을 꺼냈다.

“사형들이 찾아 주셨으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찾아야 할 재료들이 있는데 수량도 많고 찾기 어려운 것들이라 종파 내 제자들을 시켜 되는 대로 모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영석이 얼마나 들던 비정상적인 가격만 아니라면 일단 구매를 하고 제게서 영석을 타가게 해주시지요.”

한립이 옥간을 넘겨주며 말했다.

“내가 봄세!”

려락이 관심을 보이며 의식을 불어넣더니 곧 표정이 달라졌다.

“되는 대로 모으라는 이유가 있었구만. 대부분 찾기 어려운 것들이야. 아마 몇 가지는 천남에서 찾기 어려울 것이네.”

“어디 어떤 재료들인지 나도 보겠네.”

정 사형이 려락의 말에 호기심을 드러냈다.

“과연 보기 드문 것들이군. 사제 설마 법보를 더 제련하려는 겐가?”

“비슷합니다.”

한립이 미소 지으며 상세히 설명하지는 않았다. 정 사형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제자들을 시켜 바로 일을 시키겠다고 말했다.

그때 노인과 려락이 서로 시선을 교환하더니, 려락이 허리춤에서 저물대를 풀어 한립에게 주었다.

“이건…….”

한립이 의아해 하며 두 사형을 바라보았다.

“제자들을 시켜 몇몇 재료들과 경정을 찾으라 시킨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니겠지?  그동안 경정 약간과 나머지 재료를 모두 찾아 두었네. 본래 사제를 감짝 놀라게 해주려고 했는데 또 다른 재료가 필요하다니.

사제는 법보 제련에도 정통한가 보구먼.”

“경정을요?”

한립은 그 말을 듣자마자 매우 기뻐하며 저물대를 확인했다.

각양각색의 재료 외에 정말 약간의 경정이 섞여 있었다.

이 재료들은 꼭두각시 제련에 필요한 것들이었다. 재료가 부족하지 않았다면 추마골에 들어가기 전에 벌써 원영기 수준의 꼭두각시를 제련했을 것이다.

“감사드립니다. 제가 꼭 필요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구하느라 적잖은 영석을…….”

“당연히 많은 영석이 들어갔지만 사제가 모란족 침입 때 본종을 대신해 연달아 두 번이나 참전한 것에 비하면 약소한 것이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잠시 주저하던 한립이 재료들을 저물대에 넣었다. 노인도 그가 호의를 거절하지 않자 만족했다.

“그러고 보니 제가 공간균열에 빨려 들어가기 전에 비검 두 개를 회수하지 못했습니다. 정 사형, 당시 제 비검을 보셨습니까?”

“그 일이라면 안 그래도 이야기 해주려고 했네. 내가 사제 대신 회수하기도 전에 고마가 선수를 쳐서 지금은 고마의 수중에 있을 게야. 다행히 토벌단도 비검을 보았다는 소식은 없었으니 아직 마화되지는 않은 듯하네. 하지만 고마가 행방불명이군.”

“고마에게 있다니 성가시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제련하면 그만인 보물에 연연해 할 것도 없겠지요.”

조금 안색이 변했던 한립은 곧 평정을 되찾았다.

“그렇지! 사제의 본명 법기가 그리 많은데 두 개를 잃은 게 대수겠는가. 괜히 비검을 찾겠다고 고마를 찾아다니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네.”

노인은 한립의 말에 조금 안심했다. 그는 낙운종 장로인 한립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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