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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483화 (240/2,000)

# 483

483화. 단약을 먹이다

려락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정 사형도 의식을 퍼트렸다. 두말할 것 없는 원영 중기의 수행이었다.

“사형들의 혜안이면 금방 알아보실 줄 알았습니다. 맞습니다. 추마골에서 기연을 얻은 후 수련 끝에 이리 되었습니다. 이렇게 빨리 중기에 이를 줄은 저도 생각지 못했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완이를 두 사형들이 돌봐주시지 않았다면 안심하고 수련에 매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모두 사형들 덕분입니다.”

“남궁 누이가 나와 의형제의 연을 맺었으니 당연한 일이 아닌가. 게다가 말이 보호지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얼음 속에만 갇혀 있게 놔두었으니 부끄럽기 짝이 없네!”

겨우 평정을 되찾은 정 사형이 그의 말을 듣고 겸연쩍다는 듯 말했다.

“3백 살도 되지 않아 원영 중기에 이르다니!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천남 수도계가 정말 놀랄 일이구만. 원영 후기는 물론이고 화신기에 이를 가능성도 크겠어.”

려락이 참지 못하고 부러움을 드러냈다.

한립의 무서운 성장 속도는 천남 수도계 역사에서도 손에 꼽혔다. 이와 같은 수련 속도는 개인의 자질보다는 어떤 기연을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졌으니 원한다고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한립은 화제를 돌려 실종될 당시 추마골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물었다. 직접 대전에 참여했던 이의 말만큼 정확한 것은 없었다.

노인이 한립의 물음에 쓴웃음을 흘렸다.

한립이 공간균열에 빨려 들어가고 분노한 고마와 남게 된 수사들이 위기에 처한 순간 다른 수사들이 당도했다.

그들은 다시 위무애 등과 힘을 합쳐 공격했지만 쌍두사비의 고마 한 마리를 당해내지 못하고 아슬아슬한 상황에 처했다. 바로 그때, 모란인들이 도착했다.

모두가 협공해 고마를 포위하고 대전을 벌였는데 모란인 악 여인이 성조를 불러내 고마에게 중상을 입혔고, 모란의 중 신사는 그것의 머리를 하나 잘라내었다. 그러나 위기에 몰리자 고마가 빠르게 달아나 버렸다.

그 전투에서 많은 원영기 수사들이 죽었고, 남궁완의 사저도 마염에 공격당해 원영조차 남기지 못하고 재가 되었다. 령호 노인은 다행히 육신만 잃고 원영은 달아날 수 있었다.

가장 운이 없었던 것은 귀령문 수사들로 종 장로는 고마에게 원영이 뽑혀 그 자리에서 잡아 먹혔고, 몇몇 결단기 수사들을 제외한 고계 수사들은 전멸했으니 끔찍한 일이었다.

그 후의 일은 황원명이 이야기한 것과 비슷했다.

한립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제가 들으니 포위에 성공했을 때 삼대 수사 두 명과 모란 신사까지 있었다는데, 그들로도 역부족이었단 말입니까?”

이제 한립의 표정도 한결 진중해졌다. 고마의 사납고 흉악한 모습을 떠올리면 아직까지도 마음이 불편했다.

“우리 둘은 참전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들려온 소식에 따르면 고마가 치명적인 부상을 입기는 했다고 하네! 하지만 괴상한 비술로 포위를 뚫고 사라졌지.

후환을 제거하기 위해 모란 초원 변경까지 고마를 추적하던 지양 상인 등은 돌올인 수도자들을 경계하느라 어쩔 수 없이 돌아왔다고 하더군. 이렇게 오래 아무 소식이 없고 돌올인들 쪽도 평온한 것을 보면 치명상을 입고 죽었거나 모란초원을 지나 대진으로 간 것이겠지.”

노인이 상세하게 설명했다.

“대진으로요?”

슬쩍 안색이 변했던 한립은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정 사형과 려락도 그의 심경 변화를 알아챘지만 이유를 묻지 않았다.

한립은 그들과 잠시 한담을 나누다가 추마골에서 찾은 약으로 남궁완의 저주를 풀 수 있는지 시도해 보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그 이야기에 함께 기뻐했다. 어쨌든 남궁완이 몸을 회복하면 낙운종의 실력은 또 한 번 크게 성장할 터였다.

금지 입구에서 정 사형과 려락이 걸음을 멈추고 직접 경계를 서주겠다고 말했다. 안심하고 봉혼주를 푸는 것에만 집중하라는 것이었다.

한립도 거절하지 않고 홀로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밀실의 석문 앞에 섰다.

석문 밖의 금제를 보니 그가 떠나기 전과 똑같았다. 정 사형과 려락은 오로지 의식으로만 남궁완의 상태를 확인했고 금제를 범하지 않은 것이다. 한립은 두 수사의 세심한 거동에 더욱 만족했다.

수결을 맺어 법결을 날리니 석문이 반짝이며 자동으로 개방되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밀실 안은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동굴 위쪽에 박아 놓은 월광석 덕분에 전혀 어두컴컴하지 않았고 금제의 영향으로 먼지 하나 없이 정결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영기의 빛이 반짝이는 얼음벽 안에서 남궁완이 여자 아이의 모습으로 두 눈을 감고 있었다. 한립은 가여운 기색을 드러내며 얼음벽으로 다가갔다.

창백한 그녀의 얼굴에 그의 심경도 복잡해졌다.

한참을 그렇게 남궁완을 지켜보던 그가 길게 한숨을 내뱉으며 저물대에서 옥함을 꺼냈다.

그 안에는 화섬의 요단이 들어있었다. 요단은 새빨간 빛을 내며 신비하고 화려한 분위기를 풍겼다.

한립이 입에서 푸른 영기를 뿜어내자 요단을 감싸 얼음벽으로 날아갔다. 곧 주술을 외자 법결이 뒤따랐다. 그리고 얼음벽에서 남색 빛이 번뜩이더니 붉은 요단이 그대로 얼음 속으로 놀아들어 남궁완의 입으로 향했다.

한립은 차분히 남궁완을 가리켰고 그녀의 입술이 살짝 벌어지자 그 틈을 타고 요단이 순식간에 안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혈색 없던 남궁완의 얼굴에 은은한 붉은 빛이 돌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두 눈은 감겨있었고, 전혀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한립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조급해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요단이 효과를 발휘해도 며칠 사이로 봉혼주를 풀 수는 없었다.

한립은 바로 그 자리를 뜨지 않고 조용히 서서 남궁완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남궁완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 * *

보름이 지나서야 한립은 평온한 얼굴로 밀실을 걸어 나왔다.

다시 금제를 복구한 그가 금지를 나서자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정 사형과 려락이 다가왔다.

한립은 간신히 미소를 짓기는 했지만, 며칠 더 상태를 살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피곤한 한립은 그들과 오래 대화를 나누지 않고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비록 그가 실종된지 스무 해가 넘었지만 정 노인과 려락이 엄명을 내려 동굴은 그대로라고 했다. 그리고 그의 시첩인 모패령은 여전히 옆 봉우리에 기거하며 노인과 려락의 보살핌을 받아 축기기 최고봉에 이르렀다고 한다.

일 년 남짓이면 결단을 시도해 볼 수도 있었다. 희소식에 한립은 자연히 전봉배원공(顚鳳培元功)을 떠올렸다.

그는 결단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영단을 제법 갖고 있는 데다 여인의 자질이라면 무사히 결단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추마골에서 만난 기연으로 그녀가 결단에 성공하기 전에 그가 먼저 수행의 고비를 넘기고 원영 중기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어차피 전봉배원공을 이용한 남녀 수사의 수련은 원영 후기에 들때도 똑같이 유용했다. 다만 상대 여인의 수행이 더욱 높아야 했는데 결단기 정도면 될 것이다.

한립은 모패령이 수십 년 정도 전봉배원공을 수련하게 하고 그녀의 원음을 취한 후, 그녀가 자유롭게 남거나 떠나게 해주려던 생각을 바꾸었다.

어쨌든 2, 3백 년내로 원영 중기의 최고봉에 이르는 것은 어려우니 그동안 그녀가 전봉배원공을 수련하게 하고 단약으로 보조하면서 그녀의 성취를 도울 것이다.

동굴 내부는 아무 변화도 없었다. 심지어 거처를 지키기 위해 일부 남겨두고 간 삼색 서금충들 조차 여전히 삼색 구슬로 뭉쳐져 대청 중간에 매달려 있었다.

약재 밭에 심어둔 현천선등과 구곡영삼도 멀쩡해 마치 어제 거처를 떠났다 돌아오는 길 같았다.

현천선등의 뿌리 조각은 그렇다 치고 구곡영삼은 정말 소중했다. 이미 멸종 되다시피 한 영약이 화신까지 지니고 있었으니 귀하기 그지없었다.

만일 가지고 다니기 어렵지 않았다면 항시 몸에 지니고 다녔을 것이다.

구곡영삼으로 만들 수 있는 단약의 재료 중 구하지 못한 것들이 있어 그대로 놔두는 것이 아까웠지만 말이다.

지난번 거처를 떠날 때 약재원의 영약을 제외하면 육익상공의 알과 대부분의 서금충들을 챙겨 떠났었다. 심지어 육익상공의 알은 극서 지역으로 향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간균열에 갇혀 20년 간 신비한 병을 이용할 수 없었으니 육익상공은 아직도 유충의 형태로 남아 있었다. 한립은 그들을 특수 제작한 영수대 속에 담아두었다.

이제 그는 진화를 위해 서금충들을 다시 밀실 하나에 넣어 두고 육익상공들을 양육하던 밀실로 걸어갔다.

한립이 영수대를 들어 석실 대문을 향해 기울였다. 그러자 하얀 빛이 흘러나와 수촌 길이의 지네 유충들이 밀실 안에 나타났다.

육익상공의 유충들은 전신이 매우 하얗고 수정처럼 투명한데다 날개도 없었다. 처음 육익상공을 얻었을 때는 확신이 없었는데, 이 영충도 예상초를 먹고 서로 잡아먹는 방식으로 진화한다는 것을 알고 크게 기뻐했었다.

본래 영충의 한기를 이용해 자라극화를 제련할 생각뿐이었는데 추마골 원정을 계기로 다른 생각이 들었다.

서금충은 아주 튼튼했지만 행동이 조금 느렸다. 성체로 완전히 진화해도 속도가 빠른 적을 만나면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그런데 육익상공은 한기를 내뿜으면서도 극히 빠른 둔술을 갖고 있었다.

날개가 두 개일 때는 다른 영충들에 비해 남다를 것이 없지만 한 쌍의 날개가 더 생기면 속도가 크게 빨라져 웬만한 법보 이상의 속도를 내게 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총 세 쌍의 날개를 지닐 때다. 그때는 영충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빨라져 한번 움직이면 천리를 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같은 내용은 경전에 적혀 있는 것일 뿐이고, 상고시대에도 영충이 날개가 여섯 개가 달릴 때까지 진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실제로 얼마나 빠를지 알 수는 없지만 아주 빠른 둔술을 자랑하는 상고영충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한립은 육익상공들이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는 것 같아 조금 마음이 놓였다. 그러던 중 한립은 갑자기 무엇을 감지했는지 동부 대문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곧 그가 소매를 털어 은월을 불러냈다.

“모패령이 문 밖에 와 있으니 데리고 대청으로 오거라. 마침 해야 할 말이 있었으니 이참에 이야기 해야겠구나!”

“예, 주인님!”

은월이 공손히 답하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잠시 후 대청에 앉아 턱을 받치고 있던 한립은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았다.

은월이 한껏 미소를 지으며 걸어왔고 몇 년 간 보지 못했던 모패령이 그 뒤를 따라 들어왔다.

그러나 여인은 이전보다 더 아름다워졌다. 이전의 조금 서늘했던 인상이 줄어들자 그윽한 난초와 같은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공자를 뵙습니다. 무사히 귀환하시고 수행도 크게 정진하신 것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모패령이 미소 지으며 예를 올렸다.

“보자마자 축하 인사를 하는 것을 보니 이미 내 소식을 들은 모양이구나. 굳이 예를 올릴 것 없다. 당시 극서 지역을 다니며 함께 고생을 하지 않았더냐. 지나치게 거리 둘 것 없다.”

한립이 미소를 보였다. 그 둘은 3년 간 극서 지방에서 함께 보내며 퍽 가까워졌다.

“감사합니다.”

“극서 지방에 다녀와 헤어지고 20여 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구나. 그간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니 수고했다.”

“저는 공자의 시첩으로 큰 은혜를 입었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게다가 공자가 분명 돌아올 거라 믿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나를 믿고 있는 줄은 몰랐구나.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위험해서 돌아오지 못할 뻔 했다. 그런데 단약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수행이 느는 속도가 정말 빠르구나. 곧 결단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자신 있느냐?”

한립이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신첩이 어찌 자신할 수 있겠습니까. 본래 결단에 성공할 가능성은 10분의 1도 되지 않으니 하늘의 뜻이 따르기를 바랄 뿐입니다.”

“하늘의 뜻?  그건 모르겠지만 내가 도우면 결단에 성공할 확률이 약간은 늘어날게다.”

한립이 그녀를 바라보며 모처럼 활짝 웃었다.

“예?  천남에 그런 영약이 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습니다.”

“내 수중의 영약들은 대부분이 천남에서 얻은 것이 아니다. 내가 장담하지. 네 자질에 이런 영약들이 더해지면 결단에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절반에 이르게 될 것이다.”

모패령은 지금까지 그와 보낸 세월이 있었으니 그가 어떤 성품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이렇게 말했으면 가능성은 절반이 아니라 7, 8에 달한다고 봐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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