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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482화 (239/2,000)

# 482

482화. 낙운종으로

한립이 갑자기 소매를 털자 탁자 위에 푸른빛이 반짝이고 금빛이 찬란한 짧은 창 한 쌍이 나타났다.

“이야기를 들려주느라 수고 많았다. 대단한 물건은 아니지만 단금과 법기 한 쌍을 주도록 하지.”

“이런 보물을 내려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이, 이건 상급 법기가 아닙니까.”

황원명이 빛나는 금빛 창을 보더니 허리를 숙여 기쁨을 전했다. 세 가문에 상급 법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몇 개 되지 않았던 것이다.

“단금과가 비록 상계 법기일 뿐이나 한 쌍을 같이 사용하면 최상급 법기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럼 나도 이만 가보겠다. 이후 인연이 있다면 다시 만나겠지.”

한립이 단금과에 대해 간단히 말하고는 푸른 빛줄기로 변해 대청 문으로 사라졌다. 세 노인이 어리둥절해서 감사하다는 말을 늘어놓으려다가 다시 삼키고 말았다.

이 후 그들의 시선은 탁자 위의 금단과로 향했다.

“뜻밖에도 상급 법기 한 쌍을 주시고 가다니.”

“누군지 알고 그러십니까. 상급 법기가 우리에게나 귀한 보물이지. 선배님 같은 분에게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물건에 불과할 겁니다.”

세 노인 중 가장 말수가 적은 하얀 장포의 노인이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왕 형, 무슨 뜻입니까?  설마 선배님이 누군지 아는 것입니까?”

황원명이 묻자 동그란 얼굴의 노인도 놀라 하얀 장포 노인을 바라보았다.

“황 형, 총명한 분이 왜 그러십니까. 나타나자마자 추마골과 고마에 대해 묻고 젊은 나이에 높은 수행을 지녔습니다. 이래도 모르시겠습니까?  추마골 일전에서 실종된 인물을 말입니다.”

백의 장포 노인이 쓴 웃음을 지었다.

“설마…… 한 선배님?”

황원명이 상대가 말하는 바를 깨닫고 소리를 높였다. 동그란 얼굴의 노인도 크게 놀란 듯 했다.

“이제야 제 말을 알아들으셨군요. 삼대 수사와 같이 거론되는 선배님이시니 이리 선뜻 귀한 법기를 내주시지 않았겠습니까.”

“왕 형의 말씀을 들으니 정말 그럴 듯합니다. 하지만 저 분이 한 선배님이든 아니든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일단 이것을 어찌 처리할지 말씀 나누시죠.”

한참 생각을 하던 황원명이 탄식하듯 말했다. 황원명의 이야기에 다른 두 노인도 한립에 대한 일은 뒤로 제쳐두었다.

* * *

한립은 그들이 이미 자신의 정체를 알아 차렸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미 그곳에서 백여 리나 날아왔다.

이번에 공간균열을 나오며 동유국에 떨어진 건 행운이었다. 공간균열의 가장 약한 지점은 불안정하게 움직였기에 천리 밖 외진 곳에 떨어질 수도 있었다.

“녀석아, 이제 어디로 갈 거냐?  아니면 낙운종으로 바로 돌아갈 거냐?  아직 내가 요구한 꼭두각시 재료들이 부족하다는 것을 잊지 말거라.”

대연 신군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압니다. 하지만 그 재료들은 하나 같이 찾기 어려운 것들이라 단시간 내로는 어려울 겁니다.”

“흥! 그럼 노부가 7, 80년이라도 더 기다려야 한단 말이야?  천남에서 찾기 어려우면 대진에 다녀오면 되지. 영석만 충분하다면 어떤 진귀한 재료도 못구하겠느냐. 경고하는데 노부의 꼭두각시 제련을 돕지 않는다면 제련법을 없애고 혼을 흩어지게 할 것이다. 네가 차지하게 두지 않을 것이야.”

“걱정 마십쇼. 대진에는 어차피 한번 다녀와야 합니다. 원래도 살기가 강한데 혈마검을 운용해 사기가 깊숙이 파고들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루 빨리 제거하지 않으면 몸에도 이상이 생기고 원영 중기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할 거라고요.”

한립이 울적하게 탄식했다.

“알면 됐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살기가 이리 깊이 쌓이다니 나도 처음에 많이 놀랐다. 노부도 자비로운 성격은 아니지만 너만 할 때는 그 10분의 1의 살기도 지니고 있지 않았었다.

쯧쯧, 차라리 마도 공법을 익히는 것이 어떻겠느냐?  그럼 그 살기가 오히려 수행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면 화신기에 들어 영계가 아니라 상고마계로 올라가야 할 테지만 말이다.”

대연 신군이 괴이하게 웃으며 한립을 놀려댔다.

“수련을 해서 겨우 고마 같은 괴물이 돼야 하다니 관심 없습니다.”

“녀석아, 정말 모든 고마가 그렇게 괴상한 모습일거라 생각하느냐.”

대연 신군이 잠시 침묵하다가 말투가 달라졌다.

“무슨 뜻이십니까?  고마가 되면 요마화가 진행되는 것 아닙니까?”

“틀렸다. 내가 경전에서 본 바로는 인계에서 상고마계로 간 마수는 고마의 일원이 되더라도 외형은 변화가 없다고 한다. 마공을 이용해 일부러 신체를 변화시킬 수도 있지.

상고수사와 고마 간의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일부 수사들이 고마의 유혹에 넘어가 마기를 주입하는 방법으로 고마의 일원이 되었다. 그래서 마지막 전투는 더욱 치열할 수밖에 없었지.

그들은 고마가 된 후에도 인간의 형상과 지능을 유지하며 고계 고마들을 위해 싸웠다고 한다. 어떤 내막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후로 인간 수사도 상고마공을 극성으로 익히면 상고마계에 이르게 된다는 소문이 돌았지.

이상한 생김새의 고마는 둘로 나뉜다. 첫 번째는 상고마계의 원시요마(原始妖魔)로 상고 마계의 최정상에 있는 존재들이지. 아마 성조라고 불리는 부류가 그럴게야. 이런 요마는 수가 적지만 하나같이 무서운 능력을 지니고 있다. 심지어 현재 마수들이 수련하는 상고 마공도 이런 고마의 이름을 쉼 없이 불러야 마기를 빌려 공법을 펼칠 수 있다고 한다.

두 번째는 우리 인계의 일부 요족이 마공을 수련해 상고마계에 이르는 경우이다. 요족의 본체는 본래 인간과 다르니 고마로 변하면 흉악한 모습을 할 수밖에 없는 게지.”

“요족이라니 어떻게 그들이…….”

“그들이 어떻게 상고마공을 수련했는지 묻고 싶은 게지?  그건 노부도 모른다. 경전에 자세히 쓰여 있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요족이 상고마족을 만난 건 우리 인간 수사들 보다 훨씬 이전인 것 같더구나.

하지만 노부가 이전에 마주쳤던 고계 요족들은 하나같이 마공을 익히지도 체내에 마기가 느껴지지도 않았었다. 그 원인은 아마 대진에 가서야 찾을 수 있겠지. 대진은 우리 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들을 보존하고 있는 곳 아니냐.”

대연 신군의 목소리가 나른해졌다.

한립은 속을 저물대 속에 있는 요족의 보물이라던 범성진편을 떠올렸다. 거기에 새겨진 삼두육비(三頭六譬)의 공법은 이제 보니 고마가 펼치던 이두사비(二頭四臂)의 마공과 관계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지닌 범성진편은 조각에 불과했고 요족 공법 전체를 다 갖고 있다해도 수련할 생각도 없었다. 청원검결 만해도 수련할 시간이 부족한데 말이다.

한립이 고개를 저으며 화제를 돌렸다.

“꼭두각시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진에 가든 가지 않든 꼭 재료는 모아드릴 테니까요. 그보다 2년 전에 칠염선 제련 방법에 대한 연구가 거의 마무리 단계라 하셨으니 이제는 연구를 마치셨겠지요?

괜찮으시다면 우선 그것부터 제련하게 해주십시오. 비검이 두 개 줄어 대경검진을 펼치지 못하게 되었으니, 전력을 보완할 만한 보물이 필요합니다.”

한립은 빙빙 돌려 말하지 않았다.

20년 넘게 함께 지내며 그와 대연 신군은 서로를 꽤 이해하게 되었고 둘 사이의 관계도 한층 돈독해졌다. 심지어 반쯤 사제지간 같기도 하고 벗 같기도 한 관계가 되었다.

“칠염선 제련법 중 찾을 수 없는 재료들은 빼기도 하고 다른 것으로 교환하기도 하여 개량해놓기는 했다. 다만 제련에 성공할 지는 노부도 확신할 수 없구나. 또한 보물을 제련해 낸다고 해도 칠염선이 아니라 삼염선 쯤으로 불러야 할게야. 본래 81가지의 불 속성 재료가 필요한데 31가지로 줄였기 때문에 위력도 훨씬 떨어질 수밖에 없지.”

“위력이 좀 줄어든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통천령보가 전해지는 대로 그렇게 대단하다면 복제품인 삼염선만 해도 일반 수사들이 당해내지 못할 테니까요.”

“제련 방법을 복제한 옥간이니 살펴 보거라. 다만 아무리 복제품이라도 몇몇 재료는 쉽게 구하기 어려운 것들이니, 이것을 제련하려면 고생깨나 해야 할 게다.”

한립의 등에 있던 죽통에서 하얀 빛이 튀어나왔다. 그는 뒤통수에 눈이라도 달린 것처럼 한 손으로 하얀 옥간을 잡고 의식을 불어넣었다.

“다른 건 그렇다 치고 호양조(昊陽鳥)의 깃털과 적화교(赤火蛟)의 비늘은 기다려도 나타날 물건은 아닌 듯합니다. 적어도 천남에서는 이런 것들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으니까요.”

“그 두 가지 재료는 대체할 수 있는 재료 중 가장 찾기 쉬운 것들이다. 그중 호양조는 노부가 대진을 유람할 때 악양궁의 젊은 여수사가 한 마리 키우는 것을 보았지.

오랜 세월이 지났으니 그 호양조는 남아 있지 않더라도 후대에는 물려주었겠지. 다만 적화교는 운이 따라줘야 할 게다. 하지만 대진에만 간다면 어렵지 않게 구할 수도 있지.”

“흥! 한참을 설명하더니 결국에는 대진에 다녀오라는 말씀이군요.”

“허허, 노부가 네 녀석을 대진으로 보내려는 이유는 네 녀석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대진을 가봐야 진정한 수련 성지가 어떤 곳이지 알게 될 테니까.”

“그러기를 바라겠습니다. 하지만 동유국을 떠나기 전에 반드시 추마골로 돌아가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추마골로 돌아간다니 무슨 뜻이더냐?”

대연 신군이 깜짝 놀라 물었다.

“안에 들어가려는 것은 아니니 안심하십시오. 천절마시를 기억하십니까?  공간균열에 들어갈 때 비술을 이용해 알아보니 아직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니더군요. 아직 추마골 내부에 남아 있는지, 소환할 수 있는지 알아봐야겠습니다.”

말은 마친 한립이 속도를 높여 하늘을 갈랐다.

창주에 이른 한립은 바로 만령산맥으로 진입해 추마골 입구로 향했다.

그곳에서 이틀을 배회한 끝에 그는 천절마시가 아직 내부에 살아 있다는 것을 알아냈지만 어딘가에 갇혀 있는지 아무리 소환을 해도 불러낼 수가 없었다.

주저하던 그는 울적한 마음으로 자리를 떠나야 했다. 추마골이 다시 한 번 열려 그때도 죽지 않았다면 그때나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 *

두 달 후, 한립은 드디어 운몽산 인근에 도착했다.

낙운종 산 근처에 이르니 순찰을 돌던 본 종 제자들과 마주쳤고 제자들은 한립을 보고 크게 기뻐했다. 그들은 곧바로 문안 인사를 올리고는 바로 종 내에 있는 두 장로에게 전음부를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낙운종 제자 전체가 종문을 빠져 나와 한립을 맞이했다. 물론 그 선두에는 정 노인과 려락이 있었다.

두 사람 역시 한립을 보고 매우 기뻐했다.

“한 사제라면 분명 살아있을 거라고 생각했네. 그런데 기왕 무사했으면 조금 더 빨리 돌아오지 그랬는가!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는가.”

제자들을 물리고 한립과 함께 낙운종 대전 안으로 들어온 정사형은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사제가 돌아오지 않아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어.”

“오해십니다. 저는 줄곧 공간균열 속에 갇혀 있느라 이제 막 빠져나오는 길입니다.”

한립이 입을 비죽이며 어쩔 수 없었음을 토로했다.

“어쨌든 돌아왔으니 되었네! 사형이 되어서 사제에게 도움을 받고는 제대로 감사 인사도 하지 못했네. 사제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노부는 벌써 백골이 되어 있을 게야.”

노인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한립을 향해 깊이 예를 올렸다.

“정 사형도 낙운종에 들어온 저를 잘 돌봐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찌 정 사형이 위험에 처한 것을 보고도 모른 척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사소한 일들은 목숨을 살려준 은혜에는 비할 수도 없네. 아, 사제가 남궁 수사 일로 걱정이 많을 텐데, 그건 걱정 말게. 남궁 누이는 아직 얼음 속에 있지만 무사하니 말이야.”

노인이 한립의 마음을 읽고 미리 소식을 전했다.

한립도 그 말에 크게 마음을 놓았는데 려락이 자세히 그를 살피더니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을 했다.

“사제! 놀랍게도 그 사이에 원영 중기에 이르렀군! 이럴 수가, 설마 추마골에서 무슨 기연이라도 만난 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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