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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481화 (238/2,000)

# 481

481화. 탈출

노인들이 제자들을 시켜 일을 진행하게 했다. 그러나 각 가문에서 두 명씩 샘으로 나섰는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샘의 3, 4장 위에서 돌연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오색찬란한 빛이 가시고 새까만 빛덩이가 나타난 것이다.

새까만 빛덩이는 촤륵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공간을 왜곡시켰고 그 자리에 공간균열이 나타났다.

푸슉!

모든 수사들이 눈을 부릅뜬 가운데 그 안에서 누군가 튀어나와 샘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후 공간균열은 미친 듯이 흔들리다가 사라졌다.

누군가 샘에 떨어지자마자 신형을 빛내며 일어났다.

“…….”

그는 자신을 응시하는 수사들의 시선에 표정이 묘해졌다. 황원명과 다른 노인들도 할 말을 잃고 서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푸른색 문사 차림의 청년은 민망했지만 평정을 유지했다. 그의 전신에서 푸른빛이 번뜩이자 옷을 적신 샘물이 순식간에 증발해 사라졌다.

“여긴 어디지?  동유국은 맞는가?”

청년이 주변의 수사들 중 가장 수행이 높은 황원명을 향해 물었다.

“이곳은 동유국 영주입니다. 선배님의 존성대명을 알 수 있을 지요?”

황원명이 의식으로 청년의 수행을 살피고는 가슴이 떨려왔다. 상대의 수행이 얼마나 깊은지 전혀 파악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건 적어도 상대가 결단기 수사라는 소리였다. 다른 두 노인도 한립의 수행을 살피고는 심장이 철렁해 예를 갖추었다.

“영주라…….”

그는 바로 영묘원의 잔재에서 빠져 나온 한립이었다. 추마골 대전이 끝나고 장장 27년이 흐른 뒤이기도 했다.

황원명 등 수사들은 한립을 바라보며 슬쩍 뒤쪽의 샘물을 살폈다. 원래도 반절 밖에 차오르지 않았던 샘물이 한립이 빠지는 바람에 절반이 사라져 있었다. 이제 남은 샘물의 양은 매우 적었다.

세 노인은 그것을 확인하고 속이 쓰렸지만 한립을 앞에 두고 있어 간신히 미소를 유지했다. 한립 역시 몸에 묻은 물기에서 특이한 향을 맡았기에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이런 행동에 노인들은 불안했다. 오랜 세월 세 가문이 보호해온 샘물을 마음에 들어 하기라도 하면 어쩐단 말인가. 하지만 한립은 샘물은 신경 쓰지 않고 세 노인을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

“오랫동안 세상에 나오지 않아 천남에서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알지 못하네. 세 수사가 최근에 일어난 중요한 일들에 대해 알려줄 수 있겠나?”

“예, 당연히 그래야지요. 혹시 괜찮으시면 저희 황 가의 대청으로 모시겠습니다. 차를 한잔 대접하며 무엇이든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그들은 한립이 그들의 보물인 샘물에 흥미를 보이지 않자 크게 안심하며 공손히 말했다.

“묻고 싶은 것이 적지 않으니 그렇게 하세.”

“선배님 같은 분을 대접할 수 있어 정말 영광입니다!”

황원명이 웃으며 말하고는 몇몇 제자들에게 먼저 돌아가 준비케 했다. 그리고 자신은 한립을 안내하며 산봉우리 중간의 누각으로 향했다.

다른 두 노인들도 제자들에게 무언가를 분부하고는 바짝 그 뒤를 쫓았다.

“세 가문이 이렇게 가까이 지내는 것은 드문 일이구나.”

가는 길에 한립이 이곳 사정을 듣고는 의아해했다.

“저희 같은 가문들은 딱히 갈 곳이 없어 그러합니다.”

황원명이 쓴웃음을 지었다.

“보아하니 제자들 중에 자질이 썩 괜찮은 아이들도 있던데 왜 큰 문파에 보내지 않은 것이냐?  자질만 따라준다면 직전 제자는 아니더라도 외문제자가 되는 것도 가능할 게다.”

“선배님께서 모르시는 게 있습니다. 저희 동유국에는 많은 수도 문파가 있지만 대부분 일부 수도 가문에서만 제자를 선발합니다. 게다가 문파에서 받아줄 걸출한 제자가 한두 명 나오더라도 가문을 유지할 인력이 없기에 쉽게 내보낼 수도 없습니다.”

다른 두 명의 노인 중 살집이 오른 동그란 얼굴의 노인이 한립의 질문에 자세히 답했다.

장로인 노인들도 어린 시절 큰 종파에 들어갔다면 지금보다 더 높은 수행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문의 존속을 위해 미련을 남기면서도 이곳에 남은 것이다.

한립은 눈을 빛내며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머지않아 누각들이 나타났고 노인들이 그를 데려간 곳은 그 중 가장 높은 누각이었다.

잠시 후, 그들이 누각 입구에 다다르자 미리 준비하고 있던 젊은 여제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선배님, 안으로 드시지요. 저희 영린산은 특별한 영초가 나지는 않아도 영차만은 마실 만 하실 것입니다.”

황원명이 이야기를 하며 한립을 누각의 대청으로 안내했다. 대청은 2, 30장 정도로 작은 가문의 대청치고는 넉넉했다.

세 노인의 공경어린 눈길을 받으며 한립이 자리에 앉았다. 노인들은 그의 곁에 서서 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때 아름다운 여제자가 차를 내왔다. 그녀는 한립에게 차를 내주고는 조심스럽게 다시 물러갔다.

한립이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셔보니 처음에는 약간 씁쓸했지만 곧 특이한 향이 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좋구나. 확실히 좋은 차다.”

한립의 입 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선배님께서는 혹시 동유국 분이 아니신지요?”

동그란 노인이 참지 못하고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래, 동유국 수사는 아니다. 물어 볼 것만 물어보고 갈 것이니 여기 남아 너희를 괴롭힐 걱정은 하지 말거라.”

“아닙니다. 선배님 같은 분을 뵙는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걱정이라니요.”

한립이 노인을 보며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짓자 황원명이 화들짝 놀라 안색이 변했다.

“됐다. 나도 저계 수사였던 적이 있는데 어찌 너희 마음을 모르겠더냐. 너희가 대답만 잘 해준다면 나도 그냥 가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든 날 만난 것도 인연이라 할 수 있으니.”

“무엇이든 물으시면 최선을 다해 답하겠습니다! 저희 가문이 규모는 작아도 주변 소식에는 밝으니 절대 실망시켜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한립의 말에 황원명이 크게 기뻐했다.

“추마골 개방 후 수사들이 대거 보물을 찾으러 들어간 일을 알 테지. 여기서 창주가 멀지 않으니 사정을 아는 대로 말해 보거라.”

“추마골이라면 당연히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질문이 나올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던지 황원명이 조금 의아해 하다가 바로 답했다.

“수많은 수사들이 보물을 찾으러 추마골에 들어간 지도 벌써 20여 년이 흘렀습니다. 귀령문이 안전한 방법을 찾아내 결단기 이상의 수사 수백 명이 추마골로 들어갔지요.

추마골은 매우 위험한 곳이었기에 대부분의 고계 수사들은 바깥쪽에서만 머물렀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금제와 공간균열 때문에 살아 돌아온 수사들은 절반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큰일은 귀령문 수사들이 중심부로 들어간 후, 실수로 원영을 삼키는 상고고마 두 마리를 풀어주었다는 겁니다. 귀령문 문주 등은 그 자리에서 죽었고 중심부에 있던 원영기 수사들은 연합해 대전을 벌였지만 겨우 한 마리를 죽이고 다른 한 마리는 추마골을 벗어나 달아났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는 삼대 수사 중 하나인 위 선배님과 모란족 신사까지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 대전에서 적잖은 선배님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추마골이 상고수사들의 성지로 불리는 만큼 살아 돌아온 수사들의 수확도 대단했다고 하더군요. 어떤 선배님께서는 수명을 늘려주고 경지를 올려주는 영단과 공법을 찾았다고 합니다.

이 소식이 퍼지면서 천남 수도계가 시끄러웠고 이후, 또 다시 수많은 수사들이 공간균열과 금제의 위협을 무릅쓰고 추마골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돌아온 수사는 단 한명도 없었지요.

이에 수도계의 분위기는 가라앉았고 이후 추마골은 다시 금지가 되어 아무도 발을 들여놓지 않게 되었습니다.”

“도망간 고마는 어떻게 되었지?”

여기까지 들은 한립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안 그래도 말씀 드리려고 했는데, 그 고마 때문에 천남 수도계가 큰 재난을 겪었습니다.”

황원명의 말에 한립의 안색이 한층 어두워졌다. 한립이 말없이 다음 말을 기다렸다.

“고마가 달아났을 때, 몇몇 선배님들께서 어차피 고마는 인계에 오래 머물지 못하니 곧 이계로 돌아갈 거라고 공표하였습니다. 그래서 다들 안심하였지요.

그런데 고마가 고계 수사들을 습격해 원영으로 원기를 회복하더니 겨우 몇 년 만에 예닐곱 명의 원영기 수사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고도 전혀 돌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죠.

그래서 삼대 수사들이 열댓 명의 원영기 선배님들을 모아 고마 토벌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교활하기 그지없는 고마는 토벌대와 전면전을 벌이지 않고 홀로 다니는 수사를 노렸지요.

심지어 모란인들에게까지 손을 대서 모란인 쪽에서도 대상사들을 파견해 토벌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결국엔 고마도 토벌대에 쫓겨 궁지에 몰렸는데 이를 계기로 고마가 더욱 미쳐 날뛰게 되었습니다.

고계 수사들은 물론이고 저계 수사들까지 마구 도륙하기 시작했지요. 듣기로는 몇 개월 동안 열댓 개의 수도 가문과 몇몇 수도 문파들을 몰살했다고 합니다.

최후에는 죽음이 임박한 어느 마도 종문의 장로가 비술을 펼쳐 고마를 추격하는데 성공했고, 풍도국의 낙혼산에서 고마를 포위했습니다. 원기를 회복한 고마의 수행이 거의 화신기 수사와 비슷해 삼대 수사 두 분과 모란 신사 한 분이 함께 싸워야 했답니다.

엄청난 위력의 공격들이 오고가는 일전에 다른 수사들은 감히 끼어들지도 못하고 낙혼산의 주봉은 그 날로 평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여기까지 말한 황원명이 잠시 숨을 골랐다.

“그 일전으로 고마는 제거 되었는가?”

“그건 저희도 모릅니다. 누군가는 고마가 불가사의한 비술을 써서 위기에서 벗어나 달아났다는데 저희 가문의 역량으로는 소문의 진위를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토벌전 이후 천남 지역에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황원명이 머뭇거리다가 떠도는 이야기까지 말해주었다. 한립은 턱을 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만일 정말 고마를 멸살했다면 위무애 등이 어찌 사실을 감추겠는가. 변고가 생겨서 제대로 된 사실을 공표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뒤로 고마가 사라졌다는 것이 이상했다.

중상을 입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천남 지역을 떠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황 수사, 근 20년간 추마골과 고마의 일 말고 특별한 일은 없었는가?  어떤 일이라도 듣고 싶군.”

한립이 평온히 다른 일에게 대해서도 물었다.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추마골 만한 큰 사건은 없었습니다. 유일하게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던 것은 고마가 사라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무변해 인근의 계국 해안에서 해수면에 갑자기 괴상한 소용돌이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대량의 영기가 뿜어져 나와 뜻밖에도 인근의 무변해 해수면을 정화시켰고, 놀랍게도 소용돌이 주변에 일곱 개의 작은 섬들이 나타났습니다.

각각의 섬은 영기가 대단해 보기 드문 최정상급 영맥을 지니고 있어 이 섬들의 귀속을 두고 삼대 수사들이 연합해 탈도대회를 개최하기도 했었지요.

많은 종파들이 참가했지만 결국 칠대 수도 대파가 섬들의 소유권을 얻게 되었습니다. 소용돌이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많은 수사들이 들어가 보려고 했지만 깊이 들어갈수록 거대한 압력이 밀려와 견딜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삼대 수사 중 한 분인 지양 상인께서는 3천 장 정도까지 내려갔다 어쩔 수 없이 돌아 나오셨다고 합니다.”

잠시 생각하던 황원명은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거대한 소용돌이?  어찌 그런 일이?”

“제가 선배님께 어찌 거짓을 아뢸까요. 이 일은 몇 년 간 수도계를 흔들었던 일이라 아무에게나 물어보시면 바로 사실을 아실 것입니다.”

황원명이 미소를 띠고 말했다.

한립은 이 일에 꽤 흥미를 느끼며 다른 일들에 대해서도 묻기 시작했다. 특히 모란인들과 정마 양도의 동향에 대해서는 자세히 물었다.

황원명은 아는 것에 대해서라면 숨김없이 털어 놓았고 가끔 옆의 두 노인이 보충 설명을 하며 한립을 만족시켜 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근래에 벌어진 크고 작은 일들을 알 수 있었다.

추마골과 소용돌이에 관한 소식을 제외하면 기껏해야 영약이나 보물이 발견 되었다는 이야기, 종파간의 다툼이었지만 한립은 시종일관 진지하게 세 노인의 말을 들었다.

다만 낙운종에 관해서는 묻지 않았다. 어차피 계국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이런 작은 가문에서 구체적인 사정을 알 턱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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