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478화 (235/2,000)

# 478

478화. 고마를 가두다

검은 빛과 푸른빛이 한데 얽혀 새까만 날이 웅웅 울어대자 공간이 왜곡되었다. 푸른 거검은 조금씩 물러나기는 했지만 영기를 여전히 진하게 발산하고 있었다.

마혼의 두 머리가 의아하다는 듯 한립을 바라보았다.

그는 몰랐지만 한립의 청죽봉운검들은 제련한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고 경정도 들어가 있지 않았지만 지난번에 연정(煉晶)을 이용해 다시 제련한 이후로 강도가 다른 법보에 비해서는 훨씬 강력했다.

그러는 사이 푸른 거검에서 갑자기 천둥소리가 울리고 무수히 많은 금색 뇌전들이 튀어나왔다.

치직! 파칙!

쾅!

우세하던 새까만 칼날이 금빛 뇌전과 만나 붕괴됐다. 푸른 거검은 아무 것도 막는 것이 없자 그대로 마혼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마혼은 아무 생각도 없다가 푸른 거검이 금뢰죽으로 만든 법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벌써 열댓 장 밖으로 몸을 옮긴 후였고 거검은 허공을 내리쳤다.

마혼도 표정이 조금 가라앉더니 네 손을 비벼 또 두 개의 새까만 빛덩이를 허공에 띄웠다.

검은 빛은 곧 새까만 창으로 변해 공명했다.

그가 이를 악물고 정혈을 두 번 토해냈고 각각이 새까만 창에 닿아 흡수되었다. 창들이 몸을 부르르 떨며 핏빛으로 물들었다.

아마 상당한 원기를 소모했는지 피를 쏟은 마혼의 두 머리는 힘이 없어 보였다. 푸른 거검이 다시 쫓아와 마혼의 머리를 내려쳤다.

이번에는 핏빛 창 두 자루가 거검을 상대했다.

쿠쾅!

금빛 뇌전이 번뜩였지만 핏빛 창들은 벽사신뢰를 맞으면서도 붕괴되지 않았다.

결국 거검이 몇 장 밖으로 튕겨나갔고 빛도 한층 암담해졌다. 거검을 조종하던 한립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가 다시 평정을 되찾았다.

거검이 손상되었으니 의식이 연결된 한립이 영항을 받는 것은 당연했다. 한립은 더 기다릴 것 없이 손짓했다.

거검이 웅웅거리며 수십 개의 푸른빛으로 해체되어 한립에게 돌아가려했다.

“어딜 가려고?  비검은 놓고 가거라.”

마혼이 비검들이 사라지려는 것을 보고 핏빛 창을 가리켰다. 빛이 번들거리면서 창이 순식간에 거대한 핏빛 손 두 개로 바뀌어 비검을 뒤쫓았다.

한립이 이렇게 많은 금뢰죽 법보를 방출했으니 돌아가게 둘 수 없었다. 마혼이 자신도 마기를 잔뜩 방출하며 그 뒤를 쫓았다.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지만 한립은 이런 술래잡기를 즐기고 있었다.

옆에서 기다리던 은발 노인이 좌불안석하며 손바닥을 뒤집어 노란 검을 꺼냈다. 한립을 돕기 위해서였다.

“정 사형, 저 마물을 가둔 후에 움직이셔도 늦지 않습니다.”

노인이 비검을 날리기 전에 한립이 전음을 보냈다. 은발 노인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공격을 멈추고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한립이 법결을 날리자 무질서하게 날아오던 비검들은 하나로 모여 푸른 안개를 만들어냈고, 핏빛의 거대한 손은 아무런 수확도 거두지 못했다.

비검들이 전부 한립에게로 돌아가자 마혼은 크게 노했다. 마혼이 거대 손을 가리켰다. 돌아온 거대 손들은 그의 머리 위를 선회하며 핏빛의 장도 두 자루로 변했다.

이상한 소리를 내며 마기가 아무 조짐도 없이 한립을 향해 밀려들더니 마혼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덮쳐오는 마기를 보며 한립도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좁혔다. 몸에서 금빛 뇌전을 불러내 금빛 그물을 만들었는데, 마기를 막는 동안 마혼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순간 멍해진 한립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말도 없이 정 노인의 팔을 잡고 푸른 빛줄기로 변해 자리를 피했다.

그들이 있던 자리에 검은 빛이 반짝이며 마혼이 몇 장 밖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마혼은 이번 기습이 통할 거라 여겼던지 의아한 얼굴이었다.

한립은 속으로 마혼의 음흉함에 몸서리쳤다. 밑에서 기습할 생각을 하다니 빨리 피하지 않았으면 명청령안을 지니고도 두 동강이 날 뻔했다.

그는 삼색 서금충으로 만든 갑옷과 얇은 보호막이 상대의 장도를 막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옆의 은발 노인도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마혼이 그 자리에서 다시 검은 빛으로 변해 쇄도했다.

그러나 이번엔 한립이 미소 지었다. 검은 빛줄기가 몇 장 가기도 전에 앞에 금실이 나타나 갈랐던 것이다.

캉!

금빛 실이 뜻밖에도 검은 빛줄기에 부딪쳐 잠시 멈추었지만 곧 핏빛 장도 두 자루를 튕겨냈다. 마혼이 그것을 보고 놀란 얼굴을 했다.

금실은 다시 허공에서 보이지 않았다. 한립이 드디어 준비하던 대경검진을 펼친 것이다.

그는 수결을 맺으며 의식으로 대경검진을 조종했다. 무수히 많은 금실들이 나타나 반짝거리며 사방에서 중앙을 향해 좁혀왔다.

이제야 한립의 함정에 걸려든 것을 안 마혼이 얼굴을 굳혔다. 화가 난 그가 양쪽의 도를 휘둘러 몇 개의 핏빛 기운을 날려 보냈다.

수십 개의 금실이 나타나 핏빛 기운을 조각내 버렸고 빛이 되어 흩어졌다. 마혼도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핏빛 장도 두 자루를 합쳐 거대한 핏빛 칼날로 만들어냈다.

네 개의 팔을 들어서 휘둘러보니 핏빛이 눈부시고 몇 장 크기의 초승달 모양의 기운도 슝슝 날아갔다.

거대한 칼날이 다시 날아가 금실을 몇 개 끊어냈다. 그러나 빼곡한 금실 중 겨우 몇 개만 끊어내고는 칼날의 핏빛이 눈에 띄게 암담해졌다.

사방에서 금실이 천천히 밀려들고 있어 마혼도 드디어 당황하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은발 노인은 너무 기뻤다. 한립이 이렇게 대단한 술법을 지니고 있을 줄이야.

중앙에 있던 마혼이 몇 가지 둔술을 써보다가 검은 기운을 새까만 실로 바꿔 날렸다. 금실이 허공에서 나타나 새까만 실을 막았다.

거대한 칼날을 쥐고 전신에 핏빛 보호막을 만들어 또 한 번 빠져나가려 해보았지만 금실은 굉장히 날카로울 뿐 아니라 하나하나가 엄청난 힘을 품고 있었다.

눈앞의 검진이 좁혀 들어오자 마혼이 버티지 못하고 두 개의 머리로 길게 울부짖었다. 가느다란 목소리와 굵은 목소리, 서늘한 목소리와 부드러운 목소리가 섞인 채였다.

한립이 미간을 좁혔다.

마혼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화염 속의 다른 고마도 똑같이 길게 울부짖으며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칠흑 같은 화염에 둘러싸인 똑같이 생긴 거대한 마물이 순식간에 백 장 거리로 다가왔다. 그러자 한립의 안색이 달라졌다.

“사제! 우리 쪽 원군들도 왔네!”

이때 은발 노인이 기뻐하며 소리쳤다.

그 소리에 한립이 멀리 시선을 보내자 두 곳에서 각각 한 무리씩 수사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한립은 검진에 갇혀 있는 마혼과 다가오는 다른 마물을 보았다.

그리고 무슨 결심을 했는지 갑자기 머리 위에서 대기하던 보라색 불새를 가리켰다. 동시에 불새가 두 날개를 펼치고 다가오는 고마를 맞이하러 날아갔다.

그의 한 손에서 회수했던 혈마검이 다시 나왔다.

다른 손에는 핏빛이 반짝이며 핏빛의 부적을 꺼냈는데 새빨간 주술이 흐르는 강령부였다.

강령부는 전쟁 막바지에 사용했지만 겨우 3분의 1을 소비했을 뿐이었다. 한립이 주저 없이 핏빛 부적을 자신의 몸에 붙였다.

영부가 순식간에 사라져 보이지 않았고 거대한 교룡의 그림자가 한립의 몸에 떠올랐다. 족히 열 장은 될 법한 팔급 요수 독교의 모양이었다.

교룡의 그림자는 길게 울부짖었다.

울음소리가 가시고 교룡의 그림자가 날아올라 한립의 등 뒤로 스며들었다. 그의 등에 붉은 빛이 나며 교룡의 문양이 생긴 것이다.

한립의 몸에서 핏빛이 반짝이며 뺨과 손등에 손톱만한 핏빛 비늘들이 생겨났다. 작은 교룡의 뿔이 머리에서 솟을 때는 잠깐 아프기도 했다.

언뜻 보면 변신한 한립은 진법 속의 마혼과 조금 비슷했다. 하지만 한립은 여전히 그의 얼굴을 유지했다.

한립은 강령부를 이용해 순식간에 원영 초기의 최고봉까지 수행을 끌어 올렸다. 중기와는 정말 종이 한 장 차이였다.

이제 그는 몸에서 푸르고 붉은 두 가지 빛을 내며 양 손으로 혈마검을 붙들고 있었다. 혈마검이 크게 진동하며 몇 배 커졌고 피비린내도 더욱 심해졌다.

한립의 이마에 솟은 뿔은 교룡의 혼백의 힘을 대량 사용해서 그런지 눈부신 빛을 내고 있었다.

그는 결심을 했다. 겨우 검진에 가둔 고마를 다른 고마가 와서 구출하게 둘 수는 없었다. 둘이 하나로 합해지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다가오던 또 다른 마물이 벌써 코앞까지 다가왔다.

일단 하나를 죽이면 나머지 마물은 지금 날아오는 수사들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비록 혈마검을 이용하면 후환이 있을 테고 원기가 크게 상하겠지만 한 마리를 죽이고 나면 멀리 달아나 더는 이 싸움에 끼어들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가 홀로 한 마리를 상대하고 죽였으니 다른 수사들도 원망하지 못 할 것이다. 이때 혈마검이 한립의 영력을 거의 다 빨아먹고 예닐곱 장 까지 커졌다.

검진 속의 마혼이 그것을 보고 드디어 두려운 기색을 보였다.

“인간 수사가 성계의 성물을 남용하다가 마화라도 되고 싶은 게냐?”

마혼이 참지 못하고 두 머리가 동시에 소리쳤다. 한립이 냉소하며 그를 무시했다.

마혼은 분노했지만 상대가 상당한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자신의 숨통을 끊어놓으려 하다는 것은 알아차렸다. 그가 갑자기 칼날을 들어 자신의 팔 하나를 잘라냈다.

상처 부위는 거울처럼 반짝였고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것이 괴이했다.

잘린 팔이 떨어지려는 순간 다른 손이 그것을 잡아챘다. 이후 입을 벌려 정혈을 뱉어내자 팔이 혈마검과 비슷한 장검으로 변해갔다.

마혼이 검에 마기를 주입하자 검이 급속도로 커졌다. 한립이 의외의 모습을 보고 상대의 독한 수법에 흠칫 놀랐다.

팔을 잘라 만든 검의 위력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가볍게 볼 수는 없었다. 그가 법력 주입을 멈추고 혈마검으로 마혼을 향해 내리쳤다.

상대가 뼈로 만든 검의 위력을 끌어올리도록 기회를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열댓장 길이의 핏빛 검기가 소리 없이 검진을 향해 나아갔다.

검진에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피비린내가 진동했고 공간이 왜곡되어 주위에서 웅웅거리는 진동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마혼은 당황스러웠다. 분명 검이 극성으로 위력을 발휘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기억대로라면 인간 수사는 절반 이상의 위력을 발휘하기도 어려울 텐데 상대의 변신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상고 대전을 경험하고 인간들이 개발해낸 강령부의 존재를 몰랐던 것이다. 지금은 오래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마혼은 아직 충분히 마기를 주입하지 못했지만 뼈로 만든 검을 추켜올리며 크게 울부짖었다.

잠시 후 두 검기가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쿵!

마른하늘에 벼락이라도 내려치는 것처럼 두 검기가 서로 교전하며 돌풍과 기운의 파동이 폭발했다. 은발 노인은 열댓 걸음을 물러나고서야 안정을 찾았을 정도였다.

한립은 원영 중기에 맞먹는 수행을 지녔기에 한 걸음 정도 물러나려다가 꼼짝하지 않았다. 마혼도 영기의 파동에는 신경 쓰지 않고 긴장된 기색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중이었다.

“아!”

“......!”

한립과 마혼이 동시에 탄성을 터트렸다.

영기의 파동이 지나고 주먹만 한 새까만 구슬이 검기들 사이에 나타나 순식간에 몸을 늘렸다 줄였다 했던 것이다.

별안간 네다섯 장 너비의 새까만 무언가가 허공에 나타났다. 한립은 거리가 너무 가깝고 빛이 강해서 상황을 파악할 새도 없이 말려들었다.

그나마 열댓 걸음 밖으로 물러나 있던 은발 노인은 무사할 수 있었지만 거대한 흡인력이 그들을 빨아들였다.

“공간균열!”

한립이 이런 사실을 깨닫고 억지로라도 빛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런데 법력을 운영하려던 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체내의 영력이 갑자기 사라져 아주 약간의 법력도 끌어올릴 수 없었던 것이다.

공간균열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그는 황급히 아래쪽에 펼쳐둔 청죽봉운검들을 불러들였다.

한립 뿐만 아니라 똑같은 일을 당하고 있는 마혼도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빛이 번뜩이고 한립과 마혼은 아무 반항도 하지 못하고 공간균열에 삼켜졌다. 바로 그때 멀리서 분노한 괴성이 가까워졌다. 바로 또 다른 거대한 육체의 고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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