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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475화 (232/2,000)

# 475

475화. 내막

은발 노인은 한립이 마물의 위험성을 강조하는 것에 꽤 놀란 듯 했다. 곧 은발 노인은 양 옆의 수사들에게 한립에게 들은 바를 얘기했다.

그때 녹색 구름 속에서 목이 쉰 위무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수사가 아니시오?  다들 수사 분들도 때맞춰 와주었습니다. 저 마물은 상고시대 때 우리 인계를 침략했던 고마입니다. 추마골에 봉인되어 있던 것을 왕 문주 등이 실수로 풀어주었는데 왕 문주와 왕천고 수사는 봉인이 풀리며 공간균열에 빨려 들어가 이미 죽었고, 저만 요행히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원기를 크게 상해 오래 버티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나마 상고수사들이 걸어놓은 봉인이 남아있지만 체내의 마화를 이용해 풀어내는 중이니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봉인이 풀리면 추마골 안의 수사들이 전부 힘을 합쳐도 그를 상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위무애의 목소리에는 뜻밖에도 초조함이 묻어났다. 정말 부상이 심각한 것인지 말을 하며 녹색 구름 속에서 튀어나왔는데 얼굴에는 핏기가 하나도 없었고 눈빛도 좋지 않았다.

한립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걱정이 되었다.

본래 위무애가 주령으로 나서 싸우면 곁에서 도움이나 주려고 했는데 이제는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령호 노인과 은발 노인 등 다른 수사들도 서로 눈치를 살피기는 마찬가지였다. 위무애도 마물의 적수가 안 된다면 그들이야 오죽하겠는가.

당장이라도 달아나고 싶었지만 어쨌든 이건 수사간의 다툼이 아니라 천남 수도계를 대표해서 마물을 막는 일이었다.

“크게 걱정할 것 없습니다. 의식으로 살피니 다른 수사들도 날아오고 있고, 모란 법사 쪽에도 전음부를 보내 놓았으니 천남에서 기반을 잡기 위해서라도 지원을 올 겁니다. 잠시만 버텨주시면 됩니다.”

수사들의 난감한 기색을 보고 위무애가 조금 부드러운 말투로 좋은 소식을 전했다. 그 말에 수사들은 한시름을 놓았다. 마물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잠시 시간을 끄는 것이라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허공에 떠있던 마물도 그들의 대화를 들었는지 굳게 닫고 있던 두 눈을 떴다. 마물의 시선이 수사들을 훑자 다들 등골이 서늘해지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대연결을 수행해 의식이 강대한 한립조차 마음이 불편해져서 순간적으로 남색빛이 일렁이는 눈으로 상대를 직시했다. 만일 지금 두려운 마음에 굴복해 피한다면 앞으로 마음속의 그림자로 남아 고마와 관련 된 일에 위축될 수도 있었다.

고마가 한립의 대응에 조금 의외였는지 서늘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한립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상대를 직시했다.

그러나 그 옆에 있던 령호 노인과 백의 여인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몇 걸음 물러났고 다른 이들도 안색이 달라져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때 고마가 한 손을 들어 검은 화염을 분출했는데 사람 머리통만한 검은 화염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한립은 놀라기도 했지만 황당했다.

검은 불덩이의 목표는 한립도 다른 수사들도 아니고 허공이었던 것이다. 검은 화염이 폭발하고 십여 장 범위에 화염의 물결이 출렁거렸다.

놀라운 점은 그 화염 속에서 쌍두사비의 괴물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가 네 개의 팔을 휘둘러 화염을 뭉치더니 앞쪽 머리가 한 입에 검은 화염을 삼켜버렸다.

“역시 너였구나. 이제야 너를 찾았어.”

악귀 머리에 인간의 신체를 한 고마가 탄식했다.

“담도 크구나. 감히 나를 공격하다니. 보아하니 벌써 자의식을 찾았어. 당시 너를 내보내 수사의 원신을 삼키게 한 것이 잘한 일이었는지 알 수 없구나.”

남롱후가 흉악한 미소를 지으며 적의를 드러냈다.

“내가 너고 네가 나라면 자의식이 생긴 마당에 왜 내가 네 말을 따라야 하지?  게다가 성계에서는 분신에 의해 주의식이 잡아먹히는 일이 드문 것도 아니고 말야.”

악귀 머리 고마의 말투가 냉담했다.

“하지만 통제를 벗어난 네가 인간 수사들을 불러들여 봉인된 내 육체를 노릴 줄은 몰랐구나. 심지어 봉인을 푸는데 해체화형대법을 쓰다니! 그렇게 되면 강제로 봉인을 풀 수는 있어도 원기가 크게 상한다는 것을 몰랐더냐?  적어도 3분의 1의 수행이 날아가겠지.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느냐?”

고마 혼백의 두 머리가 굳으며 살기를 드러냈다.

“흥! 네 육체라니. 나도 원래 원신의 일부였으니 이건 내 육체도 된다. 게다가 수행이 줄어들어도 너를 잡아먹고 인계를 종횡무진 하는 데는 충분하다. 때가 되어 다시 성계로 통하는 상고통로를 열어 성조들께 큰 공을 세우고 성조의 일원이 된다면 그까짓 수행이 대수겠느냐.”

악귀 머리의 고마가 냉소했다. 그러자 남롱후는 주변에 있는 수사들을 보고 상대 고마에게 말했다.

“우리 둘 중 누가 누굴 잡아먹을지는 나중에 따지지. 일단 수사들의 원영으로 보신을 한 후에 따로 조용히 해결하는 것으로 말이야. 우리가 싸우는 틈에 저들만 덕을 보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몸에 남은 금제를 아직 다 풀지는 못했지만 네가 나서지 않아도 저것들은 전부 죽일 수 있다.”

악귀 머리의 고마가 차분히 말하며 눈에서 자홍색의 요기를 번뜩였다.

“자신하지 말라고! 저들 중에 꽤 까다로운 녀석도 있으니까.”

남롱후가 냉소하며 시선이 한립에게로 향했다.

그들이 듣기로 하나는 주원신이고 나머지는 두 번째 원신인데 고마들은 마혼과 분혼으로 부르는 모양이었다. 지금 육체를 차지한 것은 두 번째 원신이었고 물과 불 같은 상극이었다.

령호 노인과 은발 노인 일행은 고마들이 협공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가자 안색이 급격히 나빠졌다.

한립이 생각을 정리하고 차분히 위무애를 바라보았다.

“위 수사, 힘들겠지만 한쪽을 맡아 시간을 끌어주셔야겠습니다. 여기 계신 수사들이 위 수사를 도와주는 동안 저와 다른 수사들은 일단 다른 마물을 상대하지요.”

“그럽시다. 하지만 상대의 금제가 거의 풀려가는 중이라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소.”

위무애가 잠시 생각하다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차피 다른 수사들이 오고 있으니 시간을 오래 끌수록 좋았다.

령호 노인과 백의 여인은 위 수사를 도우라는 한립의 명령에도 반발하지 않았다. 어쨌든 수도계는 실력으로 서열이 매겨지는 곳이었고 그의 계획에 이상한 점은 없었다.

고마들은 인간 수사들이 상의할 틈을 주지 않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악귀 머리의 고마가 먼저 움직이자 전신에서 검은 빛이 번뜩이며 하늘이 어둑해졌다. 검은색과 보라색 빛이 미친 듯이 터져나가며 사방팔방에 돌풍이 불었다.

그 위에 위치하던 고마의 혼백은 묘한 표정을 듣더니 빛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수사들도 이제 대대적인 전투가 시작되었음을 깨달았다.

위무애의 몸에서 녹색 빛이 크게 번져 다시 독무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유유히 떠있던 구름이 거세게 움직이며 열댓 마리의 청록색 이무기로 변한 독구름이 기세를 떨치는 검은빛을 잠시 막아냈다.

이에 령호 노인과 백의 여인이 곧바로 위무애에게 날아갔다.

위무애가 미리 둘을 위한 통로를 준비해 두었기에 령호 노인과 백의 여인은 안전하게 독무 속으로 진입했다.

한립은 그들이 날아가자 정 노인 일행을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고마의 마기가 변한 검은 장막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당황하지 않고 가운데로 모여 각자의 방어 보물을 꺼내 단숨에 대여섯 층의 두꺼운 보호막을 쳤다.

그리고 한립의 꼭두각시들이 흉악한 얼굴로 입을 벌리자 농염한 회백색 음기가 새어나와 세 수사를 아예 그 안에 감춰버렸다. 동시에 한립의 귓가에 은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사제, 마물의 실력이 상당한 것 같으니 모여 있는 것이 더 안전하지 않겠나?”

하지만 여럿이 한 데 모여 있으면 조금 더 안전해지겠지만 행동반경은 좁아진다. 게다가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보다는 홀로 행동하는데 익숙한 그에게는 맞지 않는 전략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기로 만들어진 빛의 장막이 그의 머리까지 퍼졌다. 한립이 미간을 좁히며 푸른빛을 번뜩여 보호막을 만들어냈다.

이어 수결을 맺으며 열 손 가락을 튕겨내니 열댓 개의 푸른 비검들이 날아올라 빛의 장막을 손쉽게 갈라버렸다.

그러나 머리 위로 내려오는 빛의 장막은 흩어졌지만 이미 사방이 고마의 빛의 장막으로 어두운 보랏빛이었던 것이다.

적어도 반경 십 리를 뒤덮은 빛의 장막을 보며 상대의 능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의 손짓이 느려지자 흩어졌던 빛의 장막이 다시 원형을 되찾으며 덮어졌다.

이번에 한립은 소매에서 푸른 방패를 꺼내 주위에 보호막을 하나 더 만들고는 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이제 어두운 보랏빛 속에 완전히 잠기게 되었다.

고마가 이렇게 방대한 술법을 펼친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잠시 후, 그는 무언가를 감지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몸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펼쳐 놓은 두 겹의 보호막에서 법력이 유출되고 있었다. 아주 미세해서 버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두운 보랏빛의 빛의 장막이 놀랍게도 수사의 법력을 흡수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한립이 두 주먹을 쥐니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두꺼운 금빛 뇌전이 그의 손에서 튕겨 나온 것이다. 신속하게 두 겹의 보호막으로 간 뇌전이 폭발했다.

치치치직!

보호막 표면에 무수히 많은 뇌전이 번뜩이며 다가오는 빛의 장막을 몇 촌 가량 밀어냈다. 다행히 이렇게라도 법력 유출을 막을 수 있었다.

그는 다시 천절마시와 꼭두각시들을 불러 자신을 감싸게 했다. 열댓 마리의 거북 요수들이 등딱지에서 한기를 분출해 수정과 같은 얼음송곳들을 만들어냈다.

이 모든 것이 극히 순식간에 벌어졌다. 한립이 그제야 명청령안을 발동해 남색빛이 일렁이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식간에 고마의 혼백이 깃든 남롱후의 종적을 놓친 한립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곧 심호흡을 하며 불안을 가라앉힌 그가 전신의 영력을 끌어올려 주변의 푸른빛을 키웠다.

그러자 눈동자에서 일렁이는 남색빛도 진해졌다. 명청령안을 극성으로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이번에는 단번에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안색이 변하며 등 뒤의 거북들의 얼음송곳을 분출해 어딘가를 공격하게 했다.

어두운 보랏빛 기운 속에서 쌍두사비의 마혼이 깜짝 놀라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손에는 깃발과 원반 그리고 검이 들려있었다.

하늘을 뒤덮을 듯한 기세로 날아드는 얼음송곳을 보며 마혼이 보물을 든 세 팔을 동시에 휘저었다.

깃발은 검은 안개를 내뿜었고 검은 허공에서 춤을 추었는데, 방금 빼앗은 고리는 어찌 활용법을 알았는지 무수히 많은 고리의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얼음송곳들은 떨어지기도 전에 이런 보물들의 공격에 대부분 깨져나갔지만 주변의 온도는 급격히 떨어졌다.

마혼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음산하게 웃으며 다시 빛의 장막 속으로 사라졌다.

한립은 굳은 얼굴을하고 혀로 입술을 핥았다. 고마는 수도계에 들어와 만난 적들 중 가장 골치 아픈 존재였다. 한 순간의 실수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명청령안을 극성으로 발휘해도 빛의 장막에 숨은 마혼은 아주 흐릿하게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움직임도 빨라서 이동하고 있을 때는 더욱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명청령안을 펼치는데 너무 집중해서 다른 신통력을 발휘하기 어려웠고 조금만 법력을 거두면 마혼은 찾아 낼 수 없었다.

한립은 답답했지만 유일한 방법은 단시간 내에 상대가 은닉술을 펼치지 못하게 하거나 혹은 상대가 은닉술이 무용지물이라고 느끼게 하는 것뿐이었다.

계획을 세우면서도 그는 멈추지 않고 움직였다. 영수대를 스쳐 대량의 서금충들을 불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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