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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471화 (228/2,000)

# 471

471화. 급변

무수히 많은 하얀 점들이 허공을 떠다니는 안개 속에서 한립은 돌연 수결을 맺어 눈부신 보호막으로 자신의 몸을 감쌌다.

그런데 갑자기 돌풍이 불어와 하얀 빛의 점들이 마치 불길 속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그를 향해 덤벼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풍은 더욱 거대해져 모래와 암석들이 휘몰아쳤다. 곧 마귀라도 나타날 것 같은 흉흉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돌풍 속의 한립이 무언가를 중얼거리자 돌풍이 몸을 떨며 천천해 흩어졌다.

돌풍이 사라지자 갑자기 주변에서 파도 소리가 들리더니 끝없는 망망대해가 나타났다. 백 장은 될 법은 거대한 파도가 연달아 밀려들어 한립을 가두려는데 그의 두 손이 수결을 맺자 남색빛이 치솟았다.

돌연 한립이 법결을 날리자 거대한 파도가 사라지고 그 대신 불길이 치솟아 수십 장 크기의 거대한 불 구렁이들이 날아들었다…….

화염, 빽빽한 밀림, 끝없는 사막, 빙하 등 기상천외한 풍경이 한립의 조종에 따라 환영으로 완성되었다. 마치 신이라도 된 듯했다.

한립은 자신감이 넘쳐 법력을 응결해 천 장 높이의 거대한 거인을 만들어냈다. 거인이 가슴을 두드리며 포효하자 별안간 사방에서 은빛이 쏟아지며 공간이 울렁였다.

잠시 후, 거인은 눈처럼 녹아 사라지고 한립은 빛이 주는 고통에 비명을 질러댔다. 세계가 은빛에 녹아 붕괴되고 있었다.

“헉!”

한립은 현기증을 느끼며 눈을 부릅떴다. 은색빛은 물론이고 온 세상이 사라져있었다!

그는 지금 밀실에 홀로 앉아 식은땀을 흘리는 중이었다.

길게 숨을 토해내며 평정을 되찾은 그는 자신이 추마골 어딘가의 밀실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제련에 성공한 조화단을 삼키고 환각에 빠져든 것이다.

한립이 바로 일어나지 않고 환각 속에서 겪었던 일을 되뇌었다. 등을 쓸어 보니 장포가 축축할 만큼 땀에 젖어있었다.

한립은 입 꼬리를 비틀었다.

조화단의 효과가 기묘하지 않은가. 그처럼 강한 의식을 지닌 이조차 영단을 복용하고 즉시 환각에 빠지다니. 낯선 세계에서 그는 수많은 법결을 부릴 수 있어 말 그래도 산을 옮기고 바다를 뒤집을 만한 절대적인 존재였다.

깨고 나니 사용하던 구결이며 공법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지만 자유자재로 영기를 다루던 감각은 남아 있었다.

한립은 두 눈을 감고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는 반나절을 그렇게 보내며 안정을 찾아갔다.

몸을 일으킨 그는 장포를 털며 석문으로 차분히 걸어 나갔다. 그러자 하얀 빛이 석벽 속에서 빠져 나와 그의 소매 속으로 들어갔다. 바로 은월이 변한 작은 여우였다.

“며칠이나 지났지?  그간 무슨 일은 없었더냐.”

“주인님께서 폐관하신지는 이틀이 지났고, 자령 소저가 먼저 출관해 찾아왔었으나 동굴의 금제를 보고는 다시 돌아갔습니다.”

차분한 그의 물음에 은월이 공손히 답했다.

“자령의 수행이 낮으니 조화단이 미친 영향도 적었겠지. 그런데 은월 네가 조화단을 복용하길 원치 않은 것이 의외구나.”

“아시다시피 저는 인간 수사가 아니라 은월랑족이었습니다. 거기다 지금은 여우 요수의 몸을 빌려 수행을 쌓고 있는데 어찌 인간 수사들이 먹는 영단을 아무렇게나 복용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도 모르는데 함부로 모험할 수는 없지요.”

소매 속의 은월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한립이 미간을 좁히며 생각에 잠겼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

어차피 제련하고 남은 영촉과는 이미 조화단을 복용하기 전에 생으로 먹어치웠다. 조화단처럼 경지를 높여주지는 못해도 수행이 늘어났을 것이다.

그가 동굴 입구를 빠져 나오자 꼭두각시 요수들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저물대를 풀어 던지자 하얀 빛이 새어나와 꼭두각시들을 빨아들였다.

동굴 입구를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산봉우리에서 빛줄기가 날아들었다.

한립이 빛줄기를 확인하고 근처에 심어 두었던 진법 깃발과 원반을 회수했다.

“한 형, 드디어 나오셨네요. 반나절은 더 기다려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빛줄기 속에서 자령이 나타나 그를 향해 웃었다. 그녀의 미소에 주변이 밝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약효가 잘 들었나 보오. 몇 년 만 지나면 결단 중기에 무리 없이 들겠소. 미리 축하하오.”

“한 형에 비할까요. 저야 수십 년을 아낀 것이지만 한 형은 원영 중기에 한 층 가까워진 것 아닙니까.”

“자령 수사는 조화단이 결단기 수사와 원영기 수사에게 동일한 효과를 준다고 보시오?  아무리 화신기 이하의 수사가 복용하면 효과가 있다지만 수행이 낮을수록 효과가 큰 것은 당연한 이치요. 결단기 수사라면 분명 경지가 높아지겠지만 원영기 수사는 확실치 않소.”

“이백 여 년 만에 원영기에 이른 한 형의 자질이라면 원영 중기가 문제겠어요?”

‘내 자질? ’

한립은 자령의 말에 속으로 쓴웃음을 짓고는 그저 고개를 저었다.

쿠르릉! 콰쾅!

자령이 빙그레 웃으며 무언가 말하려는데 어디에선가 굉음과 진동이 울려 퍼졌다.

한립은 괜찮았지만 자령은 허공에 떠 있다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떨어질 뻔 했다.

“이게 무슨 일이죠?”

한립도 놀라기는 마찬가지라 그녀의 질문에 답할 새도 없이 굉음의 진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긴 지도에 표시된 방향인데? ’

속으로 이런 의문을 품고 있는데 멀리서 하얀 실 같은 것이 빛났다. 처절한 절규가 벼락처럼 울리며 하얀 실은 구불구불하게 변해 하얀 기운으로 밀려들었다.

하얀 파동이 지나면서 강한 충격으로 기암괴석이 난무하던 거대한 산도 평지가 되었고 엄청난 속도로 그들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뭐야!’

말도 안 되는 기이한 일에 한립이 기함을 해서는 소매를 털어 남색 방패를 불러냈다. 그리고 방패가 솟아오르며 그의 앞을 막아섰다.

그가 방패를 가리키자 남색빛이 분출되며 보호막이 형성되었다. 그러고도 안심하지 못하고 입에서 주먹만 한 남색 화염을 뿜어 열댓 장 앞에서 폭발하게 만들었다.

강한 남색빛이 번뜩이고 그 냉기가 한층 한층 쌓여 별안간 오십 장은 되는 남색 빙산이 형성되었다.

자령이 대경실색해서 비단천으로 보호막을 만들었다가 한립이 빙산을 만들어낸 것을 보고 즉시 그의 옆으로 이동했다.

콰콰콰콰쾅!

그 순간 멀리서부터 하얀 기운의 파동이 덮쳐왔다.

온 세상이 어두워지고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한 폭음이 들려오더니 보호막 바깥쪽의 빙산이 흔들리며 엄청난 굉음을 냈다.

빙산이 당장이라도 허물어 질 것 같아 자령이 창백한 얼굴로 한립을 보았다. 그러나 한립은 거대한 방패가 만들어낸 보호막 속에서 차분한 얼굴로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제야 자령도 안심했지만 그녀의 예상과 달리 그는 법보를 꺼내거나 술법을 펼치지 않았다.

남색 빙염으로 만들어낸 빙산은 거대한 암석과 기운의 파동에 흔들리면서도 놀랍게도 흠집이 나지 않았다.

일다경이 지나자 굉음도 하얀 기운도 그들 뒤로 멀리 사라져갔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요?”

자령이 한숨을 내쉬며 비단천을 거둬들였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영기의 파동이 심상치 않았소. 이런 엄청난 영기의 파동은 일반적인 수사가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인데. 설마 공간균열에 문제가……?  중심부 금제도 버텨내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원영기 수사라면 몰라도 외곽의 결단기 수사들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한립이 중얼거렸다.

자령도 그의 말에 긴장해 의식을 퍼트려보았지만 너무 먼 곳에서 시작된 영기의 파동이라 그녀의 수행으로는 아무것도 감지할 수 없었다.

“정말 이상하네요. 한 형, 설마 가볼 생각인가요?”

“어찌 그러겠소?  방금 파동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이든 가봐야 좋을 일이 없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괜히 화를 자초하지 말고 돌아갑시다. 아마 변고가 벌어졌으니 귀령문 수사들도 우리를 추적할 틈이 없을 거요.”

한립이 주저 하다가 결정을 내리곤 남색방패를 거둬들었다. 남색 빙산은 그가 가볍게 손바닥을 가져다 대자 남색빛이 번지며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그리고 남색 화염도 다시 그의 손바닥에 흡수되었다. 이렇게 빙염을 다시 체내로 돌리는 수법은 환각 속에서 경험한 것을 떠올려 써본 것이었다.

이로써 환각 속에서 그가 체득한 것이 그저 거짓이나 착각이 아니라 정말 다음 경지로 올라가는데 도움이 될 만한 깨달음이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한립이 미소 지으며 자령을 향해 무언가 말하려다가 갑자기 그들 뒤에서 빛줄기 두 개가 날아오는 것을 느꼈다.

노랗고 하얀 빛줄기는 마치 무언가에 쫓겨 정신없이 달아나는 듯 보였다. 의식으로 그들을 훑어본 한립의 표정이 미미하게 달라졌다.

“한 형 아는 분들이니까?”

“알뿐 아니라 약간의 인연이 있는 이들이오.”

한립이 미간을 좁히며 다가오는 빛줄기들을 응시했다.

초조하게 날아오는 황색 장포의 노인은 황풍곡 령호 사조였고, 그 옆의 창백한 얼굴은 엄월종 대장로이자 남궁완의 사저였다.

‘이들도 추마골에!’

겁에 질린 얼굴로 죽을힘을 다해 도망치는 그들을 보자니 더욱 기분이 묘했다.

령호 사조는 원영 중기의 수사였고 남궁완의 사저 역시 공법이나 지닌 법보가 남달랐는데 둘이 협공을 해도 이겨내지 못할 상대가 있다니 믿기 어려웠다.

‘설마 모란 법사인 중 신사가 추격하는 것인가? ’

모란 법사와의 관계가 가장 최악인 것은 바로 그였다. 적잖은 모란 법사들을 죽였으니 중 신사를 이런 곳에서 마주친다면 바로 공격당할 수도 있었다.

한립은 그들이 다급한 마음에 아직 자신들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을 알고는 자령 곁으로 이동해 푸른 기운으로 몸을 감쌌다.

곧 한립과 자령은 푸른빛 속으로 옅어지며 완전히 사라졌다. 은닉술을 펼친 것이다 이때 두 빛줄기가 한립이 있는 산봉우리에 가까워졌다.

령호 사조의 파랗게 질린 얼굴을 확인하며 한립이 그들 뒤 백 여 장 밖을 응시했다.

“어딜 가는 게냐?  의식도 강력하고 수행도 높으니 이 몸이 보신하기에 알맞겠구나!”

그들을 쫓아가며 미친 듯이 웃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한립이 자세히 살피니 새까만 기운이 반짝이며 없어졌다가 령호 사조 등과 겨우 오륙십 장을 남긴 거리에서 다시 나타났다.

검은 기운은 어떤 비술을 썼는지 의식으로 속을 들여다 볼 수 없었지만 가까이 들어오니 육안으로 희미하게 얼굴을 확인할만했다.

‘남롱후? ’

검은 기운 속의 인물은 놀랍게도 요마화가 된 남롱후였다. 한립은 그 속에 고마의 혼백이 실린 것은 몰랐지만 한 눈에도 그가 이미 남롱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상대는 엄청난 마기를 뿜어내며 령호 노인과 엄월종 대장로를 쫓고 있었다.

이때 남롱후의 검은 빛이 다시 사라졌다가 령호 노인 등의 서른 장 뒤에서 나타났다. 그가 음산하게 웃으며 검은 빛을 터트렸다.

짙은 암흑과 같은 마기가 공중에 나타나 남롱후를 완전히 감쌌다.

령호 노인과 백의 여인이 그것을 보고는 상대가 괴이하게 사라진 것을 알고 동시에 멈춰 각자 새까만 거울과 노란 옥을 동시에 분출해 보호막을 형성했다.

그러자 머지않은 곳에서 검은 빛을 반짝이며 남롱후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 적수가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반항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멍청한 것들!”

검은 기운 속의 남롱후는 악랄하게 웃으며 손을 들어 휘저었다.

펑!

거대한 소리가 백의 여인의 보호막에서 들려왔다. 거대한 손에 맞기라도 한 듯 보호막 채로 일곱 장 정도를 튕겨나간 그녀는 간신히 몸을 추슬렀다.

령호 사조의 얼굴도 극도로 어두워졌다.

“도대체 정체가 무엇이냐! 남롱 수사의 육체를 빼앗고 수사들의 원신과 원영을 잡아먹다니. 너 혼자 추마골 내의 모든 수사들을 상대할 수 있을 듯 싶더냐! 원영기 수사만 해도 수십 명은 될 텐데, 아무리 네 놈이 대단해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령호 노인이 돌연 일갈했다.

“수십 명?  흐하하하, 좋구나! 너희 뿐 인줄 알고 실망했는데 그렇게 많다면 금방 다 잡아먹고 본래 몸을 되찾을 수 있겠구나!”

남롱후는 령호 노인의 위협에 두려워하기 보다는 음산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잠시 후 검은 기운은 사분오열하여 검은 그림자와 함께 령호 사조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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