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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470화 (227/2,000)

# 470

470화. 해체화형대법(解體化形大法)

“여긴 결코 영묘원이 아니오!”

먼저 통로를 지나온 위무애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재빨리 의식으로 훑어보니 수십 장 너비의 공간은 회색 안개로 가득한 돌무지였다. 이곳이 인계보다 영기가 넘쳐흐르고 각종 영초와 영약이 넘쳐난다는 영묘원이라는 소리를 누가 믿겠는가.

그런데 귀령문 문주와 왕천고는 사방을 둘러보고는 놀라면서도 조금 반기는 기색이었다. 그런 기색을 감지한 위무애는 경계심을 높였다.

“사제, 느껴집니까?  이곳의 마기가 인계에 비해 최소 두 배 이상입니다. 이곳에서는 어떤 마공을 펼치든 훨씬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겁니다.”

귀령문 문주가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사형, 저도 같은 마공을 익혔는데 어찌 모르겠습니까. 이곳에 남아 수련한다면 수행의 고비에서 벗어나는 것도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왕천고도 눈을 빛내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왕 문주, 그 자를 소환해 자초지종을 들어야 할 때가 아니오?  설마 그 고생을 해서 겨우 이런 곳에 오자고 한 것이오?”

위무애가 아무리 살펴도 별 수확이 없자 조금 음산해진 낯빛으로 둘을 응시했다.

“당연하지요. 만일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면 가만 두지 않을 것입니다.”

귀령문 문주도 두루마리 혼백에게 속은 것이 분한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곧 두루마리가 펼쳐졌다.

하지만 귀령문 문주가 술법을 펼치기도 전에 녹색빛이 스스로 뿜어져 나왔다.

왕천고가 옆에 서 있다가 전광석화처럼 손을 뻗으니 한 척 길이의 검은 손이 녹색빛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녹색빛은 단단히 계획을 세우고 나온 것인지 순간 검은 손을 피해 하늘을 갈랐다.

위무애는 담담했지만 귀령문 문주는 노기를 드러냈다.

그가 손바닥을 뒤집어 핏빛 영패를 꺼내더니 녹색빛이 달아나는 방향을 향해 호되게 흔들었다. 곧 영패에서 핏빛이 날아가 녹색빛을 따라잡았다.

귀령문 문주가 희색을 드러내는 순간 녹색빛이 맹렬히 그것을 떨쳐내고 더욱 빨리 사라져버렸다.

“귀령문 문주가 건 양혼주가 통하지 않다니 이상한 일이오. 내가 잡아다 무슨 짓을 꾸미는지 알아내겠소.”

위무애가 냉소하며 빛줄기로 변해 따라가기 시작했다.

“문주, 이게…….”

왕천고도 겨우 평정을 회복하고 의문을 드러냈다.

“이전에는 분명 저주가 들었는데 지금은 어째서 통하지 않는 것일까요?  갑시다. 본 문주도 어찌 된 일인지 알아야겠습니다.”

귀령문 문주가 살기를 드러내며 빛줄기로 변해 날아갔다. 이곳에서 녹색빛이 달아나봐야 갈 수 있는 곳은 한계가 있었다.

왕천고가 쓴웃음을 지으며 그 뒤를 쫓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이 공간의 중간쯤에서 멈춰있는 위무애와 다시 문생의 모습으로 나타난 혼백을 발견했다.

그들은 혼백의 당당한 표정에 의아해 하다가 스무 장 밖의 풍경을 보고 경악했다. 안개 속에 삼십 장 높이의 거대한 요물이 붉은 수정처럼 굳어 꼼짝도 않고 있었던 것이다.

머리는 두 개, 팔은 네 개인 요물의 이마에 뿔이 솟아 있었고 전신은 새까만 비늘로 뒤덮여 섬뜩한 빛을 반짝였다. 흉악한 외모와 날카롭게 삐져나온 송곳니가 공포스러웠다.

“이렇게 진한 마기라니!”

왕천고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봉인된 요물의 육체가 방대한 것은 그렇다 치고 뿜어내는 마기가 주변보다도 몇 배는 농염했다.

“일단 상대의 말이나 들어 봅시다.”

귀령문 문주도 봉인된 요물을 경계하면서도 천천히 위무애 곁으로 내려갔다.

“두 분도 왔으니 두 번 말 할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문생이 귀령문 문주와 왕천고를 보며 미소 지었다.

“여기까지 우리를 유인한 까닭이 무엇입니까.”

귀령문 문주가 상대를 훑으며 물었다.

문생의 피부에는 핏빛의 주술들이 흘러 다니며 분명 저주의 발작이 일어나고 있었다. 피부가 꿈틀거리고 온 몸이 경련을 일으키는데도 문생은 태연한 낯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위 형이야 모르겠지만 왕 문주와 수사는 상고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마공을 수행했으니 이곳의 마기를 감지했겠지요.”

“그래서 여기가 영묘원이란 말입니까?”

왕천고가 문생의 말에 차갑게 반박했다.

“허허, 영묘원이라! 아마 그럴 지도요.”

“무슨 소리요. 지금 우리를 가지고 노는 것이오?”

태연자약한 문생의 대답에 왕천고가 소리쳤다.

“영초와 영약이 넘쳐나고 영기가 농밀한 공간이 있었다면 상고수사들이 남겨 놓았겠습니까. 아마 오래 전에는 영묘원 같은 곳이 몇 군데 있었겠지요. 하지만 상고수사들이 영초를 모조리 채취하고 서로 그것을 차지하려 다툰 끝에 벌써 훼손된 지 오래입니다.

이곳은 인계와 우리 성계의 접점에 있는 곳이니 다른 의미에서 영묘원이라 불릴만하지요.”

“성계?  설마 당신은 고마였던 게요!”

담담하던 위무애가 문생의 말을 듣고 대경실색해 소리치고는 정신없이 수결을 맺어 짙은 녹색 독무로 온 몸을 가려버렸다.

“우리 성계에 대해 압니까?”

문생이 의외라는 듯 위무애를 바라보았다.

“상고마계에 대해 잘은 모르나, 고마가 우리 인류와 양립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만은 아오. 인계에 나타나 그리 도륙을 일삼고도 아직 부족하단 말이오.”

녹색 독무 속에 숨은 위무애가 서늘하게 대답했다.

귀령문 문주와 왕천고 역시 대화를 들으며 안색이 달라져 검은 기운을 뿜어내 새까만 안개로 몸을 감추었다. 둘은 무의식중에 뒤로 물러났다.

상고마계니 고마니 하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지만 만반의 태세를 한 위무애를 보니 자연히 경계심이 치솟았던 것이다!

“내가 무엇인지는 알 것 없고. 난 지금 세 분과 거래를 하고자 합니다. 화신기에 들게 해주겠다면 흥미가 생길지요?”

“들어나 보겠습니다.”

귀령문 문주가 힐끗 왕천고를 보더니 답했다.

“간단합니다. 뒤 쪽의 고마의 육체가 보이시지요. 세 분이 그 봉인을 풀어준다면 보답으로 성계와 통하는 통로를 열어 성조 대인의 진마의 기운을 빌려 세 분에게 마기를 주입해 주겠습니다.

마공을 익히는데 최상의 몸이 되면 우리 성계의 일원이 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지요. 세 분의 자질이면 화신기에 드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닐 겁니다.”

“봉인만 풀어주면 마기를 주입해 주겠다고요?”

귀령문 문주는 무슨 말인지 정확히 몰랐지만 수행을 크게 늘려주고 화신기에 들게 해주겠다는 것은 분명 매혹적인 거래였다. 왕천고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리석은 실수하지 마시오. 마기라는 것을 주입하면 어찌 될지 생각해 보셨소?  이지를 상실하고 고마의 꼭두각시가 될 지도 모르는 일이오.”

경험 많고 눈치 빠른 위무애가 두 사람의 마음을 읽고 그들을 일깨웠다.

“위 형 그게 무슨 말입니까?”

왕천고가 화들짝 놀라 물었다.

“무슨 말인지는 스스로 생각해 보시오.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고마의 말을 정말 믿는 것이오?  마기를 주입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는 모르나 혼탁한 기운을 마구 받아들인다고 수행이 늘 거라고 믿소?”

독무 속에서 위무애가 거침없이 따졌다. 귀령문 문주와 왕천고도 생각을 해보고는 눈빛이 달라졌다.

문생이 그것을 보고 무언가 말하려는데, 위무애의 표정이 묘해졌다.

동시에 문생의 뒤쪽 돌무지에서 돌연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고 새까만 그림자가 문생의 배를 뚫고 튀어나왔다. 놀랍게도 하얀 뿔이 난 새까만 뱀이 그의 배를 뚫고 나온 것이다.

그러자 문생의 배에 사발만한 구멍이 뚫려버렸다. 혼백이라 피가 흐르지는 않았지만 청록색 수정이 거의 부서져 조각이 드러났다.

“내 혼석(魂石)의 위치를 알아낸 것이더냐?”

문생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았다. 그때 독무 속에서 답이 들려왔다.

“무슨 사술을 익힌 것도 아닌데 혼석이 무엇인지 어찌 알겠소. 그저 내 파혼사가 마기를 잡아내는데 탁월할 뿐.”

문생이 쓴웃음을 짓더니 갑자기 몸 전체가 터져나가며 회백색 연기로 변해 사라졌다.

이에 귀령문 문주와 왕천고가 놀랐으나 멀리 떨어져 있는 거대한 고마의 육체를 보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위 수사, 저 고마의 육체를 없애야 할까요?”

“없앨 수 있다면 상고수사들이 봉인을 해놓았겠소. 모든 것을 그대로 두고 어서 이곳을 떠나는 것이 좋겠소.”

“맞는 말씀입니다. 이런 기괴한 곳에 더 머물지 말고 어서 나갑시다.”

귀령문 문주까지 이렇게 말하니 왕천고도 더 이상 반문하지 않았다.

셋이 막 빛줄기로 변해 날아오르려는데 갑자기 메마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떠나도 된다고 했지?  본 존의 육체가 봉인된 곳까지 와서 살아서 빠져 나갈 수 있을 줄 알았더냐?”

익숙한 목소리에 왕천고 등이 등골이 서늘해져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회백색으로 흩어져 사라졌던 기운이 다시 뭉쳐져 뿔이 달린 악귀 얼굴로 셋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귀령문 문주가 바람처럼 수결을 맺으며 입에서 새까만 비도를 뿜어냈지만 악귀를 품은 기운은 둘로 갈라졌다가 다시 하나로 뭉쳐졌다.

그 모습에 귀령문 문주는 질겁했다.

마공을 익혀 악귀를 참살하는 비술에 능했는데 본명법보인 비도가 전혀 통하지 않자 섬뜩한 기분에 사로잡힌 것이다.

위무애를 둘러싼 녹색 독무 속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고 허공에 떠있던 하얀 뿔 달린 뱀이 새까만 빛줄기로 변해 쏘아져 나갔다. 동시에 녹색 독무도 꿈틀거리며 거대한 청록색 손을 만들어 악귀를 잡아채려했다.

왕천고와 귀령문 문주도 빠르게 돌며 음산한 기운으로 악귀를 덮쳤고 다른 한 명은 입을 벌려 금빛이 찬란한 해골을 뿜어냈다.

세 수사의 협공에 순식간에 다양한 공격들이 어우러졌다.

그때 회색 안개 속의 악귀 머리가 고개를 흔들며 끔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악귀소리에 고마의 육체가 검은 빛을 발산하더니 갑자기 두 눈을 뜨고 붉은 빛줄기를 분사했다.

붉은 빛줄기는 회색기운 속의 악귀를 감싸며 선홍색의 핏빛 보호막을 형성했다.

여러 공격이 시간을 두고 보호막과 부딪혔지만 웬일인지 핏빛 보호막은 그대로였다.

마공으로 만들어낸 검은 기운이든 독무가 변한 거대한 손이든 상관없이 핏빛 보호막에 닿는 순간 흡수당해 보호막만 더욱 두꺼워진 것이다.

검은 뱀과 금색 해골은 주위를 돌며 연신 공격을 하고 있었지만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세 수사가 잠시 주저하는 틈에 수정처럼 굳어 있던 고마의 육체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검은 빛을 거둬들인 육체에서 핏빛이 터져 나온 것이다.

그럴수록 핏빛 보호막은 짙어졌고 그 안의 악귀 머리가 두 눈을 감고 기운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무수히 많은 애벌레가 기어가듯 핏빛 광선이 모여들어 악귀의 몸을 형성하고 있었다.

핏빛의 광선이 뼈와 근육을 만들더니 기이한 빛을 내며 피부를 덮어가고 있었다. 소름 돋는 광경에 수사들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몸 뿐 아니라 악귀 머리에도 살점이 붙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왕천고가 전설 속의 비술을 떠올렸다.

“육신을 해체해서 새로운 몸을 만들어 내고 있어요! 마공 극강의 비술 중 하나인 해체화형대법입니다!”

그가 말을 하는 동시에 두 팔을 펼쳐 검은 빛을 쏘아 보냈다. 검은 빛은 손바닥만 한 구리 조각으로 복잡한 주술이 흐르고 있었다.

두 개의 구리 조각은 각각의 빛줄기에 뛰어들어 검은 빛을 뿜어내 고마의 육체와 악귀 머리의 연결을 중단시켰다.

거의 몸을 완성해가던 악귀 머리는 맹렬히 눈을 뜨더니 보라색이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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