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8
468화. 영촉과를 얻다
“저게 영촉과?”
한립이 금제로 둘러싸인 녹지 중앙의 푸른 호수를 보며 중얼거렸다. 금제 바깥은 끝없이 이어지는 황토의 땅으로 수만 리에 달하는 거대한 황토 사막이었다.
“맞아요! 생긴 것이나 표식의 위치로 보아 분명합니다.”
자령이 그의 옆에 서서 흥분해 외쳤다.
그들이 서 있는 백 장 밖, 호수 중간에 녹색 영초가 자라고 있었다. 식물은 엄지손가락 크기의 둥근 잎사귀들과 네 개의 과실을 맺고 있었다.
새빨간 과실의 끝부분에 붉은 빛이 반짝이는 것이 마치 촛불을 켜둔 것 같았고 농염한 약재의 향을 풍겼다.
한립도 그게 영촉과라고 확신했다.
“바로 따올게요.”
자령이 심호흡을 하며 고개를 돌려 한립을 바라보았다.
“급할 것 없소. 저런 영초가 오랜 세월 자라고 있을 때는 무언가의 보호를 받고 있을 것이오. 그렇지 않고서는 오래전에 다른 상고 요수에게 먹혔을 테지.”
한립도 마음이 급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겉으로는 냉정을 유지했다.
“이곳을 지키는 상고 요수가 있을 거란 말씀인가요?”
“영초를 자세히 보면 아랫부분에 뜯겨나간 자국이 있소. 아마 이곳을 지키는 상고 요수가 과실을 따먹은 흔적일 거요. 영촉과는 생으로 섭취해도 수행을 늘려주는 효험이 있으니, 요수가 지킬 만 하오.”
설명을 하던 한립이 천천히 호수 주변을 살피고는 고개를 숙여 호수 표면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숨어 있다면 호수 속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의식으로 순식간에 수십 장 깊이의 호수 속을 바라보던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왜 그러십니까?”
“뒤로 물러나시오. 이곳을 지키는 상고 요수도 만만치 않을 터이니.”
한립이 평온한 얼굴로 자령에게 말했다. 의식으로 찾아 낼 수 없는 은닉술을 펼치는 요수라면 경계할 만 했다.
“한 형만 믿겠어요.”
자령은 길게 말하지 않고 바로 서너 장 뒤로 물러났다.
한립은 그녀가 물러나는 것을 확인하자 허리춤을 스쳐 영수대 세 개를 허공에 던졌다. 이어 수만 마리의 금색 서금충이 날아올라 하늘을 뒤덮자 방원 수십 장이 금빛 구름이 뒤덮인 것처럼 변했다.
“……!”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자령은 자기도 모르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가 영충을 다루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거의 성충에 가까워진 서금충 대군을 보면서 아연해 진 것은 당연했다.
서금충들을 풀어 놓고 한립이 소매를 펄럭여 서른여섯 개의 청죽봉운검들을 줄줄이 꺼냈다. 비검들이 기다란 금빛으로 변하자 그가 법결을 쏘아 보냈다.
금빛이 진동하며 즉시 백 개가 넘은 금빛으로 복제되었다.
“가라.”
백여 개의 금빛들이 몸을 부르르 떨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고 순식간에 주위에 대경검진이 펼쳐졌다.
꽈광.
이어 한립이 두 손을 부딪치자 손바닥 사이에서 주먹만 한 금빛 구슬이 나타났다. 그의 서늘한 시선을 받으며 뇌전 덩어리가 사람 머리통 만하게 커졌다.
푹!
한립이 두 손을 펼쳐 커진 뇌전 덩이를 열댓 장 밖 호수로 내던졌다. 금빛이 요란하게 반짝이며 금빛 구슬이 폭발해 호수 표면을 얇은 뇌전으로 뒤덮었다.
그러자 금빛 뇌전이 가시기도 전에 호수 표면이 용솟음쳤다.
몇 장 높이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나타났고 그 안에서 무언가 으르렁 거리며 흑백의 요기를 발산한 것이다.
모습을 드러낸 상고 요수의 모습은 매우 괴상했다. 예닐곱 장의 몸은 썩은 진흙 같았고 머리로 보이는 살덩이에는 새까만 눈만 달려 있었다.
역겨운 생김새에 한립은 긴장했고 자령도 소름이 끼치는지 안색이 창백해졌다. 흑백의 기운에 둘러싸인 상고요수는 경전에 나와 있지 않은 종류였다.
그가 재빨리 자령을 살폈지만 그녀도 쓴웃음을 지을 뿐 요수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아무 정보도 없는 요수와 맞서야 하니 한립은 더욱 신중해졌다. 그가 수결을 맺으며 서금충들을 향해 법결을 쏘아 보냈고 입으로는 주술을 외웠다.
웽웽웽!
인근 하늘을 뒤덮고 있던 서금충들이 소리를 내며 한 곳으로 뭉치더니 상고 요수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상고요수는 엄청난 울음소리에 놀라 몸을 꿈틀거렸고 피부에 뚫린 구멍에서 정체 모를 녹색 액체를 분출했다.
일순간 코를 찌르는 악취가 사방에 진동했다. 미간을 좁혔던 한립은 금세 무표정하게 돌아왔다.
녹색 액체에 맞은 서금충들이 전혀 부상을 입지 않고 상고 요수를 덮친 것이다. 요수도 벌레 떼에 휩싸였지만 흑백의 보호막 때문인지 당장은 문제가 없어보였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날벌레들이 흑백의 기운을 갉아대자 요수가 경악하며 다시 호수 속으로 머리를 박고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미리 대비하고 있던 한립은 손가락을 펼쳐 남색 화염을 분출했다.
촤륵!
불덩이가 폭발하며 남색빛이 눈부시게 반짝였다. 남색 화염이 번지며 호수가 얼어붙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거대한 얼음 호수로 변해버렸다.
잠수하려던 요수는 얼음에 머리를 박고 더욱 정신을 못 차렸다. 그리고 흑백의 보호막에 빼곡하게 붙은 금빛 벌레들을 떨구려 난동을 부렸다.
당황한 요수가 호수가로 물러나는데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금빛이 반짝이더니 무수히 많은 가는 금빛 실들이 나타나 요수를 파고들었다.
흑백의 보호막은 순식간에 깨졌고 수많은 서금충들은 상고요수의 몸을 갉아대기 시작했다. 진득한 핏물이 벌레들 사이로 떨어져 내렸다.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리고 요수의 몸에서 빛이 번뜩이며 녹색 요화가 빠져나왔다.
녹색 불길이 요수의 몸을 둘러싼 서금충들을 감싸고 타올랐지만 서금충은 개의치 않고 더욱 악랄하게 요수의 몸을 갉아먹었다. 요수의 비장의 한수였던 요화가 전혀 통하지 않은 것이다.
요수가 다시 한 번 몸을 날려 빠져나가려 했지만 한립이 이미 사방에 대경검진을 펼쳐 놓았기 때문에 어느 방향으로 날아가든 금빛 실들이 출현해 요수를 날카롭게 갈랐다.
순식간에 요수의 몸이 떨어져 나가 얼어붙은 호수를 뒹굴었다.
사실 이 상고요수의 진정한 능력은 은닉술에 있었다. 일단 몸을 숨기면 원영 후기의 수사라도 행방을 찾을 수 없었지만 싸움에 필요한 능력은 평범했던 것이다.
잠시 후, 서금충들이 웽웽 거리며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고 얼어붙은 호수 표면에는 흑백의 괴이한 구슬만이 남게 되었다. 요수의 요단이었다.
이때 자령이 다가와 부럽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한 형, 능력이 정말 대단하십니다. 상고요수를 이렇게 간단히 죽이다니. 삼 대 수사와 맞먹는 실력자라는 소문이 거짓이 아니었어요.”
“이 요수의 능력이 이전에 보았던 상고요수에 미치지 않아서 그런 것뿐이오.”
한립이 고개를 저으며 담담히 말하고는 허공에서 무언가를 움켜쥐어 요단을 불러들였다.
한립이 손바닥을 뒤집어 흑백 요단을 회수했다.
그가 세 개의 영수대를 다시 던지고 서금충들을 가리키자 하늘을 뒤덮고 있던 영충들이 각각의 영수대로 돌아갔다.
대경검진 역시 한립의 의식을 느끼고 다시 36자루의 비검으로 돌아와 소매 안으로 날아들었다.
“어서 영촉과를 따야겠소. 환영진만으로 귀령문 수사들을 오래 속일 수는 없을 것이니.”
한립이 바로 푸른 빛줄기로 변해 날아갔고, 자령도 서둘러 그 뒤를 쫓았다. 그가 영초 위에 떠서 바로 과실을 따지 않고 자령을 돌아보았다.
“먼저 따시오. 영촉과는 목재로 된 함에 담아야 약성을 유지 할 수 있으니 주의하시오.”
“알겠어요.”
자령이 영촉과를 앞두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억누르며 한립을 향해 웃었다.
그녀가 거침없이 소매를 흔들어 청록색 목함을 꺼내더니 손가락으로 허공을 갈랐고, 동시에 하얀 빛이 번뜩이며 영촉과가 떨어져 내렸다.
하얀빛이 과실을 휘감아 미리 준비해둔 목함 안으로 들어갔다. 자령이 길게 숨을 내쉬며 목함을 조심스럽게 저물대 속으로 집어넣었다.
“하나 더 따가지 않으시오?”
한립이 물러나는 그녀를 보며 의아해했다.
“감사합니다만 전 하나면 충분합니다! 이번에 정보를 알아낸 것을 제외하면 제가 한 일이 거의 없지 않습니까. 한 형과 그간의 정이 있다지만 이런 일은 분명히 해야지요. 남은 것은 모두 한 형이 챙기세요. 하나는 조화단을 만들어 복용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복용해 수행을 늘리도록 하세요.”
그녀의 대답에 한립은 의외라고 생각했다.
사실 난성해에서 유명한 절세가인이었지만 속을 알 수 없고, 묘음문을 빼앗긴 후로는 더욱 독하게 변한 것 같아 내심 거리를 두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한 말도 호감을 사기 위한 것일지도 모르나 천지영물인 영촉과를 앞에 두고 욕심을 억누르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 그녀에 대한 인상이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알겠소.”
한립이 고개를 끄덕이며 사양하지 않고 허리춤을 만져 미리 준비해 둔 하얀 목갑을 꺼냈다. 그가 영초를 향해 손을 뻗자 나머지 세 개의 과실이 목갑 안으로 흘러들었다.
“오래 있을 곳이 아니니 갑시다. 귀령문 수사들과 마주쳐서 좋을 것은 없지 않겠소. 단약을 제련하는 것이 우선이오.”
“맞아요. 어디 한적한 곳을 찾아 단약을 제련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한립이 미간을 좁히다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천 조각 같은 것을 꺼내들었다. 바로 청잠포에서 뜯어낸 추마골 지도였다.
그가 자세히 지도를 살펴보니 지도에 크게 표시되어 있는 곳과 이곳 사막이 그리 멀지 않았다. 기껏해야 이틀 정도 거리였다.
자령은 한립이 정체 모를 천조각을 들고 생각에 잠기자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조용히 그의 결정을 기다렸다.
“갑시다.”
한립이 마음을 정했는지 지도를 거두었다.
그가 잠시 눈앞의 영초를 보다가 손짓을 해 영초의 가지를 잘랐다. 그러나 가지는 땅에 닿기도 전에 바싹 말라 재가 되어 흩어졌다.
아까운 일이었다. 경전에 적혀 있는 대로 영촉과가 열리는 영초는 옮겨 심을 수 없었다. 원래 위치에서 벗어나거나 가지나 뿌리를 자르면 말라 비틀어져 사라져 버리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한립이 더는 주저하지 않고 다시 어풍차를 불러냈다. 자령이 두말 하지 않고 올라타자 하얀빛을 반짝이며 어풍차가 하늘을 갈랐다.
일단 조화단을 제련할 만한 곳을 찾아 영촉과를 처리하고 다시 지도에 표시된 곳을 살펴볼 작정이었다. 은밀히 감춰둔 장소라면 대단한 보물이 있을지도 몰랐다.
한 시진 가량 후, 호수가 있는 녹지에 귀령문 무리가 도착했다.
꽁꽁 얼어있는 호수와 열매가 떨어진 영초를 발견한 귀령문 수사들은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당연히 귀령문 종 장로의 안색도 파랗게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때 한립은 벌써 천 리 밖을 날아 지도에 표시된 곳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사막을 벗어나자 푸른 숲이 있는 고원지대가 나타났다. 추마골 안에 이렇게 변화무쌍한 지형들이 이어지다니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다시 반나절을 날아 한립이 어풍차를 낮은 산맥 어딘가에 멈추었다. 그리고 여러 산봉우리 중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산 정상을 골라 내려갔다.
“자령 수사, 여기서 각자 단약을 제련하면 되겠소. 의식으로 살펴보니 근처에 위험한 상고금제나 공간균열이 없는 것 같으니 이 일대는 비교적 안전할 것이오.”
“감사합니다! 한 형, 그럼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자령이 산맥을 훑어보더니 감사 인사를 하고 빛줄기로 변해 날아갔다. 어딘가에 밀실을 만들어 단약을 제련하려는 것일 터였다.
그녀가 사라지자 한립도 신형을 움직여 몇 장 밖으로 이동했다. 그는 수십 개의 비검을 불러내 간단히 동굴을 파냈다.
동구 입구에는 소규모 진법을 간단히 설치하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만일을 대비해 결단기 수준의 꼭두각시들을 동굴 밖에 풀어 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안심하고 밀실로 들어간 그가 저물대를 허공에 던져 미리 모아 놓은 조화단 재료들을 불러냈다. 마지막으로 목갑에 담긴 영촉과와 오래되어 보이는 푸른 솥을 꺼내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조화단은 처음 만들어 보는 것이었지만 추마골에 들어오기 전에 충분히 제련법을 숙지했고, 영촉과와 보조 재료들까지 충분했다.
한립이 눈앞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작은 솥을 응시하며 입에서 푸른 영화를 분출했다.
화륵!
솥이 활활 불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