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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467화 (224/2,000)

# 467

467화. 마공(魔功)

수백 장 규모의 지하 전당 안에 남롱후와 로위영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자신들의 법보로 이미 한층 얇아진 보호막을 공격하고 있었다.

보호막에 떠오른 문자들은 처음에는 콩알만 하게 나타나 점점 주먹만 한 은색으로 변해 둥둥 떠다녔다.

그 주위에서 하얀 풍룡과 금색 빛줄기, 얼음으로 만들어진 구렁이 두 마리와 청록색 거대한 고리가 계속해서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 공격이 있을 때마다 보호막이 흔들렸고 빛이 요란하게 번뜩였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법력을 소모하다보니 남롱후와 로위영의 안색이 조금 창백해져 있었다. 그들은 속으로 소수미금강진의 말도 안 되는 강도에 욕을하고 있었다.

이미 원기를 상하기는 했지만 마지막 한 층을 남겨둔 보호막을 두고 포기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쿠르르릉!

잠시 후 엄청난 폭음과 함께 노인과 남롱후의 안색이 밝아졌다.

“깨졌습니다! 헛고생이 아니었어요!”

가부좌를 하고 있던 노인이 먼저 일어나 외쳤다. 구석에 앉아 있던 남롱후도 안색은 좋지 않았지만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남롱후와 노인은 보호막이 사라진 탁자를 보며 서로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오랜 세월 교분을 쌓아 왔다지만 손을 뻗기만 하면 닿을 곳에 보물을 두고 그런 정을 논할 때가 아니었다.

침묵하던 노인이 빙그레 웃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

“남롱 수사,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남롱 수사의 수행이 노부보다 높다지만 모란 초원에서 원기를 크게 상해 지금은 엇비슷하겠지요. 이런 상태로 괜히 우리 사이에 문제가 생긴다면 서로 낭패가 아니겠습니까?”

“로 형의 뜻을 본 후가 모르겠습니까. 영약은 절반씩 나눠갔고 보물은 대접만 제가 가져가고 나머지를 로 형이 챙기시면 어떠할 지요?”

남롱후가 탁자 위의 대접을 힐끗 보았다.

“대접이요?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지금은 무슨 보물을 노릴 때가 아니라 영약을 챙겨 수명을 늘리는 것이 더 시급하지 않습니까. 대접 정도야 양보할 수 있지요.”

로 노인의 안색이 조금 변했지만 뜻밖에도 그의 말에 동의했다. 남롱후는 로 노인의 결정에 놀라면서도 희색을 감추지 못했다.

보물을 나눠 가지려면 협상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쉽게 대접을 포기하다니 의외였다. 남롱후의 시선을 받으며 로위영이 차분하게 말했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생각이 바뀌셨습니까?”

“하하! 그럴 리가요. 그럼 동시에 움직이도록 합시다. 수사께서 대접 위의 세 가지 보물과 옥부를 챙기시면, 저는 대접을 챙기고 그 다음엔 영약을 똑같이 나누지요.”

“그리 하시지요.”

노인이 소매를 털어 하얀 기운이 담긴 세 가지 법기와 여러 장의 옥부로 향했고, 남롱후는 금빛 기운을 뿜어 대접을 향해 날아갔다.

순조롭게 각자 원하는 것을 챙긴 남롱후는 대접을 보며 희색이 만연했고 노인은 세 가지 보물을 무표정하게 확인했다.

가만히 대접을 살피던 남롱후가 갑자기 미소를 거두고 바람처럼 그 위에 노란 부적을 붙였다.

“남롱 형,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무엇을 하냐고요?  로 형도 그 세 가지 보물과 옥부가 상고수사가 이 대접을 봉인하기 위해 준비한 법기란 것을 알아보지 않으셨습니까?  이런 최상급 대접에 봉인할 정도면 대단한 것일 텐데. 본 후가 아무 대비도 없이 여기서 봉인을 풀겠습니까?”

남롱후는 대답을 하며 순식간에 대여섯 장의 부적을 대접에 붙였다.

“허허! 뭔가 오해를 하셨나 봅니다. 일단 지금은 나머지 영약을 나눠 갖고 각자 갈 길을 가시지요. 왠지 모르겠지만 이곳은 오래 머물 곳이 아닌 듯합니다.”

“그럽시다. 수명을 늘려주는 천원과(天元果)는 똑같이 나누고 나머지는 하나씩 골라 가는 것으로 하지요.”

남롱후가 한 손에 대접을 들고 나머지 한 손으로 탁자에 놓인 천원과 몇 개를 향해 손을 뻗었다. 동시에 한 자 길이의 거대한 금색 손이 허공에 나타나 탁자를 향해 움직였다.

로위영도 서둘러 손을 뻗자 하얀빛으로 만들어진 손이 나타나 천원과와 보라색 영지버섯을 집으려 했다.

푹! 푹!

낮은 울림과 함께 탁자에 있던 천원과와 보라색 영지버섯이 녹색빛으로 반짝이며 사라졌다. 이어 탁자에서 빛이 분출되어 다른 영약과 영초들도 자취를 감춰 버렸다.

남롱후와 노인이 그 모습에 눈을 부릅떴다.

바로 그때 남롱후가 손에 들고 있던 대접에 변화가 생겼다. 부적들이 갑자기 칠흑 같은 불길에 타올라 사라진 것이다.

영약들과 천원과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분노하던 남롱후가 대접의 변화를 눈치 채고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가 재빨리 다른 손을 뒤집어 낡은 금빛 부적을 꺼내 대접을 향해 뻗었지만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평범해 보이던 대접이 굉음을 내며 칠흑 같은 빛 속에 잠겨버렸다. 대접을 들고 있던 남롱후는 미처 피하지 못했고 검은 빛이 순식간에 남롱후의 얼굴로 쏘아져 나가 스며들었다.

“히악!”

남롱후가 소리를 내지르며 대접을 벽으로 내던졌고, 금빛 부적은 힘을 잃고 떨어져 내렸다. 그의 얼굴은 추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이런!”

머지않은 곳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노인은 단번에 남롱후가 무언가에 의해 몸을 빼앗기는 것을 보고는 대경실색했다.

그가 즉시 남롱후를 향해 남색 창 두 자루를 쏘아 보냈다.

그런데 남롱후가 낮게 으르렁 거리며 고개를 들어 새까만 기운으로 보호막을 펼치고는 날아오는 창을 보는 것이 아닌가.

댕!

남롱후가 한 팔을 펼치자 남색 창 두 자리가 소리를 내고 튕겨 나가며 그의 소매가 찢어졌다.

로 노인은 드러난 팔뚝을 보며 눈가의 주름이 짙어졌다. 새까맣게 변한 팔뚝은 자홍색의 힘줄이 울룩불룩 튀어나와 마치 악귀처럼 변해 있었던 것이다.

노인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원영 중기인 남롱후의 의식을 순식간에 잡아먹고 몸을 빼앗은 것의 정체가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대접 안에 봉인돼 있던 것은 결코 일반적인 혼백이 아니었다.

로 노인은 즉시 소매를 펄럭여 한 손에는 하얀 법기를 다른 한 손에는 붉은 천 한 묶음을 쥐었다. 천이 순식간에 펼쳐지며 노인의 앞을 막았다.

로위영은 최소한의 방비를 하고서야 조금 마음을 놓았다. 사악한 귀기를 막는 데는 호양사(昊陽紗)만한 게 없었던 것이다.

남롱후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는 바로 로 노인을 공격하지 않고 자신의 몸을 자세히 살폈다.

“키키키킥. 드디어 풀려났구나! 이번에는 어느 누가 성조(聖祖)의 강림을 막을 테냐! 이제 인계는 우리 성계의 것이다!”

‘성조?  성계? ’

로 노인은 낯선 단어를 들으며 영문을 몰라 했다. 다만 연못에 쳐져 있던 수많은 결계들을 떠올리고는 달아날 마음이 커졌다.

그의 몸에서 아무 조짐도 없이 하얀 빛이 번지며 빛줄기로 변해 입구로 날아갔다.

쾅!

당장이라도 입구를 지나 빠져나갈 수 있을 듯 했는데 눈앞이 반짝이면서 무언가 폭발했다.

콰직!

호양사가 앞을 막아 주었음에도 거대한 힘에 의해 노인이 튕겨버린 것이다. 아직 영력으로 몸을 보호하고는 있었지만 순간 몸을 가누지 못했다.

그때 남롱후가 어느 사이엔가 입구에 버티고 서서 새까만 주먹을 회수하며 냉소하고 있었다. 노인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본체에 비하면 약한 일격이라지만 내 공격을 버티다니 네 놈도 저계 수사는 아니겠구나. 네 놈으로 목을 축여야겠다.”

남롱후로 변한 악귀가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말을 마친 남롱후는 환영을 남기며 빠른 속도로 노인에게 쇄도했다.

로 노인이 혼비백산해서 벽에서 몸을 빼내려 했지만 무리였다. 상대의 동작이 너무 빨라 벌써 새까만 손톱으로 노인의 목을 잡아채려 한 것이다.

노인이 급한 마음에 전신의 흰빛을 끌어 올리며 새빨간 천에 영력을 쏟아 부었다. 동시에 몸을 보호하던 천이 붉은 빛을 내뿜으며 새까만 손톱과 부딪쳤다.

촤락!

새까만 손톱은 붉은 빛을 뿜어내는 천을 깊숙이 파고 들다 멈추었다. 노인이 한시름 놓으며 얼른 몸을 움직여 석벽에서 빠져 나왔다.

그것을 지켜보던 남롱후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쾅!

남롱후의 다른 팔이 붉은 천을 향하자 짙어졌던 붉은 빛이 순식간에 흩어져 버렸다.

쾅!

노인이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다시 한 번 주먹이 날아왔다. 남아있던 보호막까지 날아가 버리고 노인의 몸이 또 다시 석벽에 깊이 박혀버렸다.

‘안 돼!’

로 노인이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서둘러 하얀 깃발을 발동하려 했다.

그러나 두 주먹을 휘두르던 남롱후는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노인이 깃발에 영력을 주입할 때마다 주먹을 휘둘러 영기를 흩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되니 눈앞의 붉은 천이 점점 암담해 지는 것을 절망스런 얼굴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붉은 천이 완전히 망가지면 저 주먹에 곤죽이 되고 말 것이다.

노인이 이를 악물었다. 그의 정수리에서 하얀 빛이 번지더니 괴로운 얼굴을 한 노인의 원영이 두개골을 뚫고 나왔다. 원영은 황망한 얼굴로 가슴에 작은 남색 검을 꼭 안고 있었다.

콰앙!

거의 동시에 붉은 호양사 고보가 찢겨졌다.

원영은 주저 없이 그 자리에서 사라져서 입구에서 다시 나타났다. 통로를 통해 빠져 나가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괴이한 일이 일어났다.

남롱후가 입고 있던 장포가 터져 나가며 맨 등을 드러냈는데 혈주문에 새겨져 있던 악귀의 얼굴이 등에 박혀 있었던 것이다!

악귀의 얼굴이 맹렬히 두 눈을 뜨니 은백색 눈동자가 드러났다. 동시에 입가에 보라색 그림자가 번뜩였다.

가슴에 품고 있던 비검을 방출해 본명 법보와 하나가 되어 둔술을 펼치려던 노인의 원영은 바람 소리 같은 것을 들었다. 이어 뒤통수가 뜨겁더니 미간 사이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원영의 머리를 기다란 무언가가 꿰뚫은 것이다. 노인의 원영은 참혹한 비명을 질러대며 힘을 잃고 떨어졌다.

보라색의 악귀의 혀가 입안에서 뻗어 나와 원영의 머리를 뚫은 것이다. 악귀는 원영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악랄하게 웃더니 혀를 말아 그대로 노인의 원영을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원영을 그대로 삼켜버린 악귀는 만족스럽게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몸을 돌려 주인을 잃은 남색 검을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그가 손을 뻗자 로 노인의 육체에서 심장이 파여져 핏빛 안개로 흩어졌다. 남롱후는 무표정하게 주변을 살피고는 검은 기운으로 변해 통로로 날아들었다.

잠시 후, 호수 바닥에 도착한 그가 다시 위로 날아올라 어떤 돌산 위에 떠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백 여 장이나 떠오른 그는 붉은 금제를 건드려 벼락을 내려쳤지만 신기하게도 남롱후의 몸에 닿기도 전에 벼락이 휘어지며 무사했다.

남롱후가 주변을 살피다가 다시 방향을 정해 사라졌다.

* * *

분지 중앙에 도착한 귀령문 문주와 위무애 등은 제단 앞에 서서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거리상 벌써 도착했어야 하지만 제단에 가까워지면서 대규모 금제들이 나타나 시간이 지체되었다.

도착해 보니 제단의 크기는 더욱 웅장했다.

“갑시다. 제단 꼭대기에 영묘원의 실마리가 있을 겁니다.”

귀령문 문주가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모두를 재촉했다.

“허!”

그가 먼저 앞으로 나아가 계단을 오르려다가 인상을 찌푸리자 다른 수사들이 긴장해 쳐다보았다.

“다들 조심해야겠습니다. 계단에도 금제가 걸려 있으니 올라가기 쉽지 않겠어요.”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에 희미하게 반짝이는 노란빛을 보며 귀령문 문주가 이를 갈았다. 위무애도 슬쩍 미간을 좁혔다.

“가시죠!”

계단을 딛자마자 천근 쇳덩어리가 어깨를 누르는 것 같았다. 그나마 위무애의 상황이 가장 나았지만 귀령문 결단기 수사들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안색이 창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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