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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465화 (222/2,000)

# 465

465화. 두루마리

중 문사와 악 여인이 추마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한립은 벌써 백 리 밖을 날아가고 있었다.

그는 순조롭게 외곽으로 통하는 동굴 앞에 도착해 양의환을 꺼내 안전하게 동굴 밖으로 빠져 나왔다.

그리고 다시 높은 절벽 아래 도착해 하늘을 바라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기이한 핏빛 빛무리로 덮인 중심부의 하늘보다 한결 마음이 편했다.

그가 의식을 퍼트려 주변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다시 동굴 옆 석벽을 바라보았다. 주저하지 않고 한 손을 뻗어 푸른 법결을 날리자 석벽 속으로 흡수되어 사라졌다.

그가 주문을 외우자 평범해 보이던 절벽이 푸른빛으로 반짝이며 금빛 서금충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서금충들은 각각 작은 은색 결정을 들고 나와 떨어트렸는데 큰 것은 주먹만 했고 작은 것은 콩알만 하기도 했다.

별안간 한립 앞에 은색 결정 더미가 쌓였다.

바로 강은사 결정들이었다!

처음에는 차분히 지켜보던 한립도 결정들이 쌓일수록 눈빛이 달라졌다.

“생각보다 강은사가 많이도 묻혀 있었구나! 보아하니 노부의 꼭두각시들을 제련하기에 충분하겠다!”

한립의 머릿속에 대연 신군의 희희낙락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곳에 이렇게 많은 강은사가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추마골에서 많은 보물들을 얻어 갑니다.”

그가 소매를 털어 푸른빛으로 은색 결정들을 거두었고 금빛 서금충들도 영수대로 돌아갔다.

일을 마친 한립이 저물대에서 손톱만한 투명한 구슬을 꺼냈다.

입을 벌려 푸르른 영기를 구슬에 뿜으니 투명한 구슬이 빛나며 그 안에 푸른 점 하나가 나타났다.

한립이 구슬을 들어 방향을 가늠하더니 푸른 빛줄기로 변해 날아올랐다. 그리고 가는 길목마다 구슬을 살펴 새롭게 방향을 조절했다.

이렇게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한립은 수십 리를 이동했다.

황야지대를 지나던 한립이 갑자기 헛바람을 들이켰다. 그는 몸에 푸른 보호막을 두르고 그대로 아래로 내려가다가 지면을 삼십 여 장 앞두고 다시 멈췄다.

두 동강난 사내의 시체가 황무지에 버려져 있었던 것이다. 피 웅덩이와 시체를 제외하면 저물대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참지 못하고 움직이기 시작했구나.’

공간 균열에 당한 것이 아니라 다른 수사의 손에 살해당한 시체였다. 한립은 오래 머물지 않고 바로 다시 방향을 정해 날아갔다.

원영 후기 수사가 아니라면 그에게 위협적이지는 않겠지만 여러 수사들이 뭉쳐서 자신을 함정에 빠트릴 가능성도 생각해야 했다.

그러나 그의 의심과는 달리 매복한 수사들은 만나지 못했지만 공간 균열에 당해 죽은 수사의 시체는 두 구나 발견했다.

그렇게 그는 구슬의 인도를 따라 밀림 상공에 도착했다.

한립이 나무들에 가려진 밀림을 보고 생각하다가 돌연 손에 쥐고 있던 구슬을 손바닥으로 으깨버렸다.

산산이 부서진 가루 속에 푸른 점이 흩어지지 않고 떠올랐다.

“가라.”

한립이 낮게 명령하자 푸른 점이 어떤 방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고, 한립도 그 뒤를 쫓았다.

잠시 후, 푸른 점은 밀림의 한 구석에 도착해 방향을 바꿔 하강했다. 땅에 내려선 푸른 점은 커다란 나무 한그루를 빙글 돌더니 그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한립이 그것을 확인하고 나무 앞에 내려섰다. 그리고 나무를 살피다가 손을 뻗었다.

펑!

묵직한 진동과 함께 녹색 빛이 번지며 푸른 부적이 나타났고 한립이 바람처럼 부적을 잡아챘다. 한립이 부적을 보며 미소 짓다가 허공으로 날려버렸다.

화륵!

부적이 불타올라 붉은 빛줄기로 허공을 갈랐다.

이번에는 한립이 그 뒤를 쫓지 않고 가부좌를 틀고 이동하며 소모한 법력을 회복했다.

붉은 빛줄기는 밀림의 어딘가로 사라졌고 그곳에서 빛줄기가 솟아올라 한립이 있는 곳으로 날아왔다. 빛줄기는 한립이 앉아 있는 상공을 잠시 배회하다가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 내려왔다.

빛이 사라지자 한립 앞에 하얀 치마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났다. 한립이 두 눈을 뜨고 여인을 바라보았다.

“자령 소저, 빨리 오셨소.”

“며칠째 한 수사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당연하지요.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수사들이 이곳을 뒤지고 다닌 줄 아세요?  한 형이 더 늦게 나타나셨으면 버티지 못하고 달아날 뻔 했습니다.”

자령의 듣기 좋은 목소리에 원망이 어렸다.

“이곳에서 얼굴을 드러내다니 의외요.”

“추마골에 막 들어왔을 때는 얼굴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굴을 가려주는 보물이 어떤 금제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점차 효력이 떨어져 이렇게 되었지요. 어찌, 한 형은 제가 얼굴을 보인 것이 기분 나쁘십니까?”

“그럴 리가 있소. 그건 그렇고 이곳이 첫 번째 표식을 발견한 곳이오?”

한립이 쓴웃음을 지으며 곧 진지하게 물었다.

“십중팔구 그럴 것입니다. 귀령문에서 먼저 표식을 발견하고 훼손했지만 진짜 표식이 있으니 그리하지 않았겠어요?”

“이왕 이렇게 된 것 귀령문의 흔적을 따라 움직이는 게 좋겠소. 시간을 절약할 수도 있고 말이오.”

“한 형의 말대로 따라야지요. 이미 한 달 전에 몇몇 귀령문 제자들의 몸에 묘음문 특유의 표식을 심어 두었습니다. 법력으로 응결한 것이 아니라 무색무취의 물질로 만든 것이니 일정 범위 내에만 있다면 두 달 동안은 추적할 수 있습니다.”

“고생했소. 그럼 일단 귀령문을 추적합시다.”

한립이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밀림 속에 갑자기 은색 털을 지닌 날다람쥐가 나타나 코를 킁킁 거리더니 은색 빛줄기로 변해 날아갔다. 그 뒤를 한립과 자령이 바짝 뒤쫓았다.

한립과 자령이 날다람쥐 영수를 쫓아 종 장로 일행을 뒤쫓고 있을 때, 귀령문 문주와 위무애 일행은 거대한 산을 넘어 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법술을 써서 진흙 등 커다란 장애물을 치우기는 했지만 분지는 습하고 곳곳에 물웅덩이 천지였다. 그러나 그들은 날지 못하고 걸어가야만 했다.

귀령문 제자 한 명이 아주 조금 떠올라 비행을 시도하다가 하늘에서 떨어진 붉은 벼락을 맞아 보호막이 부서질 뻔했기 때문이다. 분지 중앙으로 갈수록 금제는 더욱 엄격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왕천고도 위무애도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산 정상에 도착했을 때 분지 중앙에 거대한 제단 같은 것이 놓여 있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제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추마골에 들어와서 처음 발견한 완벽한 건축물이었다. 중요한 장소일 가능성이 높았고 귀령문 문주가 말하던 영묘원과 관련되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다들 천천히 이동하면서도 조급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수사들은 얕은꾀를 부릴 마음을 버리고 일렬로 서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귀령문 제자 한 명이 길을 열며 한참을 가다가 관목들이 나타나자 불덩이를 던져 제거했다. 반나절 가까이 걷고 또 걸은 끝에 일행은 겨우 제단에 접근할 수 있었다.

새하얀 암석을 깎아 만든 제단은 정사각형에 계단이 있었고 높이는 족히 수백 장에 이르러 끝이 구름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했다.

“드디어 거의 다와 가는 것 같소. 두 시진 정도면 도착할 듯한데……. 왕 문주, 이제는 영묘원에 대해 어찌 알게 되었는지 알려줄 때도 되지 않았소?”

위무애는 걸어가면서도 전신에서 옅은 녹색 광채를 뿜었다. 한 걸음에 소리 없이 몇 장을 미끄러져 나가는 모습이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안심하시지요. 때가 되면 제가 위 형에게 설명을 하겠습니다.”

귀령문 문주가 미소 지었다.

위무애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돌연 가장 앞에서 걷던 귀령문 제자의 몸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어깨부터 허리까지 갈라져 두 동강이 났다.

“공간균열!”

귀령문 문주의 안색이 변하자 위무애와 그 뒤의 왕천고도 그것을 보고는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들은 귀령문 문주가 어떤 수를 쓰는지 몰랐지만 그를 따라오는 지금까지는 단 한번도 공간균열에 당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긴장했었지만 이제는 거의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숨겨진 공간균열에 귀령문 제자가 죽어 나가니 속으로나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머지 세 명의 귀령문 제자들은 아예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고 귀령문 문주도 참혹하게 당한 시체를 보며 심란해 했다. 위무애는 두 눈을 감고 의식으로 무언가를 감지해보려는 것 같았지만 잠시 후 다시 눈을 뜨고 말았다.

“공간균열은 의식이 강하다고 감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오. 위치를 알고 있음에도 아무 것도 감지할 수 없었소.”

위무애가 무표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왕천고가 그 말을 듣고 손가락을 튕겨 다섯 개의 불의 탄환들을 전방을 향해 뿜어냈다.

푸푸푸푸푹!

그 중 세 개가 반짝이며 허공에서 소실되었고 나머지 두 개만 몇 장을 더 날아가 지면에 떨어져 폭발했다.

“작은 공간균열입니다. 조금만 돌아가면 되겠어요.”

왕천고의 목소리가 한결 편해졌다.

“지금 이것은 작지만 남은 여정 동안 얼마나 많은 공간균열이 숨겨져 있을지 알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이제 와서 인원을 보충할 수도 없고요. 이 길은 분명 공간균열이 없어야 하는데, 설마 그 자가 무언가를 숨긴 걸까요?”

귀령문 문주는 전혀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는지 어두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위무애가 무언가 물어 보려는데 왕천고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문주의 뜻은……?”

“사실 제단에 이르면 말씀을 드리려 했는데, 더는 숨길 수 없겠습니다.”

문주가 묘한 얼굴로 대답하자 위무애와 다른 수사들이 귀를 기울였다. 귀령문 문주는 소매를 털어 은빛이 반짝이는 두루마리를 꺼냈다.

“이건!”

왕천고가 단번에 두루마리를 알아보았다.

“알아보았군요. 맞습니다. 이곳에 영묘원에 대한 모든 것이 기록돼 있지요.”

왕천고는 문주의 말에 눈을 부릅떴다. 이 두루마리는 모란 초원에서 그가 가지고 나와 문주에게 전달한 창곤 상인의 두루마리였다.

귀령문 문주가 두루마리를 던져 수결을 맺자 두루마리가 풀리며 등에 기다란 검을 메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문사의 뒷모습이 드러났다.

왕천고와 다른 수사들은 눈을 크게 뜨고 한참을 보았지만 이상한 점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위무애는 의식으로 두루마리를 살피고는 눈에 이채를 띠었다.

“이리도 빨리 두루마리의 비밀을 알아차리시다니. 역시 원영 후기의 수행을 지닌 위 수사는 다르십니다. 저는 비술을 통해 겨우 알아냈습니다.”

“아니오. 나도 공간을 다루는 법기는 오랜만이라 아마 수사가 미리 언질해 주지 않았자면 쉽게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오.”

위무애가 변함없는 얼굴로 답했다. 그러자 귀령문 문주가 웃으며 바로 팔을 뻗어 검은 기운을 두루마리로 던져 넣으며 소리쳤다.

“아직도 안 나오고 뭐 하십니까. 마화(魔火)로 겁박해야 나올 생각이십니까?”

“약속한 장소에 도착하기 전엔 소환하지 않기로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많은 수사들 앞에서 날 찾는 것은 거래를 무르자는 뜻입니까?”

맑은 사내의 목소리가 두루마리 안에서 들려오자 수사들이 깜짝 놀랐다.

이어 두루마리에서 은빛이 크게 번지더니 등을 돌리고 있던 문사가 돌연 몸을 앞으로 돌려 수사들을 바라보았다. 길게 수염을 기른 중년 남자는 상당히 불쾌해 보였다.

그것을 본 귀령문 제자들이 어안이 벙벙해 입을 다물지 못했고, 직접 두루마리를 만져본 왕천고는 경악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위무애만이 잠시 놀라는가 싶더니 금세 평정을 되찾았다.

“내가 할 소리입니다. 분명 이 길은 안전할 거라더니 공간균열이 숨어 있는데 어찌 된 일입니까?  괜히 본문 제자 한 명만 아깝게 죽지 않았습니까.”

“당시 내가 갔던 길이라 안전할 터인데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입니까?”

두루 마리 속 유생이 입술을 달싹이며 반박했다.

“그럼 저건 무엇인지 직접 보시지요!”

귀령문 문주가 어두운 얼굴로 공간균열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그러자 두루마리 속에서 푸른빛이 어리며 희미한 사람의 형상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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