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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464화 (221/2,000)

# 464

464화. 소수미금강진(小須彌金剛陣)

천정 진인이 웃으며 상대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신중한 눈빛은 동문도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동문도가 그것을 보고 슬쩍 미간을 좁혔지만 바로 웃음으로 화답했다.

“천정 수사가 원치 않으신다면 노부도 강요할 수는 없지요. 부디 좋은 성과를 거두기를 바라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천정 진인이 그 말에 한결 편해진 얼굴로 즉시 꼭두각시들을 데리고 멀어졌다. 그를 바라보는 노인의 얼굴이 점차 어두워졌다.

“늙은이가 겁도 많구나. 이틀 동안 한 순간도 틈을 보이지 않다니. 저런 꼭두각시를 지닐 수만 있다면 중심부에서 보물을 탐색하기 훨씬 수월했을 텐데.”

동문도가 아쉽다는 듯 말하고는 주위를 살핀 후 허리춤의 영수대를 건드렸다.

슉!

은빛이 반짝이고 거대한 박쥐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그가 손을 펼치자 검은 단약 같은 것이 날아가 박쥐의 입안으로 들어갔다. 단약을 먹은 박쥐가 허공에서 선회해 어딘가로 사라지자 동문도가 즉시 다섯 수사들을 불러 모아 녹색 빛줄기로 변해 날아갔다.

“로 형 거의 다 되었습니까?  진법 설치도 골치입니다. 게다가 시간도 오래 걸리고요.”

남롱후가 연못 바닥에 마지막 깃발을 꽂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노부는 시간을 허비하더라도 안전하게 가는 것이 좋습니다. 안에 상고 수사의 보물들이 숨겨져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만일을 대비해야지요. 목숨보다 중한 게 무엇입니까.”

로위영이 웃으며 말했지만 남롱후는 답이 없었다.

곧 로위영이 마지막 진법 원반을 배치하자 금제가 발동되어 주위에 하얀 빛이 나타났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인 노인이 몸을 돌려 핏빛의 석문을 응시했다.

한참 전부터 조급해하고 있던 남롱후가 노인이 진법 설치를 마치자 바로 허리춤의 저물대를 풀어 허공에 던졌다.

하얀 빛이 새어 나오며 그 안에서 투명한 상고 수사의 유골이 빠져나왔다.

“혈주라는 것이 정말 사악한 저주가 아닐 수 없습니다. 금제를 풀려면 혈주를 건 수사의 정원(精元)이나 혈육(血肉)이 필요하다니. 이제 와서 피와 살을 구할 수는 없겠지만 유골에 정원은 남아 있겠지요.”

남롱후가 설명하며 입에서 황금색 비검을 뿜었다.

이후 그가 허공에 손을 뻗어 하얀 법결을 날리자 비검이 진동하며 찬란한 금빛을 흩날리며 투명한 유골에 부딪쳐 폭발했다.

유골이 부서져 흩날리자 남롱후가 금빛을 뿜어 그것들을 모았다.

남롱후가 로위영을 바라보자 노인이 뜻을 알아차리고 두 손을 비벼 하얀 기발을 꺼냈다. 노인이 가볍게 깃발을 흔들자 허공에 소용돌이가 치기 시작했다.

남롱후는 가부좌를 하고 주문을 외워대며 허공의 유골 가루를 향해 틈틈이 법결을 쏘아 보냈다.

반투명한 분말들이 순식간에 반짝여대니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이때 옆에 있던 로 노인이 시험 삼아 석문을 공격해 보았다. 그러자 손에 든 깃발에서 붉은 빛이 반짝였고 주먹만 한 불덩이들이 연달아 튀어나갔다.

쉬익!

불덩이가 석문에 접근하자 핏빛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대량의 붉은 기운이 응집해 석문에 새겨진 악귀의 모습과 똑같은 얼굴로 변해 버린 것이다.

악귀의 얼굴은 입을 벌려 불덩이를 삼키더니 바로 흩어져 원래의 핏빛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에 로 노인과 남롱후가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혈주문이 대단하긴 합니다. 창곤 상인의 해법대로 하지 않으면 저주를 풀 수 없겠어요.”

남롱후의 말에 로위영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더 강력한 공격 수단도 있었지만 문에 있는 악귀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괜히 일을 만들어 화를 자초하는 것보다는 창곤 상인이 남긴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나을 듯 했다.

“가라!”

남롱후의 낮은 목소리에 금빛 안개가 석문을 향해 쇄도했다.

이번에도 석문에 악귀의 얼굴이 나타났으나 금빛 안개 속의 뼛가루가 하얀 빛으로 변해 달라붙었다.

악귀는 하얀 빛이 닿을 때마다 잿빛 연기를 냈고 악귀의 얼굴이 완전히 녹아 내렸을 때는 석문 전체가 잿빛 안개 속에 갇혀 있었다.

그 안에서 처량한 귀곡성이 울리고 붉은 빛이 번들거렸다.

“지금이에요!”

남롱후가 석문의 상황을 보고 먼저 금빛 검에 영력을 불어 넣자, 옆에서 지켜보던 노인도 대량의 영력을 깃발에 주입해 던졌다.

하얀 빛이 반짝이고 깃발이 몇 마리 풍룡으로 변해서 사납게 석문을 덮쳐 갔다. 순식간에 금빛 빛줄기와 풍룡들이 앞 다투어 잿빛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꽈광!

경천동지할 울림과 함께 금빛, 핏빛, 돌풍이 어우러져 폭발했다.

광풍이 몰아치고 석문 앞의 잿빛 안개가 흩어지자 석문을 지키던 핏빛도 사라져버렸다.

자세히 석문의 상황을 살펴보던 남롱후가 자신의 금빛 비검이 석문에 박혀 있는 것을 보고는 의식으로 조종에 들어갔다.

비검이 길게 늘어나며 순식간에 석문을 난도질 했다.

쿠르르릉!

금빛 속에서 석문이 부서져 내렸다.

남롱후와 로 노인은 석문의 파편을 보며 안색이 달라졌는데 마치 사람을 죽인 것처럼 검붉은 피를 토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 피비린내가 상상을 초월했다.

‘정말 기괴한 금제구나!’

석문은 부서졌지만 바로 보물이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새까만 계단이 지하를 향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었다.

“내려가 봅시다. 얼마나 귀한 보물이기에 이렇게 꽁꽁 숨겨 놓았는지 궁금합니다.”

남롱후가 마치 통로 뒤의 보물이 보이기라도 하는 듯 냉소했다. 그가 바로 계단을 몇 걸음 내려가는 동안 로 노인은 제 자리에서 잠시 머물렀다.

로위영의 시선이 검붉은 피를 토해내는 석문의 잔해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둑한 통로를 오갔다.

갑자기 길게 한숨을 토해낸 노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지하로 연결된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 예상과 달리 통로는 생각보다 짧아서 스무 장 정도를 내려가자 대청으로 연결되었다.

그다지 넓지 않은 대청에는 탁자를 제외하면 아무 것도 없었다.

노인이 대청에 들어갔을 때, 남롱후는 탁자 위의 몇 가지 물건을 보며 넋을 잃고 있었다.

“천원과(天元果)! 제가 제대로 본 것이 맞지요?  한 알만 먹어도 수명이 백년은 는다는 천원과 아닙니까. 저 보라색 영지버섯은 보천지(補天芝)! 만년 이상 된 보천지를 생으로 먹으면 수십 년 수행을 얻을 수 있지 않습니까. 금빛으로 반짝이는 대나무는 삼대신목이라 불리는 금뢰죽이고! 저건…….”

로위영도 탁자 위를 확인하고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로 수사, 나라면 그렇게 섣불리 다가가지 않을 것입니다. 정말 이런 보물들이 그냥 가져가라고 탁자 위에 있겠습니까?  자세히 살피세요.”

노인이 흥분해 탁자로 다가가려하자 남롱후가 냉랭히 경고했다.

“무슨 소리입니까?”

노인이 그 말에 화들짝 놀라 정신을 집중해 주위를 살폈다.

“허! 누군가 전설 속의 소수미금강진을 펼쳐놓았군요. 이럴 수가!”

남롱후도 냉랭히 말하기는 했으나 눈앞의 영약들을 보며 욕심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간절하게 원하는 수명을 늘려주는 영약들이 눈앞에 있는데 건들 수 없다니!

그런데 로위영이 금제의 이름을 외치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사실 이곳에 금제가 걸려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했다. 상대가 이름을 안다면 해결 방법도 알 가능성이 높았다.

“로 형, 이 금제에 대해 아십니까?”

“이전에 불가 경전에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소수미금강진은 그 중 가장 신묘한 진법들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소수미금강진이라면 골치 아프게 되었습니다.”

노인이 얼굴을 찌푸렸다.

“깰 수 없단 말입니까?”

“이 진법은 금강곤선진(金剛困仙陣)이라고도 불립니다. 보기 드물게 오로지 완력에 기대어 부숴야 하는 금제이지요. 금제를 풀 방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깨부숴야 한다는 말입니다.

금제의 보호막을 뚫는데 한순간도 쉬어서는 안 됩니다. 방어력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 불가 진법의 능력으로 스스로 복구하기 때문입니다.”

노인이 신중하게 소수미금강진의 특징을 설명했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증명하듯 한 손을 뻗어 불덩이 하나를 날려 보냈다.

펑!

불덩이가 탁자에 닿기도 전에 스스로 폭발하며 사라졌다.

동시에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두꺼운 막이 탁자 위를 맴돌았는데 금빛이 찬란한 보호막 속에 콩알만 한 상고 문자들이 떠돌아다니며 꽃처럼 피어났다.

남롱후가 처음 보는 광경에 주의 깊게 살피는데 곧 노인도 놀라 눈을 부릅떴다.

“허! 이건!”

금빛 보호막 속에 영약들 외에도 은빛의 대접이 생겨난 것이다.

여덟 장의 하얀 옥부에 둘러싸인 은빛 대접의 표면에는 난해한 문자들이 떠돌았고, 그 안에는 세 가지 물건이 둥둥 떠 있었다. 바로 은색 작은 검과 새까만 지팡이 그리고 핏빛의 구슬이었다. 크기가 작아서 그렇지 각각이 내는 기이한 빛은 눈이 부셨다.

그리고 대접과 옥부 그리고 세 가지 물건은 금빛 보호막이 사라지면서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남롱후와 로 노인이 생각에 잠겼다.

물건들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진귀한 영약들 속에 숨겨진 보물의 가치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남롱후와 로위영은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혈주문의 꺼림칙한 비린내와 이곳에 대한 의심은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다.

“로 형, 우리가 아주 제대로 찾아 왔습니다!”

“혈주문 뒤에 이렇게 많은 보물이 감춰져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래도 금제를 깨려면 며칠은 걸릴 것입니다.”

노인이 걱정스레 말하면서도 실실 웃어댔다.

“보물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 정도 수고야 당연하지요! 완력으로 깨야하는 금제라니 바삐 움직여야겠습니다. 일단 금제를 깨면 안에 든 보물은 저와 로 형이 공평하게 반절씩 가져가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남롱후가 더는 시간을 끌고 싶지 않은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남롱 형의 말씀인데 따라야지요.”

노인도 보물을 얻을 생각에 흔쾌히 응했다. 하지만 은연중에 둘은 서로 거리를 벌리며 상대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노인은 하얀 깃발을 허공에 던져놓고 가부좌를 틀었고 남롱후는 소매를 펄럭여 금빛 비검을 방출했다.

돌풍과 금빛 검기가 공격을 가하자 탁자 주위로 다시 보호막이 나타나며 한동안 쿵쾅 거리는 소리가 끝없이 울려 퍼졌다.

* * *

그때 한립은 산 정상을 푸른 빛줄기로 변해 지나가고 있었다.

이미 자문갈 요수들이 서식하는 산마루는 지난 지 오래였고 중심부로 들어왔던 동굴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었다.

한번 지나온 길이었으니 자연히 더욱 빨리 이동했고, 하루가 걸릴 길을 반나절 만에 돌파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굉음이 들려왔다.

한립이 의식을 퍼트려 살피니 오면서 봐두었던 곳이었다. 아마 다른 수사들도 차차 중심부에 진입해 와 보물을 찾는 중 같았다.

한립은 한 순간 혼란한 틈을 타 보물을 얻어 볼까 했지만 이내 그런 생각을 지우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푸른 빛줄기의 속도를 높이며 빠르게 그곳을 벗어났다.

그가 바라보던 곳에는 열댓 명의 수도자들이 하얀 보호막이 쳐져있는 작은 산 정상을 맹렬하게 공격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란 초원의 중 문사와 악 씨 여인을 선두로 한 법사 무리였다.

한립이 빠르게 사라지는데 중 문사가 눈썹을 끌어 올리며 그가 사라지는 방향을 주시했다.

“중 형 문제라도 생긴 것입니까?”

악 여인이 문사의 반응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오. 어떤 천남 수사의 의식이 느껴져서 살폈는데, 멀리 날아가 버리는 것을 보니 문제될 것은 없겠소. 어차피 금제를 깨는 일이 시급하니 추격할 시간도 없고 말이오.”

“맞습니다. 지금은 금제를 깨는 것이 더 중요하지요. 이곳은 이전 금제처럼 낡은 쇠붙이만 잔뜩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오는 길에 두 명이나 공간 균열에 당해 죽지 않았습니까.”

악 여인이 탄식했다.

“숨겨진 공간 균열을 대비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니오. 미리 저계 조류 영수를 준비해 왔건만 중심부로 들어오자마자 미쳐 날뛰니 도저히 통제할 수 없었소.”

“무언가에 극도로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이곳에 상극의 요수가 사는 것은 아닐까요?  제가 빌려 온 5급 영수 오시조도 중심부에 들어오고 나서는 소환에 따르지 않고 영수대 안에만 머물고 있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오. 허나 이곳은 천남 제일의 흉지라 불리는 곳이니 어쩔 수 없지 않소. 우리는 추마골의 비밀을 풀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모란인들을 대신해 고보와 영단을 구하기 위해 이곳까지 온 것이니 쓸데 없는 일에는 너무 신경 쓰지 마시오.

추마골에 들어올 기회를 얻기 위해 천남 사대세력의 고위층에게 지불한 대가를 날릴 수는 없지 않소.”

문생이 서늘한 눈빛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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