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1
461화. 상고 수사의 유골
화섬은 순식간에 급변한 상황에 공포에 질린 듯 했다.
쉑!
이에 화섬은 입을 벌려 새까만 혀를 내밀었다. 웬만한 보검만큼 단단한 혀로 거검을 튕겨내고 물러날 작정이었다.
만일 일반적인 법보였다면 가능했겠지만 경정이 섞인 한립의 비검은 단숨에 화섬의 혀를 잘라버렸다.
그리고 화섬이 뛰어오르는 순간 이번에는 화섬의 목을 단칼에 베어버렸다. 잘린 목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됐군!”
로 노인이 기뻐하며 소리쳤다. 남롱후도 길게 숨을 내뱉으며 물의 장막을 거두려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지요.”
한립이 냉랭히 결계를 거두려는 그를 막았다.
“한 형, 왜 그러십니까?”
한립의 말에 남롱후가 자기도 모르게 저물대에서 손을 뗐고, 로위영도 한립을 힐끗 보며 경계하듯 뒤로 물러났다.
“화섬이 아직 죽지 않았으니 서두르지 마시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아직 살아 있단 말입니까?”
남롱후와 로 노인이 놀라 서둘러 물의 장막을 쳐다보았다. 그제야 화섬의 시체가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머리와 몸이 분리되었는데 여전히 피부에서 광이 나고 있었던 것이다.
빛은 그렇다 치고 잘린 목 부위를 붉은 빛이 보호하며 점점 머리와 몸통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불사란 말인가! 화섬에게 저런 능력이!”
화섬의 불가사의한 모습에 남롱후가 소리를 높였다.
“불사의 존재가 이 세상에 있을까요? 그저 생명력이 다른 요수에 비해 강한 것뿐이지요!”
여러 경전을 섭렵한 한립은 잘려나간 두꺼비의 다리를 보고 이미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남롱후가 결계를 거두려는 것을 막은 것이다.
만일 다시 두꺼비가 부활하도록 내버려둔다면 그는 헛수고를 한 셈이었다. 한립이 냉소하며 화섬 위에 떠 잇는 거검을 가리켰다.
거검이 허공에서 회전해 두 개로 갈라지더니 두꺼비의 머리와 몸통으로 날아갔고, 남색빛이 펑! 펑! 소리를 내며 터져나갔다.
화섬의 머리와 몸이 순식간에 남색 얼음덩이로 변하자 거검이 엄청난 힘으로 얼음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화섬의 잔해 속에는 작은 붉은 구슬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었다. 그것은 바로 화섬의 요단이었다.
요단이 나타나자 남롱후와 로 노인이 시선을 교환했는데 서로의 눈빛에서 탐욕을 읽을 수 있었다. 불사의 몸을 지닌 상고 요수의 내단이라면 분명 특별한 힘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립의 능력을 직접 보았고 들은 바가 있으니 그런 마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마 둘이 연합해 한립과 싸워야 할텐데 지금 남롱후의 몸 상태로는 조금 무리였다.
게다가 겨우 상고 요수의 요단을 위해 배신을 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었다. 어쨌든 추마골 중심부에 진입했으니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한립은 둘의 생각을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방금 화섬을 죽일 때 그들이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자신이 나서서 요수를 죽이게 한 것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화섬의 머리를 자르면서 겉으로는 태연한 척 했지만 속으로는 경계심을 높이며 대비에 들어갔다.
다행히 남롱후와 로 노인이 평정을 회복하자 한립도 내심 한시름을 놓았다. 두 사람과 싸우려면 아무리 그라도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한립이 물의 장막을 향해 손짓해 붉은 요단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두 개의 비검들도 다시 작은 비검으로 돌아가 그의 소매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한립은 요단을 손에 쥐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추마골에 들어온 목적 중 하나를 겨우 달성한 것이다.
그때 남롱후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화섬을 죽이는데 한 수사의 공로가 컸습니다. 그럼 요수의 굴도 살펴볼까요? 한 형도 유골에 관심이 있으시겠지요?”
“예, 그래야지요.”
요단을 저물대에 넣은 한립이 담담하게 답했다. 이렇게 세 수사는 결계를 거두고 거대한 산봉우리 아래로 향했다.
세 빛줄기가 순식간에 동굴 밖에 도착해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용암 호수를 본 세 수사들은 즉시 내부를 둘러보았다.
“보아하니, 이게 창곤 상인이 말씀하시던 상고 수사의 유적인가 봅니다. 같이 살펴보시죠.”
남롱후의 말에 한립과 로 노인도 거절하지 않고 즉시 용암호수를 건너 유골이 있는 돌 탁자로 날아갔다.
서너 장을 앞두었을 때 한립은 속도를 늦추었고 남롱후와 로 노인도 멈춰서 의식을 이용해 탐색을 했다.
한립은 그저 입 꼬리를 끌어올리고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미 상고 유골이 무언가 이상하다고 의심하고 있었기에 굳이 두 수사가 먼저 알아봐 주겠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과연 남롱후와 로위영의 의식이 유골에 접근했다가 의복에서 방출된 남색 기운에 튕겨나갔다.
“흠? 저 의복이 무언가 이상합니다, 그려.”
“수사들의 의식을 막아주는 청잠포니 이상할 것 없습니다. 상고 영충의 누에 실을 이용해 만들어낸 보물이지요.”
남롱후가 장포를 알아보고 한 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푸른 장포가 흔들거리다가 유골을 벗어나 남롱후의 수중에 들어왔다.
그리고 적나라하게 드러난 유골에는 새까만 작은 가죽 주머니가 걸려있었다.
“과연 저물대가 있습니다!”
로 노인이 만면에 희색을 드러냈고 남롱후도 손에 든 푸른 장포를 옆쪽으로 던져버리고 검은 저물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한립은 푸른 장포가 떨어지는 소리에 안색이 미미하게 변했다가 금세 원래상태로 돌아왔다.
“두 분이 괜찮으시다면……. 본 후가 먼저 저물대 속의 보물을 살펴도 되겠습니까?”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남롱후가 한립과 노인을 향해 미소 지으며 물었다.
“그러시지요. 남롱 형께서 저물대를 살펴보십시오.”
한립이 가죽 주머니를 살피다가 가볍게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로 노인은 주저했지만 결국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남롱후가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가 조심스럽게 가죽 주머니에 의식을 불어 넣었다.
“남롱 형, 안에 무엇이 있습니까? 저도 좀 봅시다.”
남롱후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에 들고 있던 가죽 주머니를 뒤집었다. 그러자 하얀 기운 속에서 대량의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게 무엇입니까?”
물건을 확인한 노인이 의아함에 눈을 부릅떴다. 대부분이 붉은 빛의 철 덩이였고 그걸 제외하면 몇 가지 물건들만 눈길을 끌었다.
하얀 옥함과 보라색 거울, 노란색 비검, 검푸른 바늘 한 벌에 새까만 약병 두 개였다.
옥함과 약병은 내용물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전부 평범한 물건은 아니었다. 그리고 옥함과 약병은 어떤 재료로 만들어 진 것인지 의식으로는 확인할 수 없었다.
“모르겠습니다. 이런 재료는 본 적이 없는데 아무래도 무언가를 제련하려던 것 같습니다.”
한립도 붉은 기운이 도는 철 덩이의 정체를 확신할 수 없었다.
“제 예상이 맞다면 아마 전설 속의 영료가 아닐까 합니다. 상고 수사들이 고보를 제련할 때 쓰는 특수한 재료지요. 이 상고 수사도 불 속성의 강력한 고보를 만들려고 이것들을 수집하던 중이 아니었을까요?”
예상 밖으로 남롱후가 철 덩이의 내력을 알아보았다.
‘영료!’
이름을 들이니 한립도 고대 경전에서 읽은 기억이 났다. 남롱후가 말한 대로 강력한 고보를 만들어내는 제련 재료였다.
로 노인은 그 말에 흥미를 잃고 옥함과 약병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 남롱후가 들고 있던 저물대를 한립에게 던져 주었다.
한립이 그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거침없이 의식을 불어넣어 속을 확인하고는 로 노인에게 건넸다. 노인이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저물대를 한 쪽으로 던져버렸다.
“그럼 이제 어떻게 나눠 가질까요? 설마 두 개씩 나눠 갖는 것입니까?”
“로 형에게 다른 의견이 있으십니까?”
한립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만일 옥함과 약병도 고보라면 우리 셋이서 두 개씩 나누면 되겠지만…….”
“옥함과 약병 안에 어떤 것이 들어있는지 모르니 우선 열어보고 이야기 하시지요.”
남롱후가 갑자기 끼어들어 로위영의 말을 가로챘다. 노인이 미간을 좁혔지만 개의치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노부의 말이 그 말이었습니다. 한 수사의 뜻은 어떠합니까?”
“두 분 뜻대로 하시지요.”
“대답이 시원시원 하십니다. 그럼 안을 확인해 볼까요?”
남롱후가 한립의 말에 만족하며 손을 뻗었다.
쉭!
하얀 옥함이 먼저 날아올랐고 그가 뚜껑을 열려 했다. 그런데 그의 손이 옥함에 닿는 순간 하얀 빛이 나타나 그를 밀어냈다.
“허! 옥함에 금제가 걸려 있습니다.”
남롱후가 놀라 손에 금빛을 두르고 다시 옥함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하얀빛이 번지더니 그의 손에서 나온 금빛과 어우러졌다.
잠시 후, 하얀빛이 금빛을 이기지 못하고 천천히 옥함의 뚜껑이 열렸다. 한립이 자세히 살피니 옥함 안에 누런 옥간이 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
남롱후가 머뭇거리다가 손을 뻗어 옥간에 의식을 불어넣었다. 그런데 안을 들여다본 그의 표정이 이상했다.
“두 분도 확인하시지요!”
남롱후가 의심을 피하려는 듯 바로 옥간을 먼저 한립에게 넘겨주었다. 한립이 확인하고는 역시 미간을 좁혔고 바로 로 노인에게 던져주었다.
로 노인이 서둘러 의식을 불어넣었다.
“칠염선이라는 고보가 그렇게 대단한 것입니까? 한 번도 들어본 일이 없는데요.”
로위영이 자세히 살피지 않고 의식을 회수했다.
“모르겠어요. 다만 이렇게 옥간에 제련 방법을 기록해 지니고 있고 대량의 영료가 필요한 것으로 보아서는 그렇지 않겠습니까?”
남롱후도 칠염선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뭐, 아무리 대단해도 소용이 없겠습니다. 제련에 필요한 영료가 이렇게 많아서야! 81가지 불 속성 영료를 융합해야 하는데다 보조 재료도 너무 많이 필요합니다. 이미 찾을 수 없는 재료도 몇 가지 있던데… 상고 시대 고보 제련법을 연구하는 용도가 아니면 쓸모가 없겠어요.”
로 노인이 고개를 저으며 옥간을 남롱후에게 돌려주었다. 남롱후가 웃으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옥간을 옥함 속에 돌려놓았다.
“칠염선? 주인님 그 옥간에 칠염선의 제련법이 적혀 있나요!”
한립도 옥간이 별 필요 없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머릿속에서 홀연히 은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아는 고보더냐?”
“주인님, 제 생전의 기억이 맞다면 칠염선은 통천령보 중 하나입니다! 통천령보 중에서는 아주 낮은 등급에 속하지만요.”
은월이 기쁜 마음에 목소리를 떨고 있었다.
“통천령보!”
한립이 경악해 자기도 모르게 멍해졌다.
“뭐라고? 칠염선이 통천령보라고!? 그럼 반드시 옥간을 손에 넣어야 할게다. 노부도 이전에 통천령보를 연구한 적이 있었는데 그 제련법이 적힌 서책이라니!”
한립이 무어라 답하기도 전에 갑자기 대연 신군이 나서서 그의 머릿속이 울리도록 소리 쳐댔다.
“늙은 괴물이 어디라고 끼어들어요?”
은월이 대연 신군의 말에 싸늘하게 대꾸했다.
“허허허! 어린 계집애가 아직도 그때 일로 꽁해 있구나. 노부는 그저 너처럼 영민한 기령을 처음 보는 터라 연구를 좀 해보고려고 했을 뿐이다. 네 주인이 거절했으면 된 거 아니더냐?”
대연 신군은 아무렇지 않게 웃어 넘겼다.
“당신……!”
“됐다. 은월, 지나간 일에 마음 쓰지 말거라. 선배가 통천령보에 대해 아는 바가 있다는 것은 또 금시초문입니다. 허나 지금은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닙니다.”
한립이 냉랭히 둘의 말을 막는데 남롱후가 이미 검은 약병 두 개를 열고 있었다.
은월은 당연히 그의 명에 따랐고 대연 신군은 불쾌한 듯 꿍얼거렸으나 더는 무어라 떠들어 대지 않았다.
약병을 열자마자 그윽한 향기가 퍼져나갔다. 한립도 냄새를 맡으니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흔히 알려진 상고 시대 영단은 아닌 것 같으니 돌아가서 차차 용도를 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독약은 아닌 듯 하군요.”
남롱후가 초록빛을 머금은 단약 한 알을 꺼내 중얼거렸다.
“총 몇 알이 들어있습니까?”
로 노인이 단약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단 한 알뿐입니다. 아주 진귀한 영단일 가능성이 높지요.”
남롱후가 한립과 노인이 보는 앞에서 약병을 털어 보였다.
“다음 약병도 어서 봅시다!”
로위영의 말투에 조급함이 묻어났다. 남롱후가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 약병을 열었는데 역시 똑같은 초록빛의 영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