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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458화 (215/2,000)

# 458

458화. 북극원광

동굴이 굽어지는 부분을 지나는데 앞서가던 두 수사가 걸음을 멈추었다.

통로가 갑자기 배는 넓어졌기 때문이다. 넓은 통로의 위아래에는 종유석과 비슷한 기이한 암석들이 매달려서는 은색 광선을 내뿜고 있었다.

“이게 북극원광입니다. 잘 알고들 계시겠지만 한 번 더 주의 드리겠습니다. 북극원광 속에서는 양의환을 제외하곤 영력이나 법보를 운용하셔서는 안 됩니다. 일단 영기가 새어 나가 북극원광이 그것을 감지하면 우리 모두 죽은 목숨일 테니까요.”

남롱후의 말이 끝나자 한립은 말없이 소매를 털어 새까만 반지 한 개를 꺼내 들었다. 반지의 새까만 빛이 심상치 않았다.

한립이 양의환을 꺼내자 남롱후와 로위영이 즉시 신형을 그의 뒤로 옮겼다.

그가 푸른 기운을 뿜어 반지에 뿜자 새까만 빛이 반짝이며 휙 하고 머리 위로 떠올랐다.

이어 한립이 법결을 날리자 양의환의 크기가 늘었다 줄었다 하더니 별안간 대여섯 장 길이의 거대한 고리로 변했다.

“가라.”

한립이 손가락을 뻗어 한 곳을 가리켰다.

쉭!

괴이한 소리를 내며 거대한 고리가 앞으로 나아갔다. 이 모습을 본 남롱후와 로위영의 표정도 진지해졌다.

거대한 고리가 드디어 수만 줄기의 은색 광선속에 들어가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마치 수면을 가르듯 양의환에 닿은 광선들이 굽어지며 통로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것을 확인하고 한립이 한시름을 놓았고 남롱후와 로위영도 미소 지었다.

하지만 한립은 북극원광의 본래 위력도 궁금했다.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저물대에서 주먹만 한 남색 구슬을 꺼내 통로로 던졌다.

상급 보호 법기인 남색 구슬은 북극원광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은색 광선들에 휩싸였고, 곧 수많은 광선들이 보호막을 뚫고 구슬을 파고 들었다.

쾅!

결국 구슬이 폭발하며 빛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조용히 이를 지켜보던 한립의 동공이 작게 수축되었고, 남롱후와 로 노인의 안색도 어두워졌다.

그러나 다시 원래 표정으로 돌아온 한립은 손짓해서 양의환을 불러들였다. 그의 머리 위로 돌아온 거대한 고리는 세 수사를 감쌀만한 새까만 보호막을 만들어냈다.

“가시죠.”

한립이 먼저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고, 남롱후와 로 노인도 보호막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게 열심히 뒤따랐다.

솔직히 한립도 조금 걱정되었지만 북극원광에 들어선 후로 다행히 은색 광선들이 새까만 보호막을 비켜갔기에 안전하게 나아갈 수 있었다.

* * *

추마골 모처. 중심부와 가까운 얼음 천지에 검은 의복을 입은 귀령문 수사들이 각종 법보를 이용해 도마뱀 모양의 상고 요수와 싸우고 있었다.

머지않은 허공에 안색이 창백한 종 노인이 떠서는 서늘한 눈빛으로 결단기 수사들과 상고요수의 싸움을 지켜봤다.

시간이 흘러도 제자들이 요수를 해치우지 못하자 인상을 찌푸리며 그가 직접 나섰다.

수결을 맺은 종 노인의 몸에서 칠흑 같은 기운이 피어오르더니 새까만 교룡 모양으로 뭉쳐져 도마뱀을 덮쳤다. 이어 청록색 거대 그물이 펼쳐지더니 주먹만 한 녹색 불길들이 요수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쿠르릉!

새까만 기운과 녹색 화염이 지나가자 새까맣게 그을린 거대 요수의 시체가 나타났다. 노인이 소매를 흔들자 광풍이 불어 시체마저 열댓 장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거대 요수의 몸체가 사라지자 그 뒤로 좁은 얼음 협곡이 나타났다.

“가지.”

노인이 낮은 목소리로 명하자 다른 귀령문 제자들은 조용히 그 뒤를 쫓았다. 그러나 여전히 귀령문 문주와 왕천고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사라지자 거센 눈바람이 몰아쳤고 새까맣게 타죽은 요수의 몸 위로 눈이 쌓여 작은 언덕처럼 보였다.

* * *

밀림 속에서 자령이 평범해 보이는 흙더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주위를 살피더니 손가락을 뻗어 하얀 빛덩이를 방출했다. 그러자 그 위를 덮고 있던 것들이 날아가고 타고 남은 나무뿌리가 드러났다.

“여기구나. 귀령문 제자들의 수가 많으니 빨리 찾아낼 줄 알았지. 누군가 자신들을 추적하는지도 모르고 이렇게 흔적을 남겨두다니.”

자령이 희색을 드러내며 소매를 휘저어 다시 구덩이를 덮고는 녹색 부적을 꺼내 주변 나무에 던졌다. 그러자 부적이 나무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그녀가 조심스레 위치를 정하고는 다시 날아올랐다.

* * *

거대한 협곡을 앞두고 노인이 그 안의 금제들을 보며 안색을 굳어졌다. 그 뒤로는 흉악한 인상의 꼭두각시 두 마리가 서 있었다.

협곡 끝에 은은히 대량의 붉은 기운이 넘실거렸다. 이 협곡은 바로 중심부로 통하는 통로 중 하나인 것이다.

아무리 노인이 각종 진법에 능통하다지만 이렇게 많은 고대 금제를 단시간에 뚫을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다른 통로를 찾아 봐야할지 금제를 풀기 시작해야할지 고민이 되어 노인은 주저했다.

“천정 수사, 혼자 금제를 다 풀 수 있을지 고민하십니까?  괜찮다면 노부와 함께 해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노인 뒤에서 돌연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노인은 예전에 한립과 혼석(魂石)을 두고 거래했던 천정 진인이었다. 그는 혼석을 이용해 새로 제련한 상고 꼭두각시 두 마리를 대동하고 있었는데 각각이 원영 초기의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노인이 몸을 돌렸다.

대여섯 장 거리에 녹색 장포를 입은 수사 여럿이 소리 없이 떠있었고 목소리의 주인은 길게 수염을 기른 음산한 인상의 노인이었다.

천정 진인은 그들의 수행을 살피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들은 전부 원영기 수사들이었던 것이다!

“어령종 동문 수사셨군요. 다른 수사들은 얼굴이 낯설군요. 전부 귀 문의 장로들입니까?”

“그렇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수사 뒤쪽의 꼭두각시들이 아주 남다릅니다.”

“겨우 꼭두각시에 불과한데 남다르기는요. 그보다 왜 빈도와 손을 잡고자 하십니까?”

“제가 어령종에만 머물러 여러 수사들과 교류는 많지 않으나 천정 수사께서 진법의 대가라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각자 금제를 풀려고 한다면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함께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지 않겠습니까?”

동문도가 신중한 얼굴의 천정 진인을 향해 말했다. 그러나 천정 진인은 바로 수락하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어찌 그러십니까?  제가 수사에게 해라도 끼칠까 걱정되십니까?  중심부로 들어갈 때까지만 잠시 함께 하는 것인데 제가 무슨 짓을 벌이겠습니까.

서로가 원하는 것이 같지 않은 한 시간과 법력을 허비할 이유가 없지요. 그리고 저도 진법에 대해 꽤 연구를 해온 터라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동문도의 안색이 조금 가라앉았지만 그래도 인내심을 가지고 상대를 설득했다. 천정 진인도 들어보니 틀린 말은 아니라서 동문도 뒤쪽의 다섯 녹의 수사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걱정을 할 리가요. 좋습니다. 다 같이 금제를 풀어 들어가면 그 뒤로는 각자 갈 길을 가지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천정 수사가 지닌 꼭두각시들도 만만치 않아 보이는데 제가 다른 생각을 품을 리가요. 일단 중심부로 들어가면 이후의 일은 각자의 운에 맡깁시다!”

녹색 장포의 노인이 바로 웃음을 터트렸다.

‘여기서부터 중심부란 말인가? ’

한립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뒤쪽으로는 천여 장 높이의 절벽이 솟아 있었고 그 아래로 그들이 지나온 동굴이 뚫려 있었다.

남롱후와 로 노인도 눈앞의 광경에 잠시 말을 잃은 듯 했다.

그곳은 무수히 많은 산맥들이 끝없이 이어진 오색찬란한 세계였다.

하늘 전체가 다채로운 빛깔로 반짝였고 안개가 비단처럼 펼쳐진 빛무리까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중심부 영기의 흐름이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워 언제라도 폭발할 것만 같았다는 것이었다.

“상고 수사들의 전쟁터였다더니 영기의 흐름마저 철저히 망가졌군요. 이렇게 되면 어떤 수사든 영력을 쓰는데 방해를 받겠어요.”

남롱후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도 문제지만 진짜 골칫덩이는 저것 같습니다.”

한립이 갑자기 손을 뻗어 하늘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손끝에는 열 자 길이의 하얀 빛이 표표히 떠 있었다.

“공간균열이 저리 많다니. 게다가 스스로 움직이지 않습니까!”

로위영이 깜짝 놀라서는 소리를 높였다. 안색이 안 좋기는 남롱후도 마찬가지였다.

“공간균열이 외곽에 비해 많은 것은 이미 예상한 일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수많은 원영기 수사들이 돌아오지 못했을 리 없었겠지요. 이제부터는 우리도 창곤 상인께서 남긴 지도에 따라 움직여야할 겁니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한립이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남 형의 말이 맞습니다. 특히 투명한 공간균열은 더욱 위험하니 조심해야겠습니다. 움직이는 공간균열들은 속도가 빠르지 않으니 주의를 기울인다면 괜찮을 겁니다.”

“하지만 외곽에 비해 열배가 넘게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공간 균열들이 저렇게 움직이면 창곤 상인께서 남긴 지도도 소용이 없는 것 아닙니까?”

로위영이 불안한지 허공을 쳐다보았다. 한립도 고개를 들어 올렸는데 그의 눈동자에 남색 빛이 넘실거렸다.

“두 분 모두 안심하십시오. 숨겨진 공간 균열은 절대 이동하지 않는다고 창곤 상인께서 기록해 두셨으니까요.”

“그걸 어찌 알아내셨단 겁니까?”

로위영이 의심스럽다는 듯 물었다.

“로 형께서는 창곤 상인이 원기가 크게 상한 몸으로 그저 운이 좋아 추마골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믿으십니까?  숨겨진 공간 균열을 꿰뚫어보는 일종의 신통력을 지니고 계셨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그 말에 노인의 안색이 한결 편해졌다.

“그런 비술이 존재 한다니! 그렇다면 창곤 상인께서 살아남으신게 절대 운이 좋아서가 아니겠군요.”

한립은 숨겨진 공간 균열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안심한 척 했다.

“그럼 출발 하실까요?  지도에 따르면 화섬의 서식지까지 하루는 걸릴 겁니다. 가는 동안에도 더욱 주의를 해주시지요.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으니 출발합시다.”

그가 먼저 방향을 정하고 전신의 금빛을 반짝이며 천천히 날아가기 시작했다. 한립과 노인도 그의 뒤에서 딱 붙어 날아갔다.

조금이라도 멀어졌다가 숨겨진 공간 균열이라도 만나면 죽은 목숨이었다.

가는 동안 남롱후는 직선으로 날아가기도 하고, 어딘가를 빙글 돌아가기도 하면서 기이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일정 시각마다 멈춰서 방향을 다시 잡고 출발했다.

옥간에 의지해서 가는 게 아니라 자신의 기억력에 의지해 가는 것이었다. 수도자들은 기본적으로 오행공법을 익혀 비상한 기억력을 지니게 되었으니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반나절이 지났지만 그들은 어떤 위기에도 직면하지 않았다. 한립도 점점 남롱후가 확실히 길을 안다는 것을 믿기로 했다.

길을 가는 동안 그는 길을 외우는 동시에 의식을 이용해 주위를 살폈다. 적어도 서너 곳에서 이상한 영기의 파동이 감지되었는데 상고 수사의 유적과 그것을 둘러싼 금제일 터였다.

그러나 한립은 마음을 다잡으며 샘솟는 욕심을 억눌렀다. 그는 상고 금제를 오랫동안 연구해왔기에 더욱 그 무서움을 알았다.

상고 금제의 위력은 결코 공간 균열에 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무것도 모르고 건드렸다가는 순식간에 목숨을 잃을 것이다.

그런데 로 노인의 두리번거리는 시선이 심상치 않았다. 한립은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대부분의 수사들이 저런 욕심에 휩싸일 것이다. 한립도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상고 수사의 유적들에 도전해 볼 것 같았다.

만약 위험을 감수하고 귀한 영약을 찾는데 성공하면 수명도 늘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남롱후가 갑자기 멈춰서서 어두운 얼굴로 전방을 주시했다. 그 모습에 한립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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