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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457화 (214/2,000)

# 457

457화. 강은사(罡銀沙)

모든 일이 너무 순식간에 일어났다.

검은 기운이 신속하게 사라지고 구렁이 요수의 진면목이 드러났다.

“이건…….”

“삼수오사(三首烏蛇)!”

“말도 안 돼!”

흉포한 얼굴로 그들을 노려보는 구렁이의 몸통에 머리가 세 개나 붙어 있었던 것이다. 중간의 뱀 머리는 연신 혀를 날름거렸고 좌우에 있는 뱀 머리들은 있는 힘껏 꼭두각시 요수들을 씹어 먹는 중이었다.

그때 한립이 서늘하게 외쳤다.

“터져라.”

쿠콰쾅! 쿠쾅!

양 옆에서 폭음이 들리며 잡아먹히던 늑대 꼭두각시들이 터져나갔다.

한립이 상황을 파악하고 수결을 맺어 즉시 꼭두각시들을 자폭시킨 것이다.

구렁이의 비늘은 단단하기 그지없었지만 입 안까지는 아니었다. 두 머리가 폭발에 휩싸여 고통스런 비명을 질러댔다.

그 모습에 중간 머리가 분노하며 거대한 꼬리를 휘둘러 푸른 구렁이 꼭두각시를 날려버리고, 몸을 늘려 붉은 소 꼭두각시를 단숨에 깨물어 버렸다.

남롱후와 로위영은 한립이 시간을 끄는 동안 드디어 공격 준비를 마쳤다.

“가라.”

노인 앞의 나타난 수십 개의 하얀 화염이 하늘을 뒤덮으며 날아갔다.

그리고 남롱후의 청록색 반지는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넷으로, 넷에서 여덟로……. 순식간에 백여 개 가 넘은 환영을 만들어내 청록색 빛줄기들로 변해 쏘아져나갔다.

한립도 멈추지 않고 손바닥을 뒤집어 새까만 물건을 허공에 던졌다. 검은 빛이 반짝이며 열 장 높이의 산봉우리가 나타나 몸집을 키웠는데, 바로 천중봉 고보였다.

거대한 몸체와 두꺼운 비늘을 지닌 괴수를 상대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게다가 구렁이의 동작이 민첩하니 일단 가두고 공격하는 게 나았다.

잠시 후, 좌우에 있던 머리가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회색빛의 굵직한 빛기둥을 분출했다.

콰콰쾅!

하얀 화염이 먼저 빛기둥과 만나 터져나갔고 하얀 화염의 물결과 회색빛이 서로 섞여 들어가 잠시 교착 상태에 빠졌다.

그때 청록색 반지들이 그 너머로 날아갔다. 한립의 검은 산 고보도 천천히 그 뒤를 따르는 중이었다.

구렁이가 녹색 빛줄기들의 위협을 감지했는지 온 몸에서 녹색 안개를 분출하며 앞쪽으로 몸을 날렸다. 녹색 반지의 환영들이 사나운 구렁이의 이빨에 하나둘 연기처럼 흩어졌다.

하지만 마지막 남은 반지만은 반짝거리다가 그 자리에서 사라져 구렁이의 머리 위에서 다시 나타났다.

거대하게 변한 반지는 한껏 빛을 뿜어내며 아래로 하강했고, 구렁이의 목을 조르며 맹렬하게 줄어들었다.

쉭!

구렁이가 고통스럽게 바닥을 구르며 머리를 사정없이 땅에 박았다. 마치 반지의 구속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듯했다.

중간 머리의 고통에 나머지 머리들도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에 하얀 화염과 교전하던 잿빛 빛기둥들이 사라졌다.

로위영이 희색을 드러내며 화염들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구렁이의 초록색 안개도 대단해서 화염과 반지의 공격에도 밀리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그때, 별안간 구렁이의 머리 위에 검은 빛이 드리우며 수십 장의 거대한 산봉우리가 나타났다.

산봉우리는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더니 대량의 검은 빛을 발산하며 떨어져 내렸다. 드디어 위기를 감지하고 구렁이가 세 머리를 들어 간신히 빛기둥을 쏘아 올렸지만 천중봉의 낙하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구렁이가 꼬리로 땅을 박차고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는데 주변을 넘실거리던 하얀 화염이 굵은 화염의 사슬로 변해 구렁이를 휘감아버렸다.

꽝!

드디어 천중봉이 검은 구렁이를 내리눌렀고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

쉬익!

드디어 세 구렁이의 비명이 엇갈려 들려왔다. 그 소리에 남롱후는 희색을 드러냈고 로위영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런데 한립의 표정이 한결 신중해졌다.

검은 빛이 가시고 세 구렁이 중 하나가 산봉우리 밖에 삐져나와 미친 듯이 꿈틀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놀라운 생명력에 감탄이 나올 지경이었다.

로위영이 한 손을 뻗어 하얀 빛을 날리자 이미 녹색 안개의 보호막을 잃은 뱀 머리가 단숨에 잘려나갔다.

“드디어 해결했습니다. 전설 속의 삼수오사치고는 너무 약한 것 아닙니까?”

“진정한 삼수오사는 머리가 셋에 날개까지 있어야 합니다. 정말 그런 괴물이었다면 이렇게 쉽게 죽일 수 없었을 겁니다.”

로 노인의 말에 남롱후가 고개를 저었다.

“구렁이 요수가 변이를 해서 머리가 세 개로 늘어났을 뿐. 삼수오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어서 서둘러 통로로 들어가시죠.”

한립이 차분히 말하고는 새까만 산봉우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켜 천중봉을 회수했고, 남롱후도 서둘러 금색 비검과 청록색 반지를 회수했다.

로위영이 잔해를 보다가 허공에서 손을 쥐어 머리 부분에서 푸른 내단을 불러들였다.

노인이 잠시 내단을 살펴보고는 다른 머리에서도 내단을 거둬 꼭두각시의 잔해를 수습하는 한립과 남롱후에게 던져주었다. 두 수사는 내단을 확인하고 바로 저물대로 집어넣었다.

불덩이를 던져 거대 구렁이의 사체를 재로 만든 로위영이 입을 열었다.

“우리 중 누구라도 홀로 요수를 상대해야 했다면 법력을 크게 소모했을 겁니다. 셋이 힘을 합치니 상고 요수도 처리할 만하군요. 화섬도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길 바라야지요. 하지만 화섬은 더욱 어려운 상대일 겁니다. 창곤 상인께서 특별히 주의하라고 언급한 요수가 만만할 리 없으니까요.”

남롱후가 그의 말에 대답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 한립이 푸른 빛줄기로 변해 주변에 깔아 놓은 진법 깃발을 회수하고 돌아왔다.

“가보면 얼마나 대단한지 알겠지요.”

한립이 낮게 말하고 먼저 성큼성큼 걸어갔고 남롱후와 노인이 서로 시선을 마주치며 그 뒤를 따랐다.

이제 나올 북극원광은 한립의 양의환이 있어야 지날 수 있는 곳이었다.

잿빛 안개가 사라진 골짜기에는 백여 장의 돌길이 이어졌는데 좌우로 핏빛 금제가 번뜩이고 있었다.

한립이 다섯 장 높이에서 저공비행을 하다가 거대한 석벽을 발견하고 멈추었다. 그 중간에 거무튀튀한 동굴이 뚫려 있었다.

“여깁니다! 이 동굴을 지나면 추마골의 중심부인데 십리 정도 북극원광이 깔려 있지요. 이곳은 한 수사의 양의환만 믿겠습니다.”

“동굴 속에 북극원광이 있다면 석벽의 다른 부분을 통해 진입하는 것은 안 됩니까?”

로위영이 턱을 쓰다듬으며 묻자 남롱후가 고개를 저었다.

“그 방법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법보로 아무 곳이나 공격해 보면 그 이유를 알게 될 겁니다.”

“오, 그렇습니까?”

노인이 소매를 펄럭여 다시금 하얀 빛을 방출해 석벽을 갈랐다. 한립이 자세히 살피니 하얀 빛의 정체는 특이한 모양의 짧은 단도였다.

비도가 날아가 석벽을 내리치자 하얀 빛이 폭발했다.

챙!

비도가 공격을 가한 곳엔 아주 얕은 흔적이 남았는데 그 사이로 은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로위영의 표정이 달라져서는 바로 비도를 회수했다.

“이건……. 강은사, 이 석벽은 강은사로 이루어진 겁니까?”

노인이 놀라 가까이 확인하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한립의 안색도 달라졌다. 그도 노인과 마찬가지로 손가락을 들어 비도가 낸 흔적을 가볍게 훑었다.

법보를 제련할 때 첨가하면 법보를 더욱 단단하게 해주는 재료 중 하나로 경정에 버금가는 희귀한 물질이었다. 그러니 로위영의 비도 법보가 흠집을 내지 못한 것도 당연했다.

한립이 신중한 얼굴로 한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열댓 자루의 검들이 소매에서 쏟아져 석벽 곳곳을 공격했다. 남롱후와 로위영은 순간 멈칫하다가 곧 그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채채채챙!

“강은사는 맞지만 암석 사이에 섞여 있군요. 분포가 균일하지 않다는 것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지형이라는 뜻이겠죠. 안에 분명히 강은사 광맥이 있을 겁니다.”

한립의 비검이 석벽에 몇 배는 더 깊은 흔적을 남기자 로위영이 그의 말을 듣고 탐욕스런 눈으로 석벽을 응시했다.

남롱후도 마찬가지였지만 금방 원래 표정을 회복했다.

“일단 중심부로 들어갑시다.”

“이대로 가잔 말입니까?  강은사는 구하기 어려운 보물인데 이렇게 가는 것은…….”

노인은 아까워서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로 형, 정신 차리세요! 강은사가 얼마나 단단한지 모르십니까?  광맥이 흐른다 해도 원석 한 덩이를 캐려면 많은 법력과 시간을 써야합니다. 게다가 우리가 이곳에 보물을 탐해 들어온 것입니까?  수명을 늘려주고, 우리의 경지를 올려줄 영약이 우선입니다.”

남롱후가 노인을 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하자 로위영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노부가 잠시 보물에 미혹되어 이번 원정의 진정한 목표를 잊을 뻔 했습니다.”

이후 그들은 더는 지체 하지 않고 곧바로 동굴로 진입했다. 한립도 강은사가 아깝기는 했지만 남롱후의 말대로 한 덩이의 강은사를 캐려면 많은 시간과 법력이 소모될 것이 틀림없었다.

그때 갑자기 그의 머릿속에서 대연 신군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렇게 많은 양의 강은사라니! 노부가 이전에 찾아다닐 때도 얼마 구하지 못 했는데…… 추마골의 명성이 허명이 아니었구나! 노부가 새로 제련 중인 꼭두각시들에게 쓰면 더욱 튼튼한 몸을 만들 수 있겠어. 보통 법보로는 상처도 입히기 힘들 것이다. 이곳 강은사는 내가 전부 가지고 가야겠다.”

대연 신군이 흥분하여 중얼거렸다.

“늙은이가 정신이 나갔소?  어찌 검으로 조금씩 긁어 가져가기라도 하겠다는 거요?”

“흥! 본 신군에게 방법이 없을까. 녀석아, 그 많은 서금충들은 놔뒀다가 어디에 쓰려고 그러느냐?  내가 법결을 하나 알려 줄 테니 서금충들로 하여금 석벽을 파고들어 갉아먹고 강은사 결정만 뱉어내도록 하거라.

예전에 어떤 충수(蟲修)를 죽이고 알아낸 법결인데 서금충이 아니라 다른 곤충 요수들도 이런 식으로 부릴 수 있지.”

“그런 구결을 안단 말이오?  좋소, 알려주시오. 바로 서금충들을 시켜 강은사를 모으겠소.”

“허나 강은사를 얼마나 얻든 일단 내 꼭두각시에 쓸 것이다. 그러고 남으면 네게 돌아가는 거고. 알겠느냐?”

“내 법보는 이미 경정을 제련해 넣었기에 어차피 강은사는 더할 필요가 없소.”

“경정과 같은 역천의 재료를 넣었다고?  어디 남은 것은 없느냐?  조금만 나눠주면 내 요긴히 쓸 수 있을 텐데.”

“내 본명 법보의 양을 알고도 그러시오. 남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걸 다 썼다고?  아껴 쓸 것이지!”

한립의 담담한 설명에 실망한 대연 신군이 투덜거렸다. 한립은 그의 말에 속으로 눈을 흘겼지만 꾹 참았다.

아니, 자신의 본명 법보에 귀한 재료를 넣겠다는데 왜 아껴 써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지금은 상대에게 알아낼 것이 있었기에 따질 때가 아니었다.

이때 한립은 앞서 걸어가는 두 수사와 일부러 조금 거리를 두고 걷고 있었다. 동굴 안이 너무 어두워서 법력을 주입한 눈으로도 대략적인 윤곽만 보였기에 조심만 하면 들키지 않을 수 있을 듯 했다.

동굴은 입구와 마찬가지로 담황색이었다. 한립이 조심스레 비검으로 석벽을 그어보니 은빛이 반짝이는 게 역시 이곳도 강은사가 섞여 있었다.

비록 구결은 고대문자로 적혀 있어 난해했지만 본래 곤충 요수를 다루는데 능한 한립은 대연 신군의 조언을 들으며 빠르게 구결을 익혀 나갔다.

대연 신군이 구결 전수를 마치자, 한립이 속으로 구결을 여러 번 되뇌고는 한 손으로 영수대를 스쳤다.

그러자 그의 소매에서 금색 서금충들이 소리 없이 날아올라 사라졌다.

잠시 후, 서금충들이 전부 빠져 나가자 한립이 수결을 맺으며 낮게 주술을 외웠다. 의식을 퍼트려 동굴 입구 석벽에 떠 있는 대량의 서금충들을 제어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금충들에게 갑자기 금빛이 발광하더니 아무 장애도 되지 않는다는 듯 석벽 속으로 몰려 들어가 자취를 감추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이상이 느껴지지 않았다. 한립은 의식을 통해 일이 잘 풀리고 있음을 느끼고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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