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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453화 (210/2,000)

# 453

453화. 추마골로 모여드는 수사들

7일 후, 만령산맥의 장독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자 몸을 감추고 있던 고계 수사들이 앞 다투어 추마골 방향으로 날아갔고, 저계 수사들은 이 틈을 타서 산맥을 돌아다니며 귀한 약재나 영수를 찾기 시작했다.

추마골은 만령산맥 서북쪽에 위치한 곳으로 상고 수사들이 전투를 벌였던 곳이라 그런지 곳곳에 겹겹이 결계가 쳐져 있었다.

유일하게 금제가 없는 곳이 바로 추마골의 입구였는데 백여 장 너비의 수십 리 정도 되는 협소한 골짜기가 안으로 이어졌다.

본래 그냥 지나면 되는 골짜기였지만 상고 수사들의 격렬한 전투로 공간 균열이 발생해 수사들의 목숨을 위협했다.

어떤 공간 균열들은 눈부시게 반짝였고 또 어떤 것들은 암담했는데 있는 듯 없는 듯 투명한 것도 있어 도저히 안전한 길이 어딘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공간 균열은 크기도 제각각이라 크기가 큰 것도 있었고, 몇 촌 가량으로 작은 것도 있었다. 그러나 더욱 최악은 공간 균열들이 수시로 이동해서 그 불규칙한 움직임을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귀령문에서 안전하게 추마골로 들어갈 방법을 연구해냈다니 천남 수도계가 들썩일만했다.

덩굴로 가득 덮인 골짜기 사이로 하얀빛이 날아들었다. 빛 속에는 새하얀 새를 탄 여인이 녹색 의복을 입고 있었다.

여인은 순식간에 골짜기 위에 도착해 덩굴 속으로 하강하며 두 손을 펼쳐 법결을 날렸다. 그러자 덩굴들이 사라지며 녹색 보호막이 드러났다.

여인은 주저 없이 영수를 조종해 그 안으로 들어갔다.

보호막 안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여인과 마찬가지로 녹색 의복을 입은 여섯 수사들이 앉아 오각형의 진을 이루고 있었다.

진법은 대여섯 장 크기였고 다섯 수사가 각 모서리에,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이 중앙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하얀 빛이 사라지고 녹의 여인이 노인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제자, 사백님을 뵙습니다. 산맥의 장독이 사라졌고 많은 수사들이 이미 밀집해 있습니다.”

“귀령문 쪽은 출발했더냐?”

노인이 긴 수염을 쓸어내렸다.

“귀령문의 대부분 수사들은 움직이지 않고 일부만이 먼저 이동하고 있습니다.”

“장로들이 움직이기 전에는 우리도 조급할 것 없겠지. 함 사질, 계속 그들의 동향을 주시하고 이상이 있으면 바로 보고 하거라.”

“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여인은 노인에게 다시 예를 올리고 하얀 새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노인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바로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 * *

같은 시각, 백리 밖 거대한 산 정상에 회색 장포의 도사가 추마골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뒤로 붉고 푸른 거대한 인영이 보였는데 키가 두 장은 될 법했다.

자세히 살펴보면 두 인영은 날카로운 송곳니와 초점 없는 시선을 지닌 악귀 모양의 꼭두각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원영기 수사와 맞먹는 상고 시대 꼭두각시들이 있으니 분명 보물을 찾아 나나올 수 있을 것이다.”

중얼거리며 도사가 두 손으로 법결을 쏘아 보냈다. 동시에 악귀 모양의 꼭두각시들이 그의 소매로 빨려 들어가 사라졌다.

* * *

만령산맥 주변 어딘가에서 빛줄기 세 개가 날아가고 있었다. 빛 속에는 두 명의 노인과 여인이 있었는데 그들도 추마골로 향하는 중이었다.

노란 장포를 입은 노인은 령호 사조였고 창백한 인상의 여인은 엄월종(掩月宗) 대장로인 남궁완의 사저였다. 그리고 나머지는 큰 입을 가진 노인이었다.

세 수사는 서로 대화도 없이 길을 재촉했다.

그 외에도 많은 수사들이 만령산맥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한립도 이미 추마골 인근에 도착해 있었다.

그는 근처의 언덕 위에서 추마골 입구 방향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굳이 의식으로 샅샅이 찾아내지 않아도 천 명이 넘는 수사들이 모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추마골 입구는 안개가 용솟음치고 영기의 파동이 불안정했으며 불길한 빛이 번뜩여 그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얼마 후, 한립은 아예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반나절이 지나니 주변의 수사들은 더욱 늘어나 있었다. 그 중에는 아주 익숙한 기운들도 심심치 않게 느껴졌다.

한립이 그들을 하나 둘 살피는데 누군가 놀라 소리쳤다.

“모란인들이다!”

그 말에 한립도 놀라 눈을 떴다.

곧 머지않은 곳에서 기이한 마차가 날아왔다. 송곳 모양의 마차는 스무 장 너비로 은빛이 찬란했으며 그 안에는 열댓 명의 수도자들이 모란족 특유의 복색을 입고 있었다.

한립도 의외의 광경에 눈에 이채를 띠었다.

모란인들도 이번 추마골 원정에 뛰어 들거라는 소문을 들었지만 확실한 정보는 아니었다.

그들과 협정을 맺어 평화롭게 끝난 전쟁이라지만 상호간에 적잖은 사상자가 나왔고 수많은 문파들과 원한 관계를 맺었는데 이렇게 당당하게 나타나다니?

그가 의아해 하는 동안 마차가 추마골 입구 쪽으로 다가왔다.

놀랍게도 그들을 이끄는 두 명의 법사는 삼대 신사 중 한 명인 중 문사와 원명등의 주인인 악 여인이었다. 그들이라면 웬만한 문파라도 감히 건들지 못할 것이다.

마차는 한립이 있는 곳과 가까운 산봉우리에 멈춰 섰고 악 여인이 마차를 거둬들였다.

천남 수사들이 모란 법사들의 등장에 적의를 드러내고 있을 때 멀리서 백 개가 넘는 빛줄기들이 날아들었다.

“귀령문입니다!”

천남 수사들은 물론 모란인들도 하늘을 바라보았다. 빛줄기들이 추마골 입구에서 멈추더니 백여 장을 남기고 하강했다.

귀령문 수사들은 백여 명으로 그들을 이끄는 세 수사들 중 왼쪽에 선 수사는 한립도 잘 아는 왕천고였다. 이에 한립이 무리를 훑어 왕선과 연여언이 함께 왔는지 찾아보았다.

그런데 의외로 왕선의 사지는 멀쩡했으나 오히려 옆에 있는 연여언이 초췌한 안색으로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때 음마참에 중상을 입은 게 아니었나?  아니면 그냥 겉으로 보기에만 멀쩡한 걸까.’

그는 곧 시선을 다른 두 원영기 수사들에게 돌렸는데 중간에 선 검은 장포의 중년인은 딱 보기에도 기세가 등등한 것이 귀령문의 권력자인 듯했다.

그리고 우측의 창백한 인상의 노인은 수염과 머리카락 모두 새하얗게 셌으며 매와 같은 날카로운 시선에 짙은 살기가 느껴졌다.

낯선 얼굴들이었지만 모두 원영 중기의 수행을 지녔기에 한립은 그들을 유심히 살펴봐 두었다.

그리고 그는 귀령문의 쇄혼 진인 대신 낯선 수사들이 등장한 것이 조금 의외였다.

아무리 원영기 수사들이 셋이나 나섰다지만 추마골이라는 흉지(凶地)에서 큰 수확을 얻기에는 부족해 보였는데 다른 어떤 준비를 해두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 귀령문 수사들이 바삐 움직이며 거대한 진법을 설치하는 듯했다. 주변의 수사들도 그들을 방해하지 않고 신중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모란 법사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중 문사와 악 여인이 낮게 무언가를 상의했다. 한립이 남색 기운이 일렁이는 눈으로 진법을 지켜보다가 갑자기 하늘로 고개를 쳐들었다.

저 멀리 하늘 끝에서 하얀 빛줄기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하얀 빛은 순식간에 추마골 입구에 도착했고 푸른 장삼을 걸친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위무애!”

“저 자는 웬일이지?”

“구국맹도 추마골에 필요한 보물이 있는 건가?”

노인의 얼굴을 확인한 수사들이 사방에서 속닥대며 놀라움을 표했다. 그러나 위무애는 그들을 상대하지 않고 뜻밖에도 즉시 귀령문 쪽으로 향했다.

“위 형 드디어 오셨군요. 무슨 일이 생겨 늦으시나 했습니다. 하마터면 저희 일정에 차질이 생길 뻔 했어요.”

“왕 수사에게 약조한 일은 지킬 것이오. 다만 추마골에 그것이 없다면 책임져야 할 것이오.”

위무애가 미소 짓는 중년인을 향해 냉랭히 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구국맹과 마도는 본래 그리 화목한 사이가 아니었다.

“제가 감히 위 형을 속일 리가요. 걱정 붙들어 매시지요.”

중년인이 위무애를 향해 장담했다. 그것을 지켜보던 수사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귀령문에서 구국맹 대장로인 위무애를 끌어들이다니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한립도 미간을 좁혔다. 만일 추마골 내에서 귀령문과 충돌한다면 위무애도 합류할 가능성이 컸다. 그가 생각 끝에 중 문사를 힐끗 살폈다.

지금 추마골에 들어가는 이들 중 원영 후기의 수행을 지닌 이는 저 둘 뿐이었다.

모란 신사는 뒷짐을 지고 평안한 시선으로 위무애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지만 겉으로는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옆의 악 여인은 의외의 인물의 출현에 조금 놀란 듯했다.

그러는 동안 귀령문 수사들은 진법을 거의 완성해 나갔다. 반나절이 지나자 백 여 장 크기의 거대한 진법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다시 몇 시진이 지나고 전송진이 완성되자 귀령문 수사들이 정해진 장소에 중급 영석을 받아 넣었다.

가만히 서서 진법을 만들던 왕천고가 홀연히 신형을 번뜩이며 진법 한 가운데에서 나타났다. 그가 저물대에서 옥함 하나를 꺼내자 귀령문의 중년 수사와 노인의 표정이 달라졌다.

왕천고가 조심스럽게 노란색 영석을 꺼냈는데 놀라운 영기의 파동이 감지되었다.

“고계 영석!”

수사들이 놀라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고계 영석이 함유한 영력은 중계 영석 백여 개와 맞먹었다. 하지만 실제로 거래될 때의 가격은 중급 영석 천 개가 넘을 때도 많았다.

일단 아주 드물게 생산이 되었고 몇몇 상고 시대 진법이나 금제는 반드시 고계 영석을 이용해야만 제 능력을 발휘했다.

또한 일반적인 진법도 고계 영석을 사용하면 위력을 배가 시킬 수 있었다.

왕천고가 고계 영석을 제 자리에 설치하고는 중년 수사 곁으로 돌아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에 중년 수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명을 내리자 귀령문 수사들이 재빨리 진법에서 벗어나 각자 노란 진법 깃발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훈련받은 대로 날아올라 괴이한 형태로 늘어섰고 곧 노란 빛을 뿜어댔다.

‘귀령문 종주인가?  아니면 그저 왕천고 보다 수행이 높은 걸까. 어째서 저렇게 공손히 대하는 거지? ’

한립이 사나운 인상의 중년인을 대하는 왕천고의 낮은 자세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때 중년 수사가 갑자기 검은 기운을 뿜어내며 허공에 떠올랐다.

“저는 귀령문 왕천성으로 귀령문 종주의 직위를 맡고 있습니다. 추마골에 들어갈 방법이 마련되었고, 공간 균열이 크게 감소했으니 이제 들어가십시다.

이 진법은 귀령문의 수많은 진법사들이 오랜 세월동안 만들어낸 전송진입니다. 바로 추마골 외곽으로 전송을 해주지요. 반드시 금속 속성의 고계 영석이 필요해 고생 끝에 필요한 재료를 마련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이용 인원에 제한이 있지만 추마령이 있는 수사라면 정도와 마도에 상관없이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확실히 해둘 것이 있습니다. 전송진은 단방향 전송만 가능하고 전송 위치는 불확실 합니다. 그럴 가능성은 적지만 전송이 되자마자 공간 균열을 만나 위험에 처할 수도 있지요.

본 문은 그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을 것입니다. 때를 맞춰 급하게 만들다보니 약간의 위험은 감수할 수밖에요.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은 수사는 전송진을 이용하지 않으면 됩니다.”

말을 마친 중년 수사가 팔짱을 끼며 덧붙였다.

“추마령이 없는 수사들에게 경고하자면, 본 문의 전송진은 마지막 전송자를 전송한 후에 폐기할 겁니다.”

그의 목소리는 근처의 모든 수사들의 귀에 분명하게 울려 퍼졌다.

“단방향 전송진이면 나올 때는 어찌 하라는 것입니까?  설마 안에도 전송진을 설치해둔 것입니까?”

비교적 젊은 목소리가 수풀 어딘가에서 들려왔다.

“추마골의 금제들은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막아도, 안에서 밖으로 나가는 것은 막지 않는다고 합니다. 게다가 몇몇 전송진들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운이 좋으면 추마골 밖으로 바로 나올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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