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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452화 (209/2,000)

# 452

452화. 탐색

열댓 개의 비검들이 일각 여 만에 작은 동굴을 파냈고 한립이 바깥에 간단히 결계를 치고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제일 먼저 은월을 불러내 수련을 시킨 후 천절마시를 방출했다. 비교적 볕이 덜 드는 밀실을 골라 다시 묻어 두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대연 신군에게 받은 옥간으로 결단기급 꼭두각시를 제련하기 위해 대량의 재료를 가지고 또 다른 밀실로 들어갔다.

이 꼭두각시들은 그가 제련해낸 축기기 급의 거대 원숭이 꼭두각시와 비교해 큰 차이가 있었다. 위력도 다르지만 종류에 따라 차이가 극심해 제련하는 자가 원하는 종류를 선택할 수 있었다.

거대 거북이 형태의 꼭두각시는 껍질이 두꺼워 원영기 수사의 공격도 몇 번이나 막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입에서 분출하는 뇌화(雷火)가 담긴 불덩이도 결단 중기 수사의 공격과 맞먹었다. 유일한 단점은 이동 속도가 느려서 상대가 근접 공격을 하면 맥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호랑이 요수의 꼭두각시는 그와 반대였다. 원거리 공격이나 방어력은 떨어졌지만 날렵한 몸과 질풍 같은 이동 속도를 지녀 근접전에 유리했다.

이에 한립은 오래 고민할 것도 없이 두 종류 모두 제련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하면 추마골에서 마주칠 다양한 상황에 유연하게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장 사흘 밤낮을 지새우며 한립은 옥간에 의식을 불어넣고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다.

막 나흘째가 되던 날 그가 의식을 거두고 옥간을 회수했다.

이후 그의 손이 저물대를 스치자 하얀 빛이 쏟아져 나오며 무수히 많은 제련 재료들이 바닥에 쌓여갔다. 진귀한 목재, 철정, 각종 수정, 크고 작은 옥함들…….

잠시 후, 한립의 시선이 새까만 철목에 고정되더니 그의 손짓에 따라 조용히 떠올랐다.

* * *

한립이 밀실 안에서 몇 개월 동안 나오지 않자, 밀실 밖에서 수련하고 있던 은월은 그가 추마골에 들어갈 최적의 때를 놓칠까봐 초조해 하고 있었다.

산맥의 장독이 날이 갈수록 옅어지며 만령산맥 인근에 모여든 수도자의 수도 날이 갈수록 늘어났기 때문이다.

각 문파에서 추마령을 받은 수도자들도 속속들이 도착해 한립처럼 인근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묵고 있었다.

이에 많은 고계 수사들이 그곳을 발견하고 인사를 하러 찾아왔지만 아무리 전음부를 쏘아 보내도 응답이 없었다.

분명 다른 이들과 만날 의사가 없다는 뜻이었다.

일부러 찾아온 수사들은 기분이 상했지만 동굴의 주인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경거망동하는 수사들은 없었다.

한립의 문전박대는 지금의 만령산맥에서 보기 드문 태도였다.

평소에는 거만하게 굴었어도 천남 제일의 흉지인 추마골에 들어가기 전에는 함께 보물을 찾으러 다닐 무리를 꾸리고 있었던 것이다.

장독이 거의 사라질 기미가 보이자 드디어 밀실의 석문이 열리고 그가 걸어 나왔다.

몇 개 월 동안 밀실 안에서 제련에만 힘을 쏟은 끝에 서른 개가 넘는 꼭두각시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가 난성해에서 수집한 대량의 고계 요수의 혼백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결과 동복천 죽통 안에 들어있는 대연 신군마저 그가 거북 꼭두각시와 호랑이 꼭두각시를 뚝딱 만들어 낼 때마다 ‘괴물 같은 녀석!’ 이라며 탄성을 내지르고는 했다.

그가 나오자마자 은월이 즉시 그 동안 있었던 일을 보고했다. 한립이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다른 밀실에 묻어둔 천절마시를 보러 갔다.

강시가 순조롭게 배양되는 것을 확인한 그는 은월과 천절마시를 회수해 동굴을 나섰다. 그리고 바로 날아가지 않고 근처의 작은 산봉우리에 올라 앉아 의식을 퍼트렸다.

그의 강대한 의식에는 원영 초기의 노괴라도 걸려들 수밖에 없었다. 몇몇 강력한 금제가 쳐져 있는 공간을 제외하고는 백여 리 일체가 그의 의식 범위에 들었다.

다시 눈을 뜬 그는 고개를 저었다. 찾고자 하는 것을 찾아내지 못한 것이다.

그가 잠시 생각을 하다 푸른 빛줄기로 변해 몸을 날렸다.

* * *

한립의 동굴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만령산맥 시장은 동유국 출신 수도가문의 자금으로 열린 곳이었다.

시장 안의 낡은 약재 상점 안에서 하얀 의복을 갈친 남녀 수사가 거래를 성공적으로 마쳤는지 희희낙락하며 상점을 나섰다.

“이번엔 정말 운이 좋았어. 사매가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금령자를 찾아내다니 말이야. 이제 화식단(化息丹)을 제련할 수 있겠네?”

“백 사형이 영석을 빌려주신 덕분에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백의 여인의 외모는 평범했지만 눈망울이 반짝이는 것이 꽤나 요염해 보였다.

“사매의 일인데 당연히 도와야지.”

백의 청년은 영석을 빌려주기 아까웠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으며 여인의 환심을 사려 애썼다. 여인이 웃으며 무어라 대답하려는데 갑자기 노란 무언가가 두 사람을 덮쳐왔다.

사내가 깜짝 놀라 그것을 잡아채니 노란빛을 뿜어내는 영패였다.

“천극령! 한 선배님이십니까?”

청년이 영패를 확인하고 놀라 소리치자 푸른 장포를 입은 청년이 담담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백의 청년은 모패령에게 수작을 부리던 천극문 제자 백서군이었던 것이다. 한립은 시장에 들어서며 그들을 감지하고 바로 날아오는 길이었다.

그들을 만나면 사부인 천극문 로위영과 연락이 닿을 수 있었다.

“귀하의 사부를 만날 일이 있으니 안내 해주게.”

“예, 제가 얼른 안내하겠습니다.”

냉랭한 한립의 말투에 청년이 조금 머뭇거리다가 영패의 진위를 확인하고는 공손히 답했다.

백서군의 안내를 받으며 세 수사가 시장을 떠나 날아올랐다. 그리고 동쪽으로 일각 정도를 날아가던 그들은 만령산맥 깊숙이 위치한 작은 산봉우리에서 멈춰 섰다.

확실히 아주 은밀한 장소였다. 주변의 거대한 산봉우리들이 천혜의 가림막을 형성해 쉽게 발각되지 않을 만한 은신처였다.

백서군이 품에서 전음부를 꺼내 던지자 암석 사이로 불꽃 한줄기라 사라졌다.

“이곳이 저희 사부님의 임시 거처이온데 소규모 수미금법(須彌禁法)을 펼쳐두셨습니다. 사부님께서 중요한 일이 아니면 찾지 말라 이르셔서 로 사매조차 한동안 사부님을 뵙지 못했습니다.”

“로 수사의 후손인가?”

한립이 옆의 여인을 보며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로 장로님께서 저의 작은 할아버지가 되십니다. 한 선배님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습니다.”

여인이 빙그레 웃으며 한립을 향해 말했다. 그때 암석 사이에서 푸른빛이 반짝이며 두 장 크기의 석문이 나타났다.

“한 수사! 드디어 오셨군요. 안 그래도 노부가 직접 찾으러 다녀야 하나 고민하던 차였습니다. 들어오시지요.”

인자한 웃음소리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한립은 두말 않고 앞으로 나섰다. 이에 백서군과 여인도 머뭇거리다가 따라 들어가려는데 석문에서 로위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들은 됐으니 가서 일 보거라.”

그의 말에 두 수사는 한립이 석문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고는 바로 날아올랐다.

* * *

천극문 장로 로위영의 임시 거처는 아주 투박했다.

20여 장 길의 통로를 지나니 바로 동굴의 대청이 나왔는데 그곳에는 백발노인과 중년인이 한립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수사, 오셨습니까.”

백발노인이 미소를 머금고 인사를 했다.

“한 형이 얼마나 우리를 기다리게 했는지 제자들을 풀어 한 달 넘게 인근을 수색했습니다. 그런데 흔적조차 찾지 못해 마음이 변하였나 근심하였어요.”

남롱후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지만 눈빛에는 희색이 감돌았다.

“두 분도 이렇게 은밀하게 숨어 계시니 저도 찾기 쉽지 않았습니다.”

한립이 작게 탄식하며 해명했다. 그는 거리낌 없이 그들이 앉아 있는 탁자로 가 자리를 잡았다.

“한 형의 명성이 나날이 높아집니다. 전쟁 중의 뛰어난 공적도 모자라 진국 마도 종파의 원영 중기 수사까지 죽이다니요. 그간 본 후 앞에서 실력을 감추느라 애 좀 쓰셨겠습니다.”

한립이 의자에 앉자마자 남롱후가 은근한 시선을 보냈다.

“제 실력이 어떠한지는 남롱 형께서 직접 보셨으니 잘 아실 겁니다. 모란족과의 일은 운이 따랐을 뿐이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두 분 앞에 나타나지도 못했을 겁니다.”

한립의 모호한 설명에 로 장로와 남롱후는 서로 시선을 마주치며 반신반의했지만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역시 겸손하십니다. 한 수사의 실력이 좋으면 좋을수록 추마골에서 도움이 될 테니 좋은 일이지요.”

남롱후가 웃으며 그를 바라보자 이번엔 로 장로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저희 제안은 생각해 보셨습니까?  추마골에 들어가 상고 시대 요수인 화섬을 처지 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습니까?”

“이런 좋은 기회를 저도 놓칠 수야 없지요. 그러나 그전에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고대 유적을 발견하면 보물을 어찌 분배하실 생각이십니까?”

비록 그가 반드시 추마골에 들어가야 할 사정이 있었지만 미리 그걸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보물들을 얻는다면 셋이서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미 예상했는지 노인은 한립이 묻자마자 준비한 대답을 내놓았다. 이에 한립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생각하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공평하게 보물을 나눈다니 좋습니다. 두 분께서 길을 이끌어 주시지 않는다면 보물은커녕 화섬이 있는 곳까지도 가지 못할 테니까요. 하지만 제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말해보시지요.”

“화섬의 내단은 제게 남겨 주시겠습니까. 따로 쓸 곳이 있어서요.”

한립이 별 일 아니라는 듯 화섬의 내단을 요구했다.

“그 정도야 문제없습니다! 어차피 화섬은 한수사가 있어야 처치할 수 있는 요수인데 당연한 일이죠.”

로 장로가 한 시름 놓으며 즉시 답했다.

“먼저 말하지 않았어도 내단은 한 수사에게 돌아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남롱후도 한결 편해진 얼굴로 말했다.

“두 분께서 제 조건을 수락해 주셨으니, 같이 추마골에 가겠습니다.”

“한 수사가 같이 가준다면 분명 순조로울 겁니다.”

“한 형만 믿겠습니다!”

한립의 확답에 남롱후와 노인이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좋아했다.

“제 수행에 두 분을 보조할 뿐이지요. 모두가 힘을 합쳐야 안전하게 나올 수 있을 겁니다.”

한립이 두 수사의 칭찬에 흔들림 없이 대답했다.

“한 수사에게 도움을 청했으니 당연히 힘을 합쳐야지요. 만일 비열한 귀령문 놈들에게 양의환이 넘어갔다면 생각할 것도 없이 죽였을 것입니다.”

남롱후가 귀령문을 언급하면서 거의 이를 갈았다.

한립이 그 말을 들으며 슬쩍 그의 안색을 살폈다. 지난번보다 혈색이 좋아졌지만 얼마나 원기를 상했고 또 얼마나 회복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귀령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쪽에서도 추마골에 들어갈 방법이 있다고 하던데요.”

한립이 화제를 귀령문과 추마령으로 돌렸다.

“귀령문이 홀로 보물을 독점하려는 속셈을 저지하고 다른 수사들에 묻혀 추마골에 들어갈 수 있으니 위험이 크게 줄어든 것이지요.”

남롱후의 눈빛에 조소가 묻어났다.

“남롱 형께서 귀령문의 소식을 퍼트린 것입니까?”

“예, 제가 퍼트린 겁니다. 모란 초원으로 떠나기 전부터 그들이 추마골에 들어갈 방법을 연구 중이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쪽에서 먼저 본 후를 건드렸으니 봐줄 이유가 없지요.”

한립은 남롱후의 말에 아무 말 없이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로 장로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하지만 귀령문에서 추마령을 판매해 각 종파의 인심을 사고 들어갈 인원을 조절할 줄은 몰랐습니다. 아무래도 다른 종파의 수사들을 희생양 삼아 위험을 피해가려는 것 아닐까요. 보물을 독점하지는 못해도 그렇게 되면 위험 부담이 낮아질 테니까요.”

“완벽한 일은 없지요. 귀령문의 소문을 퍼트린 것은 어찌 되었든 우리 쪽에  이익이 되었지만 귀령문 고위층들은 분통이 터져 이를 갈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 아닙니까.”

한립이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맞습니다. 귀령문과의 은원은 추마골에서 돌아온 이후 천천히 갚아줘야겠지요.”

이후 세 수사들은 한참동안 귀령문과 추마골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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