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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448화 (205/2,000)
  • # 448

    448화. 추락한 악마

    동유국 북부 창주(昌州)에는 면적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분지 지형이 있었다. 분지는 밀림이 뒤덮고 있는데다 그 중심을 타고 백만 리 정도 이어지는 거대한 산맥이 흘러 만령산맥(万嶺山脈)이라 불렀다.

    정말 만 개가 넘는 봉우리가 있는지 세어본 사람은 없었지만 각종 영수와 진귀한 영약이 풍부한 곳이었다. 하지만 수십 년 마다 특정 기간을 제외하고는 수도자들조차 함부로 들어가 영약을 채취하거나 영수를 포획하지 못했다.

    천남 수도계는 만령산맥을 또 다른 흉악한 이름으로 불렀는데 바로 추마의 땅이었다. 그리고 이 산맥의 모처에 천남 제일 흉지로 악명이 자자한 추마골이 있었다.

    만황 시대부터 존재하던 비밀스런 골짜기로 수많은 수사들이 보물을 찾기 위해 뛰어 들었지만 몇 만 년이 지나고는 피비린내 나는 소문에 휩싸여 찾는 이가 뚝 끊겼다.

    그러나 추마골 때문에 수도자들이 만령산맥을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만령산맥은 언제부터인가 장독(瘴毒)으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독의 독성이 매우 강해 노출되면 죽을 수도 있었고 방향을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상황이 이러니 수도자들이 장독에 무조건 죽어나가지는 않더라도 제대로 영약을 찾아 헤매거나 영수를 잡으러 다니기는 어려웠다.

    기껏해야 가장 외곽의 장독이 옅은 지역에서 잠시 돌아다니다 빠져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50년을 주기로 산맥의 장독이 흩어지며 동시에 추마골의 공간균열 역시 가장 안정되는 시기기 돌아왔다. 겨우 1년 이었지만 보물을 찾길 원하는 천남 수도자들은 이때를 노리고 산맥으로 들어가고는 했다.

    풍부한 자원에도 보물을 찾아내는 수도자는 소수였지만 매번 천 명이 넘는 수사들이 몰려들었다.

    그러자 인근의 가문이나 문파를 뒤에 둔 상인들은 몇 개의 시장을 형성해 수사들이 획득한 영약이나 영수를 거래하며 단기간의 이익을 노렸다.

    올해 만년산맥의 장기가 흩어날 날이 얼마 남지 않자 수도자들이 창주로 밀려들었다. 그 수가 지난 몇 차례의 방문자들보다 훨씬 많았고 대부분이 다른 나라의 수도자들이었다.

    고계 수도자들이 빈번하게 등장하자 현지의 수도 종파들은 화들짝 놀라 서둘러 제자들의 외출을 삼가게 하고 일부를 파견해 이유를 알아내려 했다.

    그 결과 얻게 된 소식은 현지 수도 세력들이 경악할 만 했다.

    * * *

    창주 변경의 어느 작은 산, 결단기 수준의 남녀 수사가 나란히 정상에 서 있었다.

    준수하게 생긴 남자는 남색 장포를 걸치고 있었고, 여인은 궁장 차림으로 서 있었는데 몸매가 유달리 풍만했다.

    두 수사들은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지만 고개를 들고 어느 한 곳을 쳐다보며 초초하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후 멀리서 은색 빛줄기가 날아들었다.

    누군가 둔술을 써서 날아오는 것을 본 두 사람은 희색을 드러냈다. 은색 빛줄기가 산의 허공에 도착해 빛을 거두자 비단 장포를 걸친 문사가 나타났다.

    “드디어 오셨네요! 추마골에 들어갈 수 있는 영패는 구하셨나요?”

    여인이 체구가 좋은 문사를 보고는 웃으며 맞이했다.

    “다행히 손에 넣었다.”

    문사가 씩 웃으며 한 손을 들어 푸른 빛 두 줄기를 남녀 수사 각각에게 날려 보냈다.

    그들이 서둘러 금색 청동 영패를 손에 들더니 그 위에 새겨진 추마라는 붉은 글자를 확인했다. 여인은 기뻐하는 기색이 가득했지만 남자 수사는 미간을 좁히며 침묵했다.

    “추마령을 구했으니 이제 추마골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다. 거기서 상고 시대의 단약이라도 구한다면 우리도 원영을 응결할 기회가 생기지 않겠어요?”

    여인이 흥분한 얼굴로 재잘거렸다.

    “이렇게 작은 영패 하나가 영석 삼만 개라니.”

    그녀 옆의 남색 장포를 입은 사내가 작게 탄식했다. 세 개의 영패를 구하느라 세 수사는 몇 백 년 간 모은 재산을 허비했던 것이다.

    “아까워 할 것 없다. 만일 내 지기 중에 추마골에 들어갈 기회를 포기한 종파의 수사가 없었다면 십만 영석을 주어도 영패를 구하지 못했을 거야. 게다가 귀령문은 본디 추마골에 들어갈 방법을 독식하려했으나 다른 종파들의 압력에 못 이겨 이렇게라도 기회를 공유하게 된 것 아니더냐.”

    문사의 말에 남색 의복의 수사도 반박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귀령문에서 알려준 방법을 믿어도 될까요?  추마골 입구에는 수많은 공간 균열이 퍼져 있어 조금만 실수해도 사라진다던데요. 귀령문의 장로가 이전에 추마골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것이 사실일까요?”

    “귀령문이 천남 전체와 척을 질 생각이 아니고서야 거짓 정보를 흘릴 리가 있나. 게다가 귀령문 장로도 원영으로 겨우 달아난 것이지 육신은 추마골에서 죽었다고 하지 않더냐.”

    “하지만 추마골은 위험하기로 소문난 곳인데 이번 결정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셋의 자질이면 더는 길이 없잖아요. 이번 기회를 놓치면 200년이 지나기도 전에 죽을 텐데 가능성이 적어도 시도해 봐야죠. 그리고 추마골 외곽의 공간 균열이나 위험은 안쪽보다 적다니 조심만하면 문제없을 거라고요.”

    계속되는 사내의 걱정에 이번에는 여인이 나서서 말했다. 그리고 문사도 여인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귀령문에서 이번에 추마령을 몇 백 개나 풀었고 대다수가 각종 종파의 수중에 떨어졌다고 한다. 심지어 모란족 법사들도 추마령을 구해갔다지. 수백 명의 수사들이 동시에 추마골에 들어갈 텐데 두려워 할 것이 무엇이더냐.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오히려 평생의 한이 될 지도 모른다.”

    “형님이 그렇게 말씀 하신다면 저도 한번 추마골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남색 의복의 사내가 더는 두 수사에게 근심을 늘어놓지 않았다.

    * * *

    창주 인근의 각지에서도 비슷한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반 년 전부터 귀령문이 추마골에 들어갈 방법을 발견했으며 그것을 독식하려 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러자 천남 수도계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전쟁을 마치고 조용히 지내던 종파들은 제자들을 파견해 귀령문에 이 일의 진위를 따졌고 마도 육종의 다른 종파도 마찬가지였다.

    귀령문 고위층들은 기밀이 누출 된 것에 격노했지만 다른 세력들의 압력에 사실을 인정하고 말았다. 이에 다른 종파들은 추마골에 들어갈 방법을 공공연하게 요구해 합의 끝에 추마령을 판매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영패를 지니고 있으면 추마골 공간 균열이 가장 잠잠해 지는 시기에 귀령문 수사들을 따라 추마골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물론 산수들의 불만을 줄이기 위해 전문적으로 산수들이나 작은 종파를 위해 백 여 개의 영패가 공급되었다.

    그래서 최근 창주는 많은 수사들로 북적였고 만령산맥 인근에서 약재나 영수를 노리고 있던 현지 수사들은 다들 몸을 사리며 고계 수사들을 피해 다니고 있었다.

    * * *

    창주에서 가장 가까운 성은 엽화성이었다.

    만년산맥과 만 리 정도 떨어져 있었지만 노숙을 선호하지 않는 수사들이 이곳에 머물기 시작했다.

    규모가 있는 성이라 수사들이 많이 늘어나도 객잔의 수는 부족하지 않았다. 그 중 홍복(洪福) 객잔에는 두 무리의 수사들이 객잔 뒤쪽의 별채를 하나씩 차지하고 묵고 있었다.

    그 중 한 곳에는 여수사들이 묵고 있었는데 그들은 천일성에서 한립과 만났던 자령, 매응, 송 여인이었다. 자령은 특수한 비술로 본래 얼굴을 가려 비교적 평범한 여인으로 보였다.

    “송 수사, 혹시 한 형의 소식은 듣지 못 했나요?  장독이 곧 흩어질 듯한데 그때까지 오지 않으신다면 추마골에 들어갈 적기를 놓칠 겁니다.”

    “자령 수사도 알겠지만 본 종의 정 사백님께서 외부에는 한 사숙께서 폐관 수련에 들어갔다고 공표하셨으나 사실은 극서 지방에 가신게 아닌가. 무슨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1, 2년 사이에는 다녀올 수 있는 곳이니 너무 조급해 하지 말게. 장독이 흩어질 때까지 아직 몇 달은 남았으니까. 내 미리 본 종에 소식을 남겨 놓았으니 사숙님께서 돌아오시기만 한다면 바로 우리를 찾을 수 있을 거야. 한 사숙님의 실력에 무슨 일이 있으시겠어?”

    송 여인이 미소 지으며 그녀를 달랬다.

    “아무리 수행이 높아도 수도계에서는 어떤 일을 맞닥뜨릴지 알 수 없는 법이라 걱정이 됩니다.”

    자령이 한숨을 쉬며 자기도 모르게 음명의 땅을 떠올렸다. 그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겪어보지 않고는 상상도 못할 것이다.

    “그런데 언니, 요즘 너무 말끝마다 ‘한 사숙님’을 달고 사는 거 아니에요?  이전에는 그렇게 공경하지는 않았잖아요.”

    자령이 걱정 어린 표정을 지우고 장난스럽게 송 여인을 놀렸다. 송 여인의 얼굴에 붉은 기운이 스쳤지만 표정을 바로 하고 답했다.

    “자령 수사도 원영 중기의 수사를 죽일 실력이 되면 내가 받들어 모실게. 한 사숙님은 이제 천남 삼대 수사와도 같이 거론되는 분이라고.”

    “하하! 하긴 저도 한 형의 이야기를 듣고 너무 놀랐습니다. 십년 전까지만 해도 저와 같은 결단기 수사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요.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매응을 첩으로 들일 수 있도록 노력해 볼 것을 그랬어요.”

    자령이 웃음을 터트렸다.

    옆에서 듣고 있던 매응이 얼굴이 붉어져 무언가 말을 하려다 말았는데 조금 낙담한 기색이었다.

    “매응 수사가 한 사숙님의 첩이 될 뻔 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 거 같은데?  난 또 자령 수사와 무슨 인연이 있는 건 아닌가 했었는데 말이야. 동생의 외모에 어떤 남자가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겠어.”

    송 여인이 조금 놀라고는 도리어 자령을 놀렸다.

    “그러니까요. 한 수사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혼인이라도 할 것을 그랬습니다. 한 수사 같은 이의 반려가 된다면 수행에 큰 도움이 될 테니까요.”

    “한 형의 도움을 받으면 영촉과를 찾아낼 가능성도 높아질 텐데. 정말 언니는 추마골에 들어가지 않기로 결심하신 건가요?  매응 동생이야 갑자기 추마골에 들어가려는 수사들이 많아져 위험해진 탓에 포기했다지만 언니는…….”

    자령이 조금 머뭇거리다 송 여인을 향해 물었다.

    “오래 고민해봤는데 아직 결단 초기지만 최정상에 이르러 2, 3백 년만 수련하면 조화단의 도움 없이도 경지를 높일 수 있을 것 같아. 목숨을 걸고 추마골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수련에 집중하려고.”

    잠시 생각을 정리한 송 여인이 확실히 답했다.

    “이미 결심하셨다니 그럼 저도 더는 권하지 않을게요. 저도 한 수사의 도움이 없다면 혼자서는 추마골에 들어가지 않을 겁니다. 고계 수사들이 그렇게나 많이 들어간다니 그만큼 위험도 커졌으니까요.

    보물을 얻기 위해 다른 수사들을 죽이는 경우가 적지 않겠죠. 겨우 결단 초기의 수행으로 홀로 들어가는 것은 호랑이 입 안으로 들어가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자령이 쓴웃음을 지었고 송 여인과 매응이 그녀를 보며 걱정스런 표정을 보였다.

    “귀령문에서 비밀이 새어나갈 줄 누가 알았겠어. 난 처음에는 자령 수사가 일부러 소식을 퍼트린 줄 알았다니까. 혼란한 틈을 타서 보물을 찾아 나오려고 말이야.”

    송 여인이 중얼거리는 소리에 자령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런 일은 아는 이가 적을수록 좋지요.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영촉과를 따오기가 더 어려워지지 않았습니까.”

    “호오, 자령 수사가 퍼트린 소문이 아니었던가?  그럼 다른 누군가의 소행이겠군.”

    익숙한 사내의 목소리가 문 밖에서 전해졌다.

    “한 사숙님!”

    “한 형!”

    한립은 조금 낡은 청색 장포를 입고 등에는 한 자 길이의 노란 죽통을 매고 입구에 서 있었다.

    그는 2년 동안 극서 지방에 다녀온 탓인지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더더욱 속을 알 수 없는 신비한 기운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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