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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445화 (202/2,000)

# 445

445화. 길에서 만나다

한립과 흑의 청년이 싸우던 작은 섬에서 수백 리 떨어진 곳에 여섯 색깔의 빛줄기가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그 맨 앞에서 날고 있던 낙운종 은발 노인의 얼굴이 어두웠다.

“정 수사, 확실한 겁니까?  그렇게 초라해 보이는 전송진으로 이렇게 멀리까지 전송이 가능하다니 이상한 일입니다.”

그 뒤를 바짝 쫓던 붉은 코의 뚱뚱한 노인이 물었다.

“확실합니다. 표식을 심어둔 장소가 가까워지고 있어요. 다들 조심하세요. 상대는 원영 중기 이상의 수사이니 우리 쪽의 수가 많아도 상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번에 룡 형이 문 중의 보물인 미선종(迷仙鐘)까지 가져 왔으니 걱정 마시지요. 적을 죽일 수는 없어도 안전하게 달아나는 것은 가능할 겁니다.”

화룡 동자가 빙긋 웃으며 은발 노인의 우려에 답했다.

“이번에 룡 형께서 보물을 갖고 나와 도움을 주시지 않았다면, 저도 여러분과 모험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상대가 정말 음라종 종주라면 우리 몇으로는 너무 위험할 테니까요.”

은발 노인이 그 말을 듣고 회색 장포를 입은 노인을 향해 감사를 표했다.

“아닙니다. 정 형이 제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있는데 당연히 도와야지요! 게다가 음라종 마수가 감히 우리 계국까지 들어와 수사를 공격하다니. 이대로 좌시한다면 우리 계국 수도계는 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회색 장포 노인이 담담히 미소 지으며 답했다.

“그건 그렇고 저는 귀 종의 한 수사라는 분이 아주 궁금해 죽겠습니다 그려! 모란족과의 전쟁에서 다재다능한 능력을 선보여 거의 전세를 뒤집었다던데. 한 수사의 명성을 흠모해온지 오래이니 이번 기회에 교분을 쌓았으면 좋겠습니다.”

준수한 외모의 거한이 웃음을 터트리며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렇지요! 저도 요즘 한 수사의 이야기를 귀가 따갑게 들어와서 그런지 직접 뵙고 싶던 차였습니다.”

뚱뚱한 노인도 장난 섞인 말투로 거한의 말을 받았다.

“당연히 한 사제의 일이 해결되면 제가 직접 소개를 시켜드리겠습니다. 허나 지금은 한 사제의 안위가 걱정입니다. 상대가 교활하게 전송진을 이용했으니 지금 어떤 상황일지…….”

은발 노인이 그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는 우려를 표했다.

“상대가 온갖 수를 짜내 우리를 떨어뜨려 놓은 것을 보면 수행이 그리 높은 자는 아닐 겁니다. 상황을 보아가며 차분히 상대하면 분명 길이 있을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지요.”

거한이 솔직한 생각을 드러내며 노인을 위로했다.

“그러기를 바라야지요.”

노인은 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가 낙운종에 쳐들어와 벌인 일로 보건데 원영 후기는 아니더라도 원영 중기의 최고봉은 될 것이었다. 노인은 낙운종의 미래를 책임질 장로에게 문제가 생기기를 원치 않았다.

그나마 한립의 몸에 심어둔 표식으로 그의 생명에는 이상이 없음을 느끼고 있었기에 조금 안심했다. 여섯 수사들은 작은 섬으로 다가가며 점점 신중해졌다.

“흠!”

은발 노인이 갑자기 허공에서 멈추었다.

“정 형 왜 그러십니까?”

“한 사제가 섬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군요. 일이 해결 된 것인지 아니면 상대에게…….”

노인이 말을 맺지 않았지만 다른 이들도 충분히 알아들었다. 생포를 당했을 수도 있었다.

“우리도 준비를 합시다. 만일 한 수사가 당했다면 구해야지요!”

룡 노인이 단호히 말하고는 저물대를 스쳐 작은 종을 꺼내 들었다. 이에 다른 이들도 신중하게 각자의 보물을 꺼내 곧 있을 전투에 대비했다.

그 중에서도 은발 노인은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데 멀리서 푸른 빛줄기가 하늘을 갈라 날아왔다.

“한 사제입니다.”

둔술을 펼칠 때 나타나는 특유의 빛에 은발노인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수사들은 조금 놀란 얼굴이었다.

한립이 멀쩡하다면 마수는 어찌 되었단 말인가?

푸른 빛줄기의 속도가 극히 빨라 순식간에 여섯 수사의 눈앞에 도착했다. 빛줄기가 가시고 푸른 장포를 입은 청년이 나타났다.

“정 사형, 황룡 수사 모두 오셨군요. 저를 돕기 위해 이리 멀리까지 와주시다니 모두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한립이 복잡한 얼굴로 날아와서는 은발 노인을 향해 포권을 했다.

“우리가 너무 늦게 도착해 도움이 되지 못했으니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룡 노인이 한립을 살피더니 겸손히 답했다. 다른 수사들도 그를 선두로 미소를 머금은 채 한립을 훑어보았다. 은발 노인이 의식으로 추격하는 자가 없음을 확인하고 물었다.

“한 사제 마수는 어찌 되었는가?”

“그 자는 이미 죽었습니다. 원영도 없애 버렸지요. 다만 마수의 정체는 음라종 종주는 아니었고 그곳의 장로 중 하나였습니다.”

“사제가 그 자를 죽였단 말인가?  원영 후기는 아니어도 원영 중기는 되었을 터인데. 그런 자를 어떻게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은발 노인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고, 화룡 동자와 다른 수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직접 마도 수사의 수행을 확인한 것은 아니었지만 낙운종에 침입해 원영 초기의 수사를 공격하고 유유히 빠져나갈 정도면 적어도 원영 중기 이상이 분명했다.

그래서 룡 수사는 사문의 보물인 미선종까지 들고 왔던 것이다. 그런데 한립이 홀로 그런 자를 죽였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요행이 그 자의 공법에 제 공법이 상극이라 그리 되었습니다.”

한립이 대충 얼버무리고는 손을 들어 은발 노인에게 거무튀튀한 물건을 넘겨주었다.

음산한 기운이 가득한 검은 영패였는데 이상한 문자와 그림이 가득 새겨져 있었고 가운데 ‘라(羅)’ 자가 박혀 있었다.

“이건 무엇인가?”

“마수가 남긴 것입니다. 음라종 장로임을 증명하는 영패이자 위력적인 고보이니 그 자의 신분을 입증할 수 있을 겁니다.”

한립이 입술 꼬리를 말아 올렸다.

다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알고 싶었지만 굳이 캐묻지 않았다. 다들 그와 친분을 유지하려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원영 중기 마수를 참살할 실력자라면 친하게 지내놓는 것이 유리했다. 다들 자신을 도우러 와준 수사들이었기에 돌아가는 내내 한립도 예를 다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중에 한립과 은발 노인은 다른 수사들과 인사를 하고 운몽산으로 길을 틀었다. 낙운종에 돌아온 은발 노인이 편전에 이르러서야 참고 있던 질문을 던졌다.

“한 사제, 봉혼주 해결 방법은 알아낸 겐가?  표정이 좋지 않던데 설마 알아내지 못한 건가?”

“음라종 장로는 저주를 거는 방법만 알더군요. 추혼술로 알아낸 바에 의하면 봉혼주를 푸는 방법은 오로지 종주와 대장로만이 알고 있었습니다.”

한립이 그 옆의 나무 의자에 앉아 쓴웃음을 지었다.

“저주를 걸 줄만 안다고?”

“봉혼주 법결은 음라종의 어떤 비술과 관련이 되어 있어서 종주와 대장로를 제외하면 풀 방법을 익힐 수 없는 듯합니다.”

“저주를 풀지 못하면. 그럼 남궁 누이는…….”

은발 노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직접적으로 저주를 풀 방법을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음라종 장로의 의식 속에서 강제로 저주를 풀 몇 가지 물건들을 알아냈으니까요.”

“어떤 물건들인가?”

“모두 구하기 어려운 물건들이라…….”

한립이 그 중 몇 가지를 이야기하자 노인이 깜짝 놀라 할 말을 잃었다.

“그런 것들이라면 천남이 아니라 세상 어디를 가야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만.”

“다행히 제가 그것들 중 하나의 행방을 알고 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준비를 잘 한다면 약간의 희망은 있겠지요.”

“이 사형과 종문이 필요한 일은 없는가?  무엇이든 말해보게.”

“괜찮습니다. 이번 일은 인원수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서요.”

한립이 생각을 해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나도 더는 묻지 않겠네. 하지만 혹시라도 필요하다면 종문의 힘을 마음껏 이용하시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럼 저는 이만 완이를 보러 가보겠습니다.”

한립이 예의상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일어나 인사했다. 노인이 한립을 배웅하고는 거처로 날아갔다.

* * *

얼음벽이 숨겨진 밀실은 그대로였다.

한립이 조용히 얼음벽 앞에 서서 그 속의 아름다운 아이를 바라보았다.

“정말 담도 크구려. 자신의 생사가 걸린 때에 소녀륜회공의 가장 위험한 구결인 ‘차녀천월결’을 수련할 생각을 하다니. 자신을 사지로 몰아넣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비술임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 만일 내가 봉혼주를 풀어도 공법상에 문제가 발생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어질 것 아니요!”

한립이 낮게 중얼거리다가 두꺼운 얼음층 위로 남궁완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아직 모르겠지만 당신에게 저주를 건 마도 수사는 저주를 푸는 방법을 알지 못했소. 그래도 다른 방법을 찾아냈으니 걱정 마시오! 필요한 물건들은 찾기 어려운 보물들이나 우연히 추마골에 하나가 존재하더군.

상고시대 불 속성 요수의 내단이 필요한데 화섬(火蟾)이 그 조건에 부합하오. 몇 년 후 추마골 원정은 이제 주저할 이유가 없어졌지. 이 방법으로 저주의 위력을 약하게 만들기만 해도 내가 진국에 가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결 방법을 찾아낼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오.”

한립의 목소리가 점점 서늘해졌다.

얼음 속의 남궁완에게 답답한 속내를 모두 풀어놓고 난 그가 잠시 후 푸른 빛줄기로 변해 자신의 거처로 돌아왔다.

고개를 숙이고 앉아 생각에 잠긴 그 옆에 은월이 얌전히 서서는 새까만 눈동자로 그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어려 있었다.

“내 얼굴에 꽃이라도 피었더냐?”

“아닙니다. 그저 주인님께서 어찌하실 생각인지 궁금해서요. 추마골에 들어갈 시간이 애매하게 남았는데 자령 쪽과 함께 하실지 아니면 남롱후와 연합해 추마골에 들어가실지 마음은 정하셨는지요?

천남 제일의 흉지라 불리는 곳이니 아무리 주인님의 능력이 뛰어나도 분명 굉장히 위험한 여정이 될 것입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다른 방법?  만년 현금조(玄金鳥)의 알이나 보제화(菩提花)의 과실을 구하라는 것이더냐. 이미 멸종이 되었거나 남아있더라도 누군가 꽁꽁 숨겨놓았을 진귀한 보물이다. 그나마 화섬의 내단이 가장 가능성이 높겠지.”

“이미 마음을 정하셨다면 알겠습니다.”

한립은 은월이 고개 숙이는 것을 보고 미소 지었다.

“추마골에 들어가기 전에 극서 지역에 다녀올 것이다. 대연결의 마지막 구결을 얻고 그 김에 천죽교에 들려 고계 꼭두각시를 제련할 방법을 알아봐야한다.

저번에 얻은 상고시대 괴뢰술은 몇몇 재료들은 꼭두각시들의 잔해에서 찾아냈지만 보조 재료도 찾기가 쉽지 않으니까 말이야.

게다가 주재료인 만년 철목 역시 대량으로 배양하려면 추마골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어림도 없을 게다. 그 중에서 결단기 수준의 꼭두각시들이라도 대량으로 제련할 수 있다면 추마골에서 큰 도움이 되겠지.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추마골 안에서 꼭두각시들은 훌륭한 길잡이가 돼줄 것이야.”

“주인님의 말씀이 일리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주인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은월이 그의 계획을 듣고 찬찬히 생각해보고는 활짝 웃는데 요염하기 그지없었다.

“문제는 극서 지방이 천남과 근접해 있다지만 가는 길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정도 국가들을 지나야 하고 그 후에는 끝없이 이어지는 거대한 사막을 지나야하니까.”

“사막이요?”

“그래. 이상하게 오랜 세월 이유를 알 수 없는 돌풍이 거세게 몰아치는 곳이라 수도자라 해도 걸어서 지나가야하는 곳이지. 그렇지 않았다가는 얼마 가지 못해 돌풍에 휩쓸려 법력을 허비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천남의 문파들도 극서 지방의 존재를 알면서도 교류가 없는 것이지. 크기가 보통 국가 한두 개를 합친 것만 하고 자원도 풍부하지 않은 것도 극서 지방을 넘보지 않는 이유겠지만.”

“날아 갈 수 없다면 너무 오래 걸릴 텐데요.”

은월이 미간을 좁히며 걱정했다.

“갔다가 오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1년은 걸릴 것이다. 그래서 극서 지방으로 출발하기 전에 여러 가지 일들을 미리 처리해 둬야 한다. 그동안 은월 네가 날 도와줘야겠구나. 일단 이걸 네게 맡길 테니 녹색 액체를 이용해 살릴 수 있을지 살펴 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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