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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443화 (200/2,000)
  • # 443

    443화. 대경검진(大庚劍陣) 개시

    한립은 칠룡장이 어떤 것인지 몰랐지만 공포가 깃든 은월의 목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서늘해졌다.

    이에 그가 소매를 털자 36개의 청죽봉운검들이 솟아올랐다.

    어차피 상대가 평범한 마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니 적당한 수법으로 실력을 알아갈 생각은 없었다. 그는 새로 제련한 비검을 이용해 한 번에 적을 죽일 작정이었다.

    36개의 금빛들이 한립의 머리 위에 떠올랐고 그가 법결들을 쏘아 올렸다. 동시에 금빛이 몸을 떨며 백 개가 넘는 똑같은 검빛들을 만들어냈다.

    한립이 법결을 던져 검빛으로 대경검진을 형성하려는데 사방에서 7개의 빛기둥들이 먼저 공격을 해왔다.

    기둥을 타고 올라가던 은빛 교룡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려 무언가를 뿜어내려한 것이다.

    한립은 고민할 것 없이 남색 방패로 물의 장막을 만들어 그의 몸을 단단히 감쌌고, 비단 손수건을 던져 하얀 안개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동시에 하얀 빛이 한립의 소매 속에서 빠져나와 땅에 떨어지더니 즉시 매혹적인 여인으로 변했다. 은월이 나타난 것이다.

    은월은 한립의 의아해하는 시선에도 신경 쓰지 않고 손을 들어 보라색 빛을 쏘아 보냈다. 그가 준 자운두 고보였다.

    고보는 은월이 시키는 대로 자홍색 망태기로 변해 가장 바깥에 또 하나의 방어막을 형성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한립은 흠칫 놀랐다.

    그가 펼친 보호막을 보고도 은월이 안심하지 못하고 나서다니 칠룡장이 그렇게 위험하단 말인가?  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7마리의 은빛 교룡들이 소리 없이 빛을 내뿜었다.

    사발만한 굵기의 은빛 빛기둥이 순식간에 자운두가 변화한 그물망에 닿았다.

    은빛과 자홍빛이 힘겨루기를 하더니 잠깐을 버티지 못하고 자운두에 일곱 구멍이 내버렸다.

    그러고도 은색 빛기둥들은 전혀 위력이 줄지 않은 채 하얀 손수건 고보가 변한 안개를 공격했다. 안개가 요동을 치는 것이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놀라운 광경에 한립이 숨을 들이마셨다. 이대로라면 세 개의 보호막이 순식간에 뚫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은월은 안색이 한결 나아졌다.

    “알고 보니 모조품에 불과했습니다.”

    그녀가 중얼거리며 수결을 맺더니 입을 벌려 향기로운 기운에 휩싸인 분홍색 구슬을 뱉어냈다. 손톱만한 구슬의 향기가 코를 찔렀다.

    펑!

    은월이 낮게 주문을 읊조리자 구슬이 스스로 폭발해 아름다운 가루로 흩날렸다.

    무수히 많은 가루들이 주위의 남색 물의 장막으로 날아갔지만 한립은 지켜보기만 했다. 물의 장막이 가루를 흡수하고 엄청난 빛을 발산했다.

    이때 은색 빛기둥이 거침없이 하얀 안개를 뚫고 마지막 방어막을 공격했다. 그런데 그의 머리 위를 맴돌던 검은 빛들이 어느 샌가 하나둘 사라지고 있었다.

    물의 장막에 부딪친 은색 빛기둥들이 진동을 하더니 놀랍게도 튕겨나가 본래의 기둥으로 돌아 들어갔다.

    이 일격은 한립도 예상 밖이었으니 흑의인 청년도 당연히 속수무책이었다. 그는 한립 곁에 절색의 여인이 나타난 이후로 온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다.

    게다가 은월이 모조품이라며 자신의 보물을 비하하는 소리를 들은 후로는 더욱 정신이 없었다.

    쿠르릉!

    거대한 진동이 들리고 일곱 교룡들이 사라졌다. 강력해 보이는 보물을 이렇게 쉽게 멸하다니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은월이 붉은 입술을 핥으며 기분 좋게 미소 지었다.

    “모조품에다 그마저도 상태가 별로였네요. 아까는 정말 놀라 죽는 줄 알았습니다.”

    은월이 자신의 가슴을 쓸어내리며 웃었다.

    “어떻게 칠룡장을 깬 것이냐!”

    흑의인 청년이 칠룡장이 깨지고 나서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은월이 중얼거리는 소리에 바로 소리쳤다.

    은월이 촉촉한 눈길로 그를 돌아보고는 물의 장막을 향해 손짓했다. 동시에 물의 장막이 번뜩이더니 분홍 안개가 새어나와 다시 원래의 구슬로 변했다.

    은월이 입을 벌려 안개를 뿜어내니 구슬이 그녀의 뱃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요단! 핫하하, 너는 여우 요괴였구나! 이런 횡재가 있나! 대진에서는 많은 수사들이 여우 요괴를 시첩으로 삼고자 난리가 났다.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어서 거의 웬만한 보물과도 맞먹지. 이번에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어!”

    흑의인 청년이 열 받았던 것도 잊고 은월을 보며 미친 듯이 웃었다.

    “소첩도 선사를 따라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나 이미 주인이 있는 몸이라 안 되겠습니다.”

    은월은 처음에는 얼굴이 굳었으나 곧 평소의 장난기 어린 얼굴로 돌아와 미소 지었다.

    “주인이 있다고?  곧 죽을 주인이 무슨 상관이더냐. 나를 따르겠다면 너를 살려주마. 나와 떠나는 것이 이런 시골구석에 처박혀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청년이 탐욕스런 시선으로 은월을 훑어보았다.

    “정신이 나가신게 아닙니까?  제가 이리 멀쩡히 있는데 제 것을 탐하다니. 주변이나 살피시지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던 한립이 그를 비웃으며 말했다.

    “주변에 보잘 것 없는 검빛들은 잘 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법보를 제련한 것은 의외지만 멍청한 짓을 하셨군요. 본명법보는 자신의 원기로 오랜 세월 배양해야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는데 이렇게 많은 법보를 어쩌려고……. 이런 검빛 따위로 제 털끝이라도 건드릴 수 있겠습니까.”

    청년이 자신의 주위를 빼곡하게 포위한 검빛들을 보면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일리 있는 말이나 그 전에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수사는 원영 후기의 수행을 지녔습니까?  ……아니라면 각오하십시오!”

    한립이 마지막 순간 살기를 드러내며 준비를 마친 대경검진을 발동했다.

    흑의인 청년이 흠칫 놀라더니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고 손바닥에서 짧은 손도끼 같은 것을 뿜어냈다.

    도끼의 표면에는 악귀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이때 금색 검빛들이 맑게 공명하며 하나둘 허공에서 사라졌다. 흑의인 청년이 서둘러 의식으로 검빛을 탐색했지만 사라진 검빛들을 찾을 수 없었다.

    지체 할 것 없이 그가 새까만 도끼를 발동했다. 검은 빛이 반짝이며 도끼가 예닐곱 장 길이로 커졌는데 더없이 날카로워보였다.

    거대한 도끼가 허공을 갈랐다. 그 순간 흐릿하게 금색 실선이 허공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삭!

    순식간에 거대한 도끼가 두 동강나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건…….”

    흑의 청년의 금빛을 무시하던 기색을 지우고 신중해졌다. 그가 두 손을 들어 올려 청록색 비도(飛刀)를 날렸다.

    스사사사삭!

    그런데 또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청록색 비검이 날아가다 금빛 실선과 마주쳤고 예닐곱 조각으로 잘려 떨어져 내렸다.

    “검진(劍陣)이잖아!”

    흑의인 청년은 견문이 넓은 편인지 바로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보통 검진은 수십 명이나 수백 명의 수사들이 모여 펼치는 것이었는데 한립은 놀랍게도 홀로 어마어마한 위력의 검진을 펼치는 중이었다.

    한립은 상대가 검진인 것을 알아차리자 곧바로 수결을 맺으며 의식으로 검빛을 움직여 대경검진을 운용했다.

    그러자 괴이한 현상이 나타났다.

    무수히 많은 금빛 실선들이 반짝이며 흑의인 청년의 주변에 나타난 것이다. 실선들은 반짝 거릴 뿐 아무런 기척이 없었고 움직임이 매우 불규칙했다.

    흑의인 청년이 파랗게 질려 한 손으로 저물대를 스치니 핏빛 줄무늬가 있는 하얀 구슬 열댓 개가 나타났다.

    그는 즉시 몸을 회전하며 구슬들을 사방팔방으로 던졌다.

    한립은 구슬을 보고 눈을 빛냈다.

    ‘설마 저것도 뇌주와 비슷한 종류인가.’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지만 대경검진이 발동되는 속도는 조금도 줄지 않았다. 금빛 실들이 바로 대경검진의 신통력 중 하나였다.

    다른 검수(劍修)들이 검으로 만들어내는 실선과도 비슷했지만 대경검진의 위력과 경정을 첨가한 비검의 날카로움으로 인해 평범한 수사들이 모여 발동하는 검진보다 훨씬 강력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러니 뇌주와 비슷한 종류의 공격은 두렵지 않았다.

    36개의 비검들의 본체만 잘 감추어 두면 나머지 검사(劍絲)들은 공격당해도 상관없었던 것이다. 본체만 유지하면 금빛 실들을 계속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이 검진의 무서운 점 중 하나였다.

    그때 구슬들은 검진이 만들어낸 금제를 발동시켰다. 수많은 금빛 실선들이 허공에 반짝이더니 구슬이 닿자마자 폭발했다.

    다행히 구슬은 뇌화 같은 것을 품고 있지 않았다. 대신 검붉은색의 짙은 핏빛 안개를 내뿜었다. 혈무가 퍼지며 괴상한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이 구슬의 이름은 혈뢰자(血雷子)로 세상의 더럽고 악한 기운을 모아 제련한다는 마도에서도 보기 드문 희귀한 보물이었다.

    핏빛 안개에 노출되면 어떤 보물이든 위력이 크게 떨어지고 영성을 상실하게 되는데 다시 원래의 위력을 회복하려면 원영의 불길로 며칠을 다시 제련해야 했다.

    진국 십대 마도 종파 중 한 곳의 장로인 흑의인은 견식이 풍부해 한립의 대경검진의 위력을 단번에 알아보고, 즉시 혈뢰자를 이용해 위력을 상쇄하려 한 것이다.

    이런 방법은 마도 수사들이 검진을 쓰는 검수들을 상대할 때 자주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핏빛 안개를 본 한립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몰랐지만 이상한 예감에 가슴이 뛰었다.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고 핏빛 안개 중간에서 금빛 뇌전이 번뜩였다. 뇌전과 부딪친 핏빛 안개는 즉각 폭발하며 악한 기운이 사라져버렸다.

    순식간에 열댓 개의 구슬이 만들어낸 핏빛 안개가 한립의 벽사신뢰와 동귀어진한 것이다.

    “……!”

    한립은 크게 놀랐다.

    벽사신뢰가 그의 의식의 명에 따르지 않고 스스로 비검에서 빠져 나와 움직인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상대의 사악한 핏빛 안개가 벽사신뢰에 맞서 서로를 소멸시킨 것도 불가사의했다.

    한립은 몰랐지만 혈뢰자는 정도의 보물을 오염시키는데 특화된 보물이라 벽사신뢰가 마도 공법과 상극인 것과 마찬가지로 서로를 억제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벽사신뢰의 양이 핏빛 안개의 양보다 많아 순식간에 없앨 수 있었던 것이다.

    “벽사신뢰가 저만큼이나! 그럼 이 비검들이 전부 금뢰죽으로 만든 법보란 말이냐! 말도 안 돼. 어떻게 저렇게 많은 금뢰죽을 구할 수 있단 말인가…….”

    흑의인 청년이 얼굴이 창백해져서 자기도 모르게 고함을 질렀다.

    “저 세상에 가서 천천히 알아 보거라!”

    한립이 상대를 비웃으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핏빛 안개의 출현으로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던 금빛 실들이 소리 없이 중간으로 모여들었다.

    대경검진의 위력은 막강해서 지금 그의 수행으로도 간신히 운용하고 있었다. 법력의 손실이 엄청났고 일단 검진을 발동하면 속도를 높이는 것이 어려웠다.

    그렇지 않았다면 단번에 상대를 죽였지 혈뢰자 따위를 쓰게 기다려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흥! 겨우 검진으로 날 죽일 수 있을 줄 알았느냐! 검진이 아무리 날카로워도 본 종의 보물은 자르지 못할 것이다.”

    흑의인 청년의 얼굴에 검은 기운이 차오르며 음산히 중얼거렸다.

    그는 금빛 실들이 겨우 열 장 거리로 다가온 것을 보며 한 손을 들어 자신의 가슴을 가격했다.

    푹!

    검은 기운 속으로 그가 검붉은 피를 토해내자 그 안에서 일촌 길이의 녹색 깃발이 나타났다.

    깃발은 입속에서 나오자마자 즉시 녹색 광채를 뿜어내며 주위의 검붉은 기운을 흡수했다. 흑의인이 청록색으로 변한 깃발을 향해 손짓을 하자 깃발은 즉시 어두운 안개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귀라번(鬼羅幡)!”

    음라종 종주가 합환종 노마와 싸울 때 사용하던 음라종의 보물이었기에 한립이 모를 수가 없었다.

    “영리하구나! 귀라번의 우두머리 깃발이 어떤 위력일지 직접 느껴 보거라!”

    흑의인 청년은 한립이 자신의 보물을 단번에 알아보자 잠시 멈칫하더니 곧 냉소했다. 귀라번의 능력을 완전히 믿는 눈치였다. 청년이 귀라번을 단단히 쥐고 금빛 실을 향해 휘둘렀다.

    파칙!

    어두운 청록색 안개가 깃발 위에 나타나 사납게 폭발하더니 청년을 보호막 속으로 감쌌다.

    그 주변으로 살을 에는 한기의 음풍(陰風)이 휘몰아쳤고 하늘에서 어느새 먹구름이 잔뜩 몰려들어 사방이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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