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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441화 (198/2,000)

# 441

441화. 밀실 안에서의 수련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낙운종 모처의 밀실 안에서 한립이 은발 노인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그의 얼굴은 분노로 사나워져 있었다.

낙운종에 돌아와 은발 노인에게 인사를 하러 갔는데 은발 노인이 그를 음기 가득한 밀실로 안내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립은 남궁완을 발견했다.

그녀는 일고여덟 살 정도의 아이로 변해 얼음 기둥 안에 갇혀 있었는데 눈을 감은 것이 의식이 없어 보였다.

그 모습에 한립은 매우 분노했다.

“하아! 사제가 열흘만 일찍 돌아왔다면 좋았을 것을. 마도의 봉혼주에 당해 어쩔 수 없었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말게. 이런 식으로라도 저주가 퍼지는 것을 막았으니. 당분간은 생명에 지장은 없을 것이네.”

은발 노인이 쓴웃음을 지었다.

“완이가 어째서 봉혼주 같은 것에 당했단 말입니까?  그 비술은 천남 지역에서 실전된 지 오래일 텐데. 설마…….”

노인의 말에 한립이 놀라더니 바로 무언가를 떠올리고 얼굴을 굳혔다.

반 개월 전 어느 날 아침, 남궁완은 평소처럼 거처 인근의 산에서 천지의 음기가 가득 담긴 이슬을 채취했다. 소녀륜회공 수련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어떤 흑의인 사내가 나타나 남궁완을 공격했다. 강력한 마도 공법은 그녀가 호신용으로 상비하는 보물마저 부숴버렸고 그녀는 즉시 도움을 요청하며 달아났지만 소용이 없었다.

은발 노인과 낙운종 제자들이 소리를 듣고 나타났을 때 그녀는 이미 그자의 손끝에 미간을 찍히고 추락하고 있었다.

놀란 은발 노인이 바로 제자들을 총동원해 공격했지만 그 자는 낙운종 제자들의 출현에 비웃으며 옥간을 던져 주고 사라져 버렸다.

은발 노인이 남궁완을 구해 돌아와 바로 치료에 들어갔지만 그녀는 이미 봉혼주에 당한 후였다.

봉혼주는 오래 전에 실전된 비술로 저주에 걸리면 혼백이 서서히 봉인을 당해 살아 있는 시체나 마찬가지로 변하는 무서운 금제였다.

노인도 금제의 정체를 알아내고 놀랐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때 깨어난 남궁완이 자신이 봉혼주에 당한 것을 알고 안색이 창백해졌지만 바로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녀는 소녀륜회공의 힘을 빌려 한기 속에 자신을 봉인해 저주의 발작을 지연시키기로 했다. 그래서 한립이 나타났을 때 남궁완이 이런 모습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노인은 말을 마치고 나서 푸른 옥간과 붉은 옥간을 꺼내 한립에게 주었다.

“하나는 누이를 공격했던 흑의인이 남긴 것이고, 다른 하나는 누이가 봉인 술법을 펼치기 전에 사제에게 전해주라고 부탁한 서신이네. 어서 살펴보시게.”

한립이 어두운 얼굴로 두 개의 옥간을 받아 일단 남궁완이 남긴 옥간에 의식을 불어넣었다.

곧 그의 얼굴이 묘해졌다. 걱정이 가득했지만 조금 안심한 기색이었다. 은발 노인이 그를 지켜보다가 한립의 표정을 보고 조금 놀랐다.

한립이 길게 탄식하며 나머지 붉은 옥간을 들었다.

잠시 후 그의 얼굴이 싸늘하게 변했고 손에서 자홍색 불길이 폭발하며 옥간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한립이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정 사형, 습격한 자의 생김새와 수행이 어떠했습니까?  제가 알고 있는 인물과 같은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생김새는 나쁘지 않았네. 용모가 단정한 젊은 사내였어. 수행은 비술을 사용해 감추었는지 내 능력으로는 파악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원영 중기 이상이었으리라 보네.”

노인이 기억을 더듬어 말해주었다.

“젊은 사내였다고요?”

한립이 눈을 빛냈다. 의외의 정보였다.

“상대의 수행으로 보아 아무래도 사제와 마찬가지로 관련 영단이나 영약을 복용했거나 특수한 공법을 익힌 것일 테지. 그 자가 진국 마도 수사가 맞는가?  나도 그 자가 남긴 옥간을 확인했네만 수사보고 금뢰죽 법보를 갖고 현천봉으로 나오라니! 정말 금뢰죽으로 제련한 보물을 지니고 있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제가 생각한 자가 맞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관련은 있을 테죠. 전쟁 중에 있었던 일로 복수를 하려는 줄 알았는데, 금뢰죽 법보를 탐내고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벌인 일로 완이가 이런 일을 당하다니…….”

한립이 차분히 대답하며 노기를 거두고 냉정을 되찾았다.

“금뢰죽 법보는 마공을 상대하는데 최상의 보물이니 그들이 노릴 만도 하지. 그럼 이렇게 해보는 것이 어떻겠나?  친분이 있는 수사들을 청해 같이 공격하는 거네. 그러면 진국 마수를 상대하기에 훨씬 수월할 테지.”

은발 노인도 흑의인이 낙운종 산문에서 이런 일을 버린 것에 화가 난 듯했다.

“아닙니다. 제가 예상한 자가 맞다면 모란족 신사와도 맞먹는 수행을 지녔을 것입니다. 괜히 다른 이들을 끌어들여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또한 봉혼주를 풀 방법을 손에 쥐고 있는 자이니 도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모란족 신사와 맞먹는 수행이라면 원영 후기의 수사란 말인가?  그렇다면 더더욱 사제 홀로 맞서게 둘 수 없네! 룡함 부부에게 청을 넣어 보세.”

은발 노인이 놀라 그를 말렸다.

“룡함, 봉빙 수사가 나서준다면 그 자를 상대할 수는 있겠으나 그들에게 연락을 취하고 이곳에 오려면 3, 4개월은 족히 걸릴 것입니다. 하지만 옥간에 적힌 일자까지 두 달 밖에는 남지 않았습니다.

아마 제가 본 종으로 돌아올 시간을 계산해 적은 것일 텐데 이렇게 빨리 돌아올 것은 몰랐겠죠. 봉혼주를 풀 방법은 반드시 알아내야 합니다. 그러니 좀 더 고민을 해보겠습니다.”

“그럼 그러시게. 만일 제자들을 동원할 일이 있으면 즉시 말해 주고!”

“감사합니다. 완이 남긴 서신에 따르면 그녀가 펼친 비술은 봉혼주의 발작을 거의 백 년까지 막아 준다고 합니다. 다만 실제로 어떨지는 알 수 없으니 걱정이 됩니다.”

한립이 얼음 속에 갇혀 있는 어린 아이를 보며 근심스럽게 말했다.

“걱정 말게. 내 관상을 조금 볼 줄 아는데, 남궁 수사의 얼굴은 절대 요절할 상이 아니네. 나도 상고 시대 경전 등을 보며 저주를 푸는 방법이 있는지 살펴보겠네. 방법만 안다면 흑의인의 요구를 들어줄 이유가 없지 않겠나.”

“사형께 폐를 끼칩니다. 잠시 이곳에서 홀로 시간을 보낼까 하는데 괜찮을 지요.”

한립이 억지로나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야지. 난 그럼 바로 장서각에 가보겠네.”

노인이 곧 밀실을 나섰고 곧 이곳에는 한립과 여자 아이만이 남게 되었다.

한립이 그제야 고개를 돌려 얼음벽을 바라보았다. 그는 적막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고 그대로 꼬박 하루를 밀실 밖으로 나서지 않았다.

장서각에서 돌아온 노인이 아직도 한립이 그곳에 있는 것을 알고는 걱정을 했으나 반나절 후 한립이 담담한 얼굴로 걸어 나왔다.

“괜찮은가?”

밀실에서 나오자마자 노인이 기다리고 있어 한립은 놀랐지만 이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괜찮습니다. 안에서 적을 어찌 상대해야 할까 고민하다보니 시간이 이렇게 흘렀습니다. 사형께 또 걱정을 끼쳤습니다. 그리고 아직 시간이 있으니 잠시 폐관에 들어가 준비를 할까 합니다.”

“지금 말인가?  그렇게 짧은 시간동안 무엇을 하려고.”

“이번에 얻은 경정으로 법보를 다시 제련하려 합니다. 적을 상대할 때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구먼. 그렇다면 당연히 폐관에 들어가야지. 내 제자들에게 절대 방해하지 말 것을 신신당부 해놓겠네.”

노인이 그의 말을 듣고는 당장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빙벽이 이미 이곳에 만들어졌으니 이동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제가 주위에 결계를 쳐놓겠으나 사형께서도 신경을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립이 진지하게 노인을 응시했다.

“그건 걱정 말게. 남궁 수사가 우리 낙운종에서 이런 변고를 당했으니, 낙운종 대장로인 내가 책임을 피할 수 없지. 이미 이곳을 금지로 지정하고 제자들의 출입을 엄히 금하고 있으니 안심하고 폐관에 들어가시게.”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저도 안심입니다. 그럼 시간이 얼마 없으니 저는 바로 이곳에 결계를 설치하고 바로 폐관에 들어가겠습니다.”

* * *

반나절 후 한립은 자신의 거처로 돌아왔다.

뜻밖에도 모패령이 그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동굴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립이 그녀를 거처로 불러들였다.

“언니는 괜찮으신가요?  누군가에게 공격을 받아 부상당했다고 들었는데. 지금까지 어찌 된 일인지 알 수 없어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모패령이 대청에 들어서자마자 초조하게 물었다.

“완이와 그간 잘 지냈나 보구나.”

한립은 차분히 자리에 앉았다.

“예. 언니의 성격이 워낙 좋으신 데다. 공자께서 안 계신 동안 수련상에 지도를 해주셔서 제가 덕을 많이 보았습니다.”

“반가운 이야기이지만, 완이가 봉혼주에 당해 봉인되어 있으니 즐거워 할 수가 없구나. 난 이제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한 달 넘게 폐관에 들어갈 생각이다.”

“봉혼주요?  그런 악독한 마도 저주에 당하다니 큰일입니다. 공자께서는 분명 해결할 방법이 있으시지요?”

“무슨 방법이 있겠느냐. 저주를 건 자를 찾는 것 밖에.”

태연해 보이던 한립의 얼굴이 순간 음산해지자 모패령은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곧 그가 제자 류미도 동굴 앞에 나타났다. 오랜만에 돌아온 사부의 문안을 여쭈며 남궁완의 일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총명한 그녀라면 당연히 곧 사모(師母)가 될 남궁완과 최선을 다해 교분을 쌓아 두었을 것이다.

한립이 그녀를 속일 이유가 없었기에 봉혼주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반복했다. 류미도 안타까워했지만 그녀의 수행과 견문에 당연히 봉혼주를 어떻게 해결할지 방법을 알 리 없었다.

한립은 그들과 오래 대화할 기분이 아니었기에 잠시 후 그들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두 여인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약재 밭과 영충들을 기르는 밀실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즉시 재료들을 가지고 다른 밀실로 들어갔다.

원영의 불길로 경정을 36자루의 비검 안에 녹여낼 생각이었다. 지양 상인과 위무애에게서 교환한 경정과 모란족이 준비한 경정 외에도 천일성에 오기 직전 룡함이 천도맹 세력의 힘을 모아 작은 덩이를 구해주어 경정의 양은 충분했다.

처음부터 법보를 제련하는 것이 아니라 경정만 첨가하는 것이니 한 달 남짓이면 가능했다. 소규모 대경검진이라도 제련해 낼 수 있다면 원영 후기의 수사라도 싸워볼 만 할 것이다.

그는 남궁완에게 봉혼주로 금제를 건 흑의인은 십중팔구 음라종 종주일 것이라 생각했다. 마음을 정한 그가 재료들을 꺼내놓고 저물대 하나를 허공에 던지자 빛이 새어나오며 경정 몇 덩이가 발밑에 놓였다.

가부좌를 하고 앉은 그가 즉시 가장 적은 경정을 향해 손가락을 뻗자 옅은 금빛의 원석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한립이 눈도 깜빡이지 않고 경정을 주시하며 수결을 맺더니 입에서 푸른 영화(嬰火)를 뿜어냈다.

펑.

푸른 불길이 경정에 닿아 순식간에 원석을 휘감았다. 그가 주문을 외우자 푸른 불길은 점점 왕성해졌고 그 안의 경정도 천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한립이 신중한 얼굴로 경정을 쳐다보며 반 시진이 흐르자 대부분의 불순물들이 하얀 액체로 변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제 경정은 반투명하게 변했고 본래 크기보다 거의 절반은 줄어 있었다. 그때 그가 소매를 털어 바닥에 둔 옥함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옥함이 열리며 은빛의 가루가 모습을 드러냈다. 은빛 가루는 빛줄기로 빠져나와 허공의 반투명한 액체 속으로 들어가 푸른빛이 사방으로 번져나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반투명한 액체가 스스로 분열하더니 은색 구슬 6개로 뭉쳐 허공에서 회전했다. 한립이 심호흡을 하고 맹렬히 혀끝을 깨물어 피를 한 움큼 뱉어냈다. 그의 정혈이 구슬에 닿아 사라지자 구슬들의 색깔이 진한 황금색으로 변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한립이 다시 입을 벌려 푸른빛을 뿜어냈다. 푸른빛이 허공을 빙글 돌아 그의 앞으로 돌아왔고 그 안에 1촌 길이의 작은 검이 보였다.

이에 한립이 경정이 변한 금색 구슬을 가리키자 금색 구슬이 검으로 쏘아져 나가 균일하게 표면을 채우자 작은 검이 금빛으로 반짝이며 눈부시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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