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9
439화. 등잔불을 빼앗다
악귀의 머리에는 굽은 뿔이 두 개 솟아 있었고 말의 꼬리와 굉장히 커다란 송곳니가 날카롭게 빛났다. 통나무 같은 팔뚝은 반투명한 비늘로 뒤덮였고 열 손가락에서 손톱이 도처럼 자라났다.
악귀가 기이한 소리를 내며 석인의 다리에 손톱을 갈기자 거대한 돌조각이 튕겨 나왔다.
이에 두 명의 모란족 상사들도 두고 보지 않고 석인의 거대한 주먹으로 악귀를 쳤다. 그러자 핏빛의 악귀가 쾌속으로 날아드는 주먹에 맞아 머리통 반절이 으깨졌다.
하지만 잠시 후, 악귀가 몸을 굽혀다 피자 으깨진 두개골에 핏빛이 번지며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고, 달아났던 귀령문 수사들도 돌아와서 거침없이 석인과 모란 법사들을 공격했다.
다시 이어지는 악귀의 공격에 놀란 모란 상사들은 분노에 휩싸여 영수들과 법보를 총동원해 반격하기 시작했다.
쿠쿠쿠쿵!
서로의 공격이 엇갈려 굉음이 이어지고 핏빛이 번뜩였다. 악 여인이 그것을 지켜보며 미간을 좁혔으나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모란족 대상사로서 석인의 위력을 잘 알았는데 상대가 악귀를 불러내 동등하게 싸우니 의외였던 것이다. 하지만 석인 쪽을 신경 쓸 수는 없었다.
모란족 성조가 막고 있는 천남 수사들을 이기고 벗어나기만 하면 승부는 결정이 날 것이다.
그녀가 멀리 거대 새에게 시선을 주었다.
공작새도 중요한 순간이라는 것을 알았는지 방원 백 장 범위를 모두 푸른 화염의 바다로 만들고 있었다.
성조의 날갯짓에 일곱 노인들과 음양쌍마들의 연합도 깨지고는 했다.
여인이 한 시름을 놓으며 아홉 개의 등잔불을 지켜보았다. 아직 기름도 반절 남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눈썹이 솟구치며 번개처럼 등잔불 하나의 화염에 손을 뻗었다. 등불이 푸른빛을 반짝이며 사라졌고 삼십 여 장 밖에서 푸른빛이 번뜩였다.
“헛!”
어떤 인영이 푸른빛이 반짝이는 몸으로 등잔불로 만들어진 장막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고개도 들지 않고 법결을 날리자 ‘푸확’ 하며 푸른 불길이 번졌다. 그러자 참혹한 비명소리만이 들려왔다.
“감히 원명등(元明燈)에 몰래 접근하려 하다니 죽고 싶어 환장한 게로구나!”
여인이 죽은 자를 자세히 살피지도 않고 중얼거렸다. 어차피 상대가 천남 수사이기만 하면 상관없었다.
그녀가 등불을 붙이고 벌써 몇 명이나 등불을 어찌해보려고 다가왔었다.
거대한 공작새가 등잔불을 통해 소환된 후 아홉 개의 등잔불들이 꺼지지 않으니 다들 괴이하게 여겨 불을 끄려한 것이다.
물론 전부 그녀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한립이 여인과 수백 장 떨어진 거리에서 이름 모를 수사가 죽어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한립이 멀리서 등잔불을 바라보며 턱을 쓸었다. 보아하니 등잔불이 요수를 소환하는 것 외에도 숨겨진 능력이 더 있는 듯했다.
한립이 고민을 하다가 저물대에서 무엇을 꺼내고는 어떤 영수대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이때 악 여인은 경계심을 높이며 눈동자를 등잔불에 고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백 장 밖에서 하얀 빛이 번지더니 열댓 마리의 거대 원숭이 꼭두각시들이 나타났다.
거대 원숭이들은 그 자리에서 다가오지 않고 일렬로 서서 두 손에서 각양각색의 빛기둥을 분출했다.
“괴뢰술(傀儡術)!”
악 여인이 꼭두각시들의 정체를 알아채고 신중히 도처를 살펴보았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꼭두각시를 부리는 자가 있을 터였다.
어차피 빛기둥 따위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그녀가 수결을 맺자 연꽃의 환영이 빛기둥을 가볍게 막아냈다.
이후 여인이 신형을 움직여 등잔 불에서 화염 한 줄기를 끌어내자 화염이 그녀의 손바닥 위로 표표히 떠올랐다.
그녀의 안색이 시시각각 달라지더니 입술 사이로 영기를 뿜어냈고 푸른 등불이 흔들리며 어딘가로 사라졌다.
악 여인이 고개를 돌려 수십 장 밖을 바라보았다.
푸확!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푸른 화염의 장막에 둘러 싸여 있었다. 여인이 두 손으로 수결을 맺자 화염은 활활 타올랐다. 입꼬리를 끌어올리던 악 여인이 그대로 굳으며 소리쳤다.
“왜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거지?”
앞의 수사들이 순식간에 재가 되어 사라진 것과 달리 푸른 불길 속의 누군가는 아직도 버티고 있었다.
여인이 서둘러 자세히 살펴보았다.
“꼬, 꼭두각시잖아!”
화염 안에서 맹렬히 타고 있는 것은 한립의 모습을 한 가짜였다.
“설마!”
여인이 순간 위기를 감지하고 고개를 돌려 등잔불을 살폈다. 아주 잠시였지만 등잔불을 지켜보지 못한 것이다.
이십 여장 밖에서 푸른빛이 반짝이고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은빛 뇌전 속으로 누군가 사라졌다.
악 여인이 노해서 수결을 맺으려는데 이미 늦은 후였다.
등잔불 옆에 빛이 번쩍이며 인영이 나타났고 거대한 검붉은 손이 등잔 중 하나를 노리고 사납게 손가락을 굽히는 중이었다.
‘어떻게 진짜 등잔불을 알아낸 거지!’
여인의 법결과 거대한 손이 거의 동시에 등잔불과 충돌했다.
등잔불의 푸른빛이 막 무슨 변화를 보이려는데 거대한 손이 등잔불을 잡아 검은 기운으로 강제로 불을 꺼버렸다.
동시에 여덟 등잔불이 그것에 감응해 하나하나 꺼져나갔다.
“안 돼!”
모란족 제 일의 여 상사가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갔다.
그녀가 이를 악물고 대량의 연꽃 환영을 거대 손을 향해 날렸다. 일단 등잔불을 되찾아야 했다. 그러나 검붉은 거대 손은 진작 알았다는 듯 등잔불을 들고 한립 쪽으로 곧장 달아났다.
거대 손이 사라졌을 때는 푸른 화염에 갇힌 꼭두각시 옆에 누군가가 등잔불을 들고 떠 있었다. 바로 미리 잠복해 있던 한립이었다.
“절대 달아날 수 없다!”
악 여인이 황망한 눈으로 성조가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을 확인하더니 소리쳤다.
동시에 여인이 푸른 빛줄기로 변해 바람처럼 추격을 시작했다.
한립이 즉시 손에서 하얀빛을 뿜어 등잔불을 저물대 속에 넣고는 풍뢰시를 이용해 수십 장 밖에서 나타났다.
그때 여인이 변한 바람이 그가 서 있던 자리에 도착했다. 한립이 돌연 한 손으로 수결을 맺었다.
“터져라.”
푸른 화염 속의 꼭두각시가 푸른 구슬을 토해내더니 ‘쾅!’하며 금빛 뇌전과 푸른 화염이 얽혀 폭발했다.
이에 꼭두각시의 몸이 반절이나 날아가 버렸고 곁에 있던 악 여인도 여파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
여인의 몸에서 피어난 연꽃은 자동으로 그 공격을 막으려 했지만 신형이 충격으로 몇 장 튕겨나갔다.
멀쩡한 모습에 한립은 아쉬웠지만 지체 없이 풍뢰시를 이용해 멀리 달아났다. 악 여인이 다시 몸을 가눌 때에는 한립은 이미 백 장 밖으로 달아난 후였다.
이를 악물고 한립을 뒤쫓으려던 여인이 반절 남은 꼭두각시 잔해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을 감지하고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방금 암습을 당했으니 긴장하는 것이 당연했다. 꼭두각시 하반신이 와해가 되며 삼색 서금충들로 흩어져 떠올랐다.
악 여인이 서둘러 연꽃으로 방어를 하며 공격을 했다. 그러나 서금충들이 순식간에 삼색의 거대한 방패로 응결해 여인에게 충돌해왔다.
악 여인이 풍둔술을 이용해 달아나며 영술로 공격을 했으나 서금충들의 기세를 꺾을 수 없었다. 기이하게 여긴 그녀가 자세히 살피니 삼색 서금충들의 색깔이 무언가 달랐다. 생김새는 똑같았지만 기이하게 변이를 한 서금충인 듯했다.
놀란 그녀가 저물대에서 나무 속성 이보를 꺼내 서금충을 가두려고 날리자 서금충들이 즉시 사방으로 흩어졌다.
여인이 그제야 한립의 행방을 찾았지만 이미 은닉술을 발휘해 사라진 그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악 여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르락 해서 홀로 허공에 떠있었다.
그때 푸른 공작새가 화염을 쏘아 노인들이 고보로 만들어낸 방어막을 부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공작새가 기뻐하며 완전히 선사들을 죽이려는데 갑자기 온 몸에서 영력이 빠져나가는 것을 깨달았다.
놀란 새가 그들을 해칠 겨를도 없이 고개를 돌리자 허공에 떠 있어야할 등잔불들이 사라져 있었다.
거대 새가 당황해서 울부짖자 몸집이 신속하게 줄어들었고 붙들고 있던 불 속성 영기도 통제를 잃고 흩어졌다.
이에 아래쪽에 뿜어놓은 푸른 불바다도 사라졌다. 잠시 후 그 안에서 어안이 벙벙한 노인 일곱이 나타났다.
그들이 황당해 하는 사이 불덩이의 압력에서 벗어난 음양쌍마가 먼저 녹색 돌풍으로 변해 사납게 푸른 새를 공격했다.
푸슉!
음양쌍마가 덮치자 새의 몸이 폭발하며 무수히 많은 푸른빛으로 변해 소실되었다.
“어찌 된 일일까요?”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노인이 기뻐 소리쳤다.
“저 쪽을 보게. 괴조를 불러냈던 보물에 문제가 생긴 것 같군.”
우두머리 노인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모란족 성조가 사라진 것을 전쟁터의 수사들과 법사들도 알아차렸다.
그러자 법사들은 안색이 급변했고 수사들은 기세가 올라 맹공을 가했다. 깡마른 노인과 전종도 그것을 보고 수사들과 전투를 벌이다가 넋을 잃었다.
성조가 사라진다는 것은 원명등을 누군가 꺼버렸다는 소리였다.
원영 후기 수사들을 전부 붙들어 두고 있었는데 대체 누가 악 여인을 뚫고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한립은 이미 조용히 제혼 곁에 돌아와 있었다.
제혼이 변한 거대 원숭이는 대부분의 강시들을 재로 만들었고 남은 일부 동갑시들은 흑의인들이 서둘러 회수하는 중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동갑시는 전멸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강시의 기운을 흡수한 제혼은 안 그래도 거대한 몸이 더욱 비대해졌고 털도 칠흑같이 새까맣게 진해져 있었다. 아무래도 또 한 번 성장한 듯했다.
물론 그 동안 몇몇 흑의인들과 법사들이 제혼을 없애려고 했다. 그러나 룡함과 제혼 곁에서 숨어 있던 은월이 환술과 미혼술 등을 동원해 소리 소문 없이 죽여 버렸다.
한립이 돌아와 제혼수가 마지막 동갑시를 멸하는 것을 보고 바로 손짓을 해 영수대 속으로 불러들였다.
은월이 바로 한립의 뒤로 이동했다.
그가 은월에게 무언가 말을 하려는데 갑자기 하늘 위에서 경천동지할 굉음이 들리며 음산한 구름이 밀려 내려왔다. 수백 장 범위의 녹색 뇌화(雷火)가 그 안에서 꿈틀거렸다.
한립이 즉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누구냐! 누가 본 종주의 부인을 죽인 것이냐! 혼백까지 끄집어내 처참하게 죽이겠다!”
음산한 구름 속에서 천둥처럼 소리치고 있는 자는 음라종 종주였다. 한립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안색이 어두워졌다.
“아직 승부도 내지 않고 어딜 그리 급히 가십니까? 이제야 당신네 마공에 익숙해지려는 참인데 말이오!”
검은 장포를 입은 사내의 목소리는 합환종 노마의 것이었다. 회백색 안개가 하늘에서 내려와 음산한 구름을 막아섰다.
“꺼져라! 지금 꺼지지 않으면 어찌하는지 두고 보거라!”
음산한 구름 속의 음라종 종주의 목소리가 살벌했다.
“어찌 하는지 정말 보고 싶군요! 뭐 하고 싶은 대로 해보시든지요.”
합환종 노마가 냉소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흑의인이 침묵하더니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그리 분수를 모른다면 본 종주가 귀라번(鬼羅幡)의 위력을 보여주지!”
음라종 종주는 너무 분노해 오히려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귀라번?”
합환종 노마가 상대의 말에 조금 놀라더니 조금 흥분했다. 그러나 밑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이들은 더욱 크게 놀라고 있었다.
수사들은 이제야 음라종 종주의 반려가 천남 수사의 손에 죽어다는 것을 알았기에 속으로 누가 그녀를 죽였을까 추측했다.
한립은 무표정하게 있었지만 합환종 노마가 음라종 종주를 상대하자 내심 크게 안심했다.
원영기 수사에게 죽을 때까지 쫓기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이다. 막 음라종 종주와 합환종 노마가 붙으려는데 또 다른 일이 벌어졌다.
법사 진영 쪽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며 열댓 개의 빛줄기가 급히 날아왔다. 그들은 도착하기도 전에 소리쳤다.
“신사님들 큰일 났습니다! 모란 초원 쪽에 변고가 생겼습니다!”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일부러 비술로 목소리를 키운 것 같았다. 수사들과 법사 모두 잠시 동안 공격을 멈추고 머뭇거렸다.
깡마른 노인은 그 말에 마음이 무거워졌고 룡함 쪽 수사들은 짐작하는 바가 있어 얼굴이 펴졌다. 노인이 과감히 몸을 돌려 그 열댓 명의 법사들에게 날아갔다.
룡함이 주저하다가 추격을 하지 않았다.
모란 초원에 일어난 변고라면 돌올인과 연관된 일일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