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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438화 (195/2,000)
  • # 438

    438화. 냉혹한 수법

    지켜보던 법사들과 수사들도 거대 원숭이의 능력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조금 당황한 흑의 여인이 깡마른 노인과 몇마디를 주고받고는 노란 빛줄기로 변해 거대 원숭이에게 날아갔다. 거대 원숭이가 코로 뿜어낸 노란기운을 입으로 빨아들이는 것을 보고 그녀가 손을 뻗었다.

    보라색 빛이 수 장 길이의 거대 칼날로 변해 거대 원숭이를 덮쳤다.

    그런데 칼날이 거대 원숭이를 가르기 전에 은빛이 번쩍이더니 푸른 장포를 입은 청년이 거대 원숭이 어깨에 나타났다.

    전신에 붉은 비늘이 돋고 이마에 작은 뿔이 난 청년이 남색 방패를 들고 있었다.

    댕!

    거대한 충돌음이 터지고 남색빛과 보라색 빛이 교전을 하다 튕겨나갔다. 청년이 거대 원숭이 어깨에서 신형을 번뜩였다.

    그리고 양손을 부딪히니 굵은 금빛 뇌전이 나타났다. 그 청년은 바로 한립이었다.

    “벽사신뢰!”

    분노해서 바로 비술을 사용해 공격하려던 흑의 여인이 놀라 소리쳤다.

    쿠콰쾅!

    그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한립의 두 손에서 금빛 그물이 쏘아져나갔다. 여인이 놀라 연기로 변해 뒤쪽으로 물러났다.

    무표정한 한립이 은빛 날개를 펄럭여 사라졌다.

    한립에 대한 소문을 상기한 흑의 여인이 두 손으로 수결을 맺었다. 그러자 신형이 모호해지면서 일고여덟 명의 똑같이 생긴 여인들이 줄줄이 나타났고 즉시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노란 빛줄기로 변해 달아나는 이들 중 누구 진짜 흑의 여인인지 알 길이 없었다.

    은빛 뇌전이 번뜩이며 한립이 그녀가 있던 자리에서 나타났다. 사방으로 흩어진 여인들을 보며 한립은 입 꼬리를 말았다.

    영력을 눈에 불어넣자 눈동자에 남색빛이 어른거렸던 것이다. 그가 고개를 들어 어딘가를 주시했다.

    노란 빛줄기들이 어둑어둑하게 보이며 모두 허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놀란 그가 황급히 좌우를 바라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등 뒤에서 그림자가 되어 소리 없이 접근 중이었다. 환영을 퍼트려 그의 주의력을 돌리고 기습을 감행하려 했던 것이다.

    실력 뿐 아니라 담도 큰 여인이었다.

    명청영안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면 의식만으로 포착하기 힘든 둔술이었다. 아마 은월과 비슷한 실력의 둔술을 익히고 있는 듯했다.

    한립이 가슴이 서늘해져서 그대로 몸을 돌려 거대 원숭이에게 돌아갔다. 전혀 흑의 여인을 쫓을 마음이 없어 보였다.

    그러자 옅은 연기가 한립의 뒤쪽 수 장 밖에서 멈추더니 소리 없이 모습을 드러내 손에서 작은 노란 빛을 뿜었다.

    그러나 미리 대비하고 있던 한립이 엄청난 속도로 이동해 여인 앞을 가로막았고 입에서 금빛을 분출했다.

    “악!”

    흑의 여인이 창백하게 질려 급히 옆으로 피하려 했으나 너무 가까운 거리라 피할 길이 없었다.

    펑!

    금빛 뇌전이 그녀의 어깨를 때렸다. 살이 타는 냄새가 진동을 하며 여인이 허공에서 추락했다.

    쿠쾅.

    한립이 날개를 펄럭이며 은빛을 번뜩이며 사라졌다가 떨어져 내리는 여인의 뒤에서 나타났다. 그가 남색 화염으로 뒤덮은 손바닥을 가만히 여인의 목에 가져갔다.

    촤르륵!

    여인의 몸이 얼어붙었고 그대로 추락했다. 한립이 허공에서 멈춰 다른 손으로 세밀한 뇌전을 방출해 금빛 그물을 만들었다.

    그의 얼굴이 서늘해지고 폭음과 함께 흑의 여인의 몸이 얼음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그물 안에는 그림으로 그려놓은 듯한 아름다운 여인의 원영만이 남아 있었으나 벽사신뢰의 위력에 창백하게 질린 채였다.

    한립이 손짓을 해 뇌전으로 단박에 원영을 죽이려는데 흑의 여인의 원영이 날카롭게 소리 질렀다.

    “날 죽이지 마세요! 난 진국 마도 음라종 종주의 반려입니다. 나를 죽이면 음라종 전체가 당신을 용서치 않을 거예요!”

    “음라종 종주의 반려?”

    한립이 냉랭히 그녀의 원영을 보고는 벽사신뢰의 금빛 그물을 느슨하게 풀어주고 몸을 돌렸다.

    원영이 일순 당황했으나 곧 희색이 만연해서 그물을 빠져나가려 했다. 돌아가면 한립에게 악독하게 복수할 생각뿐이었다.

    그때 열 장 밖의 한립이 의식을 움직였다.

    금빛 그물이 순식간에 수축하며 여인의 원영을 꼼짝없이 포위했고 벼락이 치는 소리가 연달아 들리더니 원영이 연기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이미 육신을 멸했는데 살려 보내준다면 복수밖에 더하겠느냐? ’

    한립이 내심 투덜대며 거대 원숭이에게 돌아갔다.

    흑의 여인이 당하는 동안 깡마른 법사도 돕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여인이 위기에 쳐했을 때 발밑에서 금빛을 뿜어냈는데 다른 쪽에서 갑자기 분홍색 안개가 나타나 금빛과 충돌해왔다.

    분홍 안개는 흩어져 버렸지만 그의 금빛을 간신히 막을 수 있었다. 깡마른 노인이 안색이 시퍼레져서는 분홍 구름을 노려보았다.

    음라종 종주가 자신의 반려가 살해당한 것을 알면 어찌 나올지 예측할 수 없었다. 한립과 모란족 모두에게 이를 갈 수도 있었다.

    곧 안개 속에서 부드러운 웃음소리가 나며 영준한 생김새와 유순한 인상을 지닌 청년이 나타났다.

    바로 합환종 운로 노마였다!

    “한 수사가 나를 도와 줬으니. 나도 한번은 돕겠소. 노부는 이제 빚진 게 없는 겁니다?”

    노마가 실실 웃으며 한립을 향해 곁눈질 했다. 한립이 막 흑의 여인을 죽이고 날아와 답했다.

    “수사를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운이 따라줬기 때문입니다. 다른 보답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지만, 일단 눈앞의 축 신사는 우리 둘이 상대할 자가 아닌 듯합니다. 홀로 있는 것도 아니고요.”

    말을 마치고 깡마른 노인의 뒤쪽을 바라보자 강시들을 조종하는 흑의인들을 제외한 나머지가 목숨을 걸고 거대 원숭이의 공격에 대항하고 있었으며 법사 대군이 새까맣게 몰려드는 것이 보였다.

    운로 노마도 담이 큰 자였지만 개미떼처럼 몰려드는 법사들을 보고는 안색이 미미하게 변했다.

    노마는 한립이 푸른 불새들의 방해를 받으며 연달아 뇌주 두 알을 터트려 겨우 구해낸 수사였다. 그가 어떻게 노마와 협력해 상황을 타개해나갈까 고민하는데 엄월종에서 대량의 동갑시를 풀어놓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허리춤의 영수대에서 제혼을 불러내자 즉시 흥분해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시험 삼아 풀어 놓았는데 검은 원숭이가 강시들을 마구잡이로 흡입했다.

    제혼이 귀기나 요수의 혼백을 잡아먹는 것은 알았지만 수도자가 제련한 강시에게도 쓸모가 있다는 것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법사들이 포위망을 좁혀오자 한립과 운로 노마는 서로 시선을 마주치며 퇴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강시들 틈에 제혼을 놔두고 돌아갈 마음은 전혀 없었다.

    한립이 막 명혼주를 이용해 흥분한 제혼을 조용히 불러들이려는데 뒤쪽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한 수사가 영수를 데리고 강시들과 싸워준다면 저 자들이야 우리가 맡아야하지 않겠습니까?”

    바로 룡함의 목소리였다. 한립이 고개를 돌리니 멀리서 룡함이 대량의 수사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수사 진영에서 원군이 나선 것이다. 룡함이 한립이 요수화한 모습에 조금 이채를 띠었지만 금세 그런 기색을 지웠다.

    지금은 자초지종을 물을 때가 아니었다.

    룡함은 이미 수사들을 전종과 싸우고 있는 봉빙과 백 여인에게 보내 반려를 불러들였다. 두 부부가 연합을 해야만 그들의 진정한 실력을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렀으니 룡함도 깡마른 노인도 서로 이야기나 나누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룡함이 앞으로 손을 뻗었고 그를 뒤따르던 정예병들이 다양한 빛을 분출하며 각종 법보와 법술을 펼쳐 공격에 들어갔다.

    드디어 두 진영의 정예 수사들의 격렬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한립은 깡마른 노인을 밀어붙이며 함께 싸울 생각이었지만 곧 시선이 푸른 성조에게 닿으며 표정이 달라졌다.

    태진문 일곱 수사들이 음양쌍마와 연합해 모란족 성조를 막고 있었지만 다시 밀리기 시작했다.

    강시들이야 귀도 공법을 익혀 거대 원숭이가 잘 버티는 편이었지만 이미 법력을 크게 소모한 수사들 쪽은 오래 버티지 못할 듯했다.

    특히 그 중의 한 노인은 온 얼굴이 핏빛이 되어있었고 다른 한명은 백지장처럼 질려있었다. 분명 과도하게 영력을 끌어 쓰려고 비술을 사용해 무리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립이 미간을 좁히며 서로 죽고 죽이고 있는 수도자들과 멀리 저 등잔불들을 지키는 악 가 여인을 바라보았다.

    “제혼을 잘 돌보거라. 명혼주를 잠시 맡길 테니 위험해지면 바로 불러들이고!”

    한립이 조용히 중얼거리며 어두운 잿빛의 구슬을 뒤쪽으로 던졌다. 미약하게 하얀 빛이 번졌다가 구슬과 함께 사라졌다.

    “예, 주인님! 공작새의 능력이 보통이 아니니 조심하셔요!”

    한립의 등 뒤에서 은월의 근심어린 목소리가 전해졌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그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틈에 신형을 흐릿하게 해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가 요족의 무명구결을 일으켰다. 은닉술로 형태를 감추는 능력은 은월의 천부적인 둔술에 미치지 못했지만 기운을 감추는 방면으로는 전혀 손색이 없는 술법이었다.

    무명구결을 극도로 펼치자 기운은 물론이고 숨소리마저 사라졌다. 이제 악 여인뿐 아니라 모란족 성조까지 속아 넘겨야만 했다.

    멀리서 그녀는 깡마른 노인이 룡함 등 천남 수사들과 싸우는 것을 보며 희미하게 초조해하고 있었다.

    그녀는 등잔불을 지키기 위해 꼼짝을 할 수 없었는데 거대한 새를 향해 무어라 소리를 쳤다. 안색을 보니 사정을 하는 것 같았다.

    공작새가 고개를 들어 노인 쪽을 바라보았지만 전혀 안타까워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거대한 새는 푸른 화염을 토해내 태진문 일곱 수사들을 속수무책으로 만들어 놓고는 날개를 펼쳤다. 거대 새가 노인 방향으로 대량의 깃털을 쏘아 보낸 것이다.

    깃털들이 거대 새의 몸에서 떨어져 나와 빛으로 변하더니 작고 푸른 불새들이 속속들이 출현했다. 수백 마리 불새들이 퍼덕거리며 깡마른 노인 쪽으로 사라졌다.

    악 여인이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작은 불새들이 몰려갔으니 노인은 문제가 없으리라 여긴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전장 중심부에서 ‘쿠르릉’하는 거대한 울림이 들려왔다. 악 여인도 그녀 곁으로 접근하려던 한립도 모두 놀라 그쪽을 바라보았다.

    전쟁터 한가운데에서는 중요한 결전이 진행 중이었다.

    수십 명의 귀령문 제자들이 만혼대진(万魂大陣)을 완성하고 귀무 속에서 꼼짝을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몇 몇의 모란족 대상사들이 환형으로 만들어낸 영수들과 거대한 석인들이 포진해 있었다.

    꼭두각시와 비슷한 거대 석인들이 모란족 상사들의 지휘를 받아 천남 수사들을 공격했고 주변 수사들이 어쩔 수 없이 만혼대진을 펼친 귀령문 수사들 쪽으로 숨어들고 있었다.

    거대한 진동은 석인들이 모란족 수사들의 법결에 따라 귀무를 내려치면서 난 소리였다.

    본래 거대 석인의 공격을 피하던 귀령문 수사들과 귀무가 허공에서 멈추었다.

    이제 천남 수사와 모란 법사 간의 전쟁이 최고조에 이르렀기에 만혼대진을 유지하는 귀령문 장로 중 하나가 중대한 결심을 한 것이다.

    석인들이 쫓아오기 전에 귀무 속에서 귀령문 제자들의 낮은 주문 소리가 들려왔다.

    처절한 귀곡성이 커지더니 새까만 안개가 전염이라도 된 듯 핏빛이 진해졌다. 석인의 어깨에 타고 있던 모란족 상사 두 명이 그것을 보고 안색이 달라졌다.

    잠시 후 귀무가 고요해지더니 핏빛으로 물든 안개에서 수십 개의 다채로운 빛들이 목숨을 걸고 탈출했다. 바로 귀령문 수사들이었다.

    귀령문 수사들이 달아나고 홀로 남은 귀무는 스스로 촉수를 뿜어내며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만혼대진을 유지하던 귀령문 장로가 오륙 십 장을 벗어나 멈췄다.

    ‘수많은 법사들의 정혈을 흡수하고 제자 중 하나가 제 몸을 희생했으니 이번만큼은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동안 핏빛 안개는 절반 정도로 수축했고 석인을 조종하던 두 법사가 사납게 공격에 나섰다.

    갑자기 평지에서 음산한 돌풍이 불더니 뼈 속까지 한기가 스미며 눈앞이 어슴푸레해졌다.

    모란 법사들이 시야를 회복하고 핏빛 안개를 바라보았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런데 그때 돌풍이 더욱 거세지며 그 안에서 핏빛 그림자가 뿜어져 나왔다. 열 장 크기의 핏빛 악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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