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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434화 (191/2,000)

# 434

434화. 전쟁 (4)

한립이 몸을 돌려 손가락 하나를 뻗자 옅은 남색 불덩이가 손끝에서 솟아나왔다.

“가라.”

그가 손을 털어내자 불덩이가 보호막 벽으로 날아갔다.

펑!

그러자 남색 화염이 터지면서 푸르스름한 얼음층이 보호막을 타고 퍼져 나갔다. 보호막은 이제 숨마저 얼려버릴 정도로 극한의 지대로 변했다.

한립은 앞으로 가서 푸른 검기를 이용해 보호막을 찔러보았다. 얼음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지만 그 안의 핏빛 보호막은 멀쩡했다.

심지어 보호막을 타고 흐르는 핏물도 멀쩡했다. 그것을 본 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한립이 고민을 하다가 이번에는 자홍색 화염을 손바닥에 둘러 보호막을 내리쳤다.

촤륵.

보호막 표면의 붉은 안개와 핏물마저 순식간에 응결되어 보라색으로 물든 것을 확인했다. 그가 조심스럽게 자라극화를 보호막 일부에 뿌린 후 입을 벌렸다.

천둥소리가 울리고, 금빛 뇌전이 입 밖으로 나와 자라극화로 얼려진 부분을 때렸다. 드디어 금빛이 사라지고 보호막 표면에 균열이 생겨났다.

그런데 핏빛이 번쩍거리더니 순식간에 균열이 다시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분명 얼려버렸는데 스스로 손상된 부위를 복구하다니.

모란인들이 결계를 믿고 그들을 내버려두는 이유가 있었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한립이 저물대를 뒤져 푸른 구슬을 꺼냈다.

그가 이번에 새로 제작한 뇌주(雷珠)였다. 아직 시험해보지 않았으니 위력은 알 수 없었지만 이대로 결계에 갇혀있다가 수사 대군이 패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의 상황도 여의치 않아진다.

한립의 손에서 빛이 번뜩이자 뇌주가 데굴데굴 굴러 핏빛 보호막으로 날아갔다.

콰쾅!

금빛이 반짝이고 보호막이 극심하게 진동했다. 뜻밖에도 뇌주의 위력이 그가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한립이 즉시 푸른 빛줄기로 변해 날아갔다. 뇌주의 일격에 보호막에 조그만 구멍이 생겼고 그것을 감지하자마자 몸을 날린 것이다.

날아가면서 내심 기쁨을 주체할 길이 없었다. 자라극화와 비슷한 위력의 푸른 등잔불로 제련한 뇌주의 위력이 이렇게 크다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뇌주가 안 되면 서금충과 혈마검을 써 볼 생각이었는데, 서금충은 못 갉아 먹는 게 없지만 시간이 걸릴 것이고 혈마검은 사용하고 난 후 후환이 걱정되었었다.

보호막을 빠져 나온 한립이 바깥을 제대로 살피기도 전에 귓가에 고성과 굉음이 몰려들었다. 그가 서둘러 상황을 살피고는 당황했다.

놀랍게도 열댓 명의 법사들 사이에 포위된 것이다. 재빨리 그들의 수행을 살피자 다행이 결단기 두 명에 나머지는 축기기였다.

다들 손에 깃발을 들고 있는 것이 무언가 영술을 펼쳐 공격을 하려던 참에 우연히 한립이 그들 위에서 나타난 것이다.

한립은 그들을 개의치 않고 사방을 살피고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들이마셨다.

하늘과 땅을 빼곡히 뒤덮은 수도자와 법사들이 각종 법기와 법보들을 사용해 서로를 공격하며 폭음과 광채가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이 혼전을 치루는 것을 보며 한립도 일순 어느 쪽이 우세한지 판단하기 어려워졌다. 곧 한립이 서늘한 눈빛으로 그의 주변에 있던 법사들을 돌아보았다.

열댓 명의 법사들은 그가 핏빛 보호막을 뚫고 나온 것에 놀라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원영기 수사다! 어서 대상사님께 알려!”

결단기 법사 하나가 가장 먼저 반응해 소리치고는 자신의 뒤통수를 쳐 한립을 향해 청록색 비도를 날렸다.

그 모습에 다른 법사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머지 결단기 법사도 붉은 작살을 꺼내 날렸고 전음부를 띄웠다. 나머지 수행이 낮은 법사들은 손에 든 법기를 보며 주문을 외우자 열댓 개의 불기둥이 분출되어 한립을 향해 날아갔다.

“흐음?”

수행이 훨씬 낮은 법사들이 달아나지 않고 그를 향해 싸움을 걸어온 것이 무척 이례적이었다.

살기가 인 한립은 소매를 털어 수십 개의 청죽봉운검들을 날렸다. 이어 법결을 쏘아 보내자 비검들이 진동하며 숫자가 늘어났고 빼곡하게 하늘을 뒤덮은 비검들의 기세는 놀라웠다.

결단기 법사 두 명은 그것을 보고 화들짝 놀랐지만 그대로 법보를 이용해 항전했다. 한립이 냉소하며 손짓하자 비검들 중 몇 개가 움직여 날아오는 비도와 작살을 제압했다.

푸른빛이 커지자 법보 두 개가 ‘웅웅’ 거리며 순식간에 작은 공처럼 수축했다. 다른 법사들이 공격하며 내뿜은 불기둥도 한립에게 닿기도 전에 비검에 의해 사라졌다.

지금은 이런 법사들에게 잡혀 있을 때가 아니었기에 한립은 검영분광술로 늘어난 비검 전체를 움직였다.

축기기 법사들은 깃발을 날려 저항을 해보려다가 푸른 검기에 닿자마자 으깨져 죽었고 결단기 수사들은 몰려오는 푸른빛에 재빨리 달아났다.

달아나는 두 줄기 빛에 한립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가 수결을 맺으니 그들을 뒤쫓던 검기들의 속도가 빨라졌다.

불쌍한 모란 법사들은 이십여 장도 달아나지 못하고 검기에 따라잡혀 사라졌다. 한립이 그들을 막 처리했을 때 머리 위에서 폭음이 들리며 노란 빛줄기가 떨어져 내렸다.

극히 빠른 속도에 한립의 안색이 변해 등 뒤로 풍뢰시를 불러냈다.

꽈광!

은빛이 번뜩이고 그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노란 빛줄기가 그것을 보고 멈칫하더니 그 안에서 노란 장삼을 입은 수염 없는 노인이 나타났다. 그는 분노한 기색이 다분했는데 상대의 등장에 놀란 것 같기도 했다.

그는 모란 대상사 중 하나로 원래 다른 법사들과 몇몇 천남의 원영기 수사들을 상대하다 자신 부락의 법사들에게 소식을 전해 듣고 빠져나오는 길이었다.

서둘렀지만 눈앞에서 법사 둘이 잘려나가자 열이 받은 듯 했다. 게다가 그들 중 하나는 그의 직전 제자였다.

그러나 한립은 그가 공격할 틈도 주지 않고 허공에서 사라졌다가 바로 뒤에서 나타났다.

“죽어라!”

한립의 존재를 감지한 노인이 즉시 몸을 돌려 네모난 법보로 한립을 공격했다.

노인의 손에서 법보가 떠나자 노란 빛이 터져 나왔고 순식간에 열댓 장 크기의 벽돌로 변해 엄청난 기세를 뿜어냈다.

무표정하게 한 손을 든 한립이 남색 방패를 던지자 순식간에 거대해진 방패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콰쾅!

노란빛과 남색빛이 어우러져 거대한 벽돌과 남색 방패가 부들거리더니 동시에 튕겨나갔다. 한립은 방패가 자신 쪽으로 튕겨 오는 것을 보고 손짓을 하자 푸른빛이 반짝이고 방패가 즉시 멈춰 섰다.

그때 벽돌이 허공에서 선회해 다시 그를 공격해 들어왔다. 한립이 냉소하며 등 뒤에서 은빛을 번뜩이니 또 한 번 허공에서 사라졌다.

노란 장포의 노인이 놀라 보라색 깃발을 불러냈다. 보라색 깃발이 순식간에 안개로 변해 그의 주변을 감쌌다.

그 순간 노인의 좌측에 천둥소리가 나며 한립이 나타나 몇 촌 길이의 비검을 분출했다. 비검은 옅은 남색 불길에 휩싸여 보라색 안개로 돌진했다.

본래 안개 속에서 태연하게 서 있던 노인이 비검에 묻은 남색 화염을 보고는 경악해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그러나 그가 뒤로 물러나려는데 어떤 여인의 그림자가 나타나 푸른 구슬을 던졌다. 여인은 마치 귀신처럼 소리 없이 나타났고 등장한 시기가 한립의 공격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그렇지 않았다면 원영기인 노인의 의식에 벌써 감지 당했을 것이다.

단 거리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었으니 유일하게 남은 방법은 전신의 법력을 쏟아 부어 보라색 안개로 주변을 강화하는 것 밖에 없었다.

고보가 변화한 보라색 안개의 위력이 상당했기에 막아낼 가능성도 상당했다.

콰쾅! 쿠릉!

금빛과 푸른빛이 폭발했고 한 눈에 보기에도 비범해 보이던 보라색 안개가 흩어져 버리자 노인이 비명을 질러댔다. 그의 몸 반절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이미 보이지 않았고 나머지 반쪽은 푸른 화염에 철저히 먹혀 들어가고 있었다.

이에 노인은 곧장 독기를 품고는 과감히 육신을 포기하고 노란 빛줄기로 빠져나왔다.

하지만 이미 예상하고 있던 한립은 그의 원영이 빠져 나오자마자 은빛을 번뜩이며 허공에서 사라져 원영의 앞을 막아섰다.

동시에 남색 화염을 품은 비검도 원영의 뒤쪽에서 따라왔다.

노란 빛줄기 속의 원영이 그것을 보고 공포에 떨더니 입을 벌려 둥근 사발을 뿜어내 금빛 그물을 막으려 했다.

쨍!

그러나 사발이 금빛 그물에 닿자마자 스스로 깨져버렸다.

은빛이 지나고 무수히 많은 파편이 금빛 그물을 공격했기에 간신히 그물의 속도를 늦출 수 있었다.

그 틈에 노인의 원영이 순간 이동을 해 사라졌고 삼십 장 밖에서 다시 나타나 놀라운 속도로 사라져버렸다.

한립이 미간을 좁히며 원영이 사라지는 방향을 보았을 뿐 추격하지는 않았다.

“현명한 자입니다. 살아남기 위해 본명 법보까지 스스로 부수다니 그럴 수 있는 자가 흔치는 않지요.”

갑자기 나타난 백의 여인이 노인의 저물대를 쥐고 말했다. 핏빛 결계에서 빠져 나오자마자 한립이 몰래 풀어놓은 은월이었다.

‘살기 위해 못할 짓이 없다 이거군.’

한립은 내심 마음이 무거워졌다.

풍뢰시며 건람빙염까지 이미 모란인들이 속속들이 알고 있으니 동급 법사를 죽이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네 둔술이 이전에 비해 크게 늘었구나. 그렇게 가까이 접근할 때까지 상대가 전혀 모르다니.”

한립이 은월을 곁눈질하며 담담히 말했다.

“사안(四眼)의 영호족 본연의 은닉술 실력이 최근에 늘었고, 주인님께서 상대의 주의를 끌어주신 덕분입니다. 그 자가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으니 가능한 것이었지요.”

“그렇다고 해두자꾸나.”

은월은 그의 기령으로 세상에서 유일하게 작은 병의 비밀을 알고 있는 자였다. 그러나 그는 줄곧 그녀를 꿰뚫어 볼 수 없다는 느낌을 받고는 했다.

그가 은월과 몇 마디를 나누며 다시 전쟁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혼란스럽기는 했지만 자세히 보니 대략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만했다.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수천 수사와 법사들이 크고 작게 뭉쳐서 서로를 죽여 나갔다. 동문 수사들 혹은 같은 부락 법사들이 모여 연합 공격을 하니 그 공세가 어마어마했다.

이렇게 비슷한 규모의 무리끼리 공격을 주고받으니 대부분이 쉽사리 승부가 나지 않았다.

그 외에도 몇몇은 홀로 다수를 상대했는데 주로 고계 법사나 수사들이 적들을 무리로 상대하는 중이었다. 그들은 오히려 단 한 번의 실수로 죽을 수 있었기에 더욱 위험해 보였다.

마지막으로는 알 수 없는 이보 또는 불가사의한 비술을 사용해 상대와 겨루는 무리들이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귀곡성이 들려오는 새까만 귀무로 법사들을 잡아채 전부 깡마른 시체가 되어 떨어져 내리게 만들었다.

귀무 뒤쪽에 몇몇 법사들이 벼락 속성이나 바람 속성 영술을 써서 새까만 안개를 공격했고 어느 정도 통하기는 했지만, 귀무 속 수사도 기다란 깃발 같은 법기로 계속 귀무를 북돋았기에 조만간 승부가 날 것 같지 않았다.

또 다른 곳에서는 열댓 명의 고계 수사들이 신장이 백 여 장에 이르는 돌거인과 싸우기도 했다.

거인은 몸집이 워낙 거대하고 돌덩이를 비처럼 쏟아 부어 수사들이 보호막을 펼치고도 다가가기 쉽지 않았다.

보물을 지니고 싸우고 있는 법사들과 수사들은 한립의 식견을 높여 줄 정도로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한립은 핏빛 결계를 뚫고 나왔지만 아직도 혼전이 계속되고 있었기에 주변의 몇몇 무리밖에 신경 쓸 수 없었다.

곧 가까운 곳에서 두 명의 모란족 대상사가 나타나 그를 향해 날아왔다.

한립이 순식간에 동급 대상사를 죽이는 것을 보았기에 승리할 거란 확신은 없었지만 그래도 원영기 수사를 내버려 두었다가는 법사들이 죽어 나갈 거라 염려해서였다.

“가자!”

한립은 원영 법사 두 명에게 붙들려 있을 생각이 없었기에 은월을 향해 냉랭히 명했다.

이후 푸른 빛줄기가 되어 인근의 다른 핏빛 보호막으로 달려들었다. 은월이 주저하다가 바로 무슨 뜻인지 알아듣고는 웃음을 흘리며 허공에서 사라졌다.

푸른 빛줄기가 핏빛 결계 위에서 잠시 멈춰 서서 뇌주 한 알을 던졌다. 그리고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다음 결계로 이동했다.

일단 갇혀 있는 다른 원영기 수사들을 구해내고 움직일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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