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432화 (189/2,000)

# 432

432화. 전쟁 (2)

쌍방이 공동으로 설치한 결계 10개가 각각 7, 8장 정도의 너비로, 하얀 보호막에 쌓여 양 진영 사이에 떠올랐다.

각각 한 명의 수사와 법사가 결계의 운용을 감시하고 있었다.

천남 수사 중에 한 명은 낙운종 송 여인으로 두 번째 결계 옆을 지키는 임무를 맡았다.

그녀가 두 번째 결계 옆에 있다는 것은 자신이 그곳에서 대결하게 되리란 소리였다. 어쨌든 자기 문중 사람이 감시해야 대결을 벌이는 노괴들도 더욱 안심할 게 아닌가.

괜히 적대적인 세력의 제자가 지키고 있다 위기의 순간 배신하면 안 될 일이었다. 결계가 완성되었으니 쌍방의 참가자가 앞으로 나설 차례였다.

법사 무리에서 먼저 10명의 흑의인들이 음산한 마기를 발산했다.

‘마수들!’

한립이 중얼거리다가 푸른 빛줄기로 변해 수사 진영을 빠져나갔다. 동시에 9명의 원영기 수사가 앞으로 나섰는데 대부분 낯이 익었지만 셋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아는 얼굴 속에 쇄혼 진인, 운로 노마 및 백 부인이 속해 있었다.

다들 제자리를 찾아갔고 한립도 결계에 도착해 아래쪽의 송 여인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상대 흑의인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군. 폭발적인 마기야. 회살환(回煞丸)과 비슷한 단약을 미리 복용한 것은 아니겠지.’

그저 그렇게 추측했을 뿐 두려울 것은 없었다.

보통 체격의 흑의인은 녹색 눈을 서늘하게 빛내며 한립을 노려보고 있었다.

비록 상대의 얼굴은 볼 수 없지만 원영기 수사임이 틀림없었다. 수행이 원영 초기의 최상인 상태라 곧 중기에 이를 듯 했다.

한립이 시선을 거두고 곁눈질로 다른 흑의인들을 살피니 다들 자신의 상대와 비슷비슷해 보였다. 다들 엇비슷한 수준인 것을 확인한 한립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역시 이번 대결에는 무언가 있구나.’

뜻밖에도 원영 중기 수사가 한 명도 없다니!

상대가 마도 공법을 쓰는 순간 단번에 벽사신뢰로 죽일 생각이었다. 어떤 수를 숨기고 있든 틈을 주지 않고 없앤다면 무사할 것이다.

순식간에 살심이 솟구쳤다.

이때 흑의인이 허리춤의 저물대 하나를 들어 무표정하게 한립을 응시했다. 한립도 미소를 지으며 온갖 재료로 가득 찬 저물대 하나를 허리춤에서 풀었다.

흑의인이 먼저 저물대를 던졌고 한립도 수중의 저물대를 던져 서로 교환을 했다.

상대의 저물대를 확인하니 수사들이 준비한 것보다 종류는 다양하지 않았지만 가치로만 따지면 분명 조금 높았다. 이것은 미리 협의한 내용이니 문제가 없었다.

한립이 고개를 끄덕이고 저물대를 허리에 찾고 상대도 똑같이 행동했다.

아래쪽에서 대기하던 송 여인과 상대편 법사가 그것을 확인하고 동시에 입으로 중얼중얼 주술을 외기 시작했다.

각자 법결을 진법으로 쏘아 올리니 하얀 빛이 대결 장소를 뒤덮었다.

한립과 흑의인이 동시에 신형이 흔들리며 결계 안에서 나타났다. 하얀 보호막이 나타나자 두 수사는 외부와 완전히 단절되었다.

보호막 안의 한립은 조용히 상대를 응시하며 전신의 푸른빛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체내의 청죽봉운검들이 진동하며 언제든 튀어나올 태세를 마쳤다.

마공에 대비한 최적의 무기인 벽사신뢰는 벌써부터 주먹만 하게 뭉쳐 금빛 구슬 모양으로 단전에 모아두었다.

한립의 원영은 희희낙락하며 두 손으로 금빛 구슬을 쥐고 언제라도 일격을 날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흑의인은 보호막에 모습이 가려지자 양손에 수결을 맺기 시작했다. 그러자 괴상한 주술 소리가 흘러나오며 음산한 마기가 더욱 증폭돼 칠흑 같은 촉수가 뻗어 나갔다.

한립은 꼼짝도 않고 그를 지켜봤지만 소매 속에 집어넣은 두 손에서 미세하게 벼락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흑의인이 공격하는 순간 일격에 그를 죽일 계획이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흑의인의 눈동자가 새빨갛게 변해 요수처럼 으르렁 거리며 검은 의복에 가려진 육체가 울룩불룩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음? ’

예상 밖의 일에 한립이 주의를 기울였다.

상대의 신체 변화 때문이 아니라 끓어오르던 마기가 일순 사라지더니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이상한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그는 덤벼 들기는커녕 뒤로 급격히 물어나며 보호막 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의 몸은 순간 수축해 3척 난쟁이로 변해버렸다.

이에 한립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두 손에서 즉시 굵은 뇌전이 튀어나와 거대한 금빛 그물로 변해 흑의인을 향해 날아갔다.

한립은 다시 저물대를 스쳐 구슬을 손에 쥐었다. 조금만 이상한 일이 발생하면 당장 구슬을 발동해 금제를 깨고 나갈 작정이었다.

그가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금색 그물이 흑의인을 덮쳤다.

펑!

끔찍한 비명 소리가 들려오며 흑의인의 몸이 터져나가 순식간에 피와 살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립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상대가 스스로의 몸을 폭발해 무슨 흉측한 비술을 쓸까봐 걱정했는데 한립 쪽으로는 아무 해도 끼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이런 상황이 더욱 의심스러웠다.

역시 곧 그가 이상을 감지했다.

흑의인이 폭발하며 터져나간 핏덩이들이 보호막 위에서 떨어져 내리지 않고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살점들이 갑자기 핏빛 안개로 변해 보호막으로 퍼져나갔고 극히 빠른 속도로 하얀 보호막이 붉게 물들어 갔다. 게다가 피비린내가 얼마나 독한지 코를 찌를 정도였다.

놀란 한립은 급히 손에 들고 있던 구슬을 뒤쪽의 보호막으로 던졌다.

펑!

구슬이 보호막에 닿자마자 새까만 빛을 터트리며 폭발했다. 이어 뒤쪽 보호막부터 빛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보호막 전체가 얕게 진동을 했다.

한립이 기뻐하며 열 손가락을 움직여 연달아 푸른 검기를 쏘아 보호막 곳곳으로 뿌렸다. 하얀빛이 심하게 깜빡거리는 것이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 했다.

그러나 핏빛 안개의 속도가 더욱 빨랐다.

한립이 어두워진 얼굴로 순식간에 붉게 변한 보호막을 살폈다. 보호막 표면의 붉은 안개가 흐르며 진득한 혈액을 응결해 내는데 그럴수록 비린내가 심해졌다.

고민할 것도 없이 입을 벌린 그가 굵직한 금빛 뇌전을 분출해 눈앞의 붉은 기운을 강타했다.

콰광!

폭음이 들리고 붉은 안개가 흩어지는 듯하더니 다시 원상태를 회복했다. 당장 청죽봉운검을 분출하려던 그가 신중한 얼굴로 동작을 멈추었다.

옆을 살펴보니 같은 시각 10개의 결계에서 모두 같은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10명의 원영기 수사들이 속수무책으로 이상한 빛의 장막 안에 갇힌 것이다.

결계의 운용을 감시하던 10명의 결단기 수사들도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상대편 법사를 경계하며 서둘러 결계를 풀려했다.

그러나 보호막이 붉게 변하자 법사들은 바로 자신들의 진영으로 달아났다. 송 여인과 다른 결단기 수사들은 상황이 더욱 심각해졌다는 것을 알고 긴장했다.

보호막의 이상한 변화는 법사 쪽의 술수가 분명했다.

예상대로 그들이 결계를 풀려했음에도 붉은 보호막은 여전히 유지되었고 핏물이 맺히며 수백 명이 도륙당한 잔해 같은 느낌을 주었다.

보기만 해도 공포스러운 광경이었다!

붉게 물들어 가는 보호막에 파견한 결단기 수사들조차 결계를 거두지 못하자 천남 삼대 수사들도 흥분해 날아왔다.

“돌아가거라. 이제 너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결계 위에 이른 지양 상인이 이상하게 변한 보호막을 보고 음울히 명을 내리자 결단기 수사들이 내심 한시름을 놓으며 서둘러 본진으로 돌아갔다.

송 여인도 보호막 속의 한립을 보며 근심하는 기색을 비추었지만 다른 수사들과 함께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법사 진영의 깡마른 노인 등이 10명의 원영기 수사들이 결계에 갇힌 것을 보고 희색이 만연했다. 그들은 천남 삼대 수사들이 결계로 다가가는 모습을 보고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들 뒤로 언제 부터인가 흑의인 남녀가 함께 하고 있었다.

“방 종주, 정말로 성공하였습니다! 소문대로 혈라조가 정말 대단하다면 원영기 수사들을 반나절은 충분히 가둬둘 수 있겠죠?  천남 진영에서 원영기 수사가 10명이나 비면 그동안 승패를 가를 수 있을 겁니다.”

깡마른 노인이 뒤를 돌며 흑의인 사내에게 말했다.

“혈라조는 본 종의 6대 비술 중 하나이니 걱정 마시지요! 100년간 길러낸 혈시(血尸) 열 마리를 희생해야 하는데다 의심을 피하기 위해 미리 마령단(魔靈丹)까지 먹였지 않습니까. 거기다 본 종주를 비롯해 10명의 원영기 수사들이 각자의 의식으로 조종을 해서 겨우 상대의 눈을 속였어요. 아무리 원영 후기 수사라도 결계를 깨려면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마치 흑의인 사내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지양 상인이 결계 중 하나에 눈부신 검기를 터트렸다.

쿠르릉!

하지만 핏빛 보호막은 몸을 부들부들 떨뿐 금방 다시 원상태로 돌아갔다. 지양 상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위무애와 합환종 노마도 그것을 보고는 공격을 하지 않았다. 지양 상인의 공격을 막아낸 보호막이 얼마나 단단한지 단번에 알아본 것이다.

세 수사가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결투 중에 상대 법사가 강력한 한 수를 써서 참가 수사들이 중상을 입거나 죽을 것만 걱정했는데 이렇게 가둬둘 줄은 생각도 못한 것이다.

“역 형, 이게 어떤 마도 공법인지 아시겠습니까?  마도 육종에서 비슷한 공법이 있겠지요?  자기편을 폭파시켜 펼치는 술법이라니 끔찍한 일입니다.”

위무애가 탄식했다.

“없습니다. 이런 괴상한 술법은 저도 생전 처음 보는 거외다. 보아하니 진국의 수사들을 너무 얕잡아 본 듯합니다!”

합환종 노마가 미간을 좁혔다.

그러나 수사들이 따질 시간도 없이 법사 진영에서 북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일부 법사들은 하늘로 솟아오르고 나머지는 위치를 바꿔 진법을 이루니 공격을 개시하기 일보직전이었다.

뒤쪽의 수사 대군도 결계에서 일어난 일을 보았기에 고계 수사들의 지위에 따라 큰 동요 없이 움직였다.

“이번에는 우리가 당한 듯 하지만 저들은 잠시 갇혀 있을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겁니다. 시간을 끌어 구해냅시다. 어차피 우리 쪽 고계 수사들의 수가 상대보다 많으니 10명이 적다한들 열세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럽시다! 그럼 최선을 다해 우리가 모란족 신사들을 맡읍시다!”

합환종 노마가 흉악한 빛을 띠며 소리쳤다. 이어 그가 다른 두 수사의 반응을 기다리지 않고 상대 법사 대군을 향해 일갈했다.

“모란 법사의 영술이 대단하다는 소리를 들은 지 오래입니다. 가르침을 청하고자 하니 앞으로 나서시지요!”

그는 어떤 비술을 사용했는지 목소리가 몇 리를 ‘웅웅’ 거리며 퍼져나갔다.

그러자 쌍방 군영의 주술 소리가 일순 줄어들었고 심지어 허공에 떠 있던 법사들 중 수행이 낮은 이들은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합환종 노마의 소리를 들은 깡마른 노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흑의인에게 말했다.

“천남 삼대 수사들과의 결전을 피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저는 남아서 전장을 지휘해야 합니다. 괜찮으시다면 방 종주께서 다녀와 주시지요. 방 종주의 천살진마공이 이미 극강의 경지에 이르러 천살진마의 힘까지 빌려 올 수 있으시다 들었습니다.”

“이미 약조한 바가 있으니 본 종주가 나서겠습니다. 저도 천남 제일 마공이 어떤지 궁금했으니까요!”

흑의인 사내가 냉랭히 답하고는 눈에서 녹색 빛을 번뜩이며 날아올랐다. 중 문사와 필 씨 성을 지닌 난쟁이도 즉시 은색 빛줄기와 붉은색 빛으로 변해 그 뒤를 쫓았다.

지양 상인과 다른 두 수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여섯 수도자가 구름 속으로 솟아올라 사라졌는데 곧 인근의 하늘에서 붉은 빛과 검은 빛 그리고 폭발 소리 등이 터져 나오며 요동쳤다.

그들이 솟아올라 겨루는 동안 낮은 허공과 땅에서도 전쟁이 시작됐다. 그러나 각 진영은 거리를 유지하며 세력 싸움에 들어갔다.

그리고 천남 수사들은 진법 법기를 이용해 법사들보다 빠르게 방어막을 형성했다. 전쟁을 지위하던 룡함이 이를 보고 주저하지 않고 선공을 가할 것을 명했다.

제일 먼저 발동한 것은 열댓 개의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이보(異寶)였다.

그 중에는 한립이 보았던 거대한 징도 있었는데 수십 장을 날아가 멈춘 징 곁에 예닐곱 명의 황색 장삼을 입은 거한들이 쇠망치를 들고 좌우로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는 두 명의 수사가 댓 장 길이의 검은색 삼각 깃발을 들고 있었다. 검은 빛이 찬란한 깃발에는 검은 교룡이 그려져 있었는데 마치 살아있는 듯 생동감 넘쳤다.

또 붉은 옷을 입은 9명의 소녀들이 각자 붉은 비단이 덮인 쟁반들을 들고 있었는데 그 안에서 무언가가 울룩불룩 튀어나오려 하는 모습이 보였다. 소녀들은 괴이한 대열로 허공에 떠서 때를 기다렸다.

마지막으로 금의를 입은 노인 3명이 웬만한 장정의 허리까지 올만한 거대한 호리병을 등에 메고 반쯤 감은 눈으로 대열의 가장 앞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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