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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428화 (185/2,000)
  • # 428

    428화. 강령부(降靈符)

    지양 상인은 더 이상 경정이 없는 듯 했다. 어쩔 수 없이 한립이 옥함을 꺼내 선천선등 뿌리 조각을 넣어두었다.

    이후 신비한 병의 녹색 액체로 키워볼 요량이었다. 그 신비한 능력을 익히 보았기에 기적을 일으켜 현천선등을 살려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가능성이 크지 않아도 만일 성공한다면 엄청 남는 거래를 하게 된 셈이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실망스럽던 기분도 차츰 옅어졌다.

    “경정을 얻었으니 7일 후 대결에는 참가 하겠습니다. 시간도 늦었으니 저는 그럼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대결을 앞두고 준비를 해둬야 해서요.”

    “한 수사 생각보다 성격이 급하십니다. 허나 만만치 않은 대결이 될 것이니 충분히 준비를 해두는 것이 좋겠지요. 어서 가보시지요. 붙잡지 않겠습니다.”

    지양 상인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한립이 고개를 끄덕인 후 포권을 하고 대전을 걸어 나갔다. 그런데 대전 입구를 나서려는 찰나 그 자리에서 말없이 서있던 위무애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전음을 보내온 것이다.

    “한 수사. 독교 비늘을 구해준 인연도 있으니 남궁 수사를 데려간 일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겠소. 억지로 될 혼사도 아니었으니 남궁 선자와 내 조카의 일은 없던 것으로 합시다!”

    그 말에 한립이 화들짝 놀라 주춤하다가 끝까지 듣고는 가벼운 마음으로 대전을 걸어 나갔다.

    * * *

    한립이 사라지자 위무애와 지양 상인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잠시 후 지양 상인이 말했다.

    “어찌 보십니까. 한 수사가 놀랍게도 팔급 요수의 재료를 지니고 있다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조사해본 대로 전송진을 통해 사라진 세월 동안 상고시대 수사의 유적이라도 찾아낸 걸까요. 기이하지 않습니까?”

    “아마 그럴 테지요. 허나 어찌 되었든 우리와 무슨 상관입니까?  상고 시대 유적을 찾아 공법이나 보물을 얻은 이가 그 혼자도 아니고. 원래 기연이라는 것은 그렇게 찾아오는 법이지요. 어찌, 상대를 죽여 보물을 취하고자 하는 욕심이라도 드는 것입니까?”

    위무애가 냉소했다.

    “죽여서 보물을 취하다니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당장 전쟁을 앞둔 것은 말 할 것도 없고, 모란 신사의 수중에서 벗어난 실력자를 집어 삼키려다가는 탈이 날 게 분명합니다. 게다가 아무리 귀한 보물이라도 빈도가 갑자기 후기의 경지를 넘어 화신기에 들 수 있는 것도 아닌데 화를 자초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천도맹 룡함 부부도 함부로 건드릴 상대가 아니고요.”

    지양 상인이 허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위무애와 지양 상인이 한립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한립은 벌써 대전 정문에 도착해 있었다.

    뜻밖에도 그는 나오자마자 동훤아를 보게 되었다. 언제 편전에서 나왔는지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것이 마음이 복잡해 보였다.

    한립이 나온 것을 느꼈는지 동훤아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한립을 알아보고는 표정이 묘해졌는데 마치 그를 질투하고 미워하는 듯한 표정이 섞여 있었다.

    한립은 조금 난감했지만 모르는 척하며 그녀를 스쳐 천천히 걸어갔다. 동훤아가 그 자리에 서서 입술를 깨물며 그를 주시했다.

    골목을 돌아 뒤통수에 붙은 시선이 사라지자 한립이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저었다.

    “주인님, 아는 수사인가요?”

    머릿속에서 은월의 목소리가 울렸다.

    “오래 전 알던 사이이나 그다지 좋은 관계는 아니었다.”

    “그런가요?  근데 저 여인의 표정은 보통 관계가 아니었다는 듯 보이는데 설마…….”

    은월이 웃음을 흘리며 고의로 뒷말을 잇지 않았다.

    “헛소리 말거라. 그런 사이는 아니었으니.”

    은월이 한립의 말에 분별 있게 입을 다물었다.

    한립이 그녀를 구해주고 자운두와 바구니 고보를 빼앗긴 일도 추궁하지 않자 그를 대하는 태도가 확실히 친근해졌다.

    한립도 그것을 느끼고 그녀에 대한 신임이 높아졌다.

    * * *

    낙운종 주둔지로 돌아온 한립이 대전에서 협의된 내용을 려락에게 들려주었다.

    “사제 그런 모험을 할 필요가 있겠나?  경정이 아무리 귀해도 목숨이 제일 중한 것이네. 만일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그러는가!”

    려락이 한립이 내기에 참가한다는 사실을 알고 근심을 드러냈다. 한립이 미소 지으며 가볍게 답했다.

    “려 사형, 걱정 마십시오. 어느 정도 확신이 있어 나서는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거절했을 겁니다. 하지만 7일 후 대전 중에 본 문 제자들의 안위를 살필 여력은 없을 듯하니 려 사형이 힘써 주셔야겠습니다.”

    “제자들은 잘 해낼게야. 다만 사제가 대결을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말해보게.”

    려락이 한립이 자신 있다는 말에 그나마 마음을 놓았다.

    “이번 대전을 위해 사실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몇 가지 특수한 재료들인데 몇몇 사질들을 시켜 모아주시지요.”

    한립도 호의를 거절하지 않고 저물대에서 옥간을 꺼내 려락에게 주었다.

    “천일성에서 찾을 수 있는 재료라면 제자들을 시켜 반드시 구해다 줄 테니 걱정 말게!”

    그의 태도에 한립도 마음이 따뜻해져서 한담을 나누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려락에게 넘겨준 옥간에 적힌 재료는 강령부를 제련하기 위한 보조 재료였다.

    지금 실력으로도 대결에 참가하는 것에 문제는 없겠지만 항상 신중했던 그이니 무언가 대비를 해두려는 것이었다.

    강령부는 유일하게 며칠 만에 완성해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경정을 이용해 비검을 제련해 위력을 높이는 일은 단시일 내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걸리는 점은 강령부 제련의 성공률인데 원래는 만족할 만한 붓을 찾아 제부술을 더 수련한 뒤에 시도하려 했지만 당장 대결이 코앞이니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성공률이 낮아도 만약 7일 내로 성공한다면 숨겨진 한 수가 될 것이고 실패한다고 해도 나쁠 것은 없었다.

    어차피 며칠 만에 다른 비술을 익히거나 강력한 고보를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침실로 돌아간 그가 침상 위에서 가부좌를 하고 눈을 감았다.

    * * *

    낙운종 제자들의 신속한 동작에 겨우 이틀 만에 한립은 원하는 모든 재료들을 전달 받았다. 한립이 그것을 보고 기뻐했다.

    ‘낙운종 장로가 되기로 한 선택이 옳았구나.’

    재료를 싸들고 한립은 다시 밀실로 들어가 보조 재료들을 주변에 하나씩 배열했다. 그가 짙은 녹색 병을 꺼내 신중히 마개를 열었다.

    푸쉭.

    그 안에서 핏빛의 빛이 새어나왔다.

    미리 준비를 하고 있던 한립이 다섯 손가락으로 허공을 움켜쥐자 푸른빛이 반짝이는 거대한 손이 핏빛을 감싸 쥐었다.

    핏빛은 푸른빛의 손에 감싸여 원형을 유지했다. 자세히 보니 놀랍게도 수 촌 크기의 핏빛 교룡이 손바닥 안에서 쉼 없이 난동을 부리는 중이었다.

    한립의 눈동자에 남색 빛이 어리며 핏빛 교룡을 자세히 관찰했다.

    겉보기에는 몇 년 전 그에게 잡혀 병에 담겼을 때와 똑같았지만 명청영안으로 보니 차이가 보였다.

    교룡의 혼백이 여전히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지만 눈빛이 달라졌다. 약간 정신을 놓은 듯한 시선이 이미 이성을 상실했음을 알 수 있었다.

    한립이 탄식했다.

    당초 화형기 팔급 요수였던 독교가 얼마나 엄청난 능력을 발휘했는지 똑똑히 보았건만 혼백으로 전락하고 몇 년 만에 이지를 상실하고 야수로 돌아간 것이다.

    이 극명한 차이가 그로 하여금 수도의 길을 걷는 자의 파란만장한 운명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만일 그도 어느 날 육체가 멸해지고 원신이 적의 손에 넘어 간다면 독교와 다름없는 처지가 될 것이다.

    잠시 침묵하던 한립이 한 손을 털어내자 푸른빛에 싸여있던 작은 교룡이 손에서 벗어나 허공을 부유했다.

    그것을 놔두고 눈앞의 재료를 살피던 한립이 돌연 그 중에 섞여 있던 영수의 가죽을 가리켰다. 동시에 청록색의 기이한 영수 가죽이 천천히 날아들어 그 앞에 떠올랐다.

    그가 입에서 영화(嬰火)를 뿜어냈는지 영수 가죽을 둘러싼 불길이 신기하게도 가죽을 태우지 않았다.

    열손가락이 춤을 추더니 한립이 법결을 쏘아 보냈다.

    불길이 깜빡 거리자 법결을 멈추고 다시 하얀 옥갑을 향해 손짓했다.

    슉!

    옥갑이 스스로 날아올라 뚜껑이 열리더니 안에서 은빛이 흩날렸다. 한립의 손짓을 따라 은색 가루가 포물선을 그리며 푸른 영화(嬰火) 속으로 들어가 화염 속에서 영수 가죽과 어우러졌다.

    한립은 신중해진 얼굴로 다른 재료들도 차례로 푸른 화염 속으로 집어넣었다.

    영수 가죽이 진한 녹색에서 검은색 그리고 다시 핏빛의 붉은색으로 변할 때가 되어서야 그가 숨을 내쉬며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그러자 푸른 불이 붙은 영수 가죽 표면에 검은 기운이 스며들었다.

    한립이 장장 한 시진 넘게 가죽의 검은 기운을 연소하더니 다시 다른 재료들을 화염 속에 집어넣고 제련을 했다.

    한참 만에 그가 눈을 빛내며 가죽에 붙은 불길을 불어냈다.

    훅!

    화염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핏빛의 가죽만 남았는데 겨우 손바닥만 해진 뒤였다. 한립이 가죽의 상태를 확인하고 만족해했다.

    그는 더는 주저하지 않고 머리 위의 교룡의 혼백을 가리켰다.

    그러자 교룡의 혼백이 푸른빛에 휩싸여 빛으로 변하더니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핏빛 가죽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제 가죽의 표면에는 어떤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교룡의 혼백이 가죽 안으로 들어가고 한립은 바로 손을 뒤집어 남색 부적 붓과 금색 액체를 꺼냈다.

    한립은 붓을 금색 액체에 적셔 신중하게 가죽에 익숙한 그림을 그려나갔다. 곧 복잡한 문양이 금빛으로 반짝이며 나타났다.

    그런데 막 문양을 완성하려는 순간 영수 가죽이 진동을 하며 울룩불룩 요동을 쳤다. 마치 안에서 무언가가 뛰쳐나오려는 모습 같았다.

    그러나 부적 위의 문양에서 퍼져 나온 금빛이 살아 있는 사슬처럼 교룡의 혼백을 붙잡아 단단히 끌어당겼다.

    비록 이성을 잃었지만 교룡의 혼백은 고계 영수의 혼백이었기에 위기를 감지하고 벗어나려 안간힘 썼다.

    한립은 문양을 그리는 속도를 더욱 높였다. 잠시 가죽이 안정을 찾자 그가 수중의 액체를 바꾸었다. 붓에 보라색 액체를 적신 그가 문양 위로 기괴한 문자를 적어 나갔다.

    한립은 몇 번이나 액체를 바꾸며 각종 문양과 문자를 완성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손바닥만 한 가죽 부적이 빼곡하게 차올랐다. 그럴수록 그의 얼굴이 신중해지며 적어나가는 속도도 느려졌고 눈동자에는 남색 빛이 어른 거렸다.

    이제 마무리를 하려는데 갑자기 이상한 영기의 파동이 느껴지며 절반의 과정이 끝난 부적에 문제가 생겼다.

    한립이 미간을 좁히며 바로 소매를 털어 꺼내 놓은 재료를 모두 회수하고는 다른 손으로는 작은 방패를 꺼내 던졌다.

    크와앙!

    방패가 몸집을 키우고 그의 앞을 막자마자 영수 가죽 안에서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용울음 소리가 울리더니 가죽이 터져나갔다.

    오색찬란한 빛이 밀실을 메우며 거대한 파동이 남색 방패로 닥쳐왔다. 방패가 소리 없이 파동을 막아내자 한립의 표정이 달라졌다.

    강령부의 위력이면 부적을 제련하다 폭발했으면 파괴력이 이보다는 커야 했다. 한립이 의심스러워하고 있을 때 피처럼 붉은 빛줄기가 쏘아져나가 밀실 위쪽으로 탈출하려했다.

    거의 밀실 천장에 닿으려는 찰나 하얀 빛이 퍼지며 그것을 튕겨냈다. 정체를 드러낸 핏빛 빛줄기는 작은 교룡이었다.

    방패를 거둔 그가 명청영안을 이용해 교룡의 혼백의 상태를 살폈다.

    ‘흠…….’

    비록 아직 혼백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힘이 고갈되어 활기가 없어보였다.

    강령부가 실패했는데도 혼백이 붕괴하지 않고 약간의 힘을 잃은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강령부 제련을 반복해서 시도를 해 볼만 했다. 물론 너무 여러 번 시도하면 혼백의 힘이 다해 강령부의 위력이 절감되겠지만 말이다.

    한립이 다시 보조 재료들을 순서대로 늘어놓고 새로운 영수 가죽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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