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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423화 (180/2,000)

# 423

423화. 결정

“추마골은 창곤 상인만 무사히 빠져 나온 것으로 아는데 어찌 귀령문에서 그곳의 정보를 알 수 있지. 나를 속이는 것이더냐.”

한립이 보물이라는 소리에 관심은 갔지만 곧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아마 거짓 정보는 아닐 것입니다. 저희가 호기심에 힘을 합쳐 환술을 걸어 보았지만 보물의 이름과 위치만 아는 듯 했습니다. 귀령문이 어찌 정보를 얻었는가는 그자도 몰랐습니다.”

자령이 대답했다.

“이렇게 간절히 원할 정도면 평범한 보물은 아니겠소.”

“한 사숙님께서는 ‘영촉과(靈燭果)’란 보물을 들어 보셨습니까.”

한립의 물음에 송 여인이 입을 열었다.

“뭐라, 영촉과?  이미 세상에서 사라진 것 아니오. 허나 추마골은 만황시대에 봉인되어 지금까지 풀리지 않았으니 완전히 가능성 없는 이야기는 아니겠군.”

시종일관 느긋하던 한립도 이번에는 조금 놀라고 말았다.

“한 형이 아신다니 영촉과로 제련하는 조화단(造化丹)도 들어보셨겠지요. 전설 속에서는 비록 일생에 한번 뿐이고 화신기 이하의 수사만 복용할 수 있지만 수행의 고비를 넘기게 해주는 특효가 있다고 합니다.

약효가 의식에 미쳐 다음 경지를 경험하게 해준다고도 하고요. 비록 각기 경험하는 바가 다르나 대부분이 실효를 보았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주재료인 영촉과가 만황시기에나 볼 수 있는 영약이라 상고 시대 이후에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지만 말입니다.”

자령이 차분하게 설명했다.

송 여인과 매응도 벌써부터 알고 있는 이야기였지만 조화단 이야기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특히 매응은 조화단 한 알이면 결단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잠시 생각을 하던 한립이 평정을 되찾고 물었다.

“추마골에 정말 그런 보물이 있다면, 귀령문이 모란초원에서 막대한 대가를 들여 다른 수사들을 포섭한 것과 남롱후를 죽이면서까지 창곤 상인의 유물을 얻으려던 일이 말이 되는군. 그러나 몇 가지 의문이 있소.”

“어떤 의문인지 말씀해 주세요. 아마 저희가 생각지 못하고 놓친 부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영촉과와 조화단에 대해 듣고도 태연하기만 한 한립의 얼굴에 자령은 내심 감탄했다.

“내가 모란 초원에 다녀온 것은 맞으나 어째서 나를 찾아왔소. 추마골에 들어갈 방법을 아는 자는 남롱후일 가능성이 더 클 텐데. 아니면 추마골에 들어갈 다른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이오?”

한립이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남롱후가 추마골에 대해 잘 안다는 것은 압니다. 그러나 어찌 감히 모르는 수사에게 이런 비밀을 털어 놓겠습니까. 한 형에 대해서는 저나 매응 모두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수사께서 어떤 분인지 아니까요. 그리고 귀령문 제자에게 들었는데 귀령문에서 추마골에 들어갈 방법을 연구 중이라고 합니다. 구체적인 정보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지만 추마골 공간 균열이 안정기에 이르면 귀령문은 반드시 움직일 겁니다.

그때 저희도 방법을 알아내 들어가면 되겠지요. 그러나 영촉과가 있는 곳은 극도로 위험해서 강한 실력자가 아니고서는 가까이 갈 수가 없습니다. 만일 한 형께서 스스로의 수행이 부족하다 여기신다면 없던 일로 해야겠지요. 추마골에 들어가는 것은 위험 부담이 너무 큰일이니까요.”

자령이 이야기를 하며 안색이 어두워졌다.

“귀령문도 추마골에 들어갈 방법을 알고 있다는 건 처음 듣는 소리요. 그러나 어쨌든 애매모호한 정보일 뿐 구체적인 사항은 모른다는 거군. 이렇게 합시다. 추마골 공간균열이 안정기에 이르려면 아직 몇 년이 남았으니 그때 모든 것을 확실히 하기로. 정말 그 안에 영촉과가 있고 조화단을 얻을 수 있다면 나도 위험을 감수해 볼만 하겠소. 그리고 내가 안 된다면 원영 중기 수사가 들어간다 해도 희망이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심사숙고 끝에 한립이 내린 결론이었다.

한립은 남롱후에 관한 사항은 언급하지 않았다. 추마골은 천남 대륙 제일의 흉지로 이름 높으니 아무리 영촉과가 끌려도 고민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귀령문에서 연구한 방법이 더욱 안전하다면 남롱후의 일을 굳이 세 여인들에게 알릴 필요는 없었다.

한립의 말에 자령은 실망하기 보다는 기뻐했다.

그의 신중한 성격을 고려해 보면 거의 승낙과 다름없는 언사였다. 게다가 스스로 수행이 높음을 밝혔으니 소문도 사실이었다.

“사실 충분한 실력을 지닌 조력자를 찾지 못하면 모두 허사가 될 일이라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 형의 약조를 받으니 마음이 한결 편합니다. 저희도 목숨을 건 일이니 꼭 구체적인 정보를 알아내겠어요.”

“세 수사도 같이 추마골에 들어가겠다는 소리요?”

그 말에 한립이 화들짝 놀라 물었다.

“저희가 밖에서 기다리고만 있을 줄 아셨습니까?  그러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대부분 고서에는 영촉과의 기묘한 효능만 적혀있지 일단 과실을 채취하면 보존이 불가능 하다는 이야기는 누락되어 있지요. 반나절 내에 제련에 들어가야 하고 반나절을 넘기면 효과가 격감합니다.

게다가 3일이 지나면 효과가 없어지기도 하고요. 더욱 낭패는 영촉과로 제련한 조화단 역시 복용 기한에 제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추마골이 저희에게는 사지나 다름없지만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조화단이 없으면 수백 년 내로는 수행에 진전이 없을 테니까요.”

자령이 쓴웃음을 지었다.

“영촉과에 그런 제한이 있다는 이야기는 어떤 경전에서도 읽은 기억이 없소.”

한립이 미간을 좁히자 예상 밖으로 송 여인이 나섰다.

“한 사숙님, 저희 가문에서 은밀히 전해 내려오는 서책이온데 복제를 해왔습니다. 보시면 이해하실 것입니다.”

송 여인이 저물대에서 옥간을 하나 꺼내 공손히 건네주었다.

한립이 의아한 얼굴로 그것을 받아 내용을 살폈다.

상고 시대의 영단과 영약에 관한 고서였는데 놀랍게도 그도 들어보지도 못한 진귀한 정보가 가득했다. 심지어는 구곡영삼과 현골 노마에게 얻은 단약방에 기재된 단약들까지 언급되어 있어 그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그가 강한 의식으로 수많은 정보 속에서 영촉과에 대한 부분을 찾아냈다. 그곳에 분명 자령 선자가 말한 제한 사항에 대해 기재되어 있었다.

의식을 거둬들인 그가 바로 입을 열지 않고 옥간을 매만졌다.

“자령 수사에게 들어 한 사숙님께서 단약 제련에 고명하시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 서적은 송 가에서 귀하지만 계륵과 다름없었습니다.

상고 시대 단약에 대해 기술되어 있지만 그 재료를 찾을 길이 없었으니까요. 괜찮으시다면 사숙님께서 요긴하게 써 주십시오. 제 부탁을 들어주셔서 여기까지 걸음 해주신 보상이라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송 여인이 몹시 공손히 말했다. 한립이 의미심장하게 그녀를 보고는 입 꼬리를 올렸다.

“내 평생 대가를 치르지 않고 이런 선물을 받은 일은 없다. 추마골에 영촉과가 있다면 내게도 득이 되는 일인데 보상이라니. 그러나 이 서책은 내게 도움이 될 만하니 네게 도움이 될 만한 단약 한 병과 교환하는 것으로 하지.”

말을 마치고 그가 저물대를 스쳐 초록색 작은 병을 송 여인에게 던져 주었다. 여인이 무의식중에 받아 들고 얼떨떨해 하는데 자령이 옆에서 미소 지었다.

“주신 것이니 받으세요. 한 형의 제련술이 대단해서 아마 고계 요단으로 제련한 귀한 영단일 겁니다. 분명 언니의 수련에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자령이 영리하게 약병의 정체를 간파했다. 그녀의 말에 송 여인이 놀라 한립에게 감사를 표하고는 조심스럽게 약병을 집어넣었다.

“일단 조화단 제련에 필요한 보조 원료들을 구해놓고 나머지는 나중에 결정하지. 아직 먼 일인데다 만일 모란인들에게 천남이 대패하면 불가능한 일이 될 테니까.”

“어찌, 한 선배님께서는 이번 대전의 상황을 안 좋게 보십니까?”

다들 그의 말을 듣고 놀랐는데 매응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겉으로는 우리 천남 세력들이 연합을 한데다 자신들의 영역에서 전투를 하니 우세해 보이지만 정체 모를 외부세력이 모란인들과의 전쟁에 개입해 있소. 변고라도 일어난다면 문제가 되겠지.”

“그렇다면 이번 대전에서 승패는 반반이겠습니다.”

자령의 얼굴도 어두워졌다.

“그렇게도 볼 수 있겠지만. 그 보다는…….”

한립이 중얼거리는 소리에 세 여인의 안색이 달라졌다.

“이 이야기는 됐소. 아직 대전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미리 고민한다 한들 명확한 것은 없겠지. 일단 추마골 일을 차질 없이 준비해 놓고 있으면 될 겁니다. 모든 것은 인연이 따라야 하니.”

한립은 추마골에 대한 이야기를 대충 마무리 짓고 두 여인들이 그간 어찌 지냈는지 물었다. 아름다운 여인들에 둘러싸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쏜 살같이 흘러갔다.

하늘이 어둑해지자 한립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송 여인도 따라 나섰다. 이에 자령과 매응도 골짜기 입구까지 나와 배웅했는데 매응이 무언가 말하려다 망설이며 말하지 못했다.

그러나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하는 자령을 보고는 오래 머물지 않고 빛줄기로 변해 날아올랐다.

한립과 송 여인은 가는 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나 멀리 천일성이 보이기 시작하자 여인이 불쑥 입을 열었다.

“한 사숙님, 추마골은 지금껏 원영기 수사들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는데 저희 들이 들어가서 살아나올 수 있을까요?”

한립이 의외의 질문에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가 잠시 말이 없다가 차분히 이야기했다.

“수행으로만 보면 당연히 너희가 다른 수사들에 비해 크게 부족하다. 위험에 처하면 생존할 가능성도 적겠지. 그러나 수사들이 추마골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한 이유는 십중팔구 탐욕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많은 원영기 수사들 중 단 한명도 살아나오지 못할 리 없겠지. 대부분 보물에 마음이 흔들려 하나만 더, 또 하나만 더 얻으려다 결국 나오지 못했겠지. 수명을 늘려주고 수행을 높여주는 영약과 영초에 흔들리지 않을 수 없을 테니.”

“그럼 저희는 죽은 목숨이란 말씀이십니까?”

송 여인의 얼굴에 먹구름이 가득했다.

“나도 추마골에 들어가는 비교적 안전한 길이 있고, 창곤 상인이 그곳에서 무사히 빠져 나왔다는 것을 몰랐다면 추마골 원정은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보물을 찾으러 가는 게 아니라 죽으러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러니 너희도 탐욕을 부리지 않고 영촉과의 구체적인 위치를 알아내 그것에만 집중한다면 기회가 있을 것이야.

물론 추마골에 들어가기 전에 충분한 준비는 필수겠지. 만일 영촉과가 쉽게 가져나올 수 있는 곳에 있었다면 귀령문에서 지금까지 움직이지 않았을 리 없다. 아마 남롱후가 추마골에 들어갈 방법을 알아내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먼저 보물을 가져갈까 위험을 감수한 것이겠지. 그러니 그들이 알고 있는 방법은 생각보다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한립이 주저하다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었다.

“귀령문이 알고 있는 방법이 안전하지 않다면. 그럼 어째서…….”

“어째서 자령과 매응의 앞에서 이야기 하지 않았느냐 묻는 것이냐?  내가 다른 생각이라도 하고 있다 여기더냐.”

“아닙니다. 사질이 어찌 사숙님을 의심하겠습니까.”

한립이 입 꼬리를 올리며 묻자 송 여인이 서둘러 변명했다.

“걱정 말거라. 네가 의심스러워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니. 내 이런 이야기를 미리 하지 않은 것은 악의가 있어 그런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는 말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조화단이 진귀한 보물이라지만 이미 결단을 이룬 이에게는 낭비일 수도 있지. 매응은 단약을 복용하면 결단기에 들 확률이 높을 것이니 목숨을 걸만도 해.

일단 결단기에 들면 수명이 수백 년은 늘 테니 말이야. 그러나 너와 자령은 결단 초기에 자질도 워낙 뛰어나니 기껏 해봐야 백여 년의 수련 시간을 단축해 결단 중기에 이를 뿐이다. 어차피 결단 중기에 이를 수 있는데 백여 년 수련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목숨을 걸 것인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그러나 자령은 어찌 되었든 목숨을 거는 쪽을 선택할 확률이 높겠지. 그녀는 평생 결단기 수사로 머물 생각이 없으니까.”

한립이 말을 마치며 의미심장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위험하더라도 자령 수사는 반드시 추마골에 들어갈 것이란 뜻입니까?”

“그래. 자령이 겪어온 삶은 너희와는 다르다. 몇 번이나 강적들에게 핍박을 받아야 했으며 심지어 어미가 남긴 문파까지 다른 세력에게 빼앗겼지. 비록 이런 이야기를 꺼낸 적은 없으나 마음속에 강해지고자 하는 열망이 얼마나 강할지는 불 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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