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0
420화. 복귀
모란족은 전천성을 차지하곤 바로 법사들의 천남 지역을 제1거점으로 삼아 모란 초원에서 대량의 법사 연합군을 불러들였다.
돌올인의 돌발 행동을 경계하기 위해 모란족에서 가장 큰 부락인 금양부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부락들이 정예를 차출해 몰려들었다.
모란인들은 연합군이 모두 결집하면 운명을 건 일전을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리적인 우위를 점한 천남 세력도 만만치 않았다.
사대 세력에서 지원군을 동원한 것 외에도 세력에 속하지 않은 작은 중소 문파에서도 인원을 참전시켰다.
심지어 산수들도 이번 전쟁이 이전과는 다름을 깨닫고 스스로 나섰다. 연족이 천남 지역에서 거주하는 근본적인 역사마저 바뀔 수 있는 이변이라 여긴 것이다.
이렇게 수도계가 합심하자 사대 세력은 북량국과 우국 변경에서 어마어마한 실력을 발휘하며 하룻밤 사이에 대규모 석성을 쌓아 올렸다. 법사 대군과 교전할 당시 거점으로 삼기 위해서였다.
수도계 쪽도 수많은 종문에서 모인 수사들을 배치하고 전열을 정비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다.
서로 상대를 한 번에 물리치기 위한 잠정적 휴전에 들어간 것이다. 폭풍 전야처럼 쌍방은 아무런 행동 없이 평온한 상태를 유지했다.
바로 이때 한립에 대한 소문이 돌며 명성이 높아진 것이다.
그는 몰랐지만 황룡산 결계 속의 대전에서 살아 돌아온 원영기 수사가 한 명 더 있었다. 바로 마 노인이었다.
물론 호연종 장로인 노인은 악 여인의 풍둔술에 쫓기다 몸을 버리고 원영의 상태로 겨우 구국맹에 도착했지만 말이다.
또한 결단기 수사인 이영아와 모용 형제도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눈치 채고 재빨리 달아나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이렇게 한립이 순식간에 원영기 법사인 흑의인을 죽인 일이 모두에게 알려졌다.
다만 그와 륙 수사 등이 어령종 장로였던 첩자를 색출해 제거한 일은 몇몇 세력의 고위급 인사만이 알고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진정으로 한립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다른 일이었다.
바로 모란족 신사의 수중에서 달아났다는 정보였다.
그를 뒤쫓던 중년 문사가 법사 대군에 합류하고 한립을 죽이지 못한 것을 알렸기 때문이다.
중년 문사는 자신의 체면을 위해 한립의 실력을 일부러 높이 평가하며 일반적인 원영 중기 수사를 압도한다고 말했다.
거기다 악 여인과의 교전 속에 보여준 신묘한 능력과 모란초원에서 천풍부 목 상사의 육신을 멸한 일 등이 알려지며 한립의 명성은 오히려 모란 법사들 사이에서 더욱 드높아졌다.
물론 한립 외에도 평소 눈에 띄지 않던 다른 원영기 수사들도 법사들과의 대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런 상황을 모르는 한립은 거의 반년 만에 원기를 회복하고 우국 모처의 산골짜기에서 빠져나오는 중이었다.
* * *
‘봉탁’은 모란족 어느 작은 부락의 축기기 법사로 자신의 부락에서는 모두가 존경해 마지않는 선사(仙史)였으나 전천성에 오고 나서는 보잘 것 없는 군대의 일원으로 취급되고 있었다.
그는 북량국 국경 근처의 어떤 거점에서 몇몇 연기기 법사들을 데리고 수 백 리를 순찰하고 있었다. 천남 수사들의 습격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거의 반나절을 순찰했고 시간을 계산해 보니 곧 다음 순번의 법사가 교대를 해줄 때였다. 앞으로 수 십 리 정도만 더 가면 이제 돌아가도 되었다.
봉탁은 곰곰이 생각했다.
이틀 전 지급 받은 수십 개의 영석이면 고비에 빠진 자신의 축기 초기의 수행을 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한시라도 빨리 가부좌를 하고 앉아 좌선을 하며 수련을 쌓고 싶었다.
대전이 시작되기 전 조금이라도 수행을 높일 수 있다면 전공을 쌓아 보상으로 더 많은 영석을 받게 되기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으로 모란족 중계 법사는 어검비행을 하며 날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푸른빛이 반짝이며 푸른 장포를 입은 청년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
젊어 보이는 사내는 법사 무리를 보면서도 표정이 달라지지 않았다.
“천남 수사! 결단기 이상이야. 수행의 고하를 판단할 수가 없다.”
봉탁이 청년을 의식으로 훑고는 식겁해 소리쳤다.
“퇴각!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적이 아니다!”
봉탁이 기민하게 뒤따르면 대여섯 명의 저계 법사들에게 명하고는 차고 있던 작은 영수대를 공중에 던졌다.
그러자 붉은 빛이 튀어나와 선회한 후 순찰을 시작한 거점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때 허공에서 하얀 빛이 반짝이더니 하얀 치마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붉은 빛을 향해 분홍 입김을 불어넣었다.
끼익.
붉은 빛은 곧바로 흩어졌고 불타오르는 듯한 작은 새는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여인이 손을 저어 작은 새를 불러들였다.
그 모습에 봉탁은 마음에 다급해져 황급히 두 손으로 수결을 맺어 노란 빛을 크게 방출해 순식간에 수 리 밖으로 달아났다.
아래서 그를 지켜보던 청년의 눈이 가늘어지며 가볍게 냉소했다. 그러자 봉탁의 두 귓가가 ‘쿠콰쾅’ 하고 울려 머리가 혼탁해지며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다른 연기기 수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백의 여인은 봉탁만을 잡아 끌어 올렸다.
“주인님, 이 자가 무리를 이끄는 것 같습니다. 알고 있는 정보도 더욱 많겠지요.”
여인이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청년을 향해 말했다. 둘은 석실 속에서 출관을 한 한립과 은월이었다.
이미 저계 법사를 하나 잡아 우국이 이미 넘어간 사실과 대강의 정황을 들었지만 법사 하나를 생포해 구체적인 정보를 더 알아보기로 결정했다.
괜히 신사가 지키고 있는 곳을 뚫으려다 낭패를 겪는 것 보다는 낫지 않은가.
은월의 미혼 환술과 그의 몽인술로 손쉽게 원하는 정보를 빼냈다. 한립이 조금 마음을 놓을 만한 정보였다.
경계 부근은 확실히 3대 신사가 돌아가며 지키고 있지만 그 앞의 거점은 모란족 대상사가 관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수행이라면 들키지 않고 지나가는 것도 문제없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잠에 빠져 있는 포로를 보며 한립이 미간을 좁혔다.
빨리 정보를 얻기 위해 비교적 난폭한 수단을 써서 깨어나도 정신이 온전치 못한 폐인이 될 것이다.
가볍게 탄식한 한립은 손을 튕겨 불꽃을 이용해 그를 재로 만들었다.
그 후 바로 푸른 빛줄기로 변해 은월을 휘감아 하늘을 갈랐다.
* * *
북량국 변경 중 한 곳 천남 수사들이 건립한 천일 석성 안.
천일성 모 처의 건물 안에서 려 사형이 몇몇 천도맹 고계 수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들 걱정이 가득한 낯빛에 얼굴이 좋지 못했다.
원래 법사들의 진군을 막는 선봉에 서서 대전에 참여한 려락은 낙운종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낙운종에는 지금 원영기 수사가 은발 노인과 그뿐이었다.
원기가 크게 상해 아직 회복조차 하지 못한 은발 노인이 낙운종 제자들을 이끌고 대전에 참여하게 둘 수는 없었다. 결국 려락이 주동적으로 자신이 나가겠다 자처해서 본 종 제자들을 이끌고 다시 전선에 나선 것이다.
또 이곳을 떠날 수 없는 이유는 명성은 자자하지만 현재 생사불명인 낙운종 한 장로 때문이었다. 한립이 정말 큰일이라도 당한 것인지 염려가 되어 홀로 빠져나갈 수 없었다.
솔직히 한립이 다른 원영기 수사들을 격살하고 모란족 신사의 추격에서 달아났다는 소문을 완전히 믿을 수 없었다.
려락은 한립이 원영을 맺은 지 몇 년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짧은 시간에 원영 중기 수사를 압도하는 실력자가 될 수 있었을까.
설마 낙운종이 정말 만년에 한번 나타날까 말까한 기재를 영입한 것일까?
려락은 대청에 앉아 논의를 하면서도 속으로는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려 형, 귀 종도 아직 한 장로의 소식을 모르십니까?”
려락과 마주 앉은 머리가 새하얗게 샌 노인이 조심스레 물어왔다.
원영 초기의 서장경 수사는 천도맹 수영종(水影宗) 장로로 어제서야 천일성에 도착했다. 이전에도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는 사이였다.
“아직은 소식이 없습니다. 서 형도 한 사제에게 관심이 많으십니까?”
려락이 멈칫하다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허허! 당연하지요. 저 말고도 다들 궁금해 하나 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천일성에 당도하자마자 한 수사에 관한 소문을 엄청 들었지 뭡니까.
원영 초기의 경지에 놀랍게도 모란 신사의 수중에서 벗어나다니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아닙니까. 게다가 원영을 응결한지도 얼마 안 되었다니.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백발노인의 말에 다른 수사들도 시선을 마주치며 궁금하다는 듯 려락을 바라보았다. 한립에 관한 소식은 많이 들었지만 한립이 막 원영기에 들었다는 것은 또 금시초문이었다.
“그거 말입니까? 한 사제는 원영기에 이른지 얼마 되지 않은 게 맞습니다.”
려락이 머뭇거렸지만 어차피 숨길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사실대로 말했다.
“허!”
대청 안의 많은 이들이 놀라 숨을 들이켰다.
“한 장로는 젊고 능력도 뛰어나니 이후 더 높은 경지로 가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미리 려 형에게 축하인사라도 드려야겠어요. 앞으로 낙운종의 성세는 보장된 일인데다 천도맹에도 걸출한 인물이 더해지는 것 아닙니까.”
서장경이 부러워하는 말투로 말하자 다른 이들도 축하의 말을 건넸다. 려락은 뿌듯했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다.
“그런데 려 형. 한 장로가 신사의 손에서 달아났더라도 부상이 심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보면 수사들을 더 풀어 수색하는 게 어떨지요. 인원이 부족하면 본 문에서 제자들을 파견해 줄 수도 있습니다. 서로 도와야지요.”
대청 안에 있던 짙은 눈썹의 중년인이 쌀쌀맞은 말투로 말했다.
“저도 상황은 모르지만 분명 원기가 상했을 테지요. 아마 어딘가에서 몸을 추스르고 있을 것입니다.”
려락도 마음에 걸리는 일이었지만 차분히 답했다. 수백 년을 산 려락이 어찌 상대의 말에 숨겨진 시기와 질투를 느끼지 못하겠는가.
짙은 눈썹 중년인은 천도맹에서 가장 큰 종문인 란명종(鸞鳴宗) 장로였다. 천도맹에서 원영 후기와 맞먹는 합격술에 능한 부부가 장로로 있는 종문이었기에 줄곧 다른 종문들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낙운종의 한 장로가 원영 후기에 이를지 모른다는 소리에 마음이 상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분위기가 조금 어색해진 가운데 갑자기 문밖에서 붉은 빛줄기가 날아들어 려락의 수중에 떨어졌다. 려락이 의식을 불어넣어 내용을 확인하고 좋은 소식인지 얼굴이 확 폈다.
“본 종의 한 사제가 이미 성에 들었다는군요. 지금 본 종의 주둔지에 있다니 전 먼저 가보겠습니다.”
려락이 흥분을 억누르며 다급히 걸음을 옮겼다. 려락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있던 다른 수사들도 들뜬 기색을 보였다.
드디어 소문이 자자한 한 장로가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서장경은 하얀 수염을 쓸어내리며 생각에 빠져들었고 짙은 눈썹 중년인은 무표정했지만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 * *
천일성이 비록 신축된 석성이긴 하지만 사대 세력이라면 어떤 종문이든 간에 모두 이곳에 주둔하고 있었다.
세력 범위에 따라 네 구획으로 성을 나누었고, 성의 중간은 공동구역으로 산수들도 들어와 살 수 있었다.
천도맹은 서쪽 구역에 위치했고 낙운종은 그 중에서도 가장 남쪽에 위치해 수십 묘의 거대한 지역을 할당 받았다.
이번에 지원을 나온 낙운종 제자들은 거의 200여 명 정도로 전부 축기기 이상의 제자였고 결단기 수사들도 예닐곱 명 정도 되었다.
한립은 현재 낙운종 주둔지의 대청 안에서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그밖에도 대청 안에는 화운봉 봉주인 홍의 노인과 백봉봉 봉주인 송 가 여인이 함께 있었는데 두 사람은 모두 희미하게 복잡한 표정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