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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417화 (174/2,000)

# 417

417화. 결계 대전 (4)

한립이 노란 보호막을 깨트린 순간 하얀 꽃잎 중 하나가 손바닥으로 다가왔다.

분명 아주 서서히 피어나고 있는데 도저히 하얀 빛무리를 피할 길이 없어 눈을 뜨고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얀 빛과 남색 화염이 닿은 순간 한립은 그저 팔뚝에 전율을 느끼며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마치 꽃이 스치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 가슴에 극심한 통증이 느껴지며 튕겨 날아갔다.

장장 이삼십 장을 물러나서야 겨우 몸을 가눈 한립은 경황없는 와중에도 가슴을 부여잡고 여인을 쳐다보았다.

녹의 여인은 무수히 많은 거대한 연잎을 피워 내더니 그 중간에 서서 무표정하게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공격을 하던 청죽봉운검과 다른 보물들도 꽃잎에 가볍게 튕겨나간 후였다. 이전의 연꽃 환영과는 위력이 완전히 달랐다.

울컥.

한립의 입에서 선혈이 새어나왔다.

그가 일단 혼탁한 기운을 내뱉고는 가슴을 쥔 채 천천히 이동했다. 의복은 이미 너덜너덜해졌지만 그 안에 삼색으로 빛나는 갑옷이 숨겨져 있었다.

그러나 갑옷은 크게 움푹 파였고 손가락 굵기의 균열까지 생겼다.

한립은 가슴의 통증이 더욱 심해지는 듯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고개를 들어 여인을 확인했다.

그녀는 한립의 몸에 숨겨져 있던 충갑을 확인하고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한립이 너덜너덜해진 푸른 의복을 뜯어내자 전신을 뒤덮은 충갑이 위풍당당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푸른빛을 반짝이며 한 속으로 손상된 부위를 문지르자 불가사의한 현상이 일어났다. 크게 파인데다 균열까지 있던 갑옷이 급속도로 솟아오르며 순식간에 새것처럼 회복된 것이다.

여인이 놀라워 하다가 바로 평정을 회복하고 더욱 살의를 불태웠다. 그녀가 한 손을 가슴 앞으로 내밀며 주술을 외자 푸른빛이 소매에서 빠져나와 수중에 들어왔다.

그것은 청동으로 만든 호롱불이었는데 낡고 오래 되어 보이는데다 군데군데 녹까지 슬어 있었다.

호롱불을 내려다보는 여인의 얼굴에 아깝다는 기색이 스쳤지만 그래도 한립을 보며 마음을 다잡는 눈치였다.

그것을 눈치 챈 한립도 썩 예감이 좋지 않았다. 그게 어떤 고보인 줄은 모르나 호롱불 모양의 보물은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재빨리 머리를 굴린 한립이 푸른빛 줄기로 변해 허공을 휩쓸었다. 꺼내 놓은 보물들을 전부 회수해서 은빛 날개를 털더니 천둥소리와 함께 사라진 것이다.

꽈광!

다음 순간 얼음덩이로 변한 독수리가 앞에 나타났다. 한립이 과감히 한 손을 뻗었다가 천둥소리와 함께 다시 사라졌다. 그 후에는 고개 한번 돌리지 않고 그대로 달아나 버렸다.

“…….”

녹의 여인이 어안이 벙벙해서 그것을 지켜보았다.

지금까지 상당수의 동급 수도자와 전투를 해보았지만 아직 패하지도 않았는데 그저 예감에 따라 내빼는 수도자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한립이 놀랍게도 그 틈에 독수리까지 가지고 달아났다는 것을 깨닫고는 성내어 소리를 질렀다.

“네 이놈!”

그녀는 밟고선 하얀 연꽃과 손에 든 호롱불을 가지고 바람처럼 그의 뒤를 쫓았다.

순식간에 농무 속으로 사라진 두 수사는 은빛 뇌전과 푸른빛이 번갈아 번뜩이며 어딘가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한립은 미리 준비해 놓은 장소로 여인을 불러내고는 신형을 멈추었다. 그가 고개를 숙여 남색 얼음 조각을 보며 피식 웃더니 손바닥에 힘을 주었다.

파칙!

그러자 금빛 뇌전이 튀며 독수리가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뒤쫓아 오던 녹의 여인이 그것을 보고 흠칫하다가 바로 냉소하고는 하얀 연꽃을 발끝으로 두드려 광풍을 불러일으켰다.

광풍에 주위의 농무가 완전히 걷히자 한립이 상대를 보며 차분히 물었다.

“아끼던 보물이 없어졌는데 마음이 상하지도 않으십니까?  아니면 이 정도로는 보물을 없앨 수 없다고 믿는 것입니까?”

그의 시선이 떨어져 내리는 남색 얼음 파편에 닿았다.

“글쎄요.”

녹의 여인이 냉랭히 답하고는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동시에 한립 곁에서 떨어져 내리던 얼음 파편이 빛나며 무수히 많은 하얀 빛이 빠져나왔다.

한립이 손을 뻗어 푸른 기운을 내뿜었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 하얀 빛들이 여인을 향해 날아가 버린 것이다.

한립의 얼굴이 조금 굳기는 했으나 손을 거두고 상대의 거동을 지켜보았다.

영기의 빛들이 여인 앞에 도착해 하나로 뭉치더니 머리통만 한 우윳빛 빛덩이로 변했다.

녹의 여인이 차분히 법결을 날리니 빛덩이에서 독수리 울음소리가 들리고 다시 새하얀 독수리가 나타났다.

한립이 미간을 좁혔지만 곧 이전의 혈기왕성하던 독수리와 달리 눈앞에 나타난 것은 거의 기력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번에는 한립도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보아하니 독수리 형태를 한 기령은 불사의 몸은 아니었다. 이렇게 몇 번만 더하면 충분히 없앨 수 있을 것이다.

여인도 독수리의 허약해진 모습을 확인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새하얀 독수리가 두 날개를 펼쳐 허공을 선회하더니 그녀의 몸속으로 스며들어갔다.

“갑자기 달아나던 것도 멈추고 법보의 기령을 훼손해 날 화나게 하려 하다니. 이곳에 무언가를 숨겨둔 모양이죠.”

여인이 호롱불을 들고 수려한 얼굴로 물었다. 의외의 질문이라 한립이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 대답했다.

“그걸 알면서도 추격해 온 것을 보면 수중의 보물에 자신감이 상당한 듯합니다. 그 호롱불의 내력을 알 수 있겠습니까?  등불 종류의 고보는 처음 들어보아 그러합니다.”

한립이 여인의 얼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안 되겠는데요. 그냥 아무 것도 모른 채 저 세상으로 가시지요.”

여인이 호기롭게 외치더니 입을 벌려 호롱불을 향해 영화(嬰火)를 뿜었고, 청동색 호롱불이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한숨을 내쉰 한립도 두 손을 뒤집었다.

미리 준비해둔 녹색 진법 깃발과 붉은색과 푸른색이 섞인 진법 원반이 나타났다.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여인을 바라본 한립은 일단 깃발을 던지고 법결을 쏘아 보냈다.

펑!

그가 주문을 외는 동안 깃발에서 폭음이 일며 주변을 녹색 안개로 뒤덮었다.

안개가 들끓으며 갑자기 용처럼 솟구쳐 여인을 덮쳤다. 이와 함께 한립의 다른 손에 들고 있던 원반도 푸른빛과 붉은빛을 내며 하얀 안개로 변해 발밑으로 사라졌다.

즉시 곳곳의 안개들이 요동쳤고 그 속에서 무수히 많은 푸르고 붉은 빛들이 빽빽하게 여인을 향해 쇄도했다.

한립이 소매 한쪽을 털어내자 은색 종이 바람을 타고 커졌다.

댕!

충분히 크기를 키운 은종의 음파 공격은 여인의 머리를 노리고 있었다. 여인에게 다가갈 수 없으니 원거리에서 공격 가능한 고보를 선택한 것이다.

물론 하얀 연꽃의 무지막지한 힘과 정체 모를 호롱불 고보를 확인했으니 한립의 노림수는 은종은 아니었다.

토둔술을 이용해 땅 속에서 숨죽이고 있는 은월이 지금 전투의 필살기였다. 이때 은월은 자운두를 소리 없이 펼쳐 여인을 중심으로 발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녹의 여인이 잠깐이라도 방심하는 순간 목숨을 앗아갈 작정으로!

누군가 자신을 노리고 매복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여인은 한립이 발동한 금제와 공격의 위력에도 개의치 않고 호롱불의 미약한 푸른 불길에만 눈길을 주고 있었다.

여인이 차분히 손을 들어 두 손가락으로 등불 안의 완두콩만한 불길을 민첩하게 건져내었다.

이때 용처럼 덮쳐오는 안개와 사면의 푸르고 붉은 광선 그리고 은색 음파까지 모든 공격이 한 번에 그녀를 노리고 근접했다.

그러나 전혀 걱정하는 기색도 없이 여인이 하얀 연꽃을 발로 두드리자 빛이 반짝이며 연꽃잎들이 순식간에 접혀 그녀를 감싸 안았다.

금제로 인해 교룡으로 변한 녹색 안개가 먼저 입을 벌려 녹색 빛기둥을 쏘았지만 하얀 연꽃잎에 닿자마자 연기처럼 사라졌다.

뜻밖에도 음파만이 안으로 들어갔지만 효과가 어떨지는 미지수였다.

한립이 상황을 지켜보며 수결을 맺었다.

붉고 푸른 광선들이 다시 공격을 시도하지 않고 교차해 거대한 그물망을 형성했다. 그대로 하얀 연꽃의 꽃봉오리를 층층이 감싼 것이다. 안개로 이뤄진 교룡도 공중에서 빙글 돌아 녹색 안개로 변하더니 그 주변을 메웠다.

그리고 한립에 의해 한층 커진 은종은 꽃봉오리 바로 위로 가서 음파를 이용한 직접적인 공격을 가했다.

일순간 하얀 연꽃잎 속의 녹의 여인이 금제에 갇힌 듯 보였다. 그러나 그의 걱정을 증명이라도 하듯 다시 연꽃잎이 피어나며 칼날처럼 주변의 그물과 안개를 베어냈다.

그것을 보고는 한립의 얼굴도 어두워졌다.

아무런 표정 없이 연꽃 위에선 여인이 한 손에는 청동 호롱불을 다른 한 손에는 평범해 보이는 푸른 불꽃을 쥐고 냉랭히 허공을 바라보았다.

마침 음파를 발생하고 있던 은종이 그녀의 머리에 떠있었다. 여인이 불꽃을 쥔 손을 들어 입가에 가져갔다.

후욱.

그녀가 작게 입김을 불자 불꽃이 울렁이며 손바닥 위에서 사라졌다.

그 다음 허공의 은색 종이 갑자기 나타난 푸른 빛덩이에 둘러싸였다. 여인이 주문을 외자 은종 표면에 정체 모를 푸른 불길이 인 것이다.

은종이 몸을 떨며 대항하려 했으나 순식간에 푸른 불길 속에 녹아 은색 액체로 변해버렸다.

푸른 장막이 스스로 깨져 소리 없이 사라졌다. 귀한 고보가 단숨에 허물어지는 모습에 한립의 안색도 일순 창백해졌다.

이때 녹의 여인이 호롱불에서 다시 푸른 불똥을 제련해 내며 한립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꽈광!

불길한 징조에 한립이 즉시 풍뢰시를 발동해 사라졌다.

여인이 개의치 않고 푸른 불똥을 날렵하게 집어내 영기를 불어 내려는데 발밑에서 갑자기 자줏빛이 번뜩이며 거의 십여 장 크기의 자주색 망이 땅에서 뿜어져 나왔다.

크게 놀란 녹의 여인은 낯선 여인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신속하게 덮쳐오는 자줏빛 그물망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불장난을 좋아하면 내 ‘자운두’의 옥양진화(玉陽眞火)와도 조금 놀아 주시지요?”

매혹적인 여인이 노란 빛을 반짝이며 자줏빛 망 근처에서 나타나 웃음을 흘렸다. 그녀는 거침없이 손을 뻗어 망 위로 법결을 날렸다.

자주색 망태기 안에서 화염이 일어났다.

푸른색과 하얀색이 섞인 기이한 화염은 망태기 안을 휩쓸었고 그 안에서 교룡 모양의 불길들이 일어 연달아 연꽃 안의 여인을 향해 날아들었다.

청백색 화염에 일순 하얀 연꽃이 가려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한립이 십여 장 떨어진 곳에 떠서 기뻐했다.

그가 두 손을 털어 일흔두 개의 청죽봉운검을 불러냈다.

비검이 ‘웅웅’ 거리며 하나로 모여 즉시 육칠 장 길이의 거검으로 변했고 그의 의지에 따라 굵직한 금빛 뇌전이 검의 날을 타고 흘렀다.

촤륵.

이에 그치지 않고 그가 숨을 토해내자 건람빙염 한줄기가 빠져나와 거대한 검으로 향했다.

즉시 뇌전이 번뜩이던 푸른 거검의 표면에 보일 듯 말 듯 얇은 남색 화염이 둘러졌다.

한기가 서린 눈빛으로 한립이 손가락을 뻗자 거검이 진동하며 자줏빛 그물 속의 연꽃 꽃봉오리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이때 정신을 차린 자운도 속의 녹의 여인도 분노가 극에 달해 호롱불을 머리 위로 내던지고 있었다.

여인의 손을 떠난 청동 호롱불이 눈부신 빛을 내뿜었다.

휙휙.

호롱불이 빙글빙글 돌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연꽃 꽃봉오리를 둘러싸고 있던 기세등등하던 청백색 화염이 호롱불의 등장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별안간 자운두의 옥양진화가 사라지고 호롱불만이 고고하게 떠서 더욱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녹의 여인이 차분히 호롱불을 가리켜 불길을 일렁이게 하고는 은월을 향해 날아가게 만들었다.

“……!”

은월이 안색이 급변해 즉시 자운두를 수축시키고는 다른 손으로는 바구니 고보를 꺼냈다.

콰쾅!

이때 푸른 거검이 천둥소리를 내며 녹의 여인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은월이 바구니 고보의 하얀 기운으로 몸을 보호하며 정확히 시간을 맞춰 자운두 망태기의 상부를 열어젖혔다.

거검의 놀라운 기세에 녹의 여인도 얼굴이 굳었다.

잠시 주저하던 그녀가 은월을 처리할 새도 없이 영력을 돌려 연꽃으로 쏟아 부었다. 두 발을 연꽃 속으로 꽂아 넣으니 연잎이 몇 배로 불어나며 연꽃의 환영이 층층이 형성되어 두꺼운 보호막을 형성했다.

동시에 여인이 맹렬히 호롱불을 들어 올려 화염을 내뿜었다.

푸른빛이 거치고 똑같은 크기의 화염 꽃이 피어올랐다. 본래 있던 연꽃과 하나로 합쳐진 화염이 사람 머리통만한 거대한 불덩이를 형성한 순간, 한립의 거검도 연꽃잎이 변한 보호막으로 떨어져 내렸다.

쿠콰콰쾅!

한동안 벼락이 내리치는 소리와 폭음 그리고 하얀 빛과 금빛 뇌전 남색 불길 등이 얽혀 혼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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