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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416화 (173/2,000)
  • # 416

    416화. 결계 대전 (3)

    “기령(器靈)! 기령이 깃든 법보를 쓰다니!”

    굴요가 괴수 그림자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침을 삼켰다.

    “사이금원(四耳金猿)을 기령으로 취하고 처음 사용해 보는 것이니, 이곳에서 살아나가지 못 하더라도 너무 안타까워 마시지요.”

    륙 수사가 살기를 비추며 수결을 맺었다.

    그러자 거대한 원숭이의 신형이 점점 또렷해지며 방망이의 크기도 수 장으로 거대해졌다. 기령인 귀가 넷 달린 원숭이가 살아있기라도 한 듯 방망이를 집어 들더니 몸에서 금빛을 휘날리며 굴요를 향해 덤벼들었다.

    * * *

    녹의 여인은 깡마른 법사나 굴요와 동행하지 않았다. 그녀의 목적은 오직 하나, 한 시라도 빨리 결계 중심부를 찾아 금제를 완전히 끝장내는 것이다.

    ‘물론 그러기 전에 수사 한 명을 처리해야겠지만!’

    안개 속으로 들어온 후 있는 듯 없는 듯 은밀하게 따라붙는 의식이 있었다. 마치 원영 후기 수사의 의식이라도 되는 듯 도저히 떨칠 방법이 없었다.

    놀람과 동시에 살의가 샘솟았다.

    이렇게 괴이한 술법을 쓰는 수사를 살려두면 앞으로의 일전에 두고두고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다행인 것은 상대도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는지 전혀 숨을 생각 없이 자신의 존재를 노출하며 원영 중기인 그녀를 불러들이고 있었다.

    코웃음을 친 그녀가 그곳을 향해 날아갔다. 정체 모를 수사를 백 장 정도 앞두고 녹의 여인이 멈추었다.

    아무리 실력에 자신이 있어도 상대가 불러들인 장소에 불쑥 뛰어들어 싸우는 것은 옳지 않았다.

    여인의 손이 저물대를 스쳐 푸른 구슬을 꺼냈다.

    푸른 구슬을 위로 던지고는 곧 손에서 법결을 쏘아 보냈다.

    동시에 구슬에서 빛이 터지며 무수히 많은 푸른빛이 방원 백여 장의 안개를 뚫고 돌풍을 일으켰다. 바람이 가시고 나자 시야가 탁 트였다.

    녹의 여인이 눈썹을 끌어 올렸다. 수십 장 밖에서 푸른 의복의 청년이 묵묵히 서서 자신을 살피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그녀가 눈여겨보던 한립이었다!

    눈빛이 더욱 서늘해진 여인의 시선이 한립 머리 위로 빛을 반짝이는 금빛 벌레들에 닿았다.

    “서금충! 영충을 지니고 있다는 수사가 당신이었군.”

    녹의 여인이 탄식하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모란족 중에 서금충을 알아보는 법사들이 이리 많다니 놀랍습니다. 저번에 달아난 법사가 일러주던 가요.”

    “천풍부 목 상사의 육신도 당신이 그런 것이겠죠?”

    여인이 한립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물었다.

    “목 상사는 누구인지 모르겠고, 어풍차를 지닌 법사라면 맞습니다. 원영이 그렇게 빨리 빠져 나갈 줄 알았다면 육신은 물론 원영까지 멸했을 테지만요. 그를 대신해 복수라도 할 참입니까.”

    한립은 상대의 얼굴에서 분노나 복수심을 읽지는 못했지만 경계심을 높였다. 이미 건람빙염이나 풍뢰시의 존재를 아는 상대와 싸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전의 다른 원영기 수사들은 풍뢰시를 이용해 접근한 후 건람빙염을 이용해 얼려버렸던 것이다.

    “목 상사가 당한 것은 본인의 부족함 탓이니 내가 복수할 것은 없지요. 하지만 당신은 놀랍게도 서금충을 다루는 데다 실력까지 뛰어나니 살려 보낼 수는 없겠습니다.”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이 어두워지며 수결을 맺었고 전신에서 하얀 빛이 발산 되며 하얀 비단 띠 같은 법보가 떠올랐다.

    이어서 그녀의 손바닥이 뒤집히며 작은 솥이 들려 있었다. 누런 솥은 아기자기한 몸체에 빼곡히 주술이 새겨져 있었다.

    한립이 의식으로 그것을 훑고는 미미하게 표정이 달라졌다.

    “서금충, 상고시대 기충으로 성충이 되면 거의 멸할 수 없다죠. 목옥류의 보물이나 금제로만 가둘 수 있고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본 상사가 서금충을 다루는 돌올인 수사와 겨뤄본 적이 있어 말입니다.

    일부러 이 황령정(黃靈鼎)을 구해 두었지 뭡니까. 기다리는 상대는 마주치지 못하고 천남에서 서금충을 다루는 수사와 마주치다니 이런 우연이! 미리 대비를 하지 않았다면 상대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녹의 여인이 천천히 중얼거리며 손으로 누런 솥을 문질렀다. 솥에서 빛이 산발하며 노란빛이 새어나와 여인을 감쌌다.

    “서금충을 다루는 수사가 있단 말인가.”

    한립이 놀라 중얼거렸다.

    “모르고 있었군요. 서금충은 우리 모란족의 주적 돌올인들의 성충입니다. 그들 선조가 무수히 많은 세월을 들여 수 십 마리의 성충을 배양해 냈고 돌올인들 중 가장 걸출한 인재에게 계승을 합니다.

    그러니 우리 모란인들에게는 증오의 대상이지요. 당신의 서금충이 성충은 아니지만 수량이 이렇게 많으니 그대로 둘 수 없군요.”

    녹의 여인이 무표정하게 말을 마치고는 작은 솥을 발동했다. 누런 솥이 그녀의 머리 위를 맴돌다 노란빛을 울컥울컥 뱉어내기 시작했다.

    한립은 이미 누군가 서금충을 성충으로 키워냈다는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가 즉시 근심을 뒤로 미루었다. 그가 상대의 의중을 읽고 구름 떼처럼 모여 있는 서금충을 손으로 가리켰다.

    웽!

    한 곳에 모여 있던 서금충들이 순식간에 흩어져 안개를 뚫고 사방팔방으로 날아갔다. 솥에서 나온 노란 기운이 허탕을 친 것이다.

    “……?”

    여인이 주춤하다 무언가를 떠올리고 얼굴이 음산해졌다.

    “다른 법사들을 공격하러 보내다니! 그럴 틈을 줄 것 같습니까!”

    동시에 여인이 하얀 비단 띠 법보를 한립을 향해 던졌다. 하얀 띠는 허공에서 돌더니 돌연 커다란 독수리로 변해 하얀 날개를 펼치더니 제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곧바로 한립 머리 위에 나타나 날카로운 발톱을 휘둘렀다. 거대 독수리의 속력에 흠칫한 한립이 바로 한 손을 떨쳤다.

    쿠르릉!

    벼락이 내려치는 소리와 함께 금빛 그물이 나타나 들이닥치는 하얀 독수리를 포획하려 했다.

    이에 독수리가 붉은 눈을 번득이며 날개를 펄럭여 무수히 많은 바람의 칼날들을 분출했다.

    퍼퍼퍽! 퍽퍽!

    칼날의 위력은 꽤 커서 금빛 그물이 대다수를 막아냈지만 몇 개는 그대로 뚫고 빠져나갔다. 곧바로 거대 독수리가 바람의 칼날을 쫓아 하강했다.

    ‘이런!’

    한립은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의외의 상황에 상당히 놀랐다.

    그가 열손가락을 펼치자 푸른 검기 열댓 개가 바람의 칼날을 향해 솟구쳤다. 동시에 손바닥을 뒤집어 푸른 방패를 들고 내던지자 푸른빛이 터져 나오며 거대하게 변했다.

    물기라도 흐르듯 반짝이는 푸른 방패는 굉장히 단단해 보였다. 거침없이 바람의 칼날을 부순 검기가 거대 독수리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독수리가 검기를 향해 날갯짓을 하자 그 파동으로 검기들이 밀려났다. 이후 맹렬한 기세로 남색 방패로 발톱을 들이미는 독수리를 보고 한립이 코웃음을 쳤다.

    그의 손짓에 따라 방패의 빛이 짙어지고 독수리는 마치 수면을 스친 것처럼 푸른 파문만 일으킨 채 튕겨나갔다.

    독수리가 번뜩이며 신형이 흔들렸다.

    그 찰나의 시간을 이용해 한립이 검은 물체를 꺼내 순식간에 독수리를 잡아챘다.

    화륵!

    음산한 불길의 거대한 손이 독수리를 가두었다. 날카로운 비명과 독수리의 처절한 반항이 이어졌고 강철 같은 부리는 연달아 손을 쪼기 시작했다.

    독수리를 잡아 안심을 한 한립이 녹의 여인을 보고는 얼굴을 굳혔다. 독수리가 포획이 되든 말든 무슨 이상한 주술을 외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이다.

    여인의 열 손가락이 천천히 펴지며 손바닥 안에서 은은하게 빛이 울렁거렸다. 마치 새하얀 연꽃이 꽃망울을 터트리기 직전 같았다.

    ‘뭐지? ’

    한립은 원영 중기 수사가 공을 들여 주문을 외우는 것을 보고 만만치 않은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절대 상대가 술법을 마치게 두어서는 안 되었다.

    한립이 소매를 털어 수십 개의 비검을 내뿜었다.

    수십 개의 비검들이 서로 연결되기라도 한 듯 엄청난 기세로 상대를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비검이 도착하기도 전에 한립은 독수리를 포획한 거대 손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독수리를 향해 건람빙염 한 줄기를 분출했다. 빙염에 닿자마자 동상처럼 얼어붙은 독수리는 정말 역동적이었다.

    한립이 곧바로 다음 행보에 들어가려는데 앞쪽에서 거대한 하얀 빛이 방원 백 장을 뒤덮었다.

    ‘안 돼.’

    불길한 예감에 빠르게 고개를 돌리자 기이한 현상이 시작됐다.

    녹의 여인이 들고 있던 하얀 연꽃이 만개하며 그녀의 머리 위에서 연꽃이 눈부신 빛을 내뿜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청죽봉운검이 변한 푸른 검기들은 그녀의 십여 장 앞에서 무언가에 걸리기라도 한 듯 나아가지 못한 채 요동쳤다.

    하얀 연꽃은 보물이 아니라 여인의 법력을 응결해 만든 것 같았지만 이런 위력이라니 한립의 예상 밖이었다.

    놀람이 가시고 그가 어두운 얼굴로 오른팔을 들어올렸다.

    칠흑 같은 검은 기운이 둘러싼 손에서 기운이 짙어지며 그의 얼굴도 차츰 진중해졌다. 동시에 팔뚝이 신속하게 불어나 거의 두, 세 배 가량 두꺼워졌다.

    한립이 수련하던 음마참(陰魔斬)이었다.

    이제 거의 술법을 완성한 여인이 고개를 들어 그와 시선을 마주쳤다. 한립이 주저 없이 외쳤다.

    “가라.”

    오른팔이 허공을 가르고 반원 형태의 검붉은 무언가가 튀어나와 허공에서 반 장 가까이로 커지더니 하얀 연꽃 보호막이 있는 곳까지 도달했다.

    녹의 여인이 미간을 좁히며 입에서 하얀 기운을 뿜어 연꽃으로 보내자 연꽃 모양의 환영이 생겨나 보호막을 감쌌다.

    검붉은 빛이 처음에는 연꽃 환영을 쉽게 파고 들더니 점차 속도가 감소하며 꼼짝하지 못했다.

    이에 여인이 만족해하다 안색이 달라졌다.

    한립이 또 다른 거무튀튀한 물체를 던진 것이다.

    즉시 몸을 불리기 시작한 물체는 순식간에 산봉우리로 커져 흉흉한 기세로 연꽃 환영 속의 여인을 으깨려 했다.

    “천중봉(千重峰).”

    여인이 거대한 산의 정체를 바로 알아보았다.

    원영 중기의 수행에 상고 시대 불가(佛家) 비술을 펼친 상황이었지만 그냥 맞닥뜨려서는 안 되는 공격이었다.

    그녀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수결을 맺어 머리 위의 연꽃과 노란 솥을 거둬들였다.

    잠시 후 이십여 장 밖에서 푸른빛이 번뜩이며 여인의 우아한 신형이 드러났다.

    연꽃의 환영이 지키던 보호막은 바로 없어지지 않고 검은 산봉우리의 압력을 받고서야 산산조각 났다.

    ‘풍둔술(風遁術)? ’

    뇌둔술에 맞먹는 둔술까지 익히고 있다니! 이렇게 되면 상대를 가두지 않고서는 공격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한립은 한번 싸워보기로 결심했다.

    아무리 풍둔술을 익혔다고 해도 풍뢰시 보다는 못할 거라 여겼다. 일단 접근할 수만 있다면 건람빙염의 위력으로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었다.

    생각을 정리한 한립이 주저 없이 하얀 빛에서 벗어난 검붉은 파편과 수십 개의 청죽봉운검들을 가리켰다. 동시에 그것들이 바람처럼 녹의 여인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꽈광!

    그의 등에서 천둥소리가 울리며 은백색 날개가 나타났다. 그가 남색 방패를 소매 속으로 거두고 얼음 조각이 된 독수리를 여인을 향해 날려 보냈다.

    한립이 눈을 빛내며 한 손을 펼치니 남색 화염이 손바닥에 나타났다.

    남색의 불길이 요사스럽게 너울거렸다.

    꽈광!

    벼락 소리와 은백색 전극이 나타나고 한립이 사라졌다. 녹의 여인은 그가 움직일 때마다 보물들이 연달아 공격해 와 정신이 없었다.

    몇 가지 독특한 능력 말고는 원영 초기 수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얕보았던 그녀는 강력한 보물들이 줄줄이 나오고 독수리마저 얼음덩이로 변하자 울화가 치밀었다.

    이제 한립이 날개까지 달고 천둥소리와 함께 사라지자 여인이 냉소했다. 원기를 소모하는 술법이지만 비장의 한 수를 써서 단번에 상대를 죽이기로 결정 한 것이다.

    일단 상대가 뇌둔술을 펼쳐 곁에 다가오지 못하게 해야 했다.

    여인이 의식을 이용해 머리 위의 연꽃을 조종했고 하얀 연꽃이 하강해 그녀의 머릿속으로 사라졌다.

    이때 한립은 천둥소리와 함께 녹의 여인 측면 서너 장 거리로 근접해 있었다. 그의 신형이 번뜩이며 바로 거의 일 장 거리로 가까워졌고 수중의 남색 화염이 소리 없이 노란 보호막에 닿았다.

    누런 솥이 만들어낸 나무 속성 보호막은 한립이 생각할 때 건람빙염의 일격을 버텨낼 수 없었다.

    그런데 보호막이 깨지기 직전인데도 그 안의 녹의 여인은 태연한 얼굴로 빠져나갈 생각조차 않고 있었다.

    ‘……!’

    한립이 흠칫 놀라 뭔가 이상하다고 직감한 순간 여인의 몸에서 은은한 우윳빛 빛무리가 퍼져 나왔다. 새하얀 연잎이 그녀의 몸에서 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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