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학사신공-415화 (172/2,000)

# 415

415화. 결계 대전 (2)

“모란족이 이렇게 조심스러울 줄은 몰랐습니다. 법사 몇몇을 죽여 살을 깎아냈다지만 근골은 멀쩡하니 전면전 밖에 없겠어요. 방금 닉천기(匿天旗)를 사용하느라 법력 소모가 심할 텐데 괜찮으십니까?”

“결계가 깨지면 모란족 대상사 한 명을 붙들어둘 정도는 됩니다.”

거한이 노인의 안위를 살피며 말하자 노인이 수염을 쓸어내리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다행입니다. 다른 이들은 저와 한 수사에게 맡기시지요. 복 수사도 어느 정도 원기를 회복했을 테니 전황이 위급해지면 합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나저나 저 거대 요수가 큰일이군요. 결단기 수사들은 어찌할 수가 없으니 우리가 처리해야 할 터인데…….”

“하아, 어쩔 수 없지요. 어쨌든 인원수가 부족하니 일단은 모용 형제들에게 금제를 보조해 시간을 끌라 해두었습니다. 그들의 벼락 속성 공법이 결단기 수사치고는 뛰어나니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되겠지요.”

“그럴 수밖에 없겠군요.”

노인도 다른 방법이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푸른빛이 번뜩이며 빛줄기가 두 사람 곁에 떨어졌다.

“모란인들이 진공을 하고 있는데 대책은 세워 두셨는지요?”

푸른빛이 가시고 한립이 그들을 향해 미소 지었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한 형. 안 그래도 상의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거대 요수라면 확실히 성가시겠지요. 상고 시대에 활동하던 이종(異種)을 모란인들이 어떻게 구해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전투에 관해서는 모두 륙 수사의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한립이 미간을 좁히며 이야기 했다.

“이번 전투에서도 한 형의 힘을 빌려야겠습니다.”

거한이 웃음을 흘리며 한립을 향해 은근한 시선을 보냈다.

“천남의 안위가 달린 일에 당연히 최선을 다해야지요. 다만 적의 세력이 강해 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한립이 그의 말에 코끝을 문질렀지만 여전히 차분했다. 어차피 실력을 드러낸 바, 더는 숨길 이유가 없었다.

“한 형이 상대가 안 된다면 저희라고 상대가 되겠습니까.”

노인이 웃으며 그를 향해 공손히 말하자 한립이 노인을 바라보았다.

“마 형의 과찬이십니다. 제 실력이 생각하시는 만큼 대단치 않으니 너무 기대하지는 말아주세요.”

“허허, 아무리 그래도 한 형의 능력이 일반적인 원영 초기 수사에 비해서는…… 헛, 모란인들이 공격을 시작하나 봅니다.”

거한이 한립과 대화를 나누다가 말을 끊고는 고개를 돌려 먼 곳을 바라보았다. 한립과 마 노인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붉은 빛이 퍼지며 붉은 노을 속에서 수십 개의 강렬한 불덩이가 응집하고 있었다.

“저건?”

마 노인이 놀라 입을 벌리자 거한의 설명이 이어졌다.

“법사의 영술 결계입니다. 수많은 법사들이 진법 깃발과 원반을 대신해 쾌속으로 결계를 형성하는 영술이지요. 일반적으로 고계 법사가 결계를 지탱하기 마련인데, 기운으로 보아 어제 불 속성 공법을 운용하던 법사인 듯합니다.”

“영술 결계!”

노인이 처음 들어보는 소리에 거한의 말을 반복했다.

“저희가 진입해서 처리하죠. 상대 원영기 법사와 교전 전에 죽일 수 있는 만큼 죽여 놓아야겠습니다.”

“좋습니다.”

한립이 시선을 거두고는 담담히 제안하자 노인과 거한이 흔쾌히 받아들였다.

초췌한 거한이 먼저 다른 결단기 수사 몇몇에게 명령을 내리고는 안개 속으로 사라졌는데 이영아도 그 중 하나였다.

한립이 슬쩍 전음을 보내고는 역시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 * *

안개 밖에서 모란 법사들은 수십 개의 작은 부대로 나뉘어 기이한 진형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들은 붉은 빛이 반짝이는 불 속성의 법기를 머리 위로 들어 불 속성 영기를 응집하는 중이었다.

이 수십 개의 영술 결계 중간에 굴요가 머리를 산발한 채 가부좌를 하고 앉아 두 손으로 기괴한 수결을 맺어 댔다.

그의 주위로 여섯 개의 붉은 깃발들이 펄럭였고 불 구렁이가 그의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며 요염한 불꽃을 내뿜었다.

그리고 멀리서는 거대 요수에서 내린 녹의 여인이 냉랭히 굴요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다.

“가라!”

돌연 굴요가 두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여섯 깃발들이 ‘웅웅’ 진동을 하더니 각각 붉은 빛 기둥을 뿜어 둥글게 뭉친 거대한 불덩이 속으로 스며들었다.

쿠르릉.

동시에 여섯 개의 거대한 불덩이도 몸을 떨며 화염이 더욱 크게 일었다. 진동 소리와 함께 거대한 불덩이가 유성우처럼 안개속으로 파고들었다.

콰쾅! 쿠콰쾅! 쿠쿵!

구국맹 진법가들이 공들여 펼친 금제라지만 막대한 불덩이의 위력과 부딪히니 경천동지할 폭음이 이어졌다.

수십 장 길이의 불기둥이 연달아 이어지자 맹렬한 열기가 가신 지역에는 안개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여섯 개의 거대한 구멍이 생겼다. 녹의 여인이 눈을 빛내며 손을 뒤집어 금빛의 동그란 무언가를 쥐었다.

그녀가 손을 털어내자 금빛이 이미 안개 옆에서 대기하던 거대한 코뿔소 요수에게 날아갔다.

“우웅!”

금빛 고리가 정확히 코뿔소의 뿔에 걸려 금빛을 뿜어내더니 거대 코뿔소의 푸른 눈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그리고 천둥 같은 괴성을 내지르더니 남색 안개를 향해 거대한 몸을 부딪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요수의 괴성과 녹황색 결계의 빛이 부딪히며 요란한 폭음이 들려왔다.

“굴 상사는 화령술을 이용해 계속 금제를 부숴주세요. 오늘 반드시 이곳의 결계를 없애야 합니다. 나머지는 가자!”

녹의 여인의 맑은 목소리가 하늘 전역에 퍼지고 명을 받은 법사 대군이 환호하며 열댓 명 혹은 수십 명씩 뭉쳐 안개 속으로 진입했다.

“우리도 가지요. 굴 상사는 술법을 마치고 뒤따를 겁니다.”

녹의 여인이 말을 마치고는 하얀 빛줄기로 변해 쏘아져 나갔다. 깡마른 법사가 서둘러 대답하며 검은 빛 줄기로 그녀의 뒤를 따랐다.

안개 앞에는 이제 결계를 펼치고 있는 수백 명의 법사만이 남게 되었다.

그들이 하늘로 올려 보내는 불덩이에 굴요가 여섯 깃발에서 뿜어낸 빛기둥이 더해지면서 안개에 숭숭 구멍이 뚫리고 있었다.

결계를 거의 망가뜨린 굴요가 미친 듯이 웃더니 몸을 일으켜 즉시 화염으로 변해 날아갔다. 진법을 유지하던 다른 법사들이 벌떼처럼 그의 뒤를 따랐다.

순식간에 안개 속으로 수천 명의 법사들이 달려든 것이다.

* * *

한립은 안개 속에서 꼼짝 앉고 눈을 감고 있었다.

허공에 뜬 그는 벌써 삼색 서금충으로 만든 충갑을 하고 발밑에는 푸른 거검을 밟은 채였다. 그의 머리 위에는 금빛이 찬란한 비충들이 웽웽 거리며 흉흉한 기세를 드러냈다.

눈꺼풀을 꿈틀한 그가 천천히 두 눈을 떴다.

“원영 중기 법사가 있을 것 같더라니, 여인이었어.”

중얼 거리던 그가 저물대를 스쳐 진법 법기들을 꺼냈다. 그리고 진법 법기 중 위력이 가장 강한 전투용 진법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은월, 나와 봐.”

한립이 소매를 털자 작고 하얀 여우가 나타났다.

“자운두는 이번에도 네게 맡기마. 바구니 고보도 가져다 쓰거라. 이번 상대는 완이의 사저보다 만만치 않을 테니 조심하고.

만일 상대의 능력이 생각보다 강하면 버티지 말고 이곳으로 유인해. 내가 싸워보고 그래도 안 되겠으면 놔두지 뭐. 달아나면 그 뿐이니 사활을 걸 건 없다.”

설명을 마치 그가 손을 뒤집어 자운두와 바구니 고보를 여우 은월에게 넘겨주었다.

“예, 주인님! 예전처럼 은밀하게 숨어 있다 적시에 나타날게요.”

여우가 하얀 빛을 내며 빙글 돌아 여인의 모습으로 인사했다.

“그래, 저번 엄월종 대장로 때처럼만 하면 된다. 아주 적절한 순간에 나섰어.”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최선을 다할게요!”

은월이 씨익 웃고는 노란 빛과 함께 허공에서 사라졌다. 한립도 고개를 들어 먼 곳을 살피다 푸른 빛줄기로 변해 안개 속으로 날아갔다.

같은 시각 법사 대군이 안개로 파고들자 남은 금제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 법사들이 거대 코뿔소 바로 뒤에서 몰아쳤기에 거대 요수가 금제의 공격을 대신 막아주고 있었다.

불덩이, 얼음조각이든 벼락, 불, 흙 속성의 가시이든 거대 요수는 간지럽다는 듯 검은 갑옷으로 막아냈다.

거대 코뿔소는 공격과 상관없이 묵묵히 앞으로만 질주하고 있었다. 파죽지세로 나아가던 코뿔소가 유성우와 같은 불덩이로 공터가 된 곳에 도착했다.

거대 요수뿐만 아니라 뒤따르는 법사들도 모두 무사해 보였다. 그러나 어디로 갔는지 원영기 대상사들의 행적이 묘연했다.

안개조차 없는 곳에 이르자 법사들이 한시름을 놓았고 결단기 법사들이 결집해 다음 행보를 상의했다.

콰릉!

그때 갑자기 앞쪽의 농염한 안개에서 두 자루의 은빛 찬란한 창이 튀어나와 은색 뇌전을 번뜩였다.

이에 결단기 법사들이 각각 남색과 푸른색을 뿜어대며 창으로 공격했다. 그러나 창이 법사들의 법보와 부딪치기도 전에 빙글 돌더니 쾌속으로 코뿔소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 모습에 결단기 수사들은 오히려 마음을 놓았다. 거대 코뿔소의 방어력은 일반적인 법보로 어찌할 수준이 아니란 것을 알았던 것이다.

“헉……!”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두 자루의 은색 창이 그대로 코뿔소를 공격하지 않고 요수의 머리 위에서 교차한 것이다.

콰릉!

은빛이 번뜩이며 벼락이 내려쳐 코뿔소의 머리를 강타했다. 그리고 코뿔소의 남색 보호막을 부순 은색 뇌전이 그대로 검은 갑옷에 떨어졌다.

꾸콰쾅!

코뿔소는 잔뜩 열이 받아 하늘 높이 입을 벌려 새하얀 얼음 기둥을 발사해 은색 창을 가격하려 했다. 그러나 은색 창들은 교전 의지가 전혀 없다는 듯 얼음 기둥을 휙 피하고는 또 한 번 은빛 벼락을 내려치고는 안개 속으로 날아갔다.

요수가 그것을 보고는 눈이 더욱 시뻘게져 미친 듯이 다리를 놀리며 쫓기 시작했다.

결단기 수사들이 놀라 다른 법사들을 모집해 요수의 뒤를 따르려 했다. 그러나 그들이 움직이기도 전에 공터 주위의 안개 속에서 백여 명의 수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란 법사들이 놀라 법기며 영술 등을 이용해 혼전을 펼쳤지만 거대 요수는 이미 안개 속으로 사라진 후였다.

법사들이 짙은 안개를 보며 머뭇거렸다.

“인원은 충분하니 흩어져서 움직입시다. 금제 대부분이 망가졌으니 조심만 하면 될 게요. 감히 우릴 건드리다니 쓴 맛을 보여 줘야지요. 어차피 요수는 결단기 수사 몇으로는 상처조차 낼 수 없을 것이니 저것들을 싹 쓸어버리고 다시 찾아보아도 늦지 않을 겁니다.”

결단 후기로 보이는 노인이 고민을 하다 결정을 내렸다. 이에 법사들이 각각 빛줄기로 변해 안개 속으로 파고들어 기습한 수사 무리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저계 법사들도 몇 명씩 짝을 이루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모두 사라진 후, 고요해진 공터에 안개가 요동치며 누군가 걸어 나왔다. 그는 안색이 좋지 않은 마 노인이었다.

공터 중간까지 걸어간 노인이 주변을 살피다 표정이 묘해졌다.

“저도 모습을 드러냈으니 그쪽도 나오시죠. 그 정도 은닉술로 노부를 속일 수 있겠습니까?”

“꽤 강력한 의식을 지녔나 봅니다.”

시선이 닿는 곳에서 사내가 낮게 코웃음을 치는 소리가 들리며 검은 빛과 함께 깡마른 법사가 나타났다.

그 자는 나타나는 순간부터 두 손을 교차해 노인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마 노인에게 수십 개의 검은 빛줄기가 비처럼 쇄도했다.

* * *

마 노인이 깡마른 수사와 싸우는 곳에서 겨우 수 백 장 떨어진 안개 속, 초췌한 거한이 무표정하게 화염 속의 굴요를 바라보고 있었다. 화염이 어찌나 강한지 주변 안개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없었다.

“날 막는다고 동료를 구할 수 있을 거라고 보시오?  온 상사의 영술이 얼마나 대단한지 전혀 모르고 있군.”

본래 슬쩍 노인의 뒤로 접근해 교전 중에 사살하려던 굴요는 갑자기 거한이 나타나 방해하자 심사가 꼬였다.

“남 걱정 말고 본인 걱정이나 하시오! 어제 일전에서 마 수사가 원기를 크게 상했다지만 당신도 적잖은 법력을 허비했을 터. 겨우 하룻밤 만에 얼마나 법력을 회복했을지 모르나 방금 영술 결계까지 펼쳤으니. 역천의 보물을 지니지 않은 이상 아주 허약한 상태겠습니다.”

거한이 눈을 가늘게 뜨고 굴요를 가늠했다. 곧 그의 입에서 희뿌연 방망이가 튀어나와 광채를 뿜어냈다.

굴요가 그것을 보고 무언가를 하려다가 얼굴이 굳어갔다. 상대의 방망이에 거대한 금빛 원숭이가 방망이를 타고 있었던 것이다.

거대 코뿔소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륙 장은 되어 보이는 거대 원숭이는 털이 숭숭한 네 개의 귀에 괴기스러운 얼굴을 가졌다.

마치 고릴라 마냥 두 주먹으로 가슴을 내리치는 모습이 상당히 사나워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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