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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414화 (171/2,000)
  • # 414

    414화. 결계 대전 (1)

    “륙 형, 아무래도 우리 안목이 부족했습니다. 한 수사의 실력이 상상을 초월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마 노인이 한립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맞습니다. 수행은 원영 초기가 맞지만 금빛 뇌전과 정체모를 남색 화염에는 원영 중기 수사라도 뒷걸음질 칠거예요.”

    “그래도 지금으로서는 좋은 소식이지요. 저런 강대한 수사가 있다면 법사들의 공격도 두려울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하하, 그렇습니다. 그런데 남색 화염은 낯설지만 금빛 뇌전은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데 아는 바가 없으신가요?”

    “없습니다. 저는 화염이고 뇌전이고 저런 것은 처음 봅니다. 원영기 수사를 가두고 순식간에 죽이는 수법이라니 어떤 법술인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조금 전 죽어가던 괴물을 떠올리며 마 노인이 속으로 부르르 떨었다.

    “그렇군요. 어떤 공법을 수련했든 우리에게는 좋은 일입니다. 그럼 내일 일이나 상의하시죠!”

    “내일 일이요?”

    “결계를 망치려던 모란족 첩자를 잡았으니 그들의 책략을 역이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거한의 눈이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그 말은…….”

    대전에서 노인과 거한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조용해지더니 거의 들리지 않게 되었다.

    이튿날 정오, 작렬하는 태양아래 북을 울리며 법사 대군이 까맣게 몰려들고 있었다.

    둥! 둥둥둥! 둥! 둥둥둥!

    점점 가까워지는 북 소리와 함께 법사 대군 중간에 어제는 보이지 않던 거대한 물체가 합류한 것이 보였다.

    삼십 장 높이의 갈색 거대 요수였다.

    언뜻 보기에는 코뿔소의 수십 배 정도 크기로 코에서 솟아 오른 남색의 기다란 뿔이 눈길을 끌었다. 거대한 몸뚱이에 걸친 새까만 갑옷은 각종 부적과 주술이 은은하게 흘러내리는 것이 엄청난 보물이 분명했다.

    그런 거대한 요수의 몸 위에 묘령의 여인이 앉아 있었다. 여인은 맨발로 청초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그리고 어제 나타났던 깡마른 법사와 굴요가 그녀의 양옆에서 날았다. 마치 그녀를 모시는 듯했다.

    “응?”

    갑자기 거대 요수에 탄 녹의 여인의 표정이 달라졌다.

    “악 상사님, 무슨 일입니까?”

    “이상하군요.”

    묘령의 여인이 눈을 번뜩이며 말하자 깡마른 법사가 근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 분이 실패한 걸까요?”

    “글쎄요. 직접 확인해 보시죠.”

    여인이 차분히 말하고는 눈을 감아 버렸다.

    깡마른 수사와 굴요가 서로 시선을 마주치다 의식을 퍼트려 멀리 황룡산을 탐색했다. 잠시 후 그들도 표정이 이상해졌다.

    굴요가 먼저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어찌된 일일까요. 안개가 이미 걷히다니. 공격을 하다가 중간에 금제를 거둬 당황한 수사들을 전멸시키기로 약속을 하였건만. 이미 금제가 풀리다니 무슨 사단이 난 것 아닙니까?”

    “알 수 없지요. 일단 자세히 살펴봅시다.”

    법사대군은 계속 앞으로 나가면서도 깡마른 법사의 법력에 바로 경계심을 높였다.

    하지만 어제 교전을 벌이던 허공에 이를 때까지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다.

    법사들이 황룡산을 내려다보며 동요했다. 본래 짙은 녹색 안개로 가려져 보이지 않던 산봉우리와 산 정상의 누각들이 선명하게 보였던 것이다.

    본래 아름다웠던 건축물이 지금은 불에라도 탔는지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고 처량한 수사들의 근거지는 적막하기 이를 데 없었다.

    법사들은 좌우로 나뉘고 여인이 탄 거대한 요수는 중심으로 천천히 나아갔다. 여인이 상황을 살피다 손으로 머리카락을 넘기며 냉소했다.

    “안되겠습니다. 비록 안개는 걷혔으나 내부에는 의식을 차단하는 결계가 아직 그대로라 정황을 파악할 수가 없어요.”

    “이 모든 것이 그저 환상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만일 그 분이 작전에 성공했다면 우리에게 미리 연락을 하였겠지요.”

    깡마른 수사가 의심스런 얼굴을 하자 굴요도 의문을 드러냈다.

    “두 상사 분들의 의견은 그럼 이곳에서 가만히 있자는 것인가요?”

    드디어 여인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닙니다. 그분이 결계를 깨는 데만 성공하고 발각당해 달아났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다른 수사들은 그자를 추격하다 결계가 깨진 이곳을 버리고 퇴각했을 수도 있고요.”

    깡마른 법사의 추측이 이어졌다.

    “이곳에서 고민한다고 해결 되는 것은 없습니다. 그분의 수행으로 볼 때 성공했을 가능성이 높겠으나 경계심을 늦춰서는 안 되겠지요. 일이 잘못되어 잡혔거나 살해당했다면 이건 함정일 테니까요.”

    녹의 여인의 입 꼬리가 한쪽으로 올라가며 냉랭히 말했다.

    “악 상사의 뜻은…….”

    굴요가 주저하며 물었다.

    “함정이든 아니든 어차피 깨야할 결계입니다. 계획대로 가시죠. 전력이 조금 준다 해도 상대의 실력을 파악하는 것만으로 가치 있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장 부족한 것은 시간이에요.

    새로 들어온 정보에 따르면 구국맹에서 다른 세력들에게 지원을 요청해 2, 3개월 내로 원병이 온다더군요. 우린 1개월 내로 전천성 근방의 주요거점을 모조리 정리해야 합니다. 그래야 큰 손실 없이 승기를 잡을 수 있을 테니까요.”

    “모든 것은 악 상사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여인의 차분한 말투에 깡마른 법사도 약간 고민하다 동의했다. 저계 법사들의 생사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 굴요도 마찬 가지였다.

    여인이 고개를 끄덕이곤 붉은 입술을 달싹여 누군가에게 전음을 보냈다. 동시에 대군 속에서 백여 명의 법사들이 빠져나와 결단기 법사의 뒤를 따라 천천히 황룡산으로 다가갔다.

    백여 명이 검은 점처럼 변해 멀리 원래 운무가 있던 곳을 탐색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몇몇이 과감히 정상으로 날아올랐다.

    백여 명의 법사가 간단히 산 정상을 차지하자 깡마른 법사도 숨을 내쉬며 기쁜 얼굴을 보였다.

    “보아하니 정말 이곳을 버리고 달아났나 봅니다. 병사들을 더 보내 샅샅이 뒤지게 하시죠. 급히 달아났으니 분명 적지 않은 물건이 남아 있을 겁니다.”

    “서두르지 말고 지켜보시죠.”

    여인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냉랭히 하는 말에 깡마른 수사가 입을 다물었다.

    이때 백여 명의 수사들이 누각을 돌며 영석이며 재료 등을 발견해 희희낙락하고 있었다. 거대한 보물 창고나 영석 광산이 아니고서야 사소한 보물은 찾는 이가 임자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 모습을 바깥에서 지켜보던 다른 법사들도 요동쳤다.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고서도 쉽게 전리품을 획득하는 모습에 욕심이 생긴 것이다.

    “악 상사, 그러면…….”

    깡마른 수사와 굴요도 더는 참지 못하고 눈을 빛내다가 굴요가 입을 열었다.

    두 법사가 이 부대를 이끌고 있으니 자연히 대부분 군사들이 그들 두 법사의 부락에서 차출된 이들이었다. 모란 초원은 자원이 열악한 곳이라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다만 먼저 들여보낸 백여 명의 법사들은 작은 부락에서 따로 차출된 이들이라 저 정도면 엄청난 보상이었다.

    그러나 녹의 여인이 분명한 명을 내리지 않으니 두 사람도 말을 계속하지 못했다.

    장장 일다경이 지나고 백여 명의 법사들이 정상의 3분의 1 정도를 헤치고 나서야 여인이 입을 열었다.

    “두 분이 각각 100명씩을 들여보내 자원을 탐색하는 동시에 남은 금제를 없애게 하시지요. 의식으로 완전히 산 전체를 파악하지 못하는 한 나머지 병사들은 진입하게 할 수 없습니다.”

    “예! 모두 악 상사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두 법사가 신이 나서 제자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 결과 다시 이백 명 가량이 산 정상을 향해 날아갔다.

    “저게 전부 일 듯합니다. 제 법력으로도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니 이제 금제를 발동하지요.”

    황룡산 모처에서 조용히 마 노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휴우, 아쉽습니다. 대상사는 한 명도 걸려들지 않다니.”

    거한이 탄식하더니 ‘쿠르릉’하며 황룡산 전체가 진동했다.

    보물을 찾아 헤매던 300명의 법사들이 안색이 달라져 각자 법기며 법보를 이용해 사방팔방으로 솟아올랐다.

    그 중 세 명의 결단기 법사들이 움직임이 가장 빨랐지만 그래도 결계 밖을 빠져나가는 것은 무리였다.

    산 전체에서 영기의 빛이 솟아오르며 곳곳에서 안개가 용솟음치니 순식간에 황룡산은 거대한 안개로 뒤덮이고 말았다.

    그 광경을 지켜본 깡마른 법사와 굴요의 안색이 새파랗게 변했다. 그러나 거대 요수 위에 앉은 녹의 여인만이 냉랭한 얼굴을 유지하며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함정이었군요. 안타깝습니다. 곡 수사에게 움직여 달라 이르지 않았다면 발각 되지 않았을 텐데요.”

    악 씨 성의 여인이 차갑게 탄식했다.

    “악 상사, 그럼 안에 있는 아이들은…….”

    굴요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방금 안으로 들여보낸 결단기 수사 중 하나는 그가 아끼는 직계 제자이자 후인이었던 것이다.

    다급한 마음에 이미 결계에 갇힌 것을 보고도 구해달라는 요청이 목까지 차올랐다.

    “상대는 원영기 수사들입니다. 결단기 법사들을 어찌하는 것은 일도 아니지요. 이미 죽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녹의 여인이 그런 굴요를 힐끗 보고는 무표정하게 일렀다.

    “그렇다면…… 악 상사, 이번 결계는 제가 책임지고 깨트리겠습니다! 화령정원(火靈精元)을 방출해 단숨에 결계를 깨고 저 놈들을 전부 재로 만들어 버리겠습니다!”

    화를 참지 못한 굴요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다가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화령정원을요?  결심이 섰다면 당연히 거서수(巨犀獸)를 내드려야지요. 하지만 화령정원은 싸움이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렀을 때 사용하시죠. 또한 천곡 선생을 죽인 청년 수사를 조심하세요. 아무래도 천풍부 목 상사의 육신을 멸살한 자가 아닐까 의심됩니다. 만약 그렇다면 실력이 대단할 테고 괴상한 남색 화염을 사용할 테죠.”

    여인이 눈썹을 끌어올렸다.

    “목 상사의 육신을 훼손한 그 수사 말입니까?  뇌둔술(雷遁術)을 쓴다던데요.”

    깡마른 수사가 안색이 변해 약간의 두려움을 표했다.

    “온 상사, 근접전에 능한 수사를 꺼리는 것을 잘 압니다. 절대 저 자와 겨루지 말고 내게 넘기시죠. 유풍결(柔風決)의 속도라면 뇌둔술에도 지지 않을 겁니다. 상대의 괴이한 화염과 금빛 뇌전이 강력하다해도 접근하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일 것입니다. 나머지 능력이야 원영 초기 수사의 수준이니 나와 상대가 될 리가 있을까요.”

    냉랭한 눈빛의 여인이 오만하게 말했다.

    “예, 그럼 악 상사만 믿겠습니다. 악 상사께서는 돌올인의 천란 성녀와도 비견되는 분 이시니까요.”

    깡마른 수사가 조금 마음을 놓으며 그녀를 추켜세웠다.

    “칫, 천란 성녀!”

    동요가 없던 여인의 얼굴이 천란 성녀라는 이름에 일순 어두워졌다. 그러자 좋은 의도로 말한 깡마른 법사가 깜짝 놀라며 얼마 전 들었던 소문을 떠올렸다.

    ‘천란 성녀에게 지고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떤다더니.’

    “아……. 제, 제 말은…….”

    깡마른 법사가 변명을 해보려는데 묘령의 여인이 손을 저으며 다시 냉랭한 얼굴로 돌아왔다.

    “됐습니다. 전세가 급박하니 총공격을 가하시지요!”

    “예!”

    깡마른 수사와 굴요가 동시에 답했다.

    * * *

    푸슉.

    어두운 안개 속에서 목을 잃은 결단기 수사의 시신이 떨어져 내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푸른빛으로 나타난 한립이 시체를 선회해 저물대를 확인하고는 실망했다.

    안에는 낡아 빠진 몇 가지 물건이 전부였고 영술과 관련된 자료는 전혀 없었다. 미간을 좁히던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안개 밖에서 북소리가 커지며 놀라운 영기의 파동이 느껴졌다. 위를 올려다보던 한립은 그대로 몸을 돌려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안개 중앙은 괴이하게 양분되어 있었다. 앞쪽에는 여전히 불에 타 엉망이었으나 뒤에는 누각들이 여전히 반짝였고 수사들이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마 노인과 초췌한 거한은 그 반짝이는 누각 위에 떠서 진중하게 법사 대군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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