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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411화 (168/2,000)

# 411

411화. 태현팔괘도(太玄八卦圖)

굴요가 안색이 변해 교룡을 가리켰다. 거대한 교룡이 즉시 새빨간 불기둥을 내뿜어 두루마리를 공격했다. 하지만 두루마리는 잠시 멈칫했을 뿐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계속해서 떨어져 내렸다.

안색이 창백해진 굴요가 두 손을 비볐다 펼치니 무수히 많은 불덩이들이 솟아올라 빼곡하게 하늘을 덮었다.

그 모습에 한립은 주의를 집중했다.

부적 따위를 던져 대규모로 펼친 화탄술이 아니라 법사 본신의 수행으로 동시에 수많은 불덩이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보아하니 법사들의 영술은 정말 수사들의 오행도술과는 큰 차이가 있는 듯 했다.

한립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유성우처럼 쏟아지는 불덩이의 공격에도 두루마리는 전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마치 작은 성처럼 굴요와 붉은 교룡을 가둬버렸다.

수사와 법사 쌍방은 이제 거대한 두루마리만 볼 수 있을 뿐 대상사 굴요는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공격에 성공한 마 수사가 그럼에도 기뻐하지 못하고 곧바로 가부좌를 하고 우윳빛 기운을 전신에 흘리며 수결을 맺었다.

쿵! 콰콰쾅!

동시에 두루마리의 빛이 크게 번지며 안에서 벼락이 치는 듯한 폭음이 터져 나왔다. 팔괘도의 빛이 깜빡거렸다.

“천골 선생, 굴 상사에게 변고가 생기지는 않겠지요! 만일 정말 위험에 처했다면 일대일이고 뭐고 당장 구출해야 합니다. 저 원영기 수사가 이런 괴상한 고보를 지니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빼빼마른 수사가 걱정을 하며 흑의인에게 공손히 물었다.

“걱정 마시죠. 상고 수사가 제련한 태현팔괘도(太玄八卦圖)가 무서운 위력의 고보이기는 하나, 사용하는 수사가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군요. 그냥 보물의 강력한 영기를 강제로 끌어다가 적을 가두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 식으로 멍청하게 고보를 다루면 본신의 법력 소모도 상당할 터인데. 정말 우둔한 자입니다! 하긴 이런 구석진 곳에 저런 희귀한 고보를 제대로 사용할 자가 있기나 할는지.”

흑의인이 낮게 키득거리며 중얼거리는 말에 천남 수사들에 대한 악의가 전해졌다.

그의 말에 조금 안심한 깡마른 법사가 즉시 다른 법사들을 시켜 공격을 감행하려던 마음을 미루었다.

초췌한 거한 쪽 수사들도 희비가 교차했다.

처음 팔괘도로 상대 법사를 가두고는 기뻐했지만 안에서 들려오는 폭음과 어두운 얼굴의 마 노인을 보고는 실망한 것이다.

마 노인은 지금까지 결단기 수사에게만 이것을 사용했었는데 일단 팔괘도에 갇히면 그들은 반항도 하지 못하고 금제에 의해 죽어나갔다.

그런데 굴요는 팔괘도 안에 갇혀서도 본신의 능력으로 벼락을 막아내고 있는데다 쉼 없이 거대 교룡을 이용해 맹공을 펼치는 중이었다.

허공에서 치열하게 벌어지던 전투가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어 팔괘도 속에서 은은하게 들려오는 폭음을 제외하면 매우 고요해졌다.

수사들의 근심이 깊어졌다.

한립 만이 무표정하게 서서는 머릿속으로 은월과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마 수사가 엄청난 보물을 돌팔매처럼 내돌리고 있습니다. 태현팔괘도 본연의 힘만 발휘할 수만 있다면 자운두와 맞먹는 고보인데요.”

혀를 끌끌 차며 은월이 하는 말에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났다.

“태현팔괘도?  이 고보에 대해 아느냐?”

한립이 그녀의 말에 관심을 보이며 속으로 질문했다.

“물론이죠. 저 두루마리는 상고시대에 꽤 유명 했던 고보의 실패작입니다. 제대로 된 보물이기만 했어도 아무리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해도 상대를 가둬 죽일 수 있었을 테니까요. 진정한 태현팔괘도를 사용하면 법력 손실도 저리 막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실패작이 저 정도라니 진정한 태현팔괘도의 능력이 궁금하구나. 허나 자운두와 위력이 비슷하다면 그것도 특별히 운용하는 법이 따로 있는 것인가?”

“자운두는 운용법이 따로 없습니다. 영력을 주입하기만 하면 되죠. 겉에 새겨진 금제와 진화를 다루는 법을 이해하기만 하면 되니까요.”

그녀의 대답을 들은 한립이 다시 침묵하며 흔들리는 눈빛으로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큰일이군.’

곧 경천동지할 거대한 폭음이 두루마리 안에서 들려온 것이다.

콰콰쾅쾅!

허공의 팔괘도가 비틀리며 무수히 많은 빛기둥이 뚫고 나왔다. 그리하여 멀쩡하던 두루마리가 구멍이 숭숭 뚫리고 말았다.

지켜보는 이들이 깜짝 놀라 시선을 집중하는 가운데 두루마리 끝에서 또 다른 폭음이 들려왔다.

강렬한 열기가 솟구치며 그 안에서 얼굴이 피처럼 붉어진 굴요와 다시 원래 크기로 돌아온 그의 교룡이 나타난 것이다. 둘 다 호되게 고생한 몰골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마 노인의 외양도 그에 못지않게 피폐하다는 점이었다.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눈빛에는 힘이 없었다.

그래도 노인이 이를 악물며 두루마리를 향해 손을 뻗자 손상된 팔괘도가 빛을 반짝이며 하늘로 솟구쳤다가 둘둘 말려 떨어져 내렸다.

마 노인이 두루마리를 보고는 안 좋던 얼굴이 더욱 새파래졌다. 손에 떨어진 두루마리의 상태가 엉망이었기 때문이었다.

“아깝군요! 굴요 수사가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저 수사가 먼저 법력이 다해 두루마리를 거뒀을 텐데요.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굴요 수사도 원기가 크게 상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기엔 글렀습니다.”

흑의인의 말에 깡마른 법사가 놀라서는 굴요의 상태를 살폈다.

마 노인이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만신창이가 된 두루마리를 저물대에 넣고 굴요를 노려보고 있었다.

굴요가 그런 노인의 시선에 콧방귀를 뀌며 다시 불 속성의 교룡을 몸에 감았다.

“굴 상사, 기다리시지요! 이번 대결은 무승부로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두 사람 모두 법력 소모가 크니 계속 싸우다가는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깡마른 법사가 갑자기 소리를 쳐 굴요의 행동을 말리더니 바로 초췌한 거한 등 천남 수사들에게 말했다.

거한이 조금 의외라는 듯 상대를 보고는 곡쌍포와 시선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이번 대결은 그렇게 마무리 하지요.”

마 노인은 그들의 대화가 달갑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대결을 멈추고 돌아왔다. 굴요 역시 좋지 않은 낯빛으로 발밑의 붉은 구렁이를 회수하고는 사납게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마 노인을 향해 초췌한 거한이 몇 마디 위로를 하고 있는데 깡마른 법사가 낮게 중얼거리던 흑의인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방금 대결이 있었던 곳까지 와서는 수사들을 음산한 눈빛으로 내려 보았다.

“다음 상대는 나요. 대결 전에 미리 밝히 건데, 다음 전투는 둘 중 하나가 죽어나가기 전에는 끝나지 않을 테니 이번과 같은 운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거친 목소리에 수사들에 대한 멸시가 그대로 드러났다.

흑의인의 발언에 초췌한 거한과 곡쌍포 등이 대번에 열이 올랐지만 무턱대고 나서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그들도 이전에 죽은 원영기 수사 두 명이 모두 저런 법사에게 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저 자를 상대하게 해주시지요.”

돌연 가만히 있던 한립이 입을 열었다.

“음?  수사가 나가고 싶다는 뜻입니까?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만일 일이 틀어지면 우리 셋이 나서겠습니다.”

초췌한 거한이 한립이 나가겠다고 나서자 놀라면서도 속으로는 안심했다. 한립은 그저 미소로 답하고는 푸른 빛줄기로 변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흑의인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푸른빛이 거둬지고 그 안에서 뒷짐을 진 한립이 무표정하게 나타났다.

가까이서 보니 흑의인의 눈은 검은색 보다는 녹색에 가까웠고 요사스런 기운이 가득 흘렀다.

한립이 불쑥 물었다.

“귀신이요 아니면 요괴요?”

“하! 노부가 인간이 아닌 것 같습니까?”

흑의인은 한립의 질문에도 전혀 노하지 않은 듯 차갑게 웃었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 검은 기운들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귀곡성도 따라서 커졌다.

“사람이라니 다행입니다. 요괴와 관련된 사술을 익힌 사수(邪修)일 뿐이로군요.”

“흥! 어린 수사가 말이 많소. 곧 죽을 목숨이!”

흑의인의 탁한 목소리와 함께 검은 기운이 폭발하자 그가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죽어라!”

곧 음산한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검은 기운 안에서 흑의인의 몸이 두 장 가량의 거한으로 변해갔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머리에 두 개의 뿔이 자라나고 송곳니가 번뜩이는 모습이 언뜻언뜻 보였다.

‘이러니 다들 인류가 아니라 다른 종족이 아닐까 의심했지.’

한립의 눈동자에 푸른빛이 어른거리더니 거한으로 변한 흑의인의 송곳니 모양을 보고 무언가를 떠올렸다.

‘이건? ’

거한이 요마(妖魔)로 변한 모습이 예전 육도 후계자가 펼쳤던 육극진마공 속의 환영과 똑같았다.

“육도 극성과 무슨 관계입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 그렇게라도 시간을 끌고 싶겠지만 그냥 죽어라!”

자기도 모르게 멈칫한 흑의인이 사납게 외치며 거대한 손에 검은 기세를 담아 휘두르자 검은 무언가가 날아오다가 중간에 사라졌다.

한립이 그것을 보고 얼굴이 어두워지며 급히 신형을 수 장 뒤로 물렸다. 그가 물러남과 동시에 그가 원래 서 있던 곳에 거대한 괴물 손톱이 나타나 허공을 갈랐다.

“허!”

요마로 변한 흑의인이 공격이 수포로 돌아가자 조금 의아해 했다.

“역시 그랬군요. 귀수(鬼修)의 공법이 아니라 모종의 마도 공법을 익혔는데 공격 방식이 귀수와 비슷합니다. 당신을 귀수라 생각해 대응하던 이들은 골치를 썩었겠습니다.”

한립이 담담히 판단을 내리자 흑의인이 움찔하며 냉랭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때 한립이 슬쩍 얼굴을 구기며 수 장 정도 신형을 옮겼다. 그 결과 녹색의 괴물 손톱이 소리 없이 허공을 할퀴어댔다.

이번에는 귀기 속의 흑의인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연달아 귀음조(鬼陰爪)의 공격을 피하다니 설마 이전에 진짜 귀수를 만나기라도 한 것입니까.”

드디어 흑의인이 한립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피할 수 없었겠지요.”

“흥! 견식이 넓은 것은 알겠으나 그렇다고 어쩔 겁니까?  내 천찰진마공(天刹眞魔功)은 이미 십성에 이르러 어차피 죽게 될 것을!”

더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는지 흑의인이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날카로운 소음이 귀를 찌르는 것이 돌이라도 뚫을 것 같은 소리였다.

검은 기운이 급속히 회전하기 시작하더니 강대한 마기가 폭발적으로 불어나 그 안에서 그림자 같은 것들이 연달아 튀어나와 한립을 향해 날아왔다.

한립이 그 모습을 보고는 여유를 거두고 진중해졌다.

검은 그림자의 팔뚝이 교차하며 청록색 괴물 손톱을 휘두르니 한립이 당장이라도 산산조각 날 듯 했다.

그러나 한립은 숨을 크게 들이키며 피하지 않고 두 손을 교차했다.

콰쾅!

은은한 금빛의 전극 그물이 한립 앞에 떠올라 거침없이 귀물 손톱을 막아냈다. 흑의인이 그걸 보고 주춤했으나 다시 한 번 악랄히 손톱을 휘둘렀다.

그는 자신의 천살진마공의 위력을 믿어 상대방이 겨우 뇌전만으로는 자신의 공격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 여겼다. 그러면 무언가 아는 척하며 자신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 젊은 수사는 곧 저 세상으로 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웬일인지 그의 예리한 손톱이 돌연 뜨거워지면서 형언할 수 없는 극통이 밀려들었다.

금빛이 크게 번지며 뇌전으로 형성된 그물이 그림자 속의 괴물 손톱을 뒤덮은 것이다.

“금색 뇌전?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설마!”

자신에게 이 마공을 전수해 주던 장로가 재차 조심하라 당부하던 것들이 생각났다. 흑의인이 순간 긴장하며 몸을 떨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가 고함을 내지르자 거대하게 변했던 몸이 다시 작아져 순식간에 삼 척 크기의 난쟁이로 변해 금빛 그물과의 접촉 시간을 벌었다.

그리고 벌어 놓은 시간 동안 ‘펑’하는 괴성이 울려 퍼졌다.

난쟁이로 변한 몸이 줄었다 늘었다 하다가 무수히 많은 검은 빛으로 터져 나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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