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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410화 (167/2,000)
  • # 410

    410화. 화염 교룡

    이어 초췌한 거한은 부상을 입은 복운학이 쉴 수 있게 거처를 마련해 주고 이영아 등 결단기 수사를 시켜 천태곡 수사들을 새로 배치해 결계 수비를 강화했다.

    그의 차분하고 꼼꼼한 일처리에 한립도 속으로 만족해했다. 구국맹이 아무나 무작위로 골라 거점 방어를 맡긴 것은 아닌 듯 했다.

    퉁둥둥둥! 퉁둥둥둥!

    이때 대전 밖에서 전투를 알리는 북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리가 점점 커지며 나중에는 벼락이 치는 것 같았다.

    대전 내부의 수사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모란인들이 벌써 도착했나봅니다. 급하기도 하지!”

    마 노인이 음산한 얼굴로 바로 살기를 드러냈다.

    “뭐, 잘 되었습니다. 일단 상대가 어떻게 나오는지 살펴보시지요. 그럼 이번에는 세 분 모두에게 부탁을 좀 드리겠습니다. 너희 둘도 우리를 따라 같이 나가자꾸나. 너희가 교전을 해보았으니 미리 대비할 것이 있으면 미리 일러 주거라.”

    초췌한 거한이 일단 한립과 지원을 나온 수사들에게 포권을 하고는 고개를 돌려 복운학을 따라 퇴각한 결단기 수사 둘에게도 분부를 내렸다.

    눈이 크고 눈썹이 짙은 수사는 얼굴이 새까맣게 변했고 가는 눈썹에 얼굴이 길쭉한 수사 역시 표정이 어두워졌지만 륙 수사의 명에 포권을 취하며 응할 수밖에는 없었다.

    * * *

    황룡산 남쪽에 새까맣게 몰려든 모란 법사들이 각종 법기를 타고 떠올라 수십리에 달하는 청록색 운무를 주시하고 있었다.

    법사 대군의 최전방에는 열댓 명의 수사가 나란히 서 있었는데 바로 모란인들의 고계 수사들이었다.

    그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세 법사가 있었는데, 한 명은 붉은 보호막으로 전신을 감싸고 굵은 구렁이로 온 몸을 칭칭 감고 있었는데 흉악한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너무 마르고 키가 커서 마치 대나무가 서 있는 것 같았다. 바람이라도 불면 날아갈 듯 위태로웠다.

    마지막 한 명은 검은 옷으로 전신을 가리고 있어 살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은은하게 검은 요기를 뿜어내는데다 희미한 귀곡성이 따라다녀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릴 듯한 모습이었다.

    실제로도 두 법사의 곁에는 다른 법사들이 많이 모여들어 있었지만 검은 법사만 홀로 떨어져 있어 일행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다른 두 고계 법사가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상의했다.

    잠시 후 두 법사가 상의를 마쳤는지 길쭉한 법사가 몸을 번뜩이며 푸른빛에 휩싸여 흑의인 곁으로 다가갔다.

    “천곡 선생, 이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번 결계는 저번보다 강력해 보이는데다 모인 원영기 수사의 수도 적지 않다합니다. 시간이 꽤 걸리겠어요.”

    원영기 법사가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모습이 극히 공손했다.

    “우리가 먼저 칠 것도 없이 저들이 먼저 나왔군요. 일단 이곳 수사들의 실력이나 확인하고 이야기 하죠.”

    흑의인이 고개를 저으며 말하는데 목이 쉬기라도 한 듯 거칠고 둔탁한 목소리가 났다. 그의 말에 대나무 같은 바싹 마른 수사가 흠칫 놀라 급히 운무 쪽을 돌아보았다.

    과연 안개 중 한 곳이 요동치며 통로를 만들어냈다.

    그 안에서 일곱 줄기의 빛줄기들이 빠져 나와 모습을 드러내니 당연히 한립과 그 일행들이었다.

    초췌한 거한의 의견에 따라 이번에는 저계 수사들은 대동하지 않았다. 천태곡에서 온 결단기 수사 둘을 제외하면 결단기 수사는 충운자 뿐이었다.

    한립이 새까맣게 몰려든 법사 무리를 보며 먼저 앞에 나선 열댓 명의 고계 법사들로 시선을 돌렸다. 그들 중에서 음산한 요기를 발산하는 흑의인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를 보자마자 그의 손에 죽은 현골 상인이 떠오른 것이다.

    ‘저 자도 귀수(鬼修)인 것인가? ’

    내심 흠칫한 한립이 흑의인에 대한 경계심을 끌어올렸다.

    현골 상인이 곡혼의 몸을 빼앗은 후에도 이렇듯 음산한 기운이 만연하고 전신에 귀기가 흘렀었다. 하지만 뭔가 다른 느낌도 있었는데 무엇이 다른지 꼭 집어 말하기는 어려웠다.

    한립 등 수사들의 등장에 법사들도 요동치더니 기괴한 구렁이를 몸에 두른 수사가 불현듯 거대한 불덩이로 변해 몸을 던졌다.

    그러나 단 한 명도 당황하는 기색 없이 초췌한 수사 등 여러 원영기 수사들이 냉랭히 그들을 주시했다.

    수사들의 주시 하에 거대한 불덩이가 그들을 오륙십 장 남기고 멈춰 서서 활활 타올랐다. 멀리서 까지 불덩이의 열기가 느껴지자 수사들이 미간을 좁혔다.

    “저는 배화부(拜火部) 대상사(大上師) 굴요라 합니다. 다들 나오셨으니 일단 실력이나 겨뤄보시지요. 어떻게 대결을 해볼까요?  일대일이 좋겠습니까 아니면 인원수에 상관없이 혼전으로 가볼까요?”

    불꽃 속의 인영이 번쩍 거리며 천둥처럼 큰 목소리를 ‘웅웅’ 거렸다.

    “일대일! 생사는 하늘에 맡기는 것으로 합시다.”

    초췌한 거한이 눈을 부릅뜨며 불꽃 속의 인영을 향해 냉랭히 외쳤다.

    “으하하하! 본 상사도 원하는 바입니다. 제가 첫 번째로 나설 테이니 그쪽에서도 나서시지요!”

    불꽃 속의 법사가 광소하며 당당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러자 마 노인이 먼저 얼굴을 굳히며 하얀 빛줄기로 변해 날아갔다.

    초췌한 거한은 말릴까 말까 잠시 고민했으나 그냥 마 노인이 첫 번째 대결을 하도록 묵인했다.

    그도 막 원영을 이룬 한립을 제외하면 다른 수사들의 실력이 누가 나은 지 확실치 않았던 것이다.

    불꽃 속의 굴요가 하얀 빛줄기를 보고 뒤로 물러나니 곧 둘은 안개와 법사 대군 중간에 위치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야 어느 한쪽에서 갑자기 끼어들어 암습을 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저 모란인 대상사의 실력이 어떠하더냐?  특별히 주의해야 할 점은 없고?”

    륙 수사가 고개를 돌려 옆의 길쭉한 얼굴의 결단기 수사에게 물었다.

    “불 속성의 공법이 굉장히 강력하고 특히 몸에 두른 저 불 구렁이의 움직임이 기민해 막기가 어렵습니다. 저희와 함께 천태곡을 지키던 한 결단기 수사는 구렁이에 몸이 감겨 재로 변해 목숨을 잃었지요.”

    “오! 그렇구나. 곡 형! 제 기억이 맞다면 호연각의 호연정기결(浩然正氣決)이 불과 물에 모두 강하고 사악한 술법이나 귀기에 상극이지 않습니까?  그럼 법사와 맞붙어서 우위를 점 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 아닐까요?”

    초췌한 거한이 자신도 확신할 순 없지만 긍정적으로 물었다.

    “알 수 없는 일이지요. 보통의 불 속성 공법이라면 문제없겠지만, 상대의 기운으로 보아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른 것은 아닌가 걱정됩니다. 호연정기결로도 우위를 점 할 수 있을지…… 그래도 우리 중에서는 가장 적합한 대결상대겠지요. 이기지는 못해도 상대의 화염에 영향은 덜 받을 것 아닙니까.”

    곡쌍포도 확답을 내리지 못했다.

    초췌한 거한이 곡쌍포의 답변에 약간 마음을 놓았는데 한립은 오히려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의 눈가에 남색 빛이 어른거리며 이상하단 표정이 순식간에 스쳐지나갔다.

    이때 허공의 마 노인이 두 손으로 수결을 맺으니 부드러운 빛이 몸에서 터져 나왔고 동시에 그의 입에서는 복숭아만한 은빛이 뿜어져 나와 은백색 목판으로 변화했다.

    부들부들 몸을 떠는 은백색 목판의 울림이 구중천(九重天)의 봉황의 울음소리 같았다.

    맞은편 굴요가 미친 듯이 웃던 때와는 달리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뒷짐을 진 채 그것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불꽃 속에 숨겨진 그의 얼굴에는 비웃음이 걸려 있었다.

    마 노인이 그것을 보고 울화가 치밀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그의 귓가에 아주 작은 목소리로 전음이 들려왔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내용만은 분명하고 또렷하게 전달되었다.

    마 노인이 놀라 아래쪽의 몇몇에게 눈길을 돌리다 한립에게서 시선이 머물렀다. 한립이 그를 향해 담담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 노인이 처음에는 의심하는 기색을 보이다가 굴요가 몸에 두른 구렁이를 보고는 점차 표정이 진지해졌다.

    “몸에 두른 구렁이가 보통 요수가 아니군요!”

    마 노인이 어두운 얼굴로 소리쳤다.

    “호오?  보는 눈은 좀 있습니다. 이게 어떻게 보통 요수겠습니까. 천지간의 불 속성 영기가 응축돼 생성된 것인데요.”

    이어 굴요가 몸을 털어내자 붉은 구렁이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며 하늘로 솟구쳤다. 붉은 구렁이의 머리에서 뿔이 솟아나고 발톱이 자라나니 붉은 비늘이 반짝이는 불 속성의 교룡의 모습이 되었다.

    “불 속성 영기의 화형(化形)이라니!”

    초췌한 거한이 놀라 외치자 곡쌍포의 얼굴도 일그러졌다.

    마 노인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상대의 불 속성 공법이 경지가 높아 놀랍게도 불 속성 영기를 제련하는 경지까지 이른 것이다. 이런 수준은 결코 평범한 원영기 수사의 경지가 아니었다.

    본래 7할의 확률로 상대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점쳤는데 이제는 의미가 없어졌다. 노인이 길게 탄식을 하며 소매를 저으니 오색찬란한 무언가가 빠르게 튀어나와 몸 앞으로 날아올랐다.

    동시에 아래쪽 수사들은 물론 멀리 있는 법사들까지 호기심을 드러내며 그것을 쳐다보았다.

    그것은 가늘고 긴 것이 둘둘 말려 있는 게 수 척 길이의 누런 두루마리였다.

    두루마리가 굴요를 앞에 두고 마 노인의 진중한 구결 소리에 맞춰 천천히 펼쳐졌다. 펼쳐진 두루마리 속에는 아주 평범해 보이는 팔괘도(八卦圖)가 그려져 있었다.

    다들 의아해 하는 찰나 마 노인이 간단한 법결을 날려 보냈고, 두루마리에서 오색찬란한 빛이 범람하더니 놀랄 만큼 거대한 영기의 파동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상대편 굴요가 위기를 감지하고 더는 여유도 부리지 못한 채 노인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동시에 허공에 떠올라 있던 불 속성 교룡이 아가리를 벌렸고 시뻘건 화염이 분출되어 마 노인과 두루마리를 한꺼번에 불바다 속으로 밀어 넣었다.

    아래쪽에서 지켜보던 초췌한 수사 등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마 노인이 교룡의 정체를 알고 꺼낸 보물이라면 이렇게 쉽게 당할 거라 여기지 않은 것이다.

    과연 불바다 속에서 마 노인이 수결을 맺자 두루마리에서 빛이 반짝이며 광풍이 불어왔다. 뿌연 바람기둥이 팔괘도 속에서 솟아올라 도처의 십여 장을 휩쓴 것이다.

    주변의 화염이 바람기둥에 말려들어 파죽지세로 기운을 잃고 절반 정도가 소실되어 버렸다.

    “흐압!”

    노인의 노호성과 함께 은색 빛줄기가 바람기둥 사이에서 뿜어져 나와 불 속성 교룡도 개의치 않고 바로 굴요를 향해 달려들었다.

    굴요가 무표정한 얼굴로 입가를 씰룩이더니 한 손을 들어올렸다. 붉은 비도가 손바닥에서 뻗어 나와 은색 빛줄기를 막으로 뻗어나갔다.

    새빨간 수정처럼 빛나는 비도의 광채가 눈부셨고 은색 빛줄기와 만나 허공에서 치열하게 교전했다.

    붉은빛과 은빛이 섞여 들어가니 즉시 승부가 나지 않았다.

    굴요가 서늘해진 눈빛으로 손바닥을 뒤집어 일 촌 길이의 붉은 깃발 두 개를 꺼내들었다.

    촤르륵!

    작은 깃발들이 바람을 가르며 순식간에 일 장 길이로 커지더니 불기둥이 솟구쳐 나와 교룡의 머리로 응집했다.

    “가라.”

    굴요가 주술을 마치자 입에서 붉은 기운을 분출했고 교룡이 몸을 부르르 떨며 기운 속으로 숨어들었다. 밑에서 보니 붉은 안개가 요동을 치는 것 같았다.

    한립이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있는데 자세히 보면 눈동자에만 남색빛이 어른 거렸다.

    명청령안의 힘을 빌려 살피니 교룡이 붉은 구름 안에서 미친 듯이 붉은 기운을 먹어 치우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붉은 구름을 삼킨 교룡은 십여 장 크기로 거대해 져서 거의 집 채 만해졌다.

    이때 뿌연 돌풍과 곳곳의 불바다가 동시에 소실되고는 마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 노인이 손에 팔괘도를 돌고 거대해진 교룡을 보곤 두루마리를 허공으로 내던졌다.

    그러자 두루마리가 그대로 하늘로 솟구쳐 구름을 뚫고 사라져버렸다. 굴요가 순간 놀란 시선으로 두루마리를 쫓았다.

    그가 두루마리를 쫓는 순간 오색찬란한 빛이 쏟아지더니 더없이 거대해진 팔괘도가 나타나 방원 수십 장을 뒤덮으며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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