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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신공-397화 (154/2,000)
  • # 397

    397화. 남궁완의 소식

    직접 황풍곡으로 데리고 들어온 아이였으니 기억하는 것이 당연했다.

    “아이라뇨. 지금 소 사매는 이미 혼인을 한데다 수십 년 전에 결단기에 들었습니다.”

    섭영이 분위기를 풀 듯 장난스레 답하며 미소 지었다.

    “호오, 그 아이가 벌써 결단기에 들었다니. 생각지도 못했구나.”

    “일전에 몇 번이나 선배님께서 소 사매를 입문시켜주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큰 은혜를 입었다 여겨 마음 깊이 새기고 있더군요.”

    “마 사형 문하에 들게 해준 것은 다만 아이의 자질이 좋았기 때문이다. 은혜는 무슨.”

    한립이 웃음기를 지우고 평온하게 말하는 소리에 섭영과 뢰만학이 뜻을 알아듣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황풍곡에 들를 생각조차 없는 것이다.

    그리고 구국맹의 핵심 제자가 된 이들이 그 이유를 추측 못 할 리 없었다. 당시 겨우 축기기 제자였던 ‘한 선배’는 미끼로 이용당해 버려졌었다. 그러니 황풍곡으로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애석해하는데 한립이 돌연 엄월종 중년인에게 물었다.

    “너희 엄월종에 남궁완이라는 여수사가 있지 않더냐. 그녀는 어찌 지내더냐.”

    이전과 달리 조금 신중한 얼굴이었다.

    “아! 남궁 사숙님을 아십니까?  남궁 사숙님께서는 현재 종 내에 계시며 아주 무탈하십니다.”

    당명화라는 중년 수사가 조금 놀라고는 바로 공손히 답했다.

    “사숙?  그녀도 원영기에 든 것인가?”

    한립의 어투에 감출 수 없는 즐거움이 묻어났다.

    “100년 전에 원영을 응결하는데 성공하셨지요. 현재 본 문의 장로님 중 한 분이십니다. 잘 아시는 사이십니까?”

    “잘 안다고 봐야겠지. 이전에 큰 은혜를 입어 다시 찾아뵙고자 했지만 안타깝게도 기회가 되지 않았다.”

    한립이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하하! 남궁 사숙께서는 손님을 잘 받지 않으시지만 3개월 후에는 만나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저희 남궁 사숙님과 화의문(化意門) 위 장로님의 혼례식이 있을 예정이니까요. 본래 맹 내의 고위 수사들만 참석할 예정인데 한 선배님은 남궁 사숙님의 지기시니…….”

    “혼례? !”

    한립은 머리가 멍해지며 ‘혼례’ 다음의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예…… 화의문 위리진 장로는 300년 전에 원영을 응결하셨고, 천남에서는 내로라하는 기재이십니다. 그래서 이번 혼례 역시 본 종과 화의문이 공을 들여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립의 서늘한 얼굴에 놀란 중년 수사가 의아해 했지만, 한립의 냉랭한 눈빛에 간담이 서늘해져 줄줄이 상황을 설명했다.

    다른 이들도 표정이 이상해졌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한립과 엄월종의 남궁완이 그냥 아는 사이는 아닐 거라는 사실을 눈치 챘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을 뒤엎고 한립이 얼굴의 냉기를 거두고 온화하게 입을 열었다.

    “당 수사는 당황할 것 없네. 악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예전에 마음에 두었던 여인이 혼인을 한다는 소식에 잠시 당황했군. 그래도 기왕 소식을 들었으니 오랜 지기의 혼례에는 참석해야겠지.”

    그의 담백한 언사에 중년 수사가 크게 마음을 놓고는 연달아 환영하다는 인사치레를 했다.

    뢰만학과 다른 수사들도 한시름을 놓았는데 현재 월국 육파는 거의 하나의 세력이나 마찬가지라 문제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어 한립이 월국 육파 관련 소식을 물으니 다섯 수사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한립은 황풍곡 령호 사조가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에 잠시 미간을 좁혔지만 아무 소리도 못 들은 척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지. 너희 남궁 사숙에게 남궁병이라는 사촌 누이가 있지 않더냐?  그녀 역시 엄월종 수사일 텐데.”

    평정을 되찾은 한립이 문득 생각이 난 듯 물었다.

    “예?  남궁병이라는 분은 처음 들어 봅니다. 남궁 사숙님께 사촌누이가 있으시다는 이야기도 금시초문인데, 혹시 잘못 알고 계신 것은 아니십니까?”

    중년 수사는 정말 모르는 것 같았다. 한립은 별안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남궁병은 엄월종의 결단기 수사일 텐데. 어찌 모를 수 있지?”

    “정말 그런 수사가 있다면 완배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제가 장담하건데 그런 여인은 없습니다.”

    당명화의 말에 이어 뢰만학도 의견을 더했다.

    “당 수사의 말대로 엄월종 결단기 수사라면 저희가 모를 리 없는데 그런 여인은 없습니다. 혹시 어떻게 알게 된 수사인지 여쭐 수 있을까요?”

    “아니네. 아마 내 착각이겠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한립은 놀라고 있었다.

    그처럼 머리가 좋은 자가 어찌 깨닫지 못하겠는가. 그때 나타난 남궁병이란 여인은 남궁완의 사촌 누이가 아니라 용모를 바꾼 남궁완 본인이었던 것이다! 당시 그를 해치지 않은 것도, 헤어지기 전 했던 이상한 말들도 이제야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

    한립은 이야기 나눌 마음이 사라져 그 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에 다른 이들도 한 선배의 기분이 좋지 않음을 알고는 떠들어 대지 않았다.

    거의 반나절을 날아서 아무도 없는 산 정상 위에 한립의 어풍차가 멈췄다.

    “여기서 헤어지지. 풍원국에서 하루거리는 될 테니 안전할 게다.”

    그의 말에 뢰만학 등은 어풍차에서 내리며 공손히 인사를 했다. 한립 역시 그들이 모두 어풍차에서 내리자 즉시 방향을 틀어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뢰 수사, 한 선배님이 정말 황풍곡 제자였고 뢰 수사의 사질이었단 말입니까?”

    비교적 나이가 있는 천궐보 수사가 어풍차가 사라진 후에야 뢰만학을 향해 물었다.

    “어찌, 내가 거짓말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소?”

    뢰만학이 눈살을 찌푸리며 툴툴거렸다.

    아무리 한립이 생명을 구해줬다고 해도 자신보다 한참 수행이 낮았던 완배가 원영기 수사가 되어 나타났으니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하하! 그냥 확인삼아 물은 것이니 뢰 형도 그리 화낼 것 없습니다. 다만 한 선배님과 섭 수사의 연배가 비슷한 것 같은데. 섭 수사, 수련을 시작한지 몇 해만에 지금에 경지에 이르셨습니까?”

    천궐보 수사가 같이 성을 내기 보다는 말을 돌리며 섭영을 향해 물었다.

    “200년 넘게 수련하여 이제 막 결단 초기의 수행을 지녔습니다.”

    섭영도 상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았기에 안색이 미미하게 달라졌다.

    “그렇다면 한 선배님은 겨우 200년 만에 원영을 응결하는데 성공하셨다는 소리인데. 다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겠지요.”

    천궐보 전 수사가 수염을 쓸어내리며 정색했다.

    “그 말인즉슨…….”

    거검문 거한이 말을 잇지 못했다.

    “예, 화신기에 이를 가능성도 있는 분이란 말입니다. 천남 지역에서 화신기 수사가 나왔다는 기록이 벌써 수만 년 전의 일이에요. 비록 화신기에 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도계에서 사라져 버렸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천남 전역을 휩쓸었다고 하죠. 아직 화신기 초기의 수행이었는데도 정마 양도는 물론이고 중립을 지키던 종문들 전체가 힘을 합쳐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전 수사가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맺었다.

    “너무 앞서 나가는 것 아닐까요. 한 선배님이 단시간에 원영기에 든 것은 사실이지만 화신기까지는 아직 요원한 일입니다.”

    섭영이 듣고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하하! 조금 앞서나가기는 했지요?  허나 천년 내로 한 선배님이 천남 대륙을 좌지우지하는 인물이 될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 분이 귀 곡과 인연이 깊으니 포섭할 수 있다면 우리 육종이 다시 월국을 되찾는 일도 불가능은 아닙니다.”

    전 수사는 눈을 빛냈다.

    “인연이요?  한 선배님은 황풍곡 출신이긴 하지만 이미 천도맹 낙운종의 장로가 되었습니다. 우리 세력을 가지고 어찌 포섭을 한단 말입니까. 게다가 본인이 돌아올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을 다들 보시지 않았습니까.”

    뢰만학이 탄식했고 다른 이들도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한 선배님이 귀 곡에 대체 왜 그러는 것입니까?  아무리 그래도 황풍곡 출신이신데요.”

    거검문 거한이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말씀 드리기 어렵고, 희망이 적다는 것만 알아 두시죠. 그보다는 엄월종 남궁 선배님과 교분이 깊어 보이는데 그쪽에서 권해주시면 육종으로 돌아오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고개를 젓던 뢰만학이 엄월종 중년인을 쳐다보았다.

    “그거야…… 그럴 수도 있겠지요. 제가 돌아가 보고를 올려 이 일에 대해 여쭙겠습니다.”

    “됐습니다. 원영기 수사를 포섭하는 일은 어차피 우리가 논할 일이 아닙니다. 돌아가서 장로님들에게 알리지요! 아마 3개월 뒤의 혼례식에 참석하실 것이니 어서 맹으로 돌아가는 데나 힘씁시다.”

    뢰만학이 갑자기 주변을 돌아보며 경계했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아직 완전히 안전하지는 않다는 것을 깨닫고 다섯 개의 빛줄기로 변해 날아올랐다.

    그러나 가볍게 날아오른 뢰만학의 마음은 천근만근이었다.

    ‘이 일을 어찌 령호 사조에게 보고한단 말인가? ’

    황풍곡이 버렸던 제자가 원영기 수사가 되어 돌아오다니. 게다가 그때의 일로 황풍곡에 나쁜 감정을 품고 있지 않은가.

    그대로 보고한다면 자신이 령호 사조에게 따져 묻는 꼴이 될 텐데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 * *

    어풍차는 빨랐지만 요란해도 너무 요란했다!

    한립이 일정 거리를 날아 뢰만학 등이 보이지 않자 어풍차를 회수하고 둔술을 이용해 앞으로 나아갔다.

    남궁완에 대한 소식은 그가 접한 최악의 소식 중 하나였다. 하룻밤을 같이 보내고 겨우 두 번 마주친 사이이지만 그는 부지불식간에 남궁완이 자신의 여인이라 믿고 있었다.

    특히 금단에 성공하고 원영기에 들었을 때는 그런 마음은 더욱 굳어졌었다. 그러니 방금 남궁완이 다른 사내와 혼례를 올린다는 소리에 평정을 잃은 것이다.

    속수무책으로 남궁완이 다른 이의 부인이 되는 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이번 생에 그녀를 아내로 맞을 수 있는 사내는 오직 한립 자신뿐이어야 했다!

    게다가 남궁완을 취하려는 사내가 그녀에게 정말 마음이 있다고도 믿지 않았다.

    이제 결정을 해야 할 문제는 엄월종으로 찾아가 몰래 남궁완을 데리고 달아날 것인지. 아니면 3개월을 기다려 혼례일에 나타날 것인가였다.

    첫 번째 방법은 남궁완이 두말 않고 따라나설 지가 문제였다. 어쨌든 엄월종에서 오랜 세월 생활했고 장로의 신분이었으니 그냥 떠나기 어려울 것이다.

    두 번째는 혼례식에 나타나 남궁완을 향해 정식으로 청혼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엄월종을 비롯한 육파, 심지어 구국맹의 반대가 있을 테니 함께 떠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가장 간단한 방법은 바로 남궁완을 처로 맞이하려는 위리진을 찾아가 소리 소문 없이 죽이는 것이었지만, 가장 위험한 방법이었다.

    화의문은 일반적인 중소 문파가 아니라 구국맹에서 가장 세력이 큰 거대 수도문파 중 하나였다. 원영기 장로도 네다섯 명은 될 것이고 세력도 낙운종을 초월할 것이 분명했다.

    위리진이 화의문에 머문다면 그가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조용히 그만 처리하고 빠져나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죽이는데 까지는 성공하더라도 신분이 탄로나는 순간 낙운종에 화를 불러들일 것이다. 한립은 날아가는 동안 거듭 여러 방법을 고민하며 선택지를 좁혀나갔다.

    일단은 최대한 빨리 엄월종으로 향해 남궁완을 직접 만나 상대의 의사를 확인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녀에게 어떤 문제나 고충이 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만일 일이 잘못 된다면 혼례식 전에 화의문을 찾아 어떻게든 위리진을 제거할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후환을 미리 제거하지 못한다면 혼례식 당일에라도 남궁완에게 정식으로 청혼하고 대답과 상관없이 우선은 그녀를 데리고 떠날 것이다.

    그는 평생 동안 진심으로 마음을 준적이 거의 없었다. 항상 이성을 감성보다 중시하며 살아왔으나 이번만큼은 절대 남궁완을 다른 이에게 넘겨 줄 수 없었다.

    지금의 능력이라면 원영 후기의 수사가 막아서지 않는 한 누구도 그를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속으로 만반의 계획을 짠 한 한립이 다시 정확한 방향을 잡고 맹렬히 속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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